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572) 진실되게 썼는데도 솔직성이 부족하대요 - ④ ‘나’를 드러내는 것을 절대 두려워하지 마라/ 시인 하린
진실되게 썼는데도 솔직성이 부족하대요
네이버블로그/ 나를 드러내는 것
④ ‘나’를 드러내는 것을 절대 두려워하지 마라
당신이 성감대에 대해 물었을 때 그때 나는 너무 어렸지요
네 귀의 각도가 정갈한 흰 손수건을 내 한쪽 무릎에 덮고 덥석 입술을 가져 왔을 때 나는 당신이 내 무릎에게 할 말이 있는 줄 알았지요
그때부터 나는 어리지 않아 손등에도 목덜미에도 성감대의 새순이 쑥쑥 자라나 갈대밭처럼 알을 낳고 새끼를 치고 강물 소리를 키우는 무성한 여자가 되었는데
한쪽 무릎이 자라질 않아요
끊어진 필름처럼 그 후의 스토리가 전개되질 않아요
정갈한 손수건이 덮인 그대로 까까머리 덜 자란 손 하나가 내 교복 스커트 걷어 올리던 거기서,
무릎이 쫑긋 귀를 세우고 성감대를 듣던 거기 딱 멈춰 서서 막무가내 새로운 경험을 거부해요 봉쇄수도원의 수녀들처럼
―이화은, 「슬픈 성지」 전문, 『미간』, 문학수첩, 2013.
일반적으로 연애란 사랑의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순간들이다.
그런데 연애는 타자와의 관계 맺음에 있어서 가장 진지하거나 가장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고,
세상에서 가장 강렬한 달콤함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규정할 수 없는 수만 가지의 감각과 정서와 표정을 연애는 가지고 있다.
이화은 시인의 「슬픈 성지」는
그런 연애의 속성을 솔직담백하게 형상화해서 여성성을 ‘알몸’의 상태로 드러낸 수작이다.
시에서 보여주는 방식은 에둘러 돌려 말하는 짝사랑의 방식이 아니라 감정을 숨기지 않고
파토스적으로 분출한 직방의 방식이다.
이 시는 문학에서 쉽게 이야기하기 힘든 ‘성감대’라는 소재를 과감하게 도입한 후
그것을 시적인 상징과 암시로 솔직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엔 연애적 코드가 노골적이지만,
순질성의 파괴가 갖는 정서적 파장이 얼마나 깊은지를 내적 의미로 담고 있다.
‘정갈한 흰 손수건’은
‘진짜 사랑’으로만이 다가올 때 펼쳐질 수 있는 상징물이다.
그 손수건이 함부로 펼쳐진 이후 모든 여성이 본능적으로 육체적으로 발현되더라도,
최초의 ‘상처’만은 결코 사라지거나 잊혀지지 않는다는 점을 화자는 강조한다.
“그때부터 나는 어리지 않아 손등에도 목덜미에도 성감대의 새순이 쑥쑥 자라나 갈대밭처럼 알을 낳고 새끼를 치고 강물 소리를 키우는 무성한 여자가 되었는데/
한쪽 무릎이 자라질 않아요/
끊어진 필름처럼 그 후의 스토리가 전개되질 않아요”라고 말한 부분에서 그것을 짐작할 수 있다.
“봉쇄수도원의 수녀들처럼” “거기 딱 멈춰 서서 막무가내 새로운 경험을 거부”하게 만드는
‘상처’의 영원성을 시인은 솔직한 어법과 접근방법으로 과감하게 담아냈다.
< ‘슬럼프에 빠진 당신에게 찾아온 21가지 질문, 시클(하린, 고요아침, 2016.)’에서 옮겨 적음. (2024. 8. 6.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572) 진실되게 썼는데도 솔직성이 부족하대요 - ④ ‘나’를 드러내는 것을 절대 두려워하지 마라/ 시인 하린|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