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노래와 한문이 만나면(조현)
<성서>와 한문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않다. 그러나 그건 상상력의 빈곤일 뿐이다. 실제 이미 635년 일군의 선교사들이 당나라에 도착해 그리스도교 일파인 경교를 전파한 것을 비롯 동서 종교 문명의 교류가 계속됐다. 이 교류는 현대에 들어 동양 고전에 해박한 그리스도교 중국인 오경웅(우징숑1899-1986)이나 임어당(린위탕)에 이르러 정점을 맞았다. 오경웅의 <선의 황금시대>는 현대 불서의 고전의 반열에 올라있다. 오경웅과 임어당은 1930년대 중국에서 <천하>라는 잡지를 공동발간하기도 했다.
오경웅은 미국 감리교 선교회가 상해에 세운 동오법과학원을 다니면서 감리교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어 처음에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으나 점차 식어졌다. 이후 미국에 유학하여 국제법을 전공하였고 중국에 돌아와 상해의 조계지역을 관할하는 법원의 판사를 지냈고, 1934년 입법원에 들어가 중국의 헌법을 기초했다. 그는 사회적 성공과 달리 정신적 영적인 황폐화를 경험하던중 1937년 말 가톨릭 성인인 소화 데레사의 글을 읽고 회심을 경험해 가톨릭으로 개종했고, 타이완 정부에서 교황청 대사를 지냈다.
그 오경웅이 ‘성서의 민요’격인 시편을 중국 한시처럼 운율을 맞춰 해설한 <시편사색>이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 880쪽에 이르는 두꺼운 책이다. 이 책은 1946년 가을 중국 상해에서 <성영역의초고>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간되었다. 당시 중국은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이 여전히 진행 중인 전쟁터였음에도 무려 2만부나 팔려 큰 화제가 된 책이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 국민당 정부의 수장인 장개석(장제스) 총통이 일제의 폭력을 피해 방공호에 있으면서 이 책의 교정을 직접 했을만큼 관심을 끌었다. 장개석 총통의 후원과 교정으로 오경웅은 이 때 <신약성서>도 번역했고, 이 책은 공식적인 공회의 번역이 아닌 개인차원의 번역임에도 가톨릭에서 최초로 교황이 뒤에 인정을 해준 성서번역본으로 알려져 있다. 타이완에선 오경웅의 <성영역의>와 <신약성경>이 장 총통 수정본이라 하여 1946년 발간 당시부터 국가적인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배경 말고도 이 책이 다른 기독교 서적들보다 더 관심을 끈 것은 당송 팔대가의 시를 비롯 시에 익숙한 중국인들의 정서에 부합되는 시였기에 중국인들에게 시적 감흥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킨 때문으로 전해진다. 이 책을 중국에서 10년 동안 선교사로 활동하던 송대선 목사가 우리말로 번역해냈다. 중국에 머물며 서예와 차를 익혔다는 송 목사의 번역엔 독특한 문자향이 배어있다. 성서의 시편과 <시편사색>의 글이 어떻게 다른지 시편 1편만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성서 공역 시편 1편은 다음과 같다.
1.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그런데 오경웅이 오언의 시처럼 옮겨놓은 한문과 이를 한글로 옮긴 송목사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
1. 군자의 즐거움 오래 가누나 선을 행하니 온갖 복이 모이고
장락유군자 위선백상집(長樂惟君子 爲善百祥集)
무도한 이들과 어울리지 않으며 소인배와 함께함을 부끄러이 여기네
불해무도행 치여군소립(不偕無道行 恥與群小立)
2. 가볍기 그지없는 오만한 자 멀리하고 저들과 같이 앉음 탐탁치 여기잖네
피피경만도 불설여동석(避彼輕慢徒 不屑與同席)
거룩한 말씀 속에 한가로이 거닐며 온종일 말씀 안에 젖어들기 즐기네
우유성도중 함영철조석(優遊聖道中 涵泳徹朝夕)
3. 비유하노라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아 제때에 아름다운 결실을 맺고
비여계반수 급시결가실(譬如溪畔樹 及時結嘉實)
추위가 몰아쳐도 잎사귀 마르잖고 울창히 자라나기 한이 없어라
세한엽불고 조창영무극(歲寒葉不枯 條鬯永無極)
4.안타깝구나 미련한 자들이여 땅에서 하늘이 한없이 먼 것같이
애재불소도 여사천연별(哀哉不肖徒! 與斯天淵別)
이리저리 흩날려 아득히 멀어지니 바람에 나는 겨와 다르지 않네
유유축풍전 표표여강설(悠悠逐風轉 飄飄如糠屑)
5. 지혜로운 이들이 힘쓰는 바는 하나님 싫어하시는 것 끊어버리기라
천심소불용 군현소엽절(天心所不容 群賢所棄絶)
6. 우리 주님 바른 이를 인정해주시고 무도한 이들 끝내 사라지게 하시리라 아주식선인 무도종윤멸(我主識善人 無道終淪滅)
지난 14일 오후7시엔 서울 용산구 청파동 청파감리교회에서 <시편사색> 북토크가 펼쳐졌다. 이 책을 발간한 꽃자리 출판사 한종호 주간이 마련한 이날 북토크엔 번역자인 송대선 목사와 청파감리교회 담임 김기석 목사외에도 한국 교회 안팎에 주요 인물들이 모여 시편에 걸맞은 화음과 운율의 ’토크’를 선보였다.
경희대 교수인 김민웅 목사의 사회로 진행된 이 북토크엔 전 대한성서공회 총무인 민영진 목사, <예수는 없다>의 저자 오강남 라자이나대학 종교학과 명예교수, <군자를 버린 논어>,<오늘을 읽는 맹자>의 저자인 임자헌 한국고전번역원 전문위원, <장기려, 그 사람>의 저자 지강유철 전 양화진문화원선임연구원, 출판평론가인 장동석 <뉴필로서퍼> 편집장이 나와 <시편 사색>의 출간 의미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먼저 번역자인 송대선 목사는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노래를 부르고싶었다”면서 “중국인들은 막혀 있는 것이 툭 터져 한 경계를 넘어설 때 ‘즐거울 낙(樂)’자를 쓰는데, 오경웅의 시편 글을 읽으면서 그런 즐거움이 느껴졌다>며 지난한 번역작업을 해낸 이유를 밝혔다.
히브리어 전공이자 시인이기도 한 민영진 목사는 “송 목사가 곱고 예쁜말들을 골라서 쓴 것을 보며 시문단에 등단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번역이 아름답다”고 칭찬했다. 성서 공역과 출간을 주관하는 성서공의회 총무를 지냈던 그는 “성서 공역은 교회 예배에서 쓰인다는 전제로 하기에 전통적인 번역에서 벗어날래야 벗어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데 이 시편사색은 전통적인 틀에 얽매이지않은 창조적인 번역으로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다”고 평했다. 민 목사는 이 자리에서 시편 찬송가를 직접 부르기도 해 환호를 받았다.
오강남 교수는 “오경웅의 저서들은 서양에서 불교를 공부하는 이들에게도 필독서이며, 가톨릭의 대표적인 영성가인 토마스 머튼이 서평을 쓰기도 했다”면서 “성서를 문자적으로 읽으면 성서의 힘이 싹 빠져나가버린다”고 이런 한계를 넘어선 것을 평가했다.
지강유철 전연구원도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최고로 평가받는 것은 아름다운 소리만 내지않고 가장 아름다운 소리부터 악마적인 소리까지 폭넓게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면서 이 책이 바로 그렇다”면서 “제 딸이 아이를 낳으면 그 손주에게 읽어주고 싶은 글”이라고 말했다.
성서와 한문의 만남에 누구보다도 반가움을 표한 이는 임자헌 한국고전번역원 전문위원이었다. 그는 “기독교 전통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한문을 전공하면서 교회와 한문판 어느쪽에서도 환경 받지 못했다”면서 성서 시편을 한문으로 번역해 다시 한글화한 책을 대한 남다른 감격과 소회를 표했다. 그는 “시편의 시는 당·송(나라)의 시와 달리 민요 같은 것이서 사랑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이 다 담겨 있으므로 굳이 한문에 구애받지않고 읽어보라”고 권했다.
장동석 편집장은 “기독교 출간 서적의 80% 이상이 자기계발서인 기독교 출판 현실에서 이런 책이 출간된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라면서 “매일 매일 150편의 1편씩 읽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기석 목사는 “어느 시인이 성경을 읽을 때 내 속에 있는 감정들도 함께 들여다보면서 마치 구토를 한 후에 그 안에 무엇이 있나며 구토물을 하나하나 뒤져보는 심정으로 자기 내면을 살피니 다소 내 삶이 정돈되는 것을 느꼈다고 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면서 “이 시편의 글들이 내 속의 절망과 좌절스러움 직면케하고 정화하도록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