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573) 진실되게 썼는데도 솔직성이 부족하대요 - ⑤ 참된 풍자는 솔직한 태도에서 나온다/ 시인 하린
진실되게 썼는데도 솔직성이 부족하대요
Daum카페/ 난해시 사랑/ 복효근
⑤ 참된 풍자는 솔직한 태도에서 나온다
난 난해시가 좋다
난해시는 쉬워서 좋다
처음만 읽어도 된다
처음은 건너뛰고 중간만 읽어도 한 구절만 읽어도 끝부분만 읽어도 된다.
똑같이 난해하니까 느낌도 같으니까
난 난해시가 좋다
난해시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 사람도 나하고 같이 느낄 테니까
인상적인 한 구절만 언급하면 된다
더구나 지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니까
그런 시를 쓰는 시인은 많이 배웠겠다 싶다
그런 시를 언급할 정도면, 더구나
좋다 말할 정도면 고급독자이겠다 싶다
난 난해시가 좋다
독자가 어떻게 이해하든 독자의 몫이라고 존중해주니까
내 느낌 내 생각 다 옳다잖아
나도 그 정도는 시를 쓰겠다 싶어 나를 턱없이 자신감에 넘치게 하는 시
나도 시인이 될 수 있겠다 하고 용기를 갖게 하는 시
개성 없어 보이잖아
남 눈치 안 보고 얼마나 자유로운지
적당히 상대를 무시해 보이는, 그래서 있어 보이는 시
단숨에 두보도 미당도 뛰어넘어 보이는 시
난 난해시가 난해시인이 좋다
죽었다 깨나도 나는 갖지 못할 보석을 걸친 여인처럼
나는 못 가진 것을, 못하는 것을 갖고 하니까
나도 난해시를 써보고 싶다
그들처럼 주목 받고 싶다
평론가들이, 매우 지적인 평론가들이 좋아하는 그들이 나는 부럽다
그런 것도 못하는 치들을 내려다보며
어깨에 당당히 힘을 모으며 살아가는 그들이 부럽다
―복효근, 「난해시 사랑」 전문, 『우리 詩』, 2011년 1월호.
풍자는 대상과 현상이 가진 불합리를 비판적 태도로 바라보는 데서 비롯된다.
그런데 그 비판이 자기중심적인 기준을 가져서는 안 된다.
자기 자신이 전지전능하고 ‘완벽한’ 상태라는 인식하에 불합리를 판단하면 아집을 낳을 수 있다.
확고부동한 자신의 잣대를 벗어 던지고 본질과 진실을 향한 솔직한 태도만 남긴 채
비판적 대상과 현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복효근 시인의 「난해시 사랑」은 본질과 진실을 향한 솔직한 태도로 쓴 풍자시이다. ‘
난해시’는 해석이 불가능해서 그 시를 쓴 시인만 혼자 공감하는 시를 말한다.
여기서 ‘다의성’과는 다른 ‘난해성’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다의성’은 ‘큰 줄기’의 의미나 정서 이미지가 잡힌 상황에서 독자의 독서환경,
삶의 환경 등에 따라 세부적인 부분이 다양하게 읽히는 것을 말하지만
‘난해성’은 아예 ‘큰 줄기’가 잡히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시인은 그런 난해시가 평론가들의 해석에 의해 주목을 받고
대단한 시처럼 평가받는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 ‘난해시 사랑」을 썼다.
시인은 “난 난해시가 좋다”라는 말을 오히려 반복적으로 사용해 풍자의 효과를 노린다.
2연만 읽어도 “난 난해시가 싫다’란 뜻으로 인식된다.
솔직성에 반어법을 가미한 탁월한 화법이다.
만약 시인이 반어적인 화법이 아닌 직접적인 어법으로 난해시를 비판하는 시를 썼더라면
‘맞는 말인데 시가 재미가 없네.’ 하는 반응을 독자가 보였을 것이다.
시인은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솔직성으로 위장한 반어법을 활용해 시적 재미를 독자에게 던져주고 있다.
솔직성에 대한 부분을 다시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솔직성은 ‘나’를 적극적으로, 나의 어두운 부분을 윤리적 잣대나 독자 눈치 보지 않고
과감하게 시적 언어로 형상화했을 때 획득된다.
그리고 그런 솔직성이 시의 적절한 지점에서 확장되려면 화자와 대상의 관계 속에서
자연스런 연관성을 띠어야 한다.
그리고 직관을 통해 그것이 확장된 의미로 도출될 줄 알아야 한다.
김지은 시인처럼 교묘하게 솔직성을 섞어서 미묘한 정서나 관계성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화은 시인처럼 민감한 소재를 솔직하게 다루면서 문학성을 획득하고 싶을 때에는,
상징적인 속성이나 상징적인 의미를 자연스럽게 슬쩍 끼워 넣어면 시적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그리고 복효근 시인처럼 비판의 대상을 풍자적으로 다룰 때에는
솔직성을 동원해서 해학적 즐거움을 주면 좋다.
독자들에게 통쾌함과 시적 재미를 동시에 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 ‘슬럼프에 빠진 당신에게 찾아온 21가지 질문, 시클(하린, 고요아침, 2016.)’에서 옮겨 적음. (2024. 8. 9.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573) 진실되게 썼는데도 솔직성이 부족하대요 - ⑤ 참된 풍자는 솔직한 태도에서 나온다/ 시인 하린|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