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최대 윤리는 십자가의 죽음에서 부활로 이어지는 길이다. 흑연같은 수학이 다이아드와 같은 수학으로 변형하고, 그것을 통해 또 다른 종류의 빛이 비쳐들 수 있을까?(발도르프 학교의 수학, 2016, 358)."
모든 사람들은 부활을 꿈꾼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부활은 죽음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뜻으로 여러가지 의미를 찾을 수가 있다. 부활이란 무엇인가 죽고, 그것이 죽음으로써 다시 태어난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육신이 죽고 정신이 다시 태어났지만, 인간들은 육신을 그대로 간직하고 다시 태어나고자 한다. 하지만 정신이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이므로, 육신의 입장에서 보면 육신이 죽는 것이 맞다. 이것이 그리스도교 최대의 윤리이고, 최고의 가치인 것은 이렇게 예수님처럼 다시 태어나라는 요청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을 그리스도교만이 지향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모든 경우, 모든 존재가 이렇게 다시 태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업, 카르마를 갖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업이란 자신의 영혼 활동, 에컨대 사고, 느낌, 행동이 습관이 되어서 저절로 작동되는 자신의 정신의 '구조적인 형태'이다. 어떤 대상에 대해서 내가 영혼 활동을 한다는 것은, 사고, 감정, 의지활동을 한다는 의미이다. 이때 자신의 정신의 구조적인 형태에 따라서 영혼 활동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를 법륜스님은 색안경을 끼고 사물을 보는 것과 같다고 설명하셨다. 즉 자신의 업에 따른 색깔의 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업에서 놓여나기가 어렵다. 첫째, 정신이 보이지 않으므로 내가 색안경을 끼고 있는지를 모른다. 둘째, 색안경을 낀 채로 영혼 활동이 이루어지므로 영혼활동을 할 때마다 살펴서 자신이 끼고 있는 색안경을 찾아야 한다. 셋째, 찾았다면 지속적으로 그 안경을 벗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부활'이다. 모든 존재가 부활을 해야 하는 의미인 것이다.
짐작하기에 '고염나무가 감나무가 된다'는 의미라고 생각을 한다. 감나무 씨앗을 심으면 고염나무가 된다. 고염나무는 상품성이 없으므로 어린 고염나무 가지에 품종이 좋은 감나무 순이 있는 감나무 가지를 접붙여서 고염나무를 감나무로 만든다. 이 말은 상품성이 없는 고염나무가 감나무로 다시 태어나는, 인간으로 말하면 인간의 정신이 새롭게 태어나야 이렇게 된다. 이것이 흑연이 다이아몬드로 바뀌는 '변형'이다. 문제는 역시 정신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렵다는 것이다. 예컨대 아주 못되게 구는 아이들과 청소년도 대부분 환경에 의해 손상된 아이들이다(자유를 향한 교육, 2008, 131)." 정신이 망가지면 이렇게 되고 마는,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부활을 할까? 인간의 부활이 가장 잘 이루어질 수도 있고, 부활의 반대편이라고 할 수가 있는 인간의 정신이 망가지기도 하는 시기가 있다. 바로 말하면 인간의 발달단계이다. 이 시기를 인간의 발달단계라고 하지만, 사실은 인간 정신의 발달 단계라고 해야 한다. 크게 보아서 정신의 발달도 인간의 발달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정신이 보이지 않으므로 더 강조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나마 정신의 존재를 파악할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인류가 정신을 배제하므로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핵심은 인간의 발달단계에서 부활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정신이 망가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발달단계에 정신의 발달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할려면 정신의 속성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정신의 속성은 첫째, 정신은 우회로로만 전달된다. 현실의 깨어있는 의식상태에서 전달되는 것이 아니고, 꿈꾸는 의식으로 우회해서 잠자는 의식으로 전달된다. 그것은 인간 의지가 잠자는 의식에만 내재해서 그렇다. 그러므로 의지를 불러 일으킬려고 한다면, 깨어있는 의식에서 꿈꾸는 의식으로, 그리고 잠자는 의식으로 전달되어야 의지가 발현된다. 나아가 이것이 인간 발달단게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상황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성인이라면 스스로 자아를 통해서 의지를 불러 일으킬 수가 있다.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면 의지가 불러 일으켜진다. 하지만 성인이 되기 전 아이들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자아가 21세 성인이 되어야 탄생하기 때문이다. 더불어서 이 시기 아이들의 의지를 불러 일으켜야 하는 이유는 성인이 되어서 의지를 스스로 발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현재 청소년들이 무기력하다면, 의지를 발현시키는 시기에 의지를 불러일으키지 못한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책임을 묻기보다는 오히려 의지를 불러일으키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둘째, 인간의 발달단계에 따라서 정신이 발달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인간의 발달시기에 따라서 발달하는 정신이 각각 다르다. 0-세까지는 육체가 발달한다. 이 시기는 에테르체가 몸을 만들므로 몸이 잘 발달하도록 돌봐야 한다. 이 시기 정신은 주위 환경, 양육자도 주위 환경으로, 주위환경을 그대로 모방하므로 양육자가, 아이가 모방할 수 있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7-14세 시기는 에테르체가 탄생한다. 0-7세 사이 몸을 만들던 에테르체가 몸에서 놓여나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에테르체의 속성에 맞추어야 에테르체가 발달한다. 이 시기 이갈이가 시작된다는 말은 몸을 만들던 에테르체의 힘이 학습을 하는 힘으로 전이된다는 말이다. 학습을 좋아하도록 학습에 올바르게 전이가 되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글자를 익힐 때는 반드시 그림으로 시작하고, 에테르체는 말을 하지 않고 상으로 표현하므로 학습역시 상으로 제시해야 한다. 이것이 '생생하게' 표현하라고 하는 말이다.
에테르체는 우주에 연결되어 있다. 다만 현 인류가 그것을 인정하지도 알지도 못할 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주에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우주에 연결되었다는 것은 에테르체가 우주의 천체음악에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시기 반드시 지구 음악을 해야 한다. 지구음악이 천체음악의 모사이므로, 아이의 에테르체가 발달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인간 에테르체가 우주에 연결되어있다는 말은 인간 에테르체가 '우주 지혜'를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 우주에 연결된 우주 에테르를 죽을 때까지 지닌다고 한다(슈타이너의 주장).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인간의 에테르체가 잠을 잔다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자신의 에테르체를 깨울수만 있다면, 자신의 에테르체를 우주 에테르에 연결할 수만 있다면, 우주 지헤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원래 우주 에테르에 연결된 자신의 에테르체를 파악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할 경우 우주 지헤를 얻는 것이고, 이 말을 다르게 하면 깨달음이다. 인간의 발달단계 중에서도 이 시기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할 수가 있다. 여담으로 태어날 때 우주 에테르를 받아들이는 상황에 문제가 있으면, 우리가 통상 말하는 툭수아동이 된다.
그렇다면 자신의 에테르체를 어떻게 깨울까가 질문이 된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아스트랄체로 에테르체를 깨운다. 아스트랄체의 속성이 에테르체를 깨우는 것이다. 그런데 7-14세 사이 아이들은 아스트랄체가 탄생을 안해서 그런 활동을 할 수가 없다. 여기에서 교사가 등장한다. 요컨대 교사의 아스트랄체가 아이들의 에테르체를 깨우는 것이다. 어떻게 깨울까? 그것은 교사 자신의 아스트랄체가 깨우는 것처럼 깨우는 것이다. 아이들도 역시 자신의 에테르체를 깨우는 교사를 자신으로 받아들여야 아이들의 에테르체가 깨워진다. 이를 슈타이너는 '교사의 권위'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교사를 자신처럼 받아들여야 하고, 교사 역시 아이들을 자신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정신이므로 더욱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에테르체가 깨워질 경우에 나오는 결과를 생각하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가치가 있다. 반대로 생각해서 에테르체가 망가질 경우를 생각해 보면 작금의 모든 어려움이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또한 아이들은 교사를 통해서 자신의 시각을 형성한다는 의미이다. 에테르체가 우주 지혜이므로 그렇다. 비록 자신이 태어날 때 그 에테르를 평생 지니지만, 그것 역시 우주 지혜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아이가 바라보는 현실이 아이 자신의 에테르체가 제시하는 상이다.
14세 사춘기가 되면은 아스트랄체가 탄생한다. 아스트랄체는 감정체로 감정이 탄생하면서 여러가지 감정의 어려움을 겪는다. 이 시기에 수업을 지루하게 하면 아이들은 지겨워서 자신의 몸에 집착하게 된다고 한다. 이것이 성애이다. 이런 어수선한 감정을 꿈과 이상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성인(훌륭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이다. 여기에서 변형, 부활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결과 인류의 발달에 기여하고자 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렇게 14-21세 까지 아스트랄체의 발달이 이루어져야 한다.
21세가 되면은 자아가 탄생해서 비로소 지구에서의 삶이 시작된다. 그전에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어렵다. 따라서 올바르게 자아가 탄생하도록 주위에서 돌봐야 한다. 육체가 성인이라고 해서 다 성인이 아니다. 이렇게 정신이 올바르게 발달해야 온전한 성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