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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놉시스 >
대하사극 을 지 문 덕 (80부작)
1. 기획의도
대한민국 건국이후 TV 방송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그동안 수많은 사극들이 제작되어왔다. 한때(1970-80년대)는 우리나라 사극 소재가 지나치게 조선시대에 치중되어있다는 비판이 있기도 했고, 이를 의식했음인지 민주화가 되고 사람들의 의식과 사고방식이 보다 다양해진 90년대 이후에는 고려라던가 그 이전 고대사쪽으로 차츰 사극 소재의 영역이 넓혀지기도 했다. 또 근래에는 여말선초의 이야기를 다룬 사극이라던가 조선 정조,사도세자 시절의 이야기들이 새로운 사극 단골소재로 부각이 되기도 했다.
한편 중국의 동북공정 논란이 있던 2천년대 중반경에는 각 방송사가 앞다투어 고구려를 소재로한 사극을 만들기도 했고, 우리나라 역사속의 명장들을 다룬 사극으로는 이순신은 2004-05년에 KBS가 ‘불멸의 이순신’으로 정면으로 다룬바 있고, 고려시대 거란을 물리친 강감찬과 서희는 비록 역사왜곡 논란이 있던 사극이긴 했지만 ‘천추태후’에서 다룬바 있다. 또 삼국시대 각국의 대표적인 명장으로는 신라의 김유신은 주로 삼국통일 시대를 다룬 사극에서 단골로 등장했었고 백제의 ‘계백’은 2011년에 MBC에서 제작 방영한바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역사속의 명장중 살수대첩의 영웅인 고구려의 대표적 명장 ‘을지문덕’만 아직 사극에서 정면으로 다루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있다.
사실 고구려의 대표적인 명장으로는 ‘연개소문’이 2006년에 SBS에서 방영,제작된바 있고 비슷한 시기 KBS에서 제작한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 사극에서도 극 초반 고구려의 멸망시기를 다루는 부분에서 연개소문이 비교적 비중있게 등장하긴 했지만 연개소문의 경우 그 아들대에가서 결국 고구려를 멸망에 이르게 한 주범이라는 점에서 과연 우리나라 역사를 대표할만한 명장으로 미화시킬만한 인물인지는 분명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을지문덕’의 경우에는 김부식도 삼국사기에서 ‘군자’라 칭했을만큼 무엇하나 흠잡을데가 없는 가히 대표적인 고구려의 명장이라 할만하다. 따라서 이제 ‘을지문덕’을 한번쯤 사극에서 정면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대하사극 ‘을지문덕(80부작)’ 시놉시스를 한번 만들어보고자 한다.
2. 주제
(1) 왜 을지문덕인가 ?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고구려 살수대첩의 명장 을지문덕. 그러나 단순히 을지문덕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다기 보다는 이 시기 고구려의 정치사,외교사 그리고 민중들의 삶을 종합적으로 한번 조명해보는 사극을 만들어보고자 한다. 한때 북방으로 대대적으로 영토를 확장하며 동북아 최강자로까지 군림하던 고구려. 하지만 후반부로 접어들어서의 고구려는 대체로 국력이 쇠퇴하는 시기였다. 이때 고구려는 대내외적으로 어떤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민중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지. 그리고 그러한 시기에 수나라의 침입을 격퇴한 영웅 을지문덕은 과연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 바로 그러한 차원에서 을지문덕과 고구려를 조명해보는 사극을 만들어보고자 한다.
(2) 후반기 고구려의 외교와 정치
흔히 고구려는 중국과 맞서는 동북아의 최강자였던걸로 알고 있으나 평원왕 이후의 고구려는 대체로 쇠퇴기에 접어드는 시기였다. 위진남북조의 혼란기가 막을 내리고 통일제국인 수와 당은 이때부터 적극적이고 대대적으로 고구려를 공격한다. 수나라는 문제와 양제 2대에 걸쳐 고구려 영양왕대에 네차례, 그리고 당나라는 당태종 이세민과 그 아들 고종 2대에 걸쳐 고구려 보장왕대에 총 세차례 침략 결국 고구려를 멸망에 이르게 한다. 그런점을 생각해보면 결국 고구려는 중국과의 거듭된 전쟁 끝에 국력이 쇠퇴일로를 거듭하다 멸망한 것으로 보는 분석도 일리가 있다.
특히 고구려 평원왕-영양왕 시기는 중국은 물론 신라,백제와도 대체로 불편한 사이였던것 같다. 온달은 신라가 빼앗은 영토를 되찾아 원한을 씻겠다며 영양왕 초기에 출전했다가 바로 그 전투에서 전사했으며, 영양왕 자신 또한 백제가 고구려를 헐뜯는 조서를 수나라에 보낸것을 알고 백제를 침공한 기록도 있는것을 보면 이때의 고구려의 대외관계는 대체로 원만하지 못했던것만 같다. 왜 이때의 고구려 외교가 한결같이 난맥상이었던것일까.
고구려는 외교뿐만 아니라 정치면에 있어서도 후반기가 그리 순탄치 못했던것 같다. 삼국사기에는 기록되어있지 않으나 일본서기에는 평원왕의 조부가 되는 안원왕때 두 왕자(귀군(혹은 평성 ?(훗날의 양원왕)과 세군)를 지지하는 세력간에 한바탕 큰 싸움이 벌어졌다는 기록이 나오기도 하고, 평원왕이 미천한 신분인 온달을 평강공주와 결혼시켜 사위로 맞았다는 설화도 아마도 그 무렵의 실세를 견제하면서 왕권을 강화시킬 필요성이 있었을것이라는 분석도 있고, 이복형제간인 영양왕-영류왕간에는 그런대로 무난히 권력승계가 이루어진듯 하나 영류왕의 중국과의 화친정책에 반발한 연개소문이 다시 영류왕을 시해하고 보장왕을 세우는등. 대체로 고구려 후반기의 정치판이 그리 순탄치 못했음이 느껴지는 기록은 여기저기 있다. 과연 고구려 후반기의 정치판은 왜 순탄치 않았던것일까. 주변국과의 난맥상이었던 외교관계와 함께 순탄치 않았던 고구려 후반부의 정치사를 함께 조명해 보고자 한다.
(3) 을지문덕 그리고 고구려의 민중.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이 있었던것이 서기 612년. 을지문덕의 실제 생몰년은 알수 없지만 을지문덕이 살수대첩을 주도했을때 그만한 대전(大戰)을 총괄,지휘할만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었다면 나이는 대체로 50 안팎으로 보는게 합리적일 것이다. 그럴 경우 을지문덕의 탄생 시기는 평원왕(559-590) 초창기 무렵으로 잡을수 있다. 평원왕이라면 바로 우리에게 평강공주와 온달장군 설화로도 잘 알려진 평강공주의 아버지. 을지문덕과 온달의 전성기가 그리 차이가 나지 않으니 이 을지문덕과 온달의 상관관계도 연결시켜 본다면 꽤 흥미로운 사극이 될 듯 하다. (을지문덕과 온달의 나이차이는 대략 15세 정도 차이로 보는게 합리적일것 같다.) 그렇다면 대체로 을지문덕과 온달은 동시대 인물로 봐도 무방한 인물이다.
눈여겨볼만한 부분은 그토록 끊임없이 수,당과 전쟁을 거듭한 고구려의 말년이었건만 고구려 내부적으로는 흔히 있을법한 민란이나 반란의 흔적 한번 발견되지 않는다. - 있다면 영류왕의 화친정책에 반발한 연개소문의 쿠데타 정도 ? 그렇다고 해서 이 시기 모든 고구려 백성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아 수,당과 맞서 싸웠을것이란 확증이 있는것도 아니지만, (아니라는 증거도 없다 ^^) 적어도 연개소문때는 몰라도 온달과 을지문덕 시대에는 고구려 민중을 뭔가 하나로 아우를수 있었을법한 그 무엇이 있었던것 같다.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 그것을 한번 알아보고자 한다.
(4) 고구려와 삼국 그리고 중국
또 하나 주목하고자 하는 부분이 우리가 종종 별 의식을 못하고 있는것 같은데, 실은 우리의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시대의 태반이 중국은 ‘위-진-남북조’의 혼란기였다. 우리가 흔히 ‘삼국지연의’로 잘 알고있는 중국의 삼국시대. 헌데 삼국지만 보면 중국이 위,촉,오 삼국시대가 끝나고 진나라로 통일되어 태평성대가 다시 돌아온것 같은 느낌이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중국의 본격적인 혼란은 이때부터 다시 시작된다. 그렇게 어렵사리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건만 ‘8왕의 난’등을 거치며 서진이 바로 무너져내리고 진나라는 양자강 이남 ‘동진’으로 후퇴하고 북쪽은 저 유명한 ‘5호16국’의 혼란기가 된다. 이 혼란기가 일시적으로 전진(前秦)과 동진(東晋)으로 정리되긴 하지만, 그 뒤를 이어 이번엔 중국의 남과 북에 짧은 단명왕조가 여러차례 생겼다 멸망하는 ‘남북조 시대’가 된다. 북쪽은 북위가 동위와 서위로 갈라졌다가 이어 북제와 북주가 들어서고 남쪽은 ‘송-제-양-진’나라가 연달아 일어섰다 망하는 ‘남북조 시대’. 그 남북조를 수나라가 통일하고나서 비로소 중국의 혼란기는 정리되는 것이다.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우리의 삼국시대 연대와 비교하면 중국의 ‘위-진-남북조’의 혼란기의 출발을 후한말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는 시기부터 잡는다면 이때가 서기 184년(후한 중평 원년). 이때 고구려는 9대 고국천왕 6년, 백제는 5대 초고왕 19년년, 신라는 9대 벌휴이사금 원년이고, 양견의 수나라가 남북조 시대를 마감하고 중국천하를 통일했을때가 서기 581년. 이때가 고구려는 25대 평원왕 23년, 백제는 27대 위덕왕 28년, 신라는 26대 진평왕 3년이 된다. 이 400년 가까운 혼란기가 정리되고 나서 통일된 수나라와 그 뒤를 이은 당나라가 본격적으로 고구려를 연거푸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천하를 통일한 중국의 수와당은 왜 그렇게 한사코 고구려를 손에 넣고자 했던것일까. 고구려와 발해가 자신들의 역사라는 근래의 중국의 주장과 결부시켜 생각해본다면 분명 의미심장하면서도 심기가 불편해지는 부분이 있다. 결국 수나라는 고구려와의 거듭되는 무리한 전쟁 끝에 3대만에 멸망하고 말았고, 하지만 당나라는 3차례의 고당전쟁 끝에 나당연합군으로 마침내 고구려를 멸망시키고야 만다. 한마디로영양왕때의 고수전쟁에선 수나라가 멸망했으나, 보장왕때의 고당전쟁에선 결국 나당연합군의 공략으로 인해 고구려가 무너지고 말았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것일까.
여기서 다시한번 돋보이는것이 을지문덕의 역량이다. 연개소문의 경우에는 중국과의 거듭되는 무리한 전쟁 끝에 고구려를 멸망에 이르게한 장본인이란 이견(異見)도 만만찮게 있으나, 을지문덕의 경우엔 살수대첩으로 수나라의 백만대군을 물리친 영웅이란 분석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 연개소문과 을지문덕의 차이는 과연 어디에 있었던것을까.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문무(文武)를 모두 겸비한 장수였으며 김부식도 좌전(左傳)을 인용하여 ‘군자가 있지 않으면 어찌 능히 나라를 다스릴수 있으랴’고 하며 칭송했던 을지문덕. 바로 그와같은 을지문덕의 생애와 그 무렵의 고구려를 한번 총체적으로 조명해보고자 한다.
3. 등장인물
을지문덕 (서기 562년 - 영류왕때까지)
을지문덕의 실제 생몰년은 정확히 알려져있지 않다. 하지만 여기서는 을지문덕의 나이를 살수대첩(612년)때 만 50세인 것으로 설정, 이렇게되면 을지문덕은 서기 562년(평원왕 4년)생이 된다.
그의 조부 을지협(가공인물)은 23대 안원왕때 연대식과 함께 평성 태자(24대 양원왕)의 편에 서서 세군의 세력과 대립 이들을 몰아내고 평성을 왕위에 올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연대식은 이때부터 을지협과 혈맹의 관계를 맺기 원했으나, 을지협은 이후 연대식이 세군 추종세력을 잔혹하게 숙청하는 모습을 보고 실망 그와 돌아선다. 하지만 연대식은 을지협의 재주를 아까워해 그의 아들 을지준을 자신의 딸과 결혼시켜 사돈관계를 맺으며 동맹관계를 계속 이어나가기를 원한다.
하지만 을지준도 연씨 가문의 전횡을 못마땅하게 여기긴 마찬가지. 게다가 을지준의 성품은 그의 아버지 협 못지않게 강직하고 완고하기 까지 해 때로는 심지어 연씨가문이 세우고자 하는 방침과 정책에 반대입장에 놓이기가지 한다. 연대식의 아들 연태흠은 이러한 을지준을 못마땅하게 여겨 아버지 연대식이 세상을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의 누이이자 을지준의 아내 ‘진화’와 짜고 을지준에게 역적의 누명을 씌워 몰락시킨다.
연태흠의 모함으로 몰락의 위기에 처한 을지준. 하지만 을지준은 평상시 그를 사모하고 있던 하녀 보월(普月)의 기지로 군사들이 들이닥친 날 밤 아직 어린아이인 아들 ‘을지문덕’과 함께 극적으로 탈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는다.
보월은 을지준 부자를 자신의 고향마을인 청천강(살수 : 撒水) 인근지역 마을에 일시적으로 은신하게 하고, 마을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을지준 부자는 무사히 살아남게 된다. 한편 을지준은 자신의 아들 문덕을 보월에게 부탁하며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난다. 을지준은 세상을 떠나며 보월에게 ‘① 문덕을 친자식처럼 잘 보살펴 줄것 ② 문덕이 나중에 고구려를 위해 큰 공을 세울수 있는 그런 인재로 키워줄것 ③ 그리고 몰락한 가문의 신원을 회복시켜줄것’ 아이를 그 과업을 능히 해낼수 있는 아이로 키워달라는 부탁을 하고 세상을 떠난다.
보월은 을지문덕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산돌이’란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고, 그 아이를 친자식처럼 잘 돌보게 된다. 자라면서 을지문덕은 보월의 도움으로 이웃 주민이면서 사냥꾼의 딸인 녹녀(鹿女 : 사슴여인)에겐 무예를 대현도사(大賢道士)에겐 학문과 시를 배우며 자라나게 된다. 특히 녹녀의 딸 효민(孝敏)과는 어릴때는 누나,동생 같은 사이로 자라면서는 차츰 ‘친구이상 연인이하’ 같은 감정을 가진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을지문덕이 스무살이 되는 해 보월은 마침내 문덕에게 ‘출생의 비밀’을 알려주며, ‘고구려에 철마다 무술대회가 열리니 너는 그 대회에 나가 조정에 등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님과 가문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고 신원을 회복시켜 주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한다. 그제서야 자신의 집안의 내력을 알게된 문덕은 아버님의 유언대로 반드시 조정에 등용된뒤 나라에 공을 세우고 몰락한 집안을 일으켜 세우리라 맹세한다.
마침내 무술대회에 출전한 을지문덕은 우승을 하게 되고, 그 자리에서 자신이 실은 20년전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을지준의 아들이며 그 집안의 자손임을 밝힌다. 이에 바로 을지가문을 몰락시킨 장본인인 연태흠은 적잖이 놀라고, 그러나 원래부터 연씨등의 세가 왕성한 귀족집안을 견제할 생각이었던 평원왕은 그 을지문덕을 등용시킨다.
효민(孝敏)
을지문덕의 첫사랑이자 연인. 녹녀(鹿女)의 의붓딸. 그녀의 어머니는 효민을 낳은지 얼마 되지않아 세상을 떠났고, 그렇게 되자 효민의 아버지는 개인적인 사연과 상처가 있기도 한 사냥꾼의 딸 녹녀를 후처로 들였다. 그리고 녹녀는 이후 효민을 친딸처럼 키운다. 특히 어릴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사냥을 다니며 무예를 익혔던 녹녀인지라 무예실력이 만만치 않아 그 무술을 딸인 효민과 그리고 자신의 도움으로 살아나게 된 보월의 아들 을지문덕(산돌이)에게 가르쳐준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효민은 을지문덕과 어릴때는 누나,동생 같은 사이로 자라서는 ‘친구이상 연인이하’ 같은 감정을 갖고 지내게 된다. 산속에서는 맹수와 맞닥뜨려도 침착하게 화살을 쏘아 맞힐 정도의 담대함과 무예실력을 지녔으나(오늘날 여자양궁 신궁들의 원조 ???), 성격적으로는 오히려 남자를 무척 존중하고 받들며 때로는 을지문덕의 헤진 속옷이나 버선을 손수 기워주기까지 하는 섬세한 면까지 있다. 한마디로 겉으로는 선머슴 같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섬세하고 따뜻한 여성성을 갖춘 인물.
을지문덕이 무술대회에 우승 조정에 등용된 뒤에 을지문덕은 연태흠의 주선으로 귀족가문인 최씨 가문의 딸 수아와 결혼하게 된다. 이에 효민은 을지문덕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을 문덕과 수아에게 맡기고 그의 곁을 떠난다.
고현 : 을지문덕의 라이벌. 고구려 실세 고동준의 아들.
연태흠과 쌍벽을 이루는 또다른 실세 고동준의 아들. 그의 아버지 고동준은 바로 애초에 평원왕의 딸 평강공주와 혼담이 있었으나, 평원왕이 귀족가문 견제의 일환으로 미천한 출신의 무장 온달과 결혼시킴으로써 자신은 나라의 부마가 되는것이 무산된 장본인.
고현은 고구려의 또다른 귀족가문인 최광일의 딸 수아와 혼인하기를 원하나 이때 수아는 이제 막 등용되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을지문덕에게 호감을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평강공주를 하찮은 무장 온달에게 빼앗겼지만 나는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면서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수아에게 더더욱 집착하게 된다.
하지만 고씨가문과 최씨가문이 혼인동맹으로 자신에게 만만찮은 경쟁세력으로 성장하는것을 바라지 않는 연태흠마저 을지문덕과 수아와의 결혼을 뒤에서 지원하게 되자 결국 고현은 수아를 문덕에게 빼앗기고 만다. 이때부터 고현은 을지문덕에게 앙심을 품게되며, 이후 을지문덕과 매사에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하는 라이벌 관계가 된다.
수아 : 을지문덕의 아내. 고구려 명문귀족 최광일의 딸.
귀족가문의 여식으로 태어났지만, 공주병과라기 보다는 어릴때부터 동생들과 하인들을 휘어잡으며 살았던 보스기질의 왕언니과에 가깝다.(오늘날 강남 치맛바람 아줌마들의 원조 ???) 밑으로 남동생이 넷, 여동생이 셋이나 되어 어릴때부터 동생들을 어떻게 하면 휘어잡을수 있는지 그 방면에 아주 도가 텄으며, 때로는 집안 하인들의 행실이 못마땅하면 전부 불러모아 호통을 치기까지 하는등 그야말로 보통아닌 보스기질에 자기주장과 목소리가 강한 여자.
그래서일까. 귀족집안에서 곱게 자랐을뿐 남자답지 못하게 쪼잔해 보이는 고현보다는 남자다운 듬직함과 늠름함이 있는 을지문덕에게 차츰 호감을 느끼게 된다. 결국 자신의 바램대로 을지문덕과의 혼인은 이루어지게 되지만, 천성이 워낙 거칠고 강한데다가 본래 자신의 친정에서 하던대로 을지문덕의 집안에서까지 자신이 모든 것을 손에쥐고 주도권을 행사하려 들어 그러한 문제로 늘상 을지문덕과 부딪히게 된다. 결국 을지문덕은 그런 수아가 싫어져 차츰 그녀를 멀리하게 된다. 을지문덕과의 사이에 아들 둘을 낳지만 끝내 그의 마음을 갖지는 못하게 되는 비운의 여인.
보월(普月) : 을지문덕의 양모
을지문덕을 어릴때부터 키워준 양어머니. 원래 을지준의 집안에서 일하던 하녀로 남몰래 을지준을 사모해왔다. 그러다 을지준의 집안이 처가인 연씨집안으로부터 모함을 당해 역적누명을 쓰고 몰락 위기에 처하자 기지를 발휘 극적으로 을지준의 어린 아들 문덕을 구해낸다. 이후 을지준과 문덕 부자를 자신의 고향인 청천강 인근마을에 숨겨주고, 을지준은 그에게 문덕을 부탁한채 세상을 떠난다.
보월은 이웃주민인 녹녀(鹿女), 대현도사(大賢道士)등의 도움을 받으며 이 마을에서 살아가게 되며, 특히 을지문덕을 사냥꾼의 딸인 녹녀에겐 무예를 학문이 깊은 대현도사에겐 학문과 시를 가르쳐주도록 부탁한다. 을지문덕이 자라면서 자신의 무예 스승이기도 한 녹녀의 딸 효민과 차츰 가까워지게 되지만, 을지문덕의 출신을 알고있는 그녀는 내심 을지문덕이 효민과 너무 가까워지는것을 경계해 두 사람 사이를 반대한다.
이후 을지문덕이 스무살이 되던해 그에게 마침내 ‘출생의 비밀’을 알려주며 고구려에서 철마다 열리는 무술대회가 곧 열리니 출전 조정에 등용될것을 당부한다. 문덕은 그녀의 말대로 무술대회에 출전하게 되고. 을지문덕의 집안의 신원이 회복되고 그리고 문덕도 명문가의 여식과 결혼하게 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할 일은 이제 다 했다는 생각에 흐뭇한 마음으로 조용히 세상을 떠난다.
녹녀(鹿女) : 을지문덕의 은인. 사냥꾼의 딸 (* ‘사슴발 여인의 전설’ 참조)
원래 사냥꾼의 딸로 어릴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사슴사냥을 하며 그 가죽과 고기를 내다파는 일로 생계를 이어왔다. 아버지한테 배운 무예실력이 매우 출중하여 맹수 한 마리 정도는 침착하게 잡을수 있을 정도고 웬만한 10대 소년 정도도 쉽게 당해내지 못할 정도로 무술실력이 뛰어나다.
항간에는 그녀의 발 모양이 ‘사슴발’ 모양이란 소문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잘못 알려진 소문이다. 워낙 어릴때부터 사슴사냥을 하며 그것으로 생업을 이으며 살아온데다가 기질이 거칠고 강해 웬만한 사내도 쉬이 범접을 못해, 그녀를 질시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헛소문이다.
한편 남다른 아픔이 있기도 하다. 비록 무예실력이 출중한 그녀이기는 하지만 한번은 혼자 사냥을 나갔다가 한밤중에 길을 잃고 깊은 산속에서 겁탈을 당한 아픔이 있다. 그리고 하필 그때 아이를 갖게 된다. 녹녀는 그 아이를 지우려 했지만, 그녀와 이웃해 사는 대현도사의 만류와 설득으로 녹녀는 일단 그 아이를 낳고, 대현도사는 그 아이를 거둔뒤 중국을 오가는 상인에게 맡긴다. (- 그 아이가 나중에 중국의 우중문 집안에 입양되어 나중에 우중문과 함께 고구려를 침략하는 선봉에 서게 된다.)
그후 상처(喪妻)한 전력이 있는 나이많은 남자와 혼인 그의 딸인 효민을 친딸처럼 키운다. 하루는 웬 어린아이와 심한 부상을 입은 남자가 마을에 들어온것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일단 인근의 한 폐가에 숨겨준다. (그게 바로 을지준-을지문덕 부자다) 이중 남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젊은 여자와 어린아이만이 남겨진 모습을 보고 딱히 여긴 녹녀가 일단 그 폐가에서 살게 하도록 배려를 해주고, 자신이 손수 그 폐가를 사람이 살만한 집으로 다시 수리해주는등 여러 가지로 신경을 써준다. 한마디로 보월과 을지문덕에겐 은인같은 여인.
이후 녹녀와 한 마을에 살며 동기처럼 지내게 된 보월은 특히 녹녀의 무예가 출중함을 알고는 그녀에게 자신의 아들(을지문덕)에게 무예를 가르쳐 줄 것을 부탁한다. 녹녀는 보월의 부탁을 듣고 을지문덕에게 무예를 가르쳐주고. 을지문덕의 본래 신분을 보월로부터 들어 알고있는 녹녀는 자신의 딸 효민과 을지문덕이 가까워 지는 것을 보고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임을 알기에 의붓딸인 효민을 적극적으로 만류하지는 못하면서도 내심 불안해한다.
대현도사(大賢道士) : 청천강 인근 마을에 사는 기인.
녹녀와 함께 을지문덕과 보월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 젊은시절부터 중국 곳곳을 떠돌며 제자백가의 학문을 익혔다는 기인으로 그의 정확한 나이는 알수없다. (스스로 어떨땐 백살,이백살이라 허풍을 떨기도 하고 그러다 어떨땐 아직 마음은 20대 청춘이라 하기도 한다) 중국에서 익힌 제자백가 학문과 관련된 서책을 몸소 필사해 가져온것을 집안에 수두룩히 보관하고 있으며, 그것으로 을지문덕과 효민에게 학문과 시를 가르쳐주게 된다.
연태흠 : 고구려의 실세. 을지문덕에겐 외삼촌이면서 그의 집안을 몰락시킨 원수
이기도 하다
그의 아버지 연대식은 을지문덕의 조부 을지협과 함께 안원왕 시절 세군 세력을 몰아내고 평성태자를 24대 양원왕으로 세우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하지만 을지협-을지준 부자는 연씨가문의 세군세력에 대한 잔혹한 숙청과 그리고 갈수록 위세를 떨며 독재로 가는 모습을 보며 차츰 그들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연대식은 자신의 딸을 을지준과 혼인 시키며 연씨가문과 을지가문의 동맹을 이어가려 했으나 을지준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연태흠은 끝내 을지준 집안을 모함 몰락시키고 만다.
이후 을지문덕이 평원왕때 무술대회에 출전 우승한뒤 집안의 신원이 회복되자 당황하면서도 일단 자신이 을지문덕 집안을 몰락시킨 원흉이란 과거를 숨긴채 그를 조카로 여기며 잘 해 주려한다. 아직 연태흠이 바로 자기집안을 몰락시킨 원흉임을 모르는 을지문덕은 처음엔 한동안 연태흠의 사람으로 활약하기도 하고...
고구려의 실세로 성정이 난폭하고 자신의 반대세력은 잔혹하게 숙청하거나 또는 어떨때는 최측근조차 자신에게 반할때는 내치는 냉혹함을 지녔다. 하지만 그런 연태흠에게도 내심 고구려가 삼한의 정세를 주도하고 더 나아가 중국대륙까지 제압하는 대 제국으로 키우고 싶은 원대한 야심이 있기도 하다. (오늘날 환빠의 원조 ???)
고동준 : 고현의 아버지. 연태흠과 쌍벽을 이루는 고구려의 또다른 실세.
연태흠과는 늘상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고구려의 또다른 실세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원래 평원왕이 그를 평강공주와 혼인시켜 나라의 부마로 삼길 원했으나, 평강공주가 온달에게 시집가겠다고 해서 그것이 좌절된 아픔이 있기도 한 인물. 고구려를 대제국으로 키우고픈 매우 큰 야심이 있는 연태흠과는 달리, 그는 고씨로 왕족이기도 해 고구려를 강성대국으로 키우는것 보다는 고씨 왕실을 어찌하면 더 온전히 보존해 나갈수 있는지에 마음이 더 기울어 있다.
최광일 : 을지문덕의 장인. 고구려의 또다른 귀족세력 집안.
연태흠이 고구려를 대제국으로 키우고픈 야심이 있고, 고동준은 왕실을 보존하는 쪽에 더 관심이 있는 반면 최광일은 힘있는 쪽에 쉬이 마음이 기우는 다소 기회주의적인 측면이 있는 인물이다. 처음엔 고동준의 아들 고현이 자신의 딸에게 마음이 있는것을 알고는 그와 광일의 딸 수아를 짝지어주고 싶어했으나, 연태흠의 회유가 있어 결국 자신의 딸을 을지문덕과 짝지어준다.
평원왕 : 고구려 25대 임금. 평강공주의 아버지.
바로 ‘평강공주와 온달장군’ 설화와 관련된 시대의 임금으로 평강공주의 아버지다. 평강공주에게 ‘자꾸 울면 바보온달에게 시집보낸다’고 말했다는 장본인.
그가 재위했을때 고구려는 양원왕-안원왕의 시기를 거치며 많이 쇠락해져 있었다. 무엇보다 부왕인 안원왕(평성)은 자신을 옹립하고 세군 세력을 숙청한 세력들의 득세에 대체로 제 뜻을 펼쳐보지 못한채 세상을 떠났고, 안원왕 시절의 실세들은 평원왕대에 와서도 계속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 그가 평강공주를 비천한 출신의 무명장수 ‘온달’에게 시집보낸것도 바로 그와같은 귀족세력 견제책의 일환이다.
처음엔 연태흠의 모함에 넘어가 을지준 가문을 숙청한다. 하지만 연태흠이 계속 귀족세력의 핵심으로 왕권을 위협하는 지경에까지 이르자 차츰 그에게 의심을 품고 견제할 생각을 하게된다. 이 무렵 등장한것이 ‘을지문덕’이다. 평원왕은 무술대회에서 우승한 을지문덕을 등용하는 한편 그 가문을 복위시킬 계획을 세운다. 그의 가문의 신원회복은 연태흠 세력의 반대로 좌절되지만, 을지문덕은 왕의 총애를 입으며 차츰 새로운 고구려의 촉망받는 장수로 각광받게 된다. 이렇게되자 연태흠도 일시적으로 을지문덕을 포용 자기사람으로 만들려 하지만, 바로 자신이 을지문덕 집안을 몰락시킨 주범이라는 점 때문에 두 사람의 긴장관계는 쉬이 해소되지 않는다.
쇠락한 고구려의 보존을 위해 일시적으로 주변국과의 화친정책을 펴며, 수도를 장안성으로 옮기기도 한다. 허나 그의 말년 마침내 중국은 후한말부터 남북조시대까지 400년 가까운 혼란기가 막을 내리고 수나라가 중국천하를 통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수나라는 마침내 고구려를 자신들의 아래에 두기위해 국서를 보내게 되는데.
두명의 황후를 두었다. 첫 번째 황후는 고구려 실세인 연씨가문의 여식 연황후로 평원왕은 그와의 사이에 평강공주와 영양왕을 낳게된다. 하지만 연황후는 영양왕을 낳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이어 평원왕은 한미한 출신인 남씨 여인을 ‘제2황후’로 맞아들이며 남황후와의 사이에 영류왕(고건무)을 낳게된다. 또한 또다른 후궁과의 사이에 고구려 마지막 임금 보장왕(28대)의 아버지 대양왕을 낳게된다.
연황후 : 평원왕의 제1황후. 평강공주와 영양왕(고원)의 어머니
고구려 실세 연씨가문의 여식으로 연태흠과는 사촌간. 대체로 가문의 지위와 위세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편이며 기품과 학식을 갖추었다. 다만 몸이 약해서 평강공주와 고원 두 자녀를 낳은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게 된다.
남황후 : 평원왕의 제2황후. 영류왕의 어머니. 평강공주와 영양왕의 계모
연황후가 세상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평원왕이 맞아들인 제2황후. 연황후가 세상을 떠나고 신하들은 새로운 귀족가문의 여식으로 새 황후를 맞아들일것을 간청했으나 평원왕인 그러한 제안을 뿌리치고 한미한 가문의 여식인 남씨를 황후로 맞아들인다.
한미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대신 총명하고 나름 정치적 지략도 갖추었다. 생모를 잃은 평강공주와 고원을 친자식처럼 거두려하지만 평강공주의 경우엔 뜻대로 되지 않는다. 어릴때부터 마냥 자신만 보면 울기만 하고 속을 썩이는 평강공주를 보며 가슴앓이를 했다. 평강공주가 자란뒤에는 그래도 귀족가문인 고씨가문의 자제인 고동준에게 시집보내 경제적으로 어려움없는 편한 혼인생활을 할수 있도록 배려해주려 했으나, 평강공주는 남황후의 말을 듣지않고 끝끝내 고집을 피워 결국 온달과 결혼을 성사시킨다. 처음부터 여러 가지로 자신과 맞지않는 의붓딸 평강공주이기도 했지만, 이 일로 남황후와 평강공주의 사이는 확실히 틀어지게 된다.
하지만 평강공주와 달리 고원의 경우는 워낙 어릴때 생모를 잃어서인지 자신을 친엄마처럼 잘 따랐다. 남황후는 비록 자신도 평원왕과의 사이에 소생을 보았지만, 고원이 무사히 태자로 책봉을 받고 왕위에 오를수 있도록 배려해준다. 대신 자신의 소생인 건무(영류왕)을 다음대의 왕위에 올려주도록 약속을 받아낸다.
영양왕 : 고구려 26대 임금.
그가 왕위에 오른뒤부터 수나라와 고구려의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다. 고수(高隨) 전쟁은 영양왕 시기 무려 4차례나 벌어지며, 을지문덕의 유명한 살수대첩은 이중 수나라의 2차침입(612년. 영양왕 23년)때의 일이다.
네차례에 걸친 수나라의 대대적인 침입때마다 격퇴해내긴 하지만, 거듭되는 전쟁으로 인해 심신이 피로해진 가운데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복동생인 영류왕을 태자로 삼은뒤 왕위를 물려준다
영류왕 : 고구려 27대 임금
영양왕의 이복동생. 이복형인 영양왕 시절 수나라의 잦은 전쟁으로 고구려가 피폐해진 모습을 보고는 이때부터는 새롭게 일어난 당나라와 화친정책을 펴고자 한다. 하지만 영류왕의 화친정책에 반발한 연개소문의 쿠데타로 인해 살해당한다.
우창기 : 녹녀의 부적절하게 태어난 아들. (* ‘사슴발 여인의 전설’ 참조)
원래 녹녀가 한밤중 깊은 숲속을 헤매다 불한당에게 겁탈을 당해 생겨난 아이. 녹녀는 아이를 지우려했으나, 대현도사의 설득으로 아이를 낳게된다. 대현은 일단 그 아이를 거둔뒤, 얼마후 중국땅을 오가는 상인에게 아이를 맡긴다. 대현은 상인에게 중국의 아무 부유하고 손이 귀한 집안에나 맡겨달라 신신당부하고, 한편으로는 아이가 훗날 자신이 고구려인이며 어머니가 누구인지 알수 있도록 아이가 고구려인을 알수있는 정표와 녹녀가 장사를 위해 손수만든 사슴가죽 주머니 그리고 자신이 직접 친필로 쓴 아이 어머니의 이름인 ‘녹녀(鹿女)’란 글씨가 적힌 한지를 함께 전해준다. 상인은 중국으로 가서 평상시 장사를 하면서 알고지낸 북주의 귀공자 집안인 우식(우중문의 숙부)에게 맡긴다. 식은 그 아이를 거둔뒤 이름을 ‘창기’라 지어주고 창기는 그때부터 우식의 집에서 양자로 자라나게 된다.
자라면서 우중문과는 형님,아우로 우식은 아버지로 여기며 살아온 우창기. 자신에게 고구려인의 피가 흐른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채 뼈속까지 중화인(中華人)으로 살아가고 있다. 우식이 양견을 도와 그가 중국천하를 통일하고 수나라를 건국하는데 공을 세우게 되고, 창기는 그의 의형(義兄)인 우중문과 함께 출사하게 된다.
이후 수 양제때 수나라가 우중문,우문술을 앞세워 고구려를 침공하게 되자 우중문과 함께 고구려 침공 선봉에 서게되고. 하지만 고구려의 민가에서 잔혹한 학살을 하던도중 이에 맞서는 의병과 맞딱뜨리게 되고, 여기서 자신의 충격적인 ‘출생의 비밀’을 알게되는데...
우중문 : 살수대첩때의 수나라 장수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해 명공자(名公子)라 불렸다. 형 우의, 숙부 우익등을 도와 양견과 함께 수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데 공을 세우게 되고, 이후 수 문제(양견) 치하에서 벼슬을 하게된다. 상서성의 비리가 많을때, 황제가 상서성의 일을 맡기자 그곳의 부정을 바로잡는등 강직하고 청렴한 성품. 수 양제때 우문술과 함께 고구려를 침공 하지만 을지문덕에게서 ‘여수장우중문시’라는 조롱과 경고가 담긴 시를 받고 그의 계략에 말려들어 살수대첩에서 대패하게 된다. 이후 병세가 악화되어 사망
우문술 : 살수대첩때의 수나라 장수
선비족 출신이나 북주(北周)에서 벼슬한뒤 수나라때 ‘안주총관’으로 등용된다. 우중문과 함께 살수대첩때 고구려 침공을 주도한 대표적 장수. 하지만 강직한 성품의 우중문과 반대로 탐욕이 많다. 살수대첩에서 대패한후 자신의 두 아들 화급,지급을 황제에게 부탁하고 숨을 거둔다.
수 문제 : 위진남북조의 혼란기를 종식시키고 중국천하를 통일 수나라를 건국한
초대 황제. (재위 581-604년)
중국 후한말 황건적의 난부터 시작 위,오,촉의 3국시대와 5호16국 그리고 남북조로 이어지는 ‘위진남북조’ 400년의 혼란기를 종식시키고 중국 천하를 통일시켜 수나라를 세운 영웅. 이른바 ‘개황의 치’로 수나라를 융성하게 한다.
하지만 그의 말년 고구려의 영주 침공으로 시작된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 아들대의 양제때 무리하게 거듭된 고구려와의 전쟁으로 수나라는 멸망에 이르게 된다.
수 양제 : 수나라 2대 황제. 재위 604-617년
수나라 2대황제로 전형적인 폭군. 대운하등 무리한 토목공사로 백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하고, 사치와 향락을 일삼은 폭군으로 중국사에도 유명하지만 우리에겐 바로 살수대첩 당시 고구려를 침공한 수나라 황제로 더 잘 알려진 인물. 바로 그 살수대첩에서 수나라가 대패하고, 하지만 수나라는 이후 양제의 무리하게 거듭된 고구려 정벌 재시도 끝에 결국 멸망에 이르게 된다.
온달 : 고구려의 장수. 평강공주와 바보온달 설화의 주인공.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로 유명한 그 온달(溫達). 하지만 원래 아주 비천한 가문은 아니었고, 그의 아버지는 한때 일시적으로 고구려의 하급무관을 지내기도 했지만 신라,백제와 벌어진 전쟁때 그만 전사하고 만다.
이후 형편이 어려워진 온달의 어머니가 혼자 온달을 키웠고 온달이 자라서는 노모를 모시며 걸식(乞食)으로 생계를 유지해나갔다. 한편 남편이 전쟁터에서 전사를 하자 온달 어머니는 행여 자신의 아들도 나중에 군대에 끌려가 목숨을 잃게 될까봐 ‘우리 아이는 어릴때 머리를 다쳐 정신이 성치 못하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오늘날 병역기피의 원조 ???) 그로인해 다행이 온달은 군대에 징집되지는 않았으나 이후 남루한 행색으로 걸식을 하러 다니는 모습을 사람들이 보면서 온달의 이미지가 ‘바보온달’로 굳어지게 되었고 그 소문이 고구려 왕실에까지 퍼지게 된 것이다.
평원왕은 어릴때 엄마를 잃고 그 이후 마냥 울기만 하는 딸 평강공주에게 ‘자꾸 울면 바보온달에게 시집을 보내겠다’고 말한다. 이후 공주가 자라서 고구려 명문가인 고동준에게 시집을 보내려 하였으나, 평강공주가 어린시절의 일을 떠올리며 온달과 결혼하겠다고 고집을 피워 집을 나간다.
온달은 실제로도 가난한 집안 환경탓에 조정에 출사를 하겠다던가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우고 싶다던가 하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의 신세는 나이든 어머니를 모시며 겨우겨우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게 숙명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이후 평강공주와의 만남으로 각성 그에게 학문을 배운뒤 무술대회를 나가 우승하고 조정에 등용되게 된다. 영양왕 즉위직후 신라와의 전쟁을 자원했으나, 몸소 출전한 그 전쟁에서 전사 세상을 떠난다.
온달은 그 조부가 신라와의 전쟁때 출전 전사한 사람이라 남쪽 신라와 백제쪽에 내심 원한을 갖고있다. 따라서 중국과는 일정한 평화를 유지하면서 백제와 신라를 제압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게 되었다. 이 점은 신라와 백제는 형제국가로 아우르며 중국과 대적해야 한다는 을지문덕과 생각이 다르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은 약간의 갈등관계가 형성된다.
평강공주 : 평원왕의 큰딸.
그의 생모 연황후(평원왕의 제1황후)는 그녀의 동생 고원(영양왕)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난다. 이후 평원왕이 들인 제2황후 남황후는 평강공주와 고원을 친자식처럼 품고 싶었으나, 워낙 어릴때 생모를 잃어 계모인 남황후를 친엄마처럼 잘 따르는 고원과는 달리 생모에 대한 기억이 있는 평강공주는 늘상 울고 보채기만 하며 남황후의 속을 썩였다.
공주가 자란뒤 남황후는 ‘의붓딸을 구박한 계모’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라도 한사코 명문가의 자제인 고동준에게 시집을 보내길 원했으나 공주는 끝내 고집을 꺾지 않고 가출. 결국 온달과 살림을 차리게 된다. 이 일로 평강공주와 남황후는 끝내 화해하지 못하고 불편한 관계로 계속 살아가게 된다. 온달을 각성시켜 조정에 출사하게 한다.
을지홍 : 을지문덕의 딸. 을지문덕과 효민 사이에서 태어난 딸.
을지문덕과 효민사이에 태어난 딸로 효민은 문덕이 고구려 명문가의 딸인 수아와 혼인을 하게되자 그와의 사이에 낳은 딸 ‘홍’을 을지문덕과 수아에게 맡기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수아는 을지문덕이나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선 홍이에게 잘해주는 척 했으나,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을때는 은근히 홍을 구박하며 따돌린다. 홍은 계모인 수아가 자신을 미워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어느정도 나이가 든 뒤 혼자 조용히 집을 떠난다.
고향으로 돌아온 홍은 훗날 수나라의 침입때 어머니 효민과 함께 의병을 조직 자신의 마을을 침입한 수나라 군사와 맞서게 된다. 그리고 이때 수나라 군사를 이끌고 침략한 우창기(녹녀의 친아들)와 맞닥뜨리게 된다.
을지상문 : 을지문덕의 장남. 을지문덕과 수아 사이의 첫 아들
을지문덕의 장남으로 어릴때부터 무예보다는 학문쪽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무예든 학문이든 그 실력이 어느쪽으로도 아버지 을지문덕에 미치지 못해 아버지를 실망시키게 된다.
을지상규 : 을지문덕의 차남. 을지문덕과 수아 사이의 둘째 아들
성정이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쪽을 닮아 다분히 출세지향적이고 탐욕스러운 면까지 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아버지 을지문덕과 갈등관계를 형성한다.
4. 줄거리
1회 - 16회 : 을지문덕의 탄생과 성장
서기 562년(고구려 평원왕 4년). 고구려 청천강(살수 : 撒水) 인근의 한 작은마을. 피투성이의 서른살 정도 된 남자가 스무살 남짓한 젊은 여자의 보호를 받으며 이 마을에 숨어들게 된다. 여인의 품엔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은 갓난아기가 잠들어 있고. 남자는 사실 고구려 명문가 을지가문의 자제인 을지준(을지문덕의 아버지. 가공인물). 그의 부친 을지협(가공인물)은 23대 안원왕때 연대식과 함께 평성태자(24대 양원왕)의 편에 서서 세군 세력을 몰아낸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 하지만 이후 연대식이 중용되면서 그의 전횡이 계속되자 을지협은 연대식과 멀어지게 되었다. 연대식은 을지협을 회유코자 그의 아들인 을지준을 자신의 딸과 결혼시켜 동맹관계를 계속 이어가길 바랬으나, 을지준 역시 연씨 가문을 못마땅하게 여기긴 마찬가지라 두 가문의 불편한 관계는 계속되었다. 이에 연대식은 을지 가문을 몰아내기로 결심 그의 아들인 연태흠과 짜고 을지 가문에 역모의 누명을 씌워 몰락시킨다. 을지준은 때마침 들이닥친 군사들에 의해 화를 입을뻔했으나, 오래전부터 그를 연모해온 하녀 보월(普月)의 기지로 극적으로 탈출 살아남고 이곳 청천강 인근 마을까지 숨어들게 된 것이다. 보월의 품에 안겨있는 아이는 바로 을지준과 연대식의 딸(연태흠의 누이)사이에 생긴 아이. 하지만 보월은 이들 부자를 살리고자 혼신의 힘을 다해 한사코 이곳까지 피신시킨 것이다.
을지준과 보월 그리고 아기는 때마침 사냥을 마치고 내려오는 녹녀(鹿女)에 의해 발견되고, 녹녀는 일단 그들을 마을의 한 폐가에 숨겨준다. 그리고 이 사실을 은밀히 자신의 이웃이며 은인이기도 한 대현도사(大賢道士)에게 알려주고, 대현이 찾아와서 이들에게 약초를 붙여주며 치료를 해주는등 녹녀와 대현이 이들을 보살펴주며 살려주려 애쓴다. 그 과정에서 보월은 녹녀에게 자신들의 사연을 은밀히 알려주며 특히 을지준의 아이인 이 갓난아이라도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하게 해달라고 애원한다. 녹녀는 그 아이에게 젖을 물려주고. 대현은 이를 바라보며 착잡한 감회에 사로잡힌다.
한편 을지준은 대현과 녹녀의 정성스러운 치료의 보람도 없이 얼마가지 않아 상처가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고, 세상을 떠나며 보월에게 세가지 부탁을 유언으로 남긴다. 유언의 내용은 ‘① 자신의 아이를 친자식처럼 잘 보살펴 줄것 ② 아이가 나중에 고구려를 위해 큰 공을 세울수 있는 그런 인재로 키워줄것 ③ 그리고 아이가 이 다음에 몰락한 가문의 신원을 회복시킬수 있도록’ 해달라는 당부의 내용이었다. 보월은 자신이 연모하던 을지준의 아이를 정성껏 키우며 유언을 받들겠다고 눈물로 맹세한다. 녹녀는 대현과 함께 폐가를 깨끗이 수리 보월과 아이가 거처할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대현은 아이에게 일단 ‘산돌이’란 이름을 지어준다. 한편 대현과 녹녀는 나름대로 착잡한 감회에 사로잡히게 되는데.
녹녀는 본래 그 아버지대부터 주로 사슴사냥을 하며 자라온 여인으로, 그녀 역시 어릴때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사냥과 무예를 배워 활솜씨등 사냥과 무예솜씨가 뛰어나다. 따라서 웬만한 남자들도 함부로 범접하지 못하는 그런 강인한 기질을 가진 여성이기도 하다. 항간에는 그녀가 어릴때부터 사슴사냥만 하며 자라다보니 그 업보(?)로 발이 사슴발 모양이 되어버렸다는 소문이 있기도 하지만 그것은 녹녀를 질시한 사내들이 만들어낸 헛소문이다. 여하튼 그녀가 사냥솜씨가 뛰어나고 특히 주로 사슴사냥을 해오며 지금껏 생계를 이어온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녹녀가 1년여전 큰 봉변을 당한적이 있다. 하루는 밤늦게 사냥을 허탕을 치고 내려오다 불량배에게 겁탈을 당한일이 있었다. 상대는 실은 녹녀를 평상시 흠모해오던 남자였으나, 녹녀가 늘상 콧대가 높아 자신을 사내취급도 하지 않는것에 앙심을 품고 그와같은 짓을 저지른것이다. 사내는 녹녀를 짓밟고 사라져버렸고, 녹녀는 얼마안가 임신을 하고만다. 녹녀는 수치심에 자결을 하려 하였으나 이웃의 대현도사의 만류로 일단 죽으려던 생각만은 거두고 만다. 그리고 아이를 낳은뒤에 대현은 그 아이를 중국을 오가는 상인에게 맡겨 멀리 중국의 어느 부잣집으로 입양을 시켜달라고 당부했고, 상인은 대현이 맡긴 아이를 데리고 중국으로 떠났다. 하지만 중국으로 가게된 아이의 품엔 녹녀가 정표로 안겨준 ‘사슴가죽 주머니’와 ‘녹녀’라는 어미의 이름이 적혀있다. 비록 부적절하게 태어난 아이일지언정 녹녀는 아이에게 어미로서의 한가닥 미련이 남아있어 혹시 모를까 해서 훗날의 정표삼아 그와같은 선물과 글씨를 써준것이다.
녹녀는 그후 대현의 배려로 상처한 전력이 있는 한 나이많은 남자의 후처가 되어 살아왔고 이후에도 주로 사냥과 그 사냥감을 장에 파는것을 업으로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살아왔다. 한편 남자의 전처소생 자녀이기도 한 의붓딸인 효민(孝敏)도 친딸처럼 키우며 살아온 것이다. 헌데 그 녹녀에게 찾아온 또다른 새로운 인연인 보월과 그 아이 산돌이. 어떻게 보면 참 남의 아이 돌보는게 무슨 팔자라도 되는양 이와같이 인연이 맺어진것에 대현은 그 녹녀의 팔자를 보며 착잡한 감회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한편 이 무렵 중국은 5호16국의 혼란과 남북조 시대도 어느덧 막바지에 치닫고 있었다. 이때 북조의 왕조중 하나인 북주에서 벼슬을 하고있는 우식. 그에게 평상시 알고 지내는 고구려 상인 하나가 안 아이를 떠맡기게 된다. - 실은 바로 그 아이가 녹녀가 겁탈을 당해 생겨나 대현이 중국을 오가는 상인에게 맡긴 아이다. - 우식은 이 무렵 후사가 없어 조카인 우중문을 친자식처럼 거두어 살아가고 있었고, 따라서 겸사겸사 흔쾌히 상인의 제안에 응해 그 아이까지 아들로 거두게 된다. 우식은 아이의 이름을 ‘창기’라고 짓는다. 한편 이 무렵 을지가문을 모함해 몰락시킨 연대식의 아들 연태흠과 고동준은 아비의 공으로 벼슬길에 오르게 된다.
15년후. 서기 577년(고구려 평원왕 19년). ‘산돌이’란 이름으로 자라난 을지문덕은 어느덧 16세가 된다. 문덕은 녹녀의 의붓딸 효민과 함께 녹녀에게선 무예를 대현에게선 학문을 배우며 자라나게 된다. 특히 소싯적에 중국대륙을 떠돌며 5호16국의 혼란을 눈으로 지켜보았다는 대현은 제자백가의 학문을 문덕과 효민에게 가르쳐주며, 고구려는 단군조선의 자손으로 고구려,백제,신라가 본래 다같은 고조선의 후예이니 지금은 삼한으로 갈라졌으나 언젠가는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며 그 통일정신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중국이 통일되면 언젠가는 다시 고구려를 칠 수도 있으니 이 또한 경계할것을 일러준다. 한면 문덕은 틈틈이 청천강 일대를 거닐며 이 근방의 지리를 익히게 된다.
한편 16세가 되어 두 살 연상인 효민과는 누나,동생 하는 사이로 어릴적부터 자라난 문덕(산돌이)은 효민과 틈틈이 사냥을 하며 그래서 잡은 짐승의 고기와 가죽을 내다파는 일로 집안 생계를 이어간다. 녹녀와 보월도 함께 길쌈을 하며 그 살림을 보태고 있다. 특히 문덕과 효민은 언제부터인가 마치 ‘친구이상 연인이하’ 같은 야릇한 관계로 발전되어갔고, 사냥하는 과정에서 종종 닥친 위기때 서로 목숨을 구해주거나 구한일도 있어 그런 일들로 인해 서로의 정은 날이 갈수록 두터워져만 간다. 하지만 산돌이(을지문덕)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있는 보월로선 언젠가는 아이의 신분을 회복시켜주고, 고구려 조정에 출사를 시켜야하기 때문에 산돌이와 효민의 사이가 가까워져가는 것을 날로 근심한다. 이따금 녹녀를 찾아와서는 그 문제에 대한 근심을 토로하고, 두 사람이 너무 가까워지는것을 경계하도록 하는데.
이 무렵 고구려 조정에선 ‘온달’이 북제를 크게 무찌르고 개선한다. 평원왕은 이에 기뻐하고. 온달은 다름아닌 그(평원왕)의 어린딸 평강공주가 어릴때 하도 울자 왕이 ‘네가 하도울면 바보온달에게 시집보낸다’고 했던 그 온달이다. 그러나 정작 공주가 자라서는 명문가 고씨 가문의 아들 고동준에게 시집보내려 했고, 공주의 계모이자 평원왕의 제2비인 남황후도 그와같은 혼사를 추진하려 하였다. 그러나 공주는 끝내 고집을 피우며 집을 나갔고, 이 일로 남황후와는 본격적으로 멀어지게 된다. 이후 온달이 무술대회에서 우승 고구려 조정에 출사하며, 지금까지 온달을 사위로 인정하지 않았던 평원왕은 온달이 전쟁에서 크게 승리하고 돌아옴에 기뻐하며 바야흐로 그를 사위로 인정한다. 평원왕이 온달을 중용하는데는 날이 갈수록 세력이 커져가는 연태흠,고동준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담겨있다.
이 무렵 북주에선 우중문이 안고태수등으로 재직하며 날로 그 공덕을 쌓아가며 명성을 높여가고 있었고, 우중문과 어릴적부터 한집에서 자란 우창기 역시 그를 친형님처럼 받들며 철저한 중화인(中華人)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우중문은 북주의 실세인 양견(훗날의 수 문제)과도 친분이 두텁고, 언젠가 천하를 통일하면 고구려까지 손에 넣을 야심을 지니고 있기까지 하다. 그러한 우중문과 양견의 사이는 날로 가까워져가고.
5년후. 서기 582년(고구려 평원왕 24년). 어느덧 스물한살이 된 산돌이. 그를 지금까지 친어머니처럼 길러온 보월은 마침내 그에게 출생의 비밀을 알려주고, 조정에 출사하여 나라에 큰 공을 세움은 물론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와 가문의 신원을 회복하여야 하는 사명이 있음을 일러준다. 그러면서 이제 신분이 미천한 효민과의 사이는 이쯤에서 정리할것을 권고한다.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안 산돌이는 충격을 받으면서도 반드시 아버지의 원한을 씻고 조정에 큰 공을 세우겠노라 맹세한다. 대현도사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영향이 있어 ‘삼한일통’의 포부도 언제부터인가 가져온 산돌이이기도 하다.
산돌이는 하루는 효민과 만나 우리들이 이루어질수 없는 사이임을 말하며, 효민은 그런 산돌이를 가지말라며 붙잡는다. 갈등 끝에 산돌이는 효민과 뜨거운 하룻밤을 가진뒤 그녀의 곁을 떠난다. 그리고 한 무예가 출중한 무사의 휘하에 들어가 무예를 좀 더 단련하여 마침내 고구려 조정이 철마다 여는 무술대회에 출전 우승하게 된다.
우승한 청년을 치하하는 평원왕. 그 자리에서 산돌이는 자신의 신분을 밝힌다.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을지준’의 아들이 자신임을 밝히며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신원을 회복시켜달라고 왕에게 간한다. 산돌이의 정체를 안 평원왕과 연태흠,고동준등은 충격을 받고. 평원왕은 고심 끝에 일단 일시적으로 을지가문의 대를 이을수 있도록 조치하며 ‘문덕(文德)’이란 이름도 몸소 하사한다. 사실 평원왕이 을지문덕을 등용한데는 날로 커져가는 연태흠 세력을 견제하고자 하는 의도도 숨어있다. 온달-을지문덕등의 무장세력을 연태흠과 대등한 세력으로 키워 서로 경쟁하며 견제하게 하려는 의도다.
한편 바로 을지가문을 몰락시킨 장본인이기도 한 연태흠은 그와같은 과거를 숨긴채 을지문덕에게 자신이 바로 문덕의 친 어머니의 오라비. 즉 외삼촌임을 밝힌다. 그러면서 ‘죽은줄만 알았던 조카를 찾았노라’며 악어의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손수 평양성내의 좋은집을 하나 구해서 그가 살수있도록 조치해준다. 허나 그러면서 뒤로는 사람을 시켜 을지문덕을 감시하게 한다. 연태흠과 을지문덕간의 미묘한 갈등관계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17회 - 40회 : 을지문덕의 청년기와 사랑
조정에 등용된 을지문덕은 대장군 온달의 휘하로 편입이 된다. 온달은 자신의 선친이 신라와의 전쟁때 하급무사로 출전 전사했고, 어머니가 자신마저 군대에 끌려가는것을 막기위해 ‘바보’ 행세를 하며 자라게 했음을 밝히며 그 아픈 과거와 신라,백제에 갖고있는 한을 토로한다. 언젠가는 신라와 백제를 쳐서 그 원한을 씻고야 말겠노라 말하는 온달. 하지만 신라와 백제를 적이라기 보다는 언젠가는 하나로 아우를 한민족으로 보고있는 을지문덕은 온달과 견해를 달리하고, 이로인해 둘 사이의 갈등관계가 형성된다. 온달은 을지문덕의 무예는 아끼지만 자신과 정치적 견해가 다른 그와 인간적 관계에는 거리를 두려하고.
연태흠은 자신이 을지가문을 멸망케한 원흉임을 숨기기 위해 문덕을 조카로 대우하는척 하지만, 뒤로는 사람을 시켜 그를 감시토록 한다. 한편 이 무렵 고구려의 또다른 귀족으로 언제부터인가 연태흠과는 사소한 견해 차이로 소원한 관계가 되어있던 최광일은 을지문덕쪽에 선을 놓으며 특히 그를 사위로 맞고 싶어해 그의 의사를 떠본다. 하루는 그를 집으로 초청 후하게 대접하며, 자신의 딸 수아를 소개시킨다. 수아는 을지문덕 앞에서는 다소곳하게 예를 올리지만 실제로는 집에서 일곱명의 동생들과 수많은 하인들을 다잡는 ‘여장부’ 행세를 하고 있는 성격이 매우 적극적이고 활달한 여인. 처음 다소곳한 여인으로 여기고 호감을 느꼈던 문덕은 차츰 그의 성정을 알고는 수아를 불편하게 여긴다.
한편 최광일이 수아를 문덕과 짝지우려는 의도를 알고는 또 다른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젊은이가 있다. 그는 고구려 왕족 집안인 고동준의 아들 고현.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아버지 고동준은 본래 평원왕이 평강공주와 짝지워주려 하였으나 평강이 한사코 ‘바보온달’과 혼인하기를 원해 공주와의 결혼이 좌절된 이다. 그 사연을 알고있는 고현은 자신은 바보처럼 여인을 자신보다 미천한 신분의 사내에게 빼앗기는 우를 범하지는 않겠노라며 그때부터 차츰 수아에게 더 적극적으로 집착하게 된다.
사실 최광일과 고동준의 집안은 꽤 오래전부터 왕래가 있었기 때문에 고현과 수아는 그때부터 알고지내는 사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고현은 수아에게 종종 구애를 해오던 차였고, 하지만 성정이 활달하고 나름대로의 포부가 큰 수아는 남자답지 못하고 성격이 쪼잔한 고현에게 호감을 느끼기는 커녕 오히려 경멸하는 면마저 있었다. 따라서 수아는 자연스레 마음이 고현보다는 문덕에게 더 끌리게 되고, 이에 바짝 약이오른 고현은 수아에게 더더욱 집착하게 된다.
한편 이 무렵 뜻밖의 변수가 나타난다. 바로 을지문덕의 첫사랑이자 고향친구인 효민. 문덕을 어릴때부터 거두었고 그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있는 양모 보월은 바로 그런 이유로 문덕과 효민이 가까워지는것을 만류하였고, 문덕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안 얼마뒤 효민과 하룻밤을 보내고 그녀곁을 떠났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로인해 효민은 문덕의 아이를 낳고 말았다. 효민은 그 아이에게 을지가문 성을 붙여준뒤 이름을 ‘홍’이라 지어 지금껏 키워왔다. 그 효민이 아이를 데리고 을지문덕 앞에 나타난것이다.
한편 광일과 을지문덕이 가까워지는것을 경계하고 있던 연태흠은 효민과 그 딸 을지홍의 존재를 알고나선 문덕과 수아 사이를 갈라놓고 효민을 을지문덕의 아내로 짝지워주려한다. 이로인해 을지문덕-효민-수아-고현 사이의 본격적인 4각관계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하지만 그 무렵 연태흠은 몰래 효민의 고향인 살수 지역으로 사람을 보내 지금까지 을지문덕이 어찌 살아왔는지 그리고 효민의 부모에 대해서도 알아보게 한다. 그 과정에서 바로 을지문덕을 을지준의 하녀였던 보월이 키워왔음을 알고 놀라고. 보월이 행여 자신이 바로 을지가문을 멸망케한 원흉임을 알고있을것을 우려한다. 하는수없이 이때부터 태도가 돌변 효민을 설득하여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고, 그 딸 을지홍을 수아가 거둘수 있도록 그녀를 설득한다. 수아는 당황하지만 일단 을지문덕과의 혼인을 이루기 위해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얼마뒤 을지문덕과 수아는 성대한 혼인식을 올리고, 효민은 자신의 딸이 계모(繼母) 수아에게 그런대로 잘 길러지고 있는것을 보고 그것으로 만족하고 문덕의 곁을 조용히 떠난다. 한편 문덕에게 수아를 빼앗긴 고현은 실의에 빠지고. 그의 아버지 고동준 역시 자신도 평강을 온달에게 빼앗긴것처럼 자신의 아들도 연모하던 여인을 을지문덕에게 빼앗긴것에 착잡한 감회에 사로잡힌다. 자연스레 고동준 부자의 원망하는 마음은 을지문덕과 온달에게 옮겨지게 되고.
이 무렵 중국 북주에선 양견이 승상의 자리에 올라 실권을 잡는다. 이에 반발한 ‘울지형’이 반란을 일으키고, 우중문은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의제(義弟) 우창기와 함께 ‘울지형의 난’을 제압하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운다. 양견은 이 일로 더더욱 우중문과 우창기를 신임하게 되고. 우중문은 울지형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선비족 출신인 우문술을 알게된다.
서기 589년(고구려 평원왕 31년). 양견은 북주를 멸망시키고 수나라를 세운데 이어 마침내 남조의 진마저 무너뜨리고 중국천하를 통일한다. 이에 충격을 받은 평원왕은 을지문덕과 온달등에 명해 외적(外賊)의 침입에 대한 방비를 더욱 철저히 하도록 하고 이 무렵 수나라는 국서를 보내 고구려에게 속국이 될것을 요구한다.
41회 - 64회 : 을지문덕 그리고 급변하는 주변 정세
서기 590년. 고구려 25대 평원왕이 승하하고 26대 영양왕이 즉위한다. 영양왕은 즉위하자마자 평원왕의 제2비인 남황후를 태후로 책봉하고, 그 소생인 고건무를 태자로 책봉한다. 원래 평원왕의 제1비였던 연황후는 평강공주와 고원(영양왕)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약하여 세상을 떠났고, 이후 평원왕은 한미한 가문의 여식인 남황후를 후비로 들였다. 원래 연황후가 죽고 연태흠의 아버지 연대식은 자기 집안과 친분이 있는 집안의 여식을 제2비로 들이기를 바랬으나, 연씨가문의 세력이 커지는것을 경계한 평원왕은 한미한 가문의 여식인 남황후를 후비로 들인것이다.
남황후는 집안 배경은 별로 볼것이 없었으나 그 대신 후덕한 성품으로 평원왕의 비가 된지 얼마 되지않아 둘째 고건무를 낳았다. 하지만 주위의 권신들의 전횡 때문에 큰 목소리는 내지 못하고 숨죽여 살아야만 했다. 그런 남황후는 제1비 소생인 평강공주와 고원을 친자식처럼 거두어 키웠으며 특히 고원이 자라난 뒤엔 그와 한가지 밀약을 맺는다. 고원을 자기 아들처럼 여길것이며 왕위에 무사히 오를수 있도록 성심을 다해줄터이니, 훗날 자신의 아들을 태자로 삼아달라고. 비록 의붓딸 평강공주와는 혼사문제로 돌이킬수 없는 사이가 된 남황후였으나, 고원과는 그로인한 밀약으로 인해 고원이 왕위 된뒤 태후로서의 권위도 보장받음과 동시에 자기 소생인 고건무의 후일도 마음을 놓을수가 있게 되었다. 한편 이 무렵 연태흠은 점차 조정에서 자신의 세력이 밀려나고 있음에 두려움을 느낀다.
영양왕이 즉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달이 몸소 왕을 알현하고 ‘신라가 오래전 우리의 군현을 친 바가 있고, 특히 그 전쟁으로 소신의 아비가 전사하여 그 원한을 잊지 못하고 있다.’며 스스로 나라와 아비의 원수를 갚겠노라 간한다. 영양왕은 온달의 출전을 허락하나 을지문덕은 신라와 전쟁을 벌이려는 온달을 만류한다. 허나 문덕은 온달의 간언을 듣지않고 출전, 아차산성의 전투에서 전사하고 만다. 온달의 시신이 돌아왔으나 움직이지 않자 평강공주가 울며 관을 어루만지며 ‘이제 때가 되었으니 그만 돌아가자’고 하자 관이 움직여 무사히 장례를 치를수 있게 된다. 온달의 장례를 치른뒤 평강공주는 홀연히 사라진다.
한편 이 무렵 을지문덕의 큰딸이며 첫사랑 효민의 소생인 을지홍이 집을 떠난다. 원래 을지문덕의 아내 수아는 효민의 딸 홍을 친딸처럼 거두겠다고 약조했으나 그것은 말뿐. 을지문덕이 없을때는 홍을 은근히 집안에서 따돌린다. 한편 그 사이 수아는 문덕과의 사이에 상문과 상규라는 두 아들을 낳고, 계모인 수아가 자신을 미워하고 있음을 안 을지홍이 스스로 문덕의 집을 떠난것이다. 집을 떠난 홍은 친모인 효민과 할머니 녹녀가 있는 고향 살수로 돌아간다.
사실 을지문덕은 여장부 기질이 있고, 특히 탐욕과 야망이 커서 이런저런 권문세족의 부인들을 끌어모으며 세력을 형성하는 모습을 보며 아내 수아를 차츰 못마땅해하고 있는 터였다. 그 마당에 홍마저 자신의 곁을 떠나자 문덕은 수아와도 차츰 멀어지게 된다. 이를 우려한 광일이 문덕을 집으로 불러 위로하지만 문덕의 마음을 돌리진 못한다.
한편 고향으로 돌아간 을지홍은 친엄마 효민에게서 무예를 배우게 된다. 그 옛날 효민이 계모인 녹녀에게서 무예와 사냥을 배웠던것처럼. 그러면서 을지홍은 차츰 이 동네에서 골목대장 노릇을 하며 행세할수 있게되고. 한편 아직까지 살아있는 대현도사는 천하를 통일한 수나라가 장차 고구려를 노리지 않을까 경계하고 있다.
서기 598년(영양왕 9년). 고구려가 먼저 요서를 치고, 이에 노한 수 문제가 우중문을 앞세워 군사를 보내 고구려를 친다. 이렇게 시작된 ‘제1차 고수(高隋)전쟁’은 일단 강이식이 활약한 고구려의 승리로 끝난다. 이 무렵 백제가 수에 고구려를 비난하는 글을 올리고, 뒤늦게 사실을 안 영양왕이 노하여 백제를 친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사태로 인해 고구려의 주변정세는 점차 악화되어간다. 을지문덕은 이를 안타까와하고.
한편 수 문제에 의해 천하가 실로 400년만에 다시 통일된 중국. 천하를 통일한 수나라는 내친김에 고구려는 물론 삼한을 모두 손에 넣고 싶어하고, 특히 문제의 왕자중 한명인 양광(훗날의 수 양제)은 그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양광은 태자인 형 양용을 모함하고, 부왕의 후궁에게까지 추파를 보내는등 차츰 노골적으로 탐욕스러운 모습을 보이는데, 우중문은 그와같은 양광이 못마땅하면서도 그가 자신을 신임하고 있는 이유로 쉬이 반발은 하지 못하고 적당히 그와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우중문의 의제인 우창기도 이 무렵 양광과 가까워지며 몸소 그의 군사업무를 돕기까지 하는데, 하지만 그런 창기의 가슴 한켠에는 쓸쓸한 그늘이 있다. 중문이 하루는 의아해서 창기를 찾아와 물으니, 창기는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던 어머니의 정표를 보여주며 ‘양부인 우식공께서 주신것’이라 말하며, ‘양부께서 이것을 제게 주시며 저를 낳아주신 친 어머니의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양부께서 절 지금까지 친자식처럼 거두어주신점은 고마우나 언젠가는 꼭 한번은 절 낳아주신 친 어머니를 찾아보고 싶습니다.’고 말한다. 바로 창기가 갖고있는것은 대현도사가 녹녀의 겁탈을 당해 생긴 아들인 그를 중국으로 가는 상인에게 맡기며 함께 넣어준 정표인 ‘사슴가죽 주머니’와 ‘녹녀’라는 이름이 쓰여진 한지다. 창기는 ‘녹녀’란 이름이 쓰여진 한지를 펼쳐보며 말한다. ‘ 이것이 아무래도 절 낳아주신 어머니의 이름이거나 그것을 알수있는 단서같은데, 달랑 이 두글자만으로는 도저히 알수가 없으니, 대체 이 넓은 (중국) 천하에서 어디서 ‘녹녀’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나 그를 아는이를 만날수가 있단 말입니까 ?’ 하며 어머니를 찾을 방도가 없음을 안타까와하며 눈물짓는다. 중문은 그런 창기를 위로하며 ‘기회가 있으면 꼭 널 낳아주신 어머니를 찾아보기로 하자’고 말한다. 어느 달밝은 가을밤. 창기는 쉬이 잠을 이루지못하고 ‘녹녀’란 이름이 쓰여진 한지와 사슴가죽 주머니를 어루만지며 말한다. ‘어머니, 대체 어디 계십니까 ? 그리고 만나뵙게 되면 꼭 여쭤보고 싶은게 있습니다. 왜 절 버리셨는지, 그리고 전 어떤 곡절로 인해 태어난 아이인지. 왜 그리고 제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에게서 버려질수밖에 없었던것인지. 꼭 그 연유를 알고 싶습니다.’ 그렇게 남몰래 눈물짓는 창기.
한편 이 무렵 고구려에선 또 한차례의 격변이 벌어진다. 영양왕이 고구려의 실세 연태흠을 숙청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평원왕때부터 사실상의 고구려의 실세로 군림해온 연태흠. 선왕인 평원왕도 그리고 현왕인 영양왕도 그 세력을 두려워하였으나 쉽게 내칠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급변하는 주변정세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내부의 적부터 다잡아야겠다고 결심한 영양왕은 이윽고 지금까지 연태흠이 저지른 전횡과 비리를 모두 파헤치며 연태흠에게 역모의 죄를 씌워 옥에 가둔다. 한편 그 과정에서 바로 연태흠과 그 아버지 연대식 부자가 오래전 을지문덕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모함하여 역모의 누명을 씌운 사실도 드러난다.
모든 것을 알게된 을지문덕은 격분 옥에 갇힌 연태흠을 찾아간다. 그리고 옥사장에게 잘 말해서 그와 은밀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갖는다. 단칼에라도 연태흠을 베어버리고픈 분노를 억누르며 외삼촌이기 전에 자기 가문을 몰락시킨 원수인 연태흠에게 묻는 을지문덕.
“ 왜 우리 가문을 몰락시켰습니까 ? ”
연태흠은 그런 문덕을 가소롭다는듯 바라보며 제법 호탕하게 껄껄껄 웃는다.
“ 내가 왜 네 아비나 할애비를 못마땅하게 여겼는지 아느냐 ? ”
“ 연유가 무엇입니까 ? ”
“ 바로 니 애비나 할애비의 어설픈 화합과 통합정신이 가소로왔느니라. 내 아버
지와 니 할애비는 본래 안원왕시절 함께 평성태자와 손을 잡고 세군왕자 세력을
몰락시켰느니라. 허나 내 부친께서는 확실하게 세군의 잔당을 모두 척결하고 오
직 평성태자의 세상만을 만들기를 원했었지. 헌데 네 할애비와 애비는 생각이 다
르더구나. 그 어줍잖은 용서와 화해를 입에 올리며 화합과 통합을 입에 올리며
세군의 잔당들을 포용하려 들었지. 허허허...그런데... ”
“ ...... ”
“ 지금의 네 모습도 그 시절의 니 애비와 할애비와 별로 다를것이 없어. 문덕아
이 삼촌이 정치에 대해 딱 하나만 가르쳐주마. 정치에 화합과 용서는 있을수가
없어. 어느 한쪽이 정권을 잡으면 다른 한쪽은 반드시 몰락하게 되는법. 그 비
정한 승자독식의 세계가 정치의 세계니라. 문덕아, 전쟁에서 무승부란게 있을수
있다고 보느냐 ? 정치도 마찬가지다. 이긴자가 모든 것을 갖게되는 법이지. ”
“ 고구려는 모두 하나가 되어야합니다. 그래야 주변의 수많은 외적의 침입에 맞
서 능히 그들과 싸울수가 있습니다. ”
“ 허허허...네 하는 소리가 바로 니 애비나 할애비가 툭하면 입에 담던 그 말과
글자하나 다르지가 않구나. 하지만 니 애비와 할애비가 그래서 망한것이야. 정치
에 중립이란 없다. 바로 너희가문 같은 어설픈 중도주의자들이 실은 진짜 정치를
망치고 나라를 망치는 기회주의자들인게지. ”
“ 궤변 늘어놓지 마시오. 어쨌든 우리 가문을 몰락시킨 원죄는 씻을수 없을것이
오. ”
“ 허허허...어차피 이리된 이상 내가 살아날길은 이제 정녕 없을것 같구만. 다만
문덕아. 내가 꽤 오래전부터 가졌던 큰 포부 하나만은 일러주마. ”
“ ??? ”
“ 네가 내 정신을 이어받을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내가 꿈꿨던 고구려
는 아주 크고 강한 고구려였다. 이 삼한을 모두 제압하고 급기야는 저 중원마저
발아래 꿇릴수 있는 그런 세상에서 제일 강하고 큰나라. 천하는 결국 강하고 큰
자가 손에 넣게 되는 법이지. 세상에서 제일 강하고 큰 나라...를 만들기 위해 후세
에 황당고기를 물려주마...(이건 장난 ^^;;) 허허...이 연태흠이 가진 이 고귀하고 숭고한
애국정신을 훗날 누가 있어 알아주리. 강하고 큰 고구려를 만들고자 한 거룩한
민족혼...거룩한 애국혼을 말이다... ”
“ 궤변은 더 이상 듣고싶지 않소. 오히려 당신의 그 독선과 만용이 고구려를
망쳤소. 자신과 생각이 다른이들과 소통하고 타협할줄 모르는 당신같은 사람
들의 독선이야말로 진실로 정치를 망치고 나라를 망치는 것이오 !!! ”
“ 허허허...여기서 너랑 이 주제를 갖고 백분토론이라도 벌이랴 ? 그만두자. 어
쨌든 문덕아. 너 또한 네 아비와 할애비를 닮아 그 잘난 중도주의자인것 같지
만 너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정치에서 영원한 화해와 타협은 결국 불가
능하다는것을... ”
연태흠은 머지않아 처단된다. 한편 연태흠이 몰락한 얼마후 그 집 하녀 한명이 연태흠의 어린 조카를 품에 안고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진다. (그 아이가 훗날의 ‘연개소문’이다.)
65회 - 74회 : 살수대첩과 을지문덕의 활약
서기 604년(영양왕 15년). 수나라의 정세가 요동친다. 형을 모함해서 태자자리에서 쫒아낸 양광은 부왕인 문제가 병약해지자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시해하고 자신이 황제에 오르니 그가 수 2대 황제 양제다. 황위에 오른 양제는 노골적으로 삼한을 손에 얻고자 하는 야심을 드러내고, 한편 내부적으로는 무리한 토목공사를 일으키는등 갖은 폭정을 편다. 양제는 고구려에 자신을 알현할것을 요구하나 영양왕이 보낸 고구려 사신은 이를 거부한다. 이에 노한 양제는 본격적으로 고구려 침공을 준비한다.
한편 을지문덕의 고향인 살수에선 대현도사가 녹녀와 효민 그리고 을지홍등을 불러 수나라와 고구려의 사이가 심상찮으니 어쩌면 머지않아 다시 수나라가 고구려를 칠지 모르니 이를 대비해야 한다고 이른다. 이에 효민과 을지홍 모녀는 마을 주민들을 모아 의병을 조직하고.
612년(영양왕 23년). 마침내 수양제는 113만 대군을 일으켜 대대적으로 고구려를 침공한다. 그 선봉에 우중문과 우문술이 서게 된다. 우중문과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의제 우창기 역시 우중문의 측근으로 함께 고구려 정벌에 참여하게 되고, 처음 한동안 수나라는 기세등등하게 고구려를 압박하게 된다. 그러나 워낙 대군이 움직이는 바람에 보급과 연락등이 원활치 못한 문제로 수나라 대군은 내부적으로 탈영병이 자꾸 발생하는등 골치에 휩싸이게 된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수나라는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연전연승하게 되고 점차 평양성을 향해 가까이 가게된다.
하지만 이제부터 을지문덕의 본격적인 계책이 발휘된다. 문덕은 우선 우중문에게 거짓으로 항복하는척 진중으로 들어가 적의 허장성세를 살핀다. 이후에도 우중문은 을지문덕과의 전투에서 연승하고. 하지만 을지문덕은 실은 거짓 패하는척 하며 수나라의 대군을 살수로 유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무렵 을지문덕은 우중문에게 저 유명한 ‘여수장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를 보낸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 神策究天文(신책구천문) 그대의 신묘한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 했고
妙算窮地理(묘산궁지리) 오묘한 계책은 땅의 이치를 다 했노라
戰勝功旣高(전승공기고) 전쟁에 이겨 그 공 이미 높으니
知足願云止(지족원운지)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바라노라 ’
학문이 높은 우중문은 의미심장한 시에 ‘우리가 계책에 빠진것이 아닌가 ?’ 의심하나 단순무식한 우문술은 시 내용을 일축하며 별것 아니라며 고구려를 이내 곧 손에 얻을수 있을것이라 자신만만해 한다. 그러나 우중문과 우문술의 군사가 살수에 당도했을때 을지문덕은 마침내 대대적인 수공(水攻)으로 수나라의 대군을 격파한다.
한편 우중문의 부하 창기는 이 무렵 살수 인근의 한 마을에서 한떼의 의군과 맞닥뜨리고 있었다. 의군을 이끌고 있는이는 바로 다름아닌 을지문덕의 큰딸 을지홍과 그 엄마인 효민이다. 처음에 우창기는 여장(女將)이 이끄는 의군에 가소로와 했으나 이미 훈련과 규율이 만만찮은 을지홍 모녀의 의군은 창기의 군대를 크게 격파한다. 창기는 어이없는 패전에 기가막혀 하면서도 자신들을 격퇴한 여자 장수에 대해 궁금해한다. 창기는 사람을 시켜 의군을 이끄는 여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고, 그러나 창기가 보낸 군사들은 을지홍등에 대해선 별다른 알아본것이 없고, 다만 녹녀라는 마을의 칠순된 노파가 이들에게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아낸다.
바로 녹녀는 을지문덕이 갓난아기시절 그와 양모인 보월을 구해준 은인. 그 녹녀는 이후에도 줄곧 사슴사냥으로 얻은 고기와 가죽을 내다파는 일을 업으로 살아오고 있었고, 이 무렵에는 이 일대의 정신적 지주같은 역할을 해오고 있기도 했다. 한편 창기는 을지홍의 의군과의 전투에서 연달아 패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아끼는 부장 두명까지 사로잡히는 치욕을 겪게된다. 하지만 오히려 이때 창기는 뜻밖에 수확을 거둔다. 연달은 패전에 사기가 떨어지고 고구려 백성들에 대한 적개심까지 생긴 수나라 군사들이 민가를 약탈하는 과정에서 바로 의군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다는 녹녀를 사로잡은 것이다.
창기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을지홍에게 화친을 청하고, 포로로 잡힌 자신의 부장들과 녹녀를 교환할것을 제안한다. 자신에겐 외할머니뻘이고 어머니 효민에겐 키워준 어머니인 녹녀가 사로잡힌 이상 어쩔수없이 을지홍도 그 제안에 응한다. 허나 포로교환을 약속한날. 어렵게 잡은 적장을 돌려주는것을 반대한 일부 의군들이 돌려줘야할 창기의 부장을 살해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을지홍은 창기측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나 격분한 창기는 을지홍이 보낸 사자는 물론 녹녀까지 잔혹하게 살해해버린다. 그리고 대대적으로 을지홍의 의군을 쳐부수러 출진하는데, 헌데 이때 마침 한바탕 천둥번개와 함께 거신 비바람이 몰아치며 을지홍과 창기 양군의 진영이 초토화 된다. 창기도 거센 비바람과 함께 몰려오는 각종 모래와 돌무더기등에 맞아 큰 부상을 입는다.
비바람에 엉망이 된 우창기의 진영을 하루는 대현도사가 몰래 찾아온다. 그리고 부상을 입고 쓰러진 창기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치료해준다. 헌데 창기를 치료하고 그의 소지품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대현은 뜻밖의 물건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창기가 늘상 품에 간직하고 다니던 자신의 어머니를 알 수 있는 정표. 다름아닌 오래전 대현도사가 녹녀의 겁탈을 당해 생긴 아이를 수나라를 오가는 상인에게 맞기면서 함께 안겨준 그 정표. 녹녀가 손수 만든 사슴가죽 주머니와 자신이 직접 한지에 써준 창기 생모의 이름 ‘녹녀(鹿女)’다. 크게 놀란 대현. 며칠만에 정신을 차린 창기는 어찌 고구려인이 자신을 살려주었느냐 의아해 묻고, 대현은 일단 고구려인이나 수나라인이나 다 같은 사람인데 부상당한 이를 어찌 보고만 있을수 있었겠냐며 적당히 둘러댄다. 그리고 조심스레 그의 품에서 발견한 사슴가죽 주머니와 한지를 보여주며 어찌 이것을 당신이 갖고있느냐 묻는다.
창기로부터 곡절을 들은 대현은 크게 놀라고, 며칠을 고민하다 바로 그 ‘녹녀’가 그대를 낳아준 친어머니라며 창기가 세상에 태어나게 된 이유와 자신이 그를 어릴때 수나라로 가는 상인에게 맡기며 정표를 안겨준것까지 말해준다. 마침내 자신의 ‘출생의 비밀’과 자신이 직접 자신의 손으로 낳아준 어머니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된 창기는 경악하며 절규한다. 한참을 미친사람처럼 발악하던 우창기. 그러다 어느날 홀연히 대현의 집을 나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다.
‘살수대첩’의 큰 공을 세운 을지문덕에게 영양왕은 높은 벼슬을 내리고 그 공을 치하한다. 그러나 패전하여 수나라로 쫒겨간 우중문과 우문술은 격노한 양제에 의해 평민으로 신분이 강등되고 만다. 그려먼서 살수대첩의 치욕의 분을 이기지 못해 다시 두차례나 더 거듭하여 고구려를 참공한다. (3,4차 고수전쟁)
하지만 거듭되는 전쟁과 패전으로 수나라는 국력이 쇠잔해지고 내부로도 불만세력이 계속 생겨나 급기야 반란이 일어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만다. 마침내 수나라는 고구려와의 거듭된 전쟁의 여파와 그 후유증으로 멸망하고. 수 양제또한 숨을 거둔다.
75회 - 80회 : 을지문덕의 최후
고구려에선 영양왕이 죽고 영류왕이 즉위하며 중국에선 거듭된 고구려와의 전쟁으로 쇠락해진 수나라가 멸망하고 당나라가 들어서게 된다. 새로 일어난 당나라는 당분간 고구려와의 갈등관계를 자제하고 화친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영류왕 역시 화친을 원해 당과 고구려는 당분간 평화관계가 유지된다. 한편 영류왕의 화친정책을 지지하는 신하들이 고구려에선 대거 실세로 등용되고, 한편 당에선 고조 이연에 이어 태종 이세민이 즉위하는데 이세민은 고구려와 단순한 화친관계를 넘어서 고구려를 속국화하기 위해 압력을 넣는다. 이에 고구려에선 군부세력의 불만이 시작된다.
고구려 군부는 을지문덕을 찾아가 자신들의 구심점 역할이 되어줄것을 바란다. 하지만 파벌싸움이 싫은 을지문덕은 나라에 충성만을 다짐하며 자신을 찾아오는 군부인사들에게도 온건파와 화친하여 잘 지낼것을 설득한다. 군부는 을지문덕의 이와같은 중립적 태도가 불만이고 한편 을지문덕은 조정의 파벌싸움에서 벗어나 스스로 변방을 돌며 혹시 만약에 있을지도 모르는 당나라나 또다른 외적의 침입을 방비한다.
한편 을지문덕의 아내 수아는 남편의 이런 태도가 불만이다. 이젠 자신도 남편의 권세에 의지 조정에서 큰 목소리를 내고 싶은데, 원래 권력에 관심이 없는 을지문덕인지라 아내 수아의 바램은 뜻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는 가운데서도 수아는 온건파 대신들의 아내들을 종종 집으로 불러 대접하며 그네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려드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을지문덕과는 갈수록 사이가 벌어진다.
한편 온건파와 군부 사이에서 늘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는 을지문덕의 태도에 일각에선 ‘기회주의자’란 비난이 일기도 하고 어떤이들은 을지문덕의 사소한 흠집을 잡아 영류왕에게 그를 모함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류왕은 ‘살수대첩’등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을지문덕이 세운 공을 생각하라며 그와같은 신하들의 을지문덕 탄핵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을지문덕의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고현은 다른 마음을 품기 시작한다. 이 기회에 을지문덕을 확실히 제거해버리려는 것이다.
그는 일단 자신의 첫사랑이기도 한 수아를 찾아간다. 을지문덕과는 완전히 부부사이가 틀어져있는 수아를 찾아간다. 이제 어느덧 환갑이 다 되어가는 이들이지만 새삼 젊은시절의 인연을 떠올리며 감회에 젖는다. 무엇보다 을지문덕과는 어디까지나 대외적인 체면을 생각해 형식적인 부부사이만 유지하고 있는 수아. (* 오늘날 쇼윈도 부부의 원조 ???) 그에게 이제 남은 바램이 있다면 자신의 두 아들 상문과 상규가 조정에서 크게 출세하는것 뿐이다. 하지만 마치 호부견자란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학문이나 무예 어느쪽으로도 실력이 많이 떨어지는 큰아들 상문이나 출세지향적이고 야심은 있어도 역시 여전히 조정에서 별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둘째 상규. 이 둘의 장래를 고현에게 부탁한다. 그리고 을지문덕 축출 음모를 꾸민다. 고현은 이미 을지문덕에게 불만이 있는 온건파 대신 상당수를 포섭한 상태다.
변방의 방비를 돌보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을지문덕. 아내 수아는 이례적으로 그를 깎듯이 대접한다. 하지만 그가 대접한 차에는 그녀가 미리 준비해놓은 독약이 들어있다. 그것을 마시고 그만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는 을지문덕. 고현은 을지문덕이 죽었다는 소식에 환호하지만 애초의 수아와의 약속을 어기고 ‘남편을 죽인 여자’란 죄를 뒤집어씌워 수아까지 가두고 그의 두 아들 상문과 상규까지 축출시킨다. 이렇게 을지문덕의 집안은 자신의 아내에 의해 죽고 몰락하는 비극을 격게된다. 마치 을지문덕의 아버지가 자신의 처가의 모함으로 몰락한것처럼 자신도 똑같은 비극을 되풀이하고 만 것이다.
을지문덕은 죽고, 고현은 행여 을지문덕을 추종하는 백성들로 인해 그를 추앙하는 바람이 일어날까 우려하여 그를 헐뜯는 루머까지 곳곳에 퍼트린다. 그리고 을지문덕과 관련된 모든 기록을 없애버린다. 그렇게 을지가문을 고구려에서 완전히 지워버리려고 하는 고현. 그렇게 을지문덕은 일시적으로 고구려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영류왕이 연개소문의 쿠데타로 폐위되고 그 과정에서 고현 역시 비참한 최후를 맞게된다.
첫댓글 본문에 언급된 '사슴발 여인의 전설'은 김용만 선생님의 저서 '인물로 보는 고구려사'에 소개된 내용을 일부 참조하였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