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불심길 - 금주일지 249(2023.5.20.)
오늘은 산애들애와 함께 조계산 트레킹이다.
선암사에 송광사로 넘어가는 길, 이름하여 천년불심길을 걷기로 길을 나섰다.
아침 7시 30분에 불교환경연대 나무숲센터 앞에서 준비된 차량에 탑승하였다. 여느 때처럼 차내에서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게 되었다. 하하문화센터에 대하여 안내하는 것으로 소개를 대신하였다.
1시간여를 달려 선암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승선교(昇仙橋, 보물 400호)와 강선루(降仙樓)를 지난다. 속(俗)의 세계를 지나 성(聖)의 세계에 들어서는 듯한 마음으로 대웅전으로 향한다. 9시에 주지 스님이 나와서 환영 인사를 하신다. 주변을 둘러보고 그 유명한 선암사의 뒷간 앞에 선다. 선암사에 가면 꼭 가야 할 곳. 뒷간. 선암사 해우소(解憂所)는 그 자체로 문화재급이다. 300년이 넘은 2층 누각 형태의 건축물인 선암사의 해우소는 강원도 영월의 보덕사 해우소와 함께 지방 문화재로 지정된 화장실인 까닭이다. 게다가 볼일을 보고 한참 멀리에 있는 승선교를 지날 즈음에야 똥이 바닥에 떨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해우소는 깊고 큼지막하다. 환기가 잘되는지 냄새도 없다. 이를 두고 소설가 김훈은 <자전거여행>에서 '인류가 똥오줌을 처리한 역사 속에서 가장 빛나는 금자탑'이라 하였다, 정호승 시인은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고 노래했던 것이다. 거기에다 해우소 안에 팻말에 쓰인 "파리야∼ 극락 가자!" 는 잔잔한 미소를 넘어 파안대소하지 않을 수 없는 압권의 미학이다.
천년(千年) 불심(佛心)길이다.
절문을 나서면 편백나무의 맑은 향이 마음과 마음을 감싸고 채운다. 걷는 이들을 그냥 향내로 물들이고 만다. 비교적 평탄하고 고즈넉한 숲길이 이어지다가 너덜 돌길이 이어진다. 게다가 경사가 심해 다소 숨이 가빠온다. 그래도 '천년불심'의 숨결을 느껴보려고 한발 한발 옮겨 딛는다. 원래는 '조계산 굴목재길'이라 했는데 최근 '천년불심길'이라 이름하게 되었단다.
아마 선암사와 송광사를 오가던 스님들이나 땔감과 약초를 구하러 다니던 마을 사람들이 이 길을 걸으며 인생을 수행하는 과정으로 여겼기에 붙여진 이름이리라.
길게 늘어선 돌계단을 지나 가파른 길을 오르다 보니 이정표가 보인다. 큰굴목재로 향하는 길과 보리밥집으로 향하는 갈림길이다.
그 갈림길에 무등산 막걸리를 준비해두고 기다리는 상인이 있었다. 누군가가 막걸리를 몇 병 구입하여 목을 축인다. 내게도 잔이 온다.
‘저는 물 마시겠습니다’로 사양한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보리밥집 쪽으로 10여 분을 내려가노라니 조계산의 명물이라는 보리밥집이 있다.
미리 점심 장소로 예정된 곳이라서 나무 아래 편상에 자리를 잡았다. 곧 따뜻한 숭늉을 한 그릇씩 마시니 속도 편하고 갈증을 해소하는 데 맞춤이다.
이윽고 주문한 보리밥이 나오고 막걸리가 곁들여진다. 이미 금주를 알고 있는 지인이 묻는다.
“아직도 금주 중이신가요?”
“예, 아직 진행 중입니다.”
“아따, 그래도 여기까지 왔응께 그냥 한 잔 하시제 그런가요?”
“아이고,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디 그냥 허믄 쓰것어요? 쪼금만 더 참을라요.”
“그라믄 할 수 없제라우. 그럼 우리들끼리 한 잔 할라요.”
“그러시지요. 제가 따라드릴게요.” 하면 주전자를 들고 술잔을 채워 준다.
술맛이 기가 막히다며 달게 마신다.
나도 입맛만 따라 다시면서 속으로 말을 삼킨다.
‘그래, 맛나것구만.’
식사가 끝나고 곧 송광사로 향하는 길을 재촉한다.
너무 고즈넉하고 편안하고 평화로운 길이다. 거기에 아름답기까지 하다. 이렇게 여럿이 말고 오북하게 아니 외롭게 혼자서 걸어보고 싶은 참 걷기에도 아까운 길이다. 우리 하하님들과도 말없이 묵언 수행하며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정감 풍부한 길이다.
조릿대가 늘어선 길을 따라 가노라니 천자암에 이른다.
천자암은 고려 말 타락한 불교를 개혁하기 위해 수선 결사를 열었던 보조국사 지눌 스님의 자취가 어려 있는 암자라고 한다. 쌍향수는 천연기념물 88호, 높이 12m, 수령 800년에 이른다고 한다. 두 그루가 쌍으로 있고, 전체가 엿가락처럼 꼬였고, 가지는 모두 땅을 향한 신기한 모습이다. 전설에 의하면 보조국사와 담당 국사가 중국에서 돌아올 때 짚고 온 향나무 지팡이를 이곳에 나란히 꽂은 것이 뿌리가 내리고 가지와 잎이 나면서 자란 것이라 한다.
천자암에서 조계산 전체를 조망해 보며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 송광사 뒤쪽에서 발을 담근다. 발이 아프게 느껴질 만큼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노라니 피로가 풀리고 정신이 개운해지는 것이 천년불심의 정기가 통하는 듯하다.
송광사에 도착하여 모처럼 들른 송광사를 둘러본 후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올라 광주에 도착하니 오후 5시가 되었다.
오늘도 조계산 천년불심길 위에서 음주의 유혹을 견디며 금주 수행으로 하루를 채우고 있다.
첫댓글 다녀와 들려준 얘기만으로도 당장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답니다.
녹음이 짙게 드리운 숲그늘 아래
걷고있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꼭 가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