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3일 토요일
✝️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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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부들의 말씀 묵상✝️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붙잡아 묶어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요한 14,3)
요한의 경고
우리는 복음서를 열심히 읽으라는 충고를 자주 합니다. 복음서의 여러 이야기를 통해 더욱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모든 일에 관한 이야기에는 어떤 질서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서가 전하는 사건들
을 낳은 근본 요인은 헤로데와 요한의 경우에서 보듯 이미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여러 번 말씀드렸듯이 요한은 율법의 형식을 좋아했습니다. 율법은 그리스도에 대해 예고했고, 요한은 율법 아래서 나왔으며 율법에 바탕하여 그리스도를 알린 사람이었습니다. 반면 헤로데는 백성의 군주였고 백성의 군주는 자기 백성
의 이름과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취하지 말라고 충고했습니다. 그때도 지금도 두 백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할례받는 백성이고 다른 하나는 이방 민족들입니다. 율법은 이스라엘에게 이방 민족들의 행태와 불신앙에 물들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방 민족과 불신앙은 부부간의 사랑 같은 유대로 맺어져 있습니다. 요한은 정곡을 찌르는 준엄한 경고를 한 죄로 율법처럼 감옥에 갇혔습니다.
-푸아티에의 힐라리우스-
✝️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첫째 오솔길】
창조계
설교 9
하느님 나라가 다가온 줄을 아시오
하느님 나라가 다가온 줄을 아시오(루카 21,31),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바리사이들한테서 받고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하느님 나라는 알아채게 오는 것이 아닙니다. 또 ‘보라,.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보시오, 하느님 나라는 당신들 가운데 있습니다”(루카 17,20-21).
때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예수는 하느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고 말한다.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가 그것을 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깨달을 때 현존한다. 엑카르트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는 우리의 자각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자기가 왕이라고 확신하지 않고, 남들도 그렇게 생각해 주지 않으면, 그 사람은 왕일 수 없다. 자기가 왕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남들도 그렇게 생각해 줄 때야 비로소 그 사람은 왕일 수 있다.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오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가 준비되어 있느냐와 관계가 있다: 하느님은 항상 준비하고 있건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엑카르트는 하느님 나라를 이미 시작된 영생과 연관지어 생각한다. 우리는 앞의 설교들에서 영생을 살펴본 바 있다. 다드(C.H. Dodd)와 같은 현대 주석학자들도 예수의 하느님 나라 선포를 영생 및 실현된 종말론과 연관지어 생
각한다.(214)
✝️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7월 4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콜로1-4장/ 필레1장 / 1베드1-2장
<생태 영성 주간> 고요와 침묵과 절식을 통한 단순한 삶
✝️ 토요일 이웃 종교(생태)의 날✝️
이름 없는 하느님, 김경재
이슬람교의 분파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열
유대인과 아랍인의 전쟁에서 '성전'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룩한 전쟁' 이라는 종교적 이념은 역사 현실 속에서 순기능 못지 않게 역기능을 보여왔음이 사실이다.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간의 ‘정의와 불의' , ‘선함과 악함'이 불과 물처럼 분명하게 판별되지 않고, 대체로는 정의로운 면과 불의한 면이,, 선한 요소와 악한 요소가 뒤섞여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개인과 집단의 현실 해석은 인식론적으로나 해석학적으로나 아전인수격이기가 쉬워서 상대방은 전적으로 악한 집단이고 자기 집단은 전적으로 선한 집단이라는 흑백 논리가 발생하게 마련이며, 이에 신의 이름을 빙자하고 진리의 이름을 참칭한 또 다른 ‘인간 생명 경시'가 자행되는 것이다.
일본 군국주의 시대의 가미가제 특공대, 나치 독일의 청년 단체 히틀러 유겐트나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 과격 단체의 소년 자살 특공대 등과 같은 데서 볼 수 있는 사례는, 신의 이름이나 종교의 이름으로 ‘성전'에 침여한다는 자기 합리화 행동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독단인지 잘 보여준다.
구약학자 폰 라드(Von Rad)가 <구약성경> 속에 나타나는 ‘거룩한 전쟁' 이라는 신앙 이데올로기의 중요성을 논의한 이후 이 주제로 수많은 연구 논문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이러한 최근 연구 결과들을 김이곤은 다음과 같이 잘 정리해 주고 있다. 구약학계의 연구 결과를 보면 이슬람교의 ‘지하드' 사상이 실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전쟁' 이념의 이슬람화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모세 오경'을 통해서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이 고대 전제 국가 이집트의 집단 폭력 아래 노예 상태로 있다가 탈출한 직후부터, 이집트 군대와 팔레스타인 거주 블레셋 족, 아모리 족, 히위족 등 군사 정치 적으로 막강한 세력 집딘과의 생존을 건 투쟁을 지속해야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전쟁' 이념은 이 과정에서 겪은 놀라운 전쟁 이야기가 후일 ‘예배 의식' 속에 신앙 고백 형식으로 정리되면서 종교 이념으로 발전해 간 것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전쟁' 이념은 이슬람교의 그것보다 훨씬 더 신 중심적인데, 야훼 유일신의 전능함, 약자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심을 드러내고, 전쟁에 임한 이스라엘 민족의 공포와 두려움을 제거하며, 궁극적으로는 ‘정의로운 평화의 실현' 을 꾀하고자 한다.(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