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570) 진실되게 썼는데도 솔직성이 부족하대요 - ② 솔직성이 갖는 단점을 확보하라/ 시인 하린
진실되게 썼는데도 솔직성이 부족하대요
네이버블로그/ [하린의 시클] 좋은 시의 조건 3 - 솔직성이 갖는 단점을 극복하라
② 솔직성이 갖는 단점을 확보하라
아 어쩐다. 다른 게 나왔으니, 주문한 음식보다 비싼 개 나왔으니, 아 어쩐다. 짜장면 시켰는데 삼선짜장면이 나왔으니, 이봐요, 그냥 짜장면 시켰는데요. 아뇨. 손님이 삼선짜장면이라고 말했잖아요. 아 어쩐다. 주인을 불러 바꿔달라고 할까. 아 어쩐다. 그러면 이 종업원이 꾸지람 듣겠지. 어쩌면 급료에서 삼선짜장면 값만큼 깎이겠지. 급기야 쫓겨날지도 몰라.
…(중략)…
아아 미안하다 말해서 용서받기는커녕 몽땅 뒤집어쓴 적 있는 나로서는, 아아, 싸우기 귀찮아서 잘못했다고 말하고는 제기되고 추방된 나로서는, 아아 어쩐다. 전복도 다진 야채도 싫은데
―김이듬, 「사과 없어요」 부분, 『히스테리아』, 문학과지성사, 2014.
솔직성을 드러낸 시는 솔직성이 갖는 직접적인 특성 때문에
“너무 직방이 아니냐”라는 핀잔과 함께 깊이가 없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니 솔직성이 지향하는 지점에서 확장되는 정서나 의미가 도출되도록 전환을 할 필요가 있다.
경험적 맥락을 솔직하게 그려 넣는 수준을 넘어,
그 경험 맥락이 갖는 정서적 파장을 극대화시킬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승하의 「아버지의 성기를 노래하고 싶다」에서는
“내 목숨이 여기서 출발하였으니/ 이제는 아버지의 성기를 노래하고 싶다”라고 말한 부분부터
확장되는 의미가 도출된다.
김이듬 시인의 「사과 없어요」의 경우엔 어떤 부분에서 확장되는 ‘무언가’가 나타나는지 살펴보자.
「사과 없어요」에서는 주문한 메뉴가 잘못 나온 상황이 솔직 담백하게 그려진다.
종업원의 실수인데 종업원이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시치미를 뗀다.
그냥 먹자니 억울하고 사장을 불러 종업원의 실수를 지적하자니 종업원이 불이익을 당할까봐 화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런 상황에 처한 화자의 심리를 시인은 직방의 어투로 솔직하게 담아낸다.
그러다가 이것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중첩되었던 ‘무언가’의 연장선상이었음을 감지한다.
“미안하다 말해서 용서받기는커녕 몽땅 뒤집어쓴 적 있는”.
“싸우기 귀찮아서 잘못했다고 말하고는 제거되고 추방된” 경험이 떠오른 것이다.
이 부분이 바로 확장을 가져온 지점이다.
확장은 보통 시적진술로 이루어지는데,
그 진술이 뻔한 진술이면 확장은 의미가 없게 된다.
시적 정황에서 직관한 것을 시적으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거나 정서적 파장을 가져오는 진술이 바로 시적진순이다.
화자가 시적 진술을 했을 때 ‘부분적 경험’이 ‘의미가 축적된 경험’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되도록
김이듬은 노련하게 언술했다.
김이듬은 「사과 없어요」를 통해 난센스에 불과할 일상적 현상을 솔직담백한 어투로 그려낸 다음,
현상 너머에 현상 안쪽에 담긴 의미나 속성을 재치 있게 확대시킨 작품을 썼다.
김이듬의 작품처럼 우리는 솔직성이 갖는 시에서 자연스럽게 확장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작위성이 느껴지지 않는 직관에 의한 시적 진술을 적절한 지점에 슬쩍 던질 줄 아는 연습을 해보자.
< ‘슬럼프에 빠진 당신에게 찾아온 21가지 질문, 시클(하린, 고요아침, 2016.)’에서 옮겨 적음. (2024. 7.31.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570) 진실되게 썼는데도 솔직성이 부족하대요 - ② 솔직성이 갖는 단점을 확보하라/ 시인 하린|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