|
질투
질그릇 깨지는 소리를 내며
투기를 부리는 내 마누라
질식할것 같는 이 망할놈의 분위기
투지와 패기는 어디로 보냈노
질투하지 마시오 당신만 망가집니다
투기하지 마시오 당신만 부셔집니다
*질투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질투(嫉妬, Jealousy) 또는 시기(猜忌)란 다른 사람이 잘 되거나 좋은 상황에 있을 때 미워하는 것이다.
잃게 될 것, 또는 개인이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특히 인간 관계의 영역)을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나 두려움, 불안으로부터 생긴다.
타인이 자신에게는 없는 것을 가질 때 자기긍정감 저하 같은 감정적 고통을 동반한다. 애정관계에서 질투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아닌 타인에게 애정을 준다고 화가 난다고 한다.
질투(嫉妬, Jealousy)와 선망(羨望, Envy)은 일반적으로는 같은 의미를 가지고 사용되고 있으나, 심리학적으로는 2개의 개별적인 감정으로 분류된다.
질투는 주로 현실, 상상에 지나지 않고, 자신 이외의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나타난다. 선망은 자신 이외의 누군가가 가진 바람직하고 좋은 것을 자신의 것으로 하고 그것을 즐기는 것에 대한 분노 감정이며, 양자관계에 기초를 둔다.
그에 대해, 삼자관계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이 다른 존재에게 마음을 두는 것을 두려워 하며, 그 존재를 미워하는 감정이다. 질투 속에 선망이 포함되는 경우도 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
1. 개요
남을 부러워하는 감정. 또 그것이 고양된 격렬한 증오나 적의 형태.
시기의 유의어(뜻이 비슷한 말). 순우리말로 ‘시샘하다’에 활용되는 '샘'과 동의어로 치기도 하지만 샘은 시기에 가깝고 질투는 강샘이라 한다. 영어로는 jealousy. 이 단어는 '부러움' 에 가깝고, (ex. "I'm so jealous!") envious는 오히려 격식 차린 말이라고 여겨져서 미국 언중 사이에서 쓰임이 줄어들었다고. # 영어권에서 "○○(이)가 부럽다" 표현은 대체로 "○○ is lucky" 정도로도 부러운 감정이 충분히 표현되니 참고.
십계명에 대놓고 남의 재산과 배우자에 대하여 시기하고 탐내지 말라고 적혀 있다. 시기도 그저 가벼운 부러움 정도는 죄가 아니지만, 그걸 이유로 타인을 증오하고 괴롭히면 죄악이 된다. 나이, 성별, 직업, 사회적 지위에 상관 없이 불특정다수에게서 발현된다. 자존감[2]이 낮은 사람일수록 질투심이 더 심해진다고도 한다. 그리고, 정도를 넘어선 경우 질투가 증오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2. 상세
보통 자신의 연인이나 배우자가 자기 이외의 사람과 관계[3]를 가질 때 생기는 감정. 연인 뿐만 아니라 인간의 모든 분야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내 것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사람이 빼앗으려는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이나,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이다.
옛날 서양에서는 '질투가 없을 수 없다'며 질투에 대해 상당히 관용적인 입장을 취했다. 동양, 특히 유교권 나라에서 '칠거지악'에 속하는 것들 중 하나로 취급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부여에서는 질투하는 부인을 죽여서 산 꼭대기에 버렸다는 일화도 있다. 그러나 동양에서의 칠거지악은 윤리적인 관념이었을 뿐으로, 칠거지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한 번 받아들인 처를 내쫓는 집안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도 칠거지악 타령을 하던 조선시대에 사대부 중의 사대부인 임금이(중종 때) "부녀로서 질투가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중종이 자신의 딸 효정옹주에게 한 말이다. 효정옹주는 남편 조의정이 자신의 몸종 풍가이와 놀아나는데도 그들을 감쌌고, 중종은 야단을 쳤다. 결국 효정옹주는 조의정 때문에 죽었고, 분노한 중종은 사위 조의정을 귀양보냈다. 또 풍가이는 백 수십 대가 넘게 매질을 하여 죽게 했다. 또 이보다 한두대 전인 성종 때는 폐비 윤씨를 쫓아내느냐 마느냐를 놓고 논란이 일었을 때 임사홍이 적극 만류하며 "예로부터 투기(=질투)하지 않은 부인이 없었습니다." 라고 말리는 장면이 나온다.
조선 후기 사대부 남성들의 야설 모음집에도 "사나운 본처의 질투어린 감시[4]를 재주껏 피하고" 놀아나기 스토리가 나온다. 한마디로, 유교적 지도층인 사대부 계층에서조차 질투는 현실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한 셈. 심지어는 질투하지 않는 것을 되려 이상하게 여겼다는 얘기도 있다.
한 예로, 영조는 며느리인 혜경궁 홍씨에게 "너는 왜 아녀자이면서 투기를 하지 않느냐?"라고 꾸짖기도 했다. 당시 홍씨는 남편 사도세자의 후궁인 숙빈 임씨와 경빈 박씨가 남편과 시아버지(영조)에게 심하게 박대를 당하자 질투는커녕 오히려 동정심이 생겨서 이들을 보살폈는데, 영조는 이를 두고 홍씨가 투기를 하지 않는다며 혼낸 것. 이 일은 평소 혜경궁 홍씨를 매우 총애하던 영조가 홍씨를 꾸짖은 유일한 사례일 정도이다. 이 얘기는 질투가 없다는 것은 애정이 없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발칸 반도 문화권과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질투가 적극적으로 권장되는 덕목이기도 하다. 실제 터키 생활자의 경험에 따르면, 터키인들 중에서는 자기 남자/여자친구가 다른 이성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화가 난다는 반응이 많다. 되려 "그럴수도 있지, 왜 그렇게 남자/여자친구한테 집착하냐?"고 묻는걸 이해하지 못한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거의 상대방을 구속하고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려 드는 것처럼 보일 정도.
예를 들자면, 여자와 남자가 함께 모이는 자리[5]에서 커플이나 부부가 함께 참가하지 못할 경우 남자/여자 친구나 배우자가 끊임없이 문자나 왓츠앱[6]으로 "어디냐?", "언제쯤 들어올거야?", "뭐해?", "남자/여자 누구 누구랑 앉아있어?", "오늘 외박할 거야?" 식으로 끊임없이 물어보고, 심지어 "나랑 같이 안 갈 거면 가지 마!"하고 못가게 하는 경우인데, 이것을 남자든 여자든 애정표현 및 관심으로 받아들인다. 보수적인 사람은 자기 남자/여자 친구나 배우자가 모르는 이성과 함께 만나고, 악수하는 것 조차도 불쾌해하며 화내며, 집에 온 손님이 배우자의 외모를 칭찬하는 것 만으로도 "저놈이 내 마누라/남편한테 흑심을 품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질투할 정도. 이 지방에 여행갈때는 모르는 이성에게 길을 묻거나 말을 걸 때 조심할 필요가 있다.
물론 둘 다 어디까지나 문화권에서 그런거지 종교적으로 그런건 아니다. 당장 성경이나 쿠란을 읽어봐도 질투는 당연히 죄악 취급된다. 하지만 그들이 믿는 신의 이명이 질투의 신인 걸 보면 아이러니
질투라는 것 역시 어디까지나 인간이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는 감정 중 하나기 때문에,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고 부정만 할 것은 아니다. 정도만 넘지 않는다면 인간의 입체적인 면을 보여주고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요소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질투는 대개 부정적인 결과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성적 질투의 뜻도 있지만 비사회적 질투의 뜻도 있다. 좋게 말하자면 경쟁심리라고 한다. 동료의 승진을 인정해주지 않고 자신의 못난 점을 숨기기 위해 뒷담화를 한다거나, 상대방의 노력을 무시한 채 금수저라서 그렇다는 편견을 가지는 등이 있다. 질투자가 상대방에게 견제와 방해를 시도하는 행위들도 많이 볼 수 있다.
3. 질투는 생물의 본능
사실 질투 자체가 결국은 비교우위에서 비롯되며, 사회와 서열의 개념을 갖춘 동물 집단 내에서는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대개 만악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반려동물끼리도 서로에게 질투를 하기도 한다. 두 마리 이상을 키울 경우, 너무 한 쪽만 예뻐해주면 나머지가 그 동물이 주인에게 접근하는 걸 막고 주인에게 관심을 받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애교를 부리거나 심할 경우 그 동물 혹은 주인까지 공격(!!)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관심을 끌고 싶어서 일부러 멀쩡한 다리를 아픈 척 절룩거리는 고양이도 있다. 주인이 안 볼 때면 멀쩡하게 걸어다녔다고.
그리고 연인관계, 배우자관계가 아닌 인간관계에서도 질투가 생기기도 한다. 이는 어린 애들에게서도 나타나는데, 자신에게 쏟아졌던 집안 관심이 새로 태어난 동생에게 쏠리자 이를 질투해서 동생을 해코지한다던지, 혹은 좋아하는 친구가 자기랑 안 놀고 다른 애와 놀때 울거나 화를 낸다던지, 자신이 좋아하는 선생님이 다른 애를 예뻐하자 일부러 아픈 척 하며 관심을 끄는 연기를 하기도.
이러한 질투 관련하여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는 용어가 있는데, 타인의 불행, 비교 우위를 느끼는 대상의 추락을 보고서 느끼는 쾌감이라는 뜻이다. 즉 남의 불행은 내 행복. 사람의 뇌는, 열등감이 느껴지는 대상의 추락을 보고서 자신의 위치가 드높아진 것 마냥 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또한 그것이 바로 질투로 인한 갈등의 주요 요소. 그래서 극심한 열등감과 시기심을 느끼는 사람들이 범죄자 테크트리를 타는 경우도 어느 정도 있는 편이다.[7]
예를 들어, 자신과 하등 관련없는 연예인의 성형 전 사진을 유포하여 은퇴시킨다거나, 메갈리아에서 마인드 c 작가에 대한 인신공격 시도의 동기가 "유명 작가에 연애도 하는 삶이 질투가 났다"라는 동기였다는 등[출처], 질투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자주 문제를 일으키는 것의 주요 원인인 셈.
또 다른 예시로, 여성들의 신상을 인터넷에 공개하여 피해자를 속출시킨 강남패치의 운영자가 남성이 아닌 여성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네티즌들에게 충격을 주었는데, 검거된 운영자는 고위층 자제[9]를 향한 질투심이 행동 동기였다고 고백했다.
4. 질투에 대한 오해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는 게 질투에 대해 잘 나가는 상대방에 대한 열등감 표출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못남을 나타날 뿐이라고 조롱하기도 한다. 하지만 잘 나가는 사람들 또한 특정한 계기, 요소를 가지고 열등감을 가지는 경우가 있음을 생각하면 이는 오해일 뿐이다.
잘나가는 사람도 특정 요소나 계기로 인해 상대방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흔하 말하는 텃세와 군기 잡기도 사실 근본적인 배경에는 추월당할지도 모른다는 근원적인 공포감과 전도유망한 후배에 대한 질투와 시기심이 큰 원인을 차지하며 그 범위도 일반적인 회사에서 직장 상사가 잘나가는 직장 후배에게 인사고과에서 일부러 물을 먹이는 경우에서부터 연예계, 개그업계에서 개성을 가지고 톡톡 튀는 후배에 대해 군기잡기를 시전하거나 선배보다 방송에서 더 주목을 받을 경우 선배가 후배를 개인적으로 혼내는 등 사회의 광범위한 영역에서 발생한다.
그럼에도 이런 오해가 여전히 많은 이유는 바로 교만 때문이다. 흔히 교만이 잘 나가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멸시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질투가 그 반대라고 생각되기 쉽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된 내용들은 '그거 교만에 대한 내용 아니야?'라고 생각될 여지가 많다. 그럼에도 확실한 차이가 있는데, 교만은 저지를 때 불안감이 전혀 없는 데 비해 질투는 저지를 때 불안감이 근원이라는 차이가 있다.
5. 시기와 질투의 구분
시오노 나나미가 시기(선망)와 샘을 구분한 에세이를 쓴 적이 있는데, 간단히 말해 시기는 갖지 못한 사람이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이고 샘은 가진 사람이 그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뭐, 이거야 이 사람 나름의 정의이지 우리말에 알맞은 것인지는 각자 생각해볼 것.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로 말하자면 오셀로는 질투에 희생된 사람이고 이아고는 시기(선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사람이다. 그래서 오셀로에게는 자살이 허용되었으나 이아고는 처형당했다는 것이다. 《오셀로》에 대한 오슨 웰스의 평가에서 "이아고는 고자였다"고 하니, 시기의 핵심은 발기불능이라고 보아도 틀리지 않다. 참고로 이아고 때문에 녹색이 시기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정도를 넘을 경우 둘 다 무섭기는 마찬가지. 이것 때문에 살인까지 일어나는 것을 보면 결코 가볍게 볼 감정은 아니다.
다만 질투의 첫번째 뜻이 이성과 관련된 내용일 뿐, 질투에도 사전적으로 시기와 같은 의미 역시 존재한다. 질투의 뜻을 하나로 단정짓고 시기와 비교하는 것은 다분히 자의적인 해석이라 볼 여지가 있다. 또 envy와 jealous의 비교를 통해 시기와 질투를 구분하는 것 역시 무리가 있는데, envy와 jealous가 각각 시기와 질투에 나누어져 대응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시기와 질투를 한데 묶어 말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명확히 나뉜다기보다는 어느 정도 공통분모가 있는 유의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6. 관련 명언
7. 대중매체에서
미연시나 기타 연애관련 만화, 애니메이션에선 항상 주 갈등 단골 소재가 바로 이것이고 위기 부분에서는 항상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착각이나 개그씬에서도 종종 나온다. 창작물에서 주연들 간의 사랑 감정에서 비롯되는 질투는 전개를 흥미롭게 하고 캐릭터의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기도 하며 독자들로부터의 반응도 상당히 좋은 등의 특성이 있어서 많은 작품으로부터 애용된다.
신곡 연옥편에서 질투의 죄를 지은 자들이 연옥에서 눈이 꿰메져서 아무것도 못보는 벌을 받는다.
질투의 마음은 아버지의 마음이라 하였다.
Re: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의 최대 떡밥인 질투의 마녀 사테라가 400년 전의 사건을 일으키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본래 자신의 마녀 인자가 바로 질투의 마녀 인자이다. 또한 질투의 마녀를 숭배하는 마녀교의 대죄주교 자리 중에서 질투를 담당하는 대죄주교의 자리는 존재하지조차 않는데, 이는 질투의 마녀를 숭배하는 집단 내에서 질투를 자칭하는 것 자체가 불경죄에 해당하기 때문이라고.
에빌리오스 시리즈에서는 카요 스도우가 미로쿠 카이를 좋아했는데 그의 주변에 있던 미로쿠 메이, 미로쿠 미쿠, 미로쿠 린에게 질투하여 이 3명을 죽여서 기모노, 허리띠, 비녀를 꽂고 그에게 가서 '잘 어울리죠?'라며 죽인다. 엔비자카의 재봉사
참고.[스포일러]
사실상 모든 TV드라마들의 시발점이다.
8. 관련 문서
[출처] 1.1 1.2 네이버[2] 자존심이랑은 다름.[3] 성관계를 포함한 포괄적 의미[4] 이 시기에는 가부장제 문화로 인해 처첩제가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본처는 간통죄로 신랑을 고소할 수 없으니 질투 밖에(…).[5] 단순한 담소, 식사, 영화, 조별과제, 동아리모임, 직장모임 등등[6] 터키에서는 남녀노소 구분 안하고 왓츠앱을 거의 모두 사용한다.[7] 당장 장동민 돌 테러 사건 용의자만 해도 짐작 가능하다. 검거된 범인이 구체적 진술을 하진 않았지만, 장동민과 원한 관계가 아니었음에도 상대에 대해 매우 큰 열등감과 시기심을 느끼고 비열하고 저질스러운 행동을 택한 셈이다.[9] 대기업 회장 외손녀라고 한다.[10] 언뜻 보면 질투를 경계하는 대사 같지만, 사실 이 대사는 이아고가 오셀로의 질투심을 부추기기 위해 하는 대사다.[스포일러] 상기한 설명은 카요가 자수할 때 살인 이유에 대한 설명으로, 실제 상황과는 다르다. 실제 살인 이유는 카이가 가족을 죽게 한 범인임을 알았기 때문. 다만 카요 시점으로 서술된 적이 없어 앞의 3명을 죽인 건 시기 때문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https://namu.wiki/img/cc-by-nc-sa-2.0-88x31.p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