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565) 시의 언어 구조 - ③ 기본구조; 선조구조와 병치구조/ 문학박사, 동아대 명예교수 신진

[하지연 (하현식)]

시창작강의 - (565) 시의 언어 구조 - ③ 기본구조; 선조구조와 병치구조/ 문학박사, 동아대 명예교수 신진

시의 언어 구조

네이버블로그/ 시(詩): 언어가 머무는 곳, 뜻이 가는 곳

③ 기본구조; 선조구조와 병치구조

시 언어의 기본 구조는 선조(線條)구조와 병치(竝置)구조 둘로 나누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된다.

선조구조란 휠라이트의 치환비유(epiphor)에서,

병치구조는 휠라이트의 병치비유(diaphor)에서 구조 개념으로 원용한 용어이다.

휠라이트는 그의 『은유와 실재』에서 직유나 은유, 의인법 같은 문법적 형태에 따르는

종래이 비유론을 무익한 것이라고 하고,

텍스트에서 차지하는 전반적인 기능에 따라 비유를 치환과 병치 둘로 구분한 바,

이 치환과 병치 또는 그 통합의 원리에서 시의 언어가 구조화 된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그는 종래의 비유법이란 건 부분적 수사에 그칠 뿐 아니라,

그 유형이 ‘A는 B이다’, ‘A는 B와 같다’는 식의 문법 형태에 따라 구분되는 것은 잘못이라 하고,

시의 언어가 전반적으로 비유적 체계를 이룬다는 관점에서 새로운 용어를 찾았던 것이다.

치환비유는 주지와 매체 사이의 유사성을 전제로,

비교를 통하여 의미를 탐색, 확대해 나간다.

유사성이나 동일화를 목표로 하는,

통사적으로나 의미론적으로나 선조적(線條的)으로 연결된다.

이에 비해 병치비유란 주지와 매재를 인상적으로 병렬, 대조, 제시하여

그 총합에 의해 심층의 새로운 의미를 암시한다.

병치는 추상적인 음악이나 미술에서 감지되는 암시적이고

주관적인 분위기나 의의를 생성에 비견할 수 있는 구조이다.

가) 사랑을 다해 사랑하였노라고

정작 할 말이 남아 있음을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 불러야 할 뜨거운 노래를 가슴으로 죽이며

당신은 멀리로 잃어지고 있었다

다) 하마 곱스런 눈웃음이 사라지기 전

두고두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잊어 달랐지만

남자에게서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

라) 다섯 손가락 끝을 잘라 핏물 오선을 그려

혼자라도 외롭지 않을 밤에 울어보리라

울어서 멍든 눈 흘김으로

미워서 미워지도록 사랑하리라

마) 한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또 한잔은 이제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그리고 한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마지막 한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조치훈, 「사모」 전문(가,나,다 등은 필자)

가), 나), 다), 라), 마)로 병치된 구조이다.

이들의 내면을 종합하면,

떠나버린 사람을 생각하며 다섯 손가락을 잘라 나오는 피로서 오선지를 그리고 울며

노래하며 한잔은 떠나간 너를 위해,

한잔은 영원한 사랑을 위해,

한잔은 초라한 나를 위해,

마지막 한잔은 이런 운명을 준 하느님을 위해 술을 마신다고 토로하고 있다.

한없는 아픔이지만 사랑의 아픔 자체가 값진 운명이 되는 더할 나위 없는 애틋함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고통과 그 비극을 받아들이는 시인의 삶이 읽는 이의 가슴을 파고든다.

사랑이라는 것도 지키고 간직해야 할 소중한 것이지만 잃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있고,

잃고 나면 눈이 멍들도록 울며 미워하려 해도 미워지지도 잊혀 지지도 않는 가치임을

절절하게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가), 나), 다), 라), 마)의 병치 구조 안에서 내부는

정상적인 시문 구조의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기반적 언어와 변용의 언어(‘뜨거운 노래를 가슴으로 죽이며’, ‘핏물 오선을 그려’,

‘혼자서도 외롭지 않은 밤에 울어보리라’, ‘미워지도록 사랑하리라’ 등)가 정상 시문 양식으로 결합되어 있고,

가)~라)의 언어는 마)의 ‘한 잔’의 고통과 체념과 불변의 사랑을 전경화 하는 배경이 된다.

또한 가), 나), 다) 각각의 내부는 인과관계에 의한, 선조 구조를 이룬다.

라)와 마)의 내부는 각각 독립성이 강한 정황으로 병치되어 있다.

전반부와는 구별될 수 있는, 혼합적 구조인 것이다.

선조구조가 종래의 비유론에서 말하는 직유, 은유 등 정상적인 시문 구조라면

(‘치환’이란 말의 수사학적 뉘앙스를 버리고, 시문의 구조 명칭에 더 적합하며 병치에 대립되는 개념의 용어,

‘선조’를 쓰기로 했다.),

병치구조는 잠재적 계열체를 드러내어 병렬하는 구조이다.

< ‘차이 나는 시쓰기, 차유의 시론(신진, 시문학사, 2019.)’에서 옮겨 적음. (2024. 7.12.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565) 시의 언어 구조 - ③ 기본구조; 선조구조와 병치구조/ 문학박사, 동아대 명예교수 신진|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