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자연의 풍성한 축복과 가족들의 따뜻한 배려 너머 모순 투성이인 세상이 무겁게 다가오는 추석연휴입니다.
가족들이 모여 따뜻하게 다독여주는 추석에, 누구는 단 하루의 쉼이 허락하지 않아 가족에게 갈 여유가 없습니다. 풍성한 추석 음식으로 감사함이 가득한데, 누구는 태어나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평화로운 가을 날 어딘가는 날아오는 포탄에 가족을 잃고 두려움에 떨며 안녕함을 잃어버린지 오래입니다.
핵오염수가 방류되어 바다를 오염시키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법을 이용하여 죄인을 만들어내는데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인사권을 악용하여 범죄자를 수장으로 앉혀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법안을 고쳐야 하는데도 모르쇠하니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사익을 취하며 공적 시스템을 이용하는데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요즘은 내가 잘 살고 있나, 사는 게 좀 막막합니다. 자주 이명소리가 커지고 머리에 싸한 한기가 느껴집니다.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듣고 보자니 마음 흔들림이 너무 크고 머리가 복잡합니다. 중심을 잡고 살아가려 애쓰는데도 자꾸만 힘들다며 징징거리게 됩니다.
오랜만에 나무 그늘에 낮아 봅니다. 잣나무, 계수나무, 목백합, 상수리, 목련, 산수유...... 다양한 수종으로 어우러져 있느니 보기가 좋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 자유롭습니다. 목련은 겨울눈을 만들었고, 산수유는 열매를 빨갛게 물들이고, 여기저기 알록달록 단풍 들어가며 나뭇잎을 떨굴 준비를 하며 겨울을 준비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냥 그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무들에게 위로를 받습니다. 내 자리가 어디인지 물으며 스스로 슨들렸던 내게 나무가 지금 있는 내 자리를 알려줍니다. 곧 겨울입니다. 겨울에도 나무는 봄을 준비합니다. 우리의 자리에서 잘 살아보라고 나무가 가을 메시지를 보냅니다. 흔들리는 동녘의 식구들, 자기의 자리에서 살아갈 은총을 주시옵소서. 아픔과 어려움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