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566) 시의 언어 구조 - ④ 선조구조/ 문학박사, 동아대 명예교수 신진
시의 언어 구조
Daum카페/ 시창작강의 - (564) 시의 언어 구조
④ 선조구조
선조구조와 병치구조는 시적 언어의 기본 자질인 시문구조와 비문구조,
그 외의 구조적 자질들과 혼합되고 융합되어 시의 구조를 이루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전경과 후경과 주도자 등 통합적 시점에서의 구조적 체계가 갖추어지는 바,
이러한 통합적 구조 인식은 극단적인 차이의 시나,
해체지향의 시도 체계적으로 인지하고 학습이 용이하게 할 바탕이 될 것이다.
선조구조는 다시 시문 선조구조와 비문 선조구조로 나누어진다. 모든 시,
모든 현상이 그렇듯 이 역시 물리적 차원과 정신적 차원에서 작용하게 된다.
1) 시문 선조구조
시문 선조구조는 가장 전통적인 문학 구조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또는 인과관계에 의해 순서대로 연결되는 데다,
전통 시가의 구조―기승전결의 구조가 이의 표본이 된다 할 수 있다.
물리적인 사실을 매개로 하여 주지를 구현해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직관과 성찰을 통해 남다른 세계를 개진할 수도 있다.
언어체계는 대부분 치환과 병치가 혼합된 구조를 보인다 할 수도 있다.
새벽 산책길에서
살모사가 개구리 한 마리를 잡아
입에 삼키는 것을 보았다.
어제 저녁에 나도
꽁치 한 마리를 통째로 구워먹지 않았던가.
하나의 생명을 먹고 사는 다른 또 하나의 생명
죽은 자는 죽인 자의 어머니,
이 무참하게 저지른 죄를 씻기 위해 산 자는
식사 후 항상
물로
자신의 내장을 헹구어낸다.
아무도 살지 않은 목성이나 토성엔
물도 필요 없지 않던가.
―오세영, 「목성이나 토성엔」 전문
약육강식의 현장에 대한 차이 나는 체험이 형이상학의 인연과 인과(因果)로 나아가는 시문 구조이다.
살모사가 개구리를 잡아먹는 새벽 산책길과
시의 화자가 꽁치 한 마리를 통째로 구워먹은 전날 저녁의 일은 동인(動因)이 같은 일로 연계된다.
이는 다시 추상적인 세계로 비약한다.
〈하나의 생명을 먹고 사는 다른 또 하나의 생명〉이 존재하고
〈죽은 자는 죽인 자의 어머니〉라는 아이러니컬한 성찰이 설득력을 얻게 된다.
인과적 연계는 ‘물’의 용도로까지 비약하며 약육강식이 지구 밖 목성이나 토성에선 일어날 리 없는,
지구사회의 생태임을 유머러스하게 병치시킨다. 냉소적 수용일 것이다.
물이 없으면 생명이 없다는 과학적인 사실을 생명 윤리의 차원으로 비약시키는 아이러니의 언어이다.
시문 선조구조에는 물리적인 사실을 통해 현실적 삶을 반영하는 구조가 있는가 하면
이렇게 형이상의 직관과 각성으로 비약하기도 한다.
혼잡 구조도 반전(反轉) 구조도 비약 구조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시 「목성이나 토성엔」은 새로운 각성으로 비약하는 ‘시문 선조 비약 구조’라 할 만하다.
2) 비문 선조구조
선조구조라 해서 정상적인 시문으로서만 성립하는 건 아니다.
비문인 채 맥락이 계속 이어지는 시들도 적지 않다.
이는 비문 선조구조라 부를 만하다.
초현실주의 등 과격 모더니즘 계열의 시들 다수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현대시에서 통사적 차원에서의 의미론적 비문인 경우,
이는 무의식적 의식의 흐름을 겨냥한 경우가 많다.
우리 근대시가에서 최초로 시에 비문을 도입한 이상(李箱)의 경우,
「오감도」 1호부터 15호의 시는 모두 비문 선조구조의 형식이라 할 수 있다.
그 중 4호, 5호는 형태주의적 기호시라 할 수 있겠으나
그 역시 차이성이 유난한 지경을 향해 선조적으로 배열된 비문 구조에서 예외는 아니다.
거울 안에 작은 문이 있어 살며시 열어보니 소리 없이 열린다 문을 통해 거울 속으로 들어가니 거울 안에는 내방을 닮은방이 있다 내가 들어온 문이 소리 없이 지워진다 문이 있던 부분을 밀어보니 꼼짝도 않는다 큰일이다 거울 안에 갇힌 것이다 방문을 열어보니 검은 아스팔트다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여기가 어디냐고 물으니 모른다고 대답한다 길 저쪽에서 다가오는 택시를 타고 버스 터미널에 내려 부산행 표를 달라고 했지만 그런 도시는 이 나라에는 없다고 한다. 이 도시의 이름을 물으니 삼천포라고 한다 이런, 고향에 와버렸군! 나는 버스를 타고 죽림동 옛집을 찾아간다 버스는 양계장 지나 학교 앞에 멈춘다 학교를 둘러싼 탱자 울타리는 그대로였지만 학교가 있던 자리엔 울창한 복숭아밭이 있다 햇살이 따가운 복숭아 밭에선 아름다운 여자들이 탐스러운 복숭아를 따고 있다 여자 한명이 걸어와 어떻게 오셨냐고 묻기에 나는 죽림동 707번지가 어디쯤이냐고 물어본다 여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그 마을은 없어진 지 백년도 지났다고 말하며 손짓으로 옛 마을 쪽을 가리킨다 눈을 돌려 그곳을 바라보니 마을은 없고 무덤들만 가득하다
―김참, 「겨울 여행」 전문
문장은 계속 연결되지만 문맥을 이해할 수는 없다.
시간과 공간이 자유자제 이동하고 있다.
상상의 차원을 넘어 꿈속을 내왕하는 듯한 언어들.
의미 맥락이 닿지 않는 비문적 언어와 상황들이 선조적으로 이어지는 시는
이상(李箱), 조향, 김춘수, 문덕수, 전봉건, 오규원, 이승훈, 징진규 등의 비교적 성공한 시들이 취한 구조이다.
말이 안 되는 비문으로 언어를 연결해 내기 위해서는
남다른 언어적 감수성과 유희적 상상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계열 중에 성공한 시가 보이는 비결이라면 언어의 우연한 충돌과 환상들의 사이사이에
사실적인 현실이 개입, 현실과 비현실을 뒤섞어 놓는 수법이 핵심이지 않을까 한다.
「겨울여행」의 경우도 꿈의 세계에서나 겪을 만한 환상들이 이어지는 중에
그들이 현실적인 삶과 구체적으로 연결됨으로 해서 불신감을 덜고 호기심을 유지하고 있다.
거울, 문, 집, 아스팔트 등 생활 밀착의 이미지로 시작하여
택시를 타고 버스터미널에 내렸다든지,
구체적인 고향 마을이며 집 번지까지―
극히 현실적인 언어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환상과 현실을 왕래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다.
엉뚱한 이미지들의 선조적 연결이 내면 의식의 흐름을 반영하기 용이할 수 있다는 점도
이 계열 시인들이 이 구조를 애호하는 이유라 생각된다.
비문의 선조구조는 여러 용도로 이채롭게 쓰이기도 한다.
고의로 눌언시(訥言詩)를 늘어놓은 듯한 비문 선조구조의 예를 들어보자.
엄마가 몰래 딸꾹, 꽃잎을 먹었지요 꽃들이 자꾸 피어서 엄마는 딸꾹, 나 몰래 자꾸 꽃을 따 먹었지요 들키지 않으려고 딸꾹, 꽃을 삼키는 바람에 딸꾹, 딸꾹질이 멈추지 않네요 꽃이 죽을까봐,
엄마가 딸꾹, 죽을까봐 나는 이미 닫힌 약국 문을 두드려요 아홉 살 딸꾹, 나는 아직도 아홉 살 딸꾹, 딸꾹, 아무리 두드려도 문 두드리는 소리가 딸꾹, 들리지 않아요 너도 꽃 나도 꽃 꽃들에게 이름 붙이며 놀았는데,
그 겨울 칼바람이 딸꾹, 다시는 꽃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하였지요 꽃을 키우는 엄마, 엄마의 딸꾹질이 무섭다고 딸꾹, 꽃들에게 일렀지요 거짓말처럼 딸꾹, 엄마의 딸꾹질은 꽃이 되었지요 세상은 온통 꽃무늬뿐이었지요 딸꾹,
―신정민, 「꽃들이 딸꾹」 전문
‘꽃들이 딸꾹’이라니 제목부터가 비문이다.
시적 화자가 아홉 살 되던 해 병든 엄마가 딸꾹질을 하며 끝내 꽃이 되어버린
표현불가의 충격 딸꾹, ‘딸꾹’은 숨이 멎을 듯한 절박감의 표시이다.
마지막연의 〈거짓말처럼 딸꾹, 엄마의 딸꾹질은 꽃이 되었지요
세상은 온통 꽃무늬뿐이었어요 딸꾹,〉은
어린 나이에 받은 혹독한 상처와 동시에 그 처절한 이별의 추억이리라.
수다를 가장하기도 하고, 눌언을 가장하기도 하는, 정상(正常)을 벗어나는 언어들이다.
‘딸꾹’을 읽어도 비문이 연결이다.
‘딸꾹’은 비문과 비문을 잇는 데 필요한 비약, 생략, 과다 등을 대신한다 할 만하다.
엄마와 나의 딸꾹질로, 꽃이 된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온 세상이 꽃무늬가 될 지경이다.
시인은 독특한 비문 선조구조에 ‘딸꾹’을 개입시킴으로써
말 막힘과 감춤과 인내의 정황을 표현한 것이다.
언어는 언제나 빈곤하고 그러므로 시의 구조는 언제나 붕괴 가능성 속에 있다.
비문과 시문의 혼합, 선조와 병치의 혼합, 삽입 형태의 시는
얼마든지 가능하고 낱낱으로 구분할 수도 없는 혼용의 구조도 가능하다.
시인은 언제나 정상적인 시문을 이탈하고 파괴함으로써 새로운 구조를 이루어 간다고 보아야 한다.
베르그송이 말하듯 생명적 힘은 오히려 존재의 불확정성에 있다.
언어라는 물질이든 시인의 정신이든 거기에는 커다란 불확정성이 도사리고 있음으로써
시의 예측불가한 생명력이 그치지 않게 되는 것이리라.
< ‘차이 나는 시쓰기, 차유의 시론(신진, 시문학사, 2019.)’에서 옮겨 적음. (2024. 7.15.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566) 시의 언어 구조 - ④ 선조구조/ 문학박사, 동아대 명예교수 신진|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