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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해 할 수 있다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경우 대체로 애초에 그 직업을 선택하고자 노력해서 결실을 이룬 경우도 있을 터이고, 혹은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그것이 직업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연구와 교육을 병행하는 학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저자의 삶이 바로 좋아하는 일과 직업이 일치하는 경우라 할 것이다.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한 식물학자의 자전적인 삶의 기록이다. <랩걸>이라는 제목은 ‘실험실(laboratory)’과 ‘여성(girl)’을 결합하여 만든 단어로, ‘실험실에서 연구를 하는 여성 과학자’를 지칭하는 표현이라 하겠다.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 ‘지식소매상’을 자처한 유시민이, 이 책을 대학원에 진학하여 공부를 선택한 자신의 딸에게 권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 이후 내용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제목만으로는 내용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아 읽고 싶은 책의 우선 순위에서 뒤로 돌려놓고 있었다. 지난 겨울 구입을 하고, 한동안 이 책을 그대로 책꽂이에 꽂아두고 있었다. 그리고 뒤늦게 읽기 시작하면서, 유시민이 본격적인 학문의 길에 접어든 딸에게 권하고 싶은 것으로 왜 이 책을 거론했는지가 이해가 되었다. 이 책에는 식물학자로서의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여 학자로 성장하고, 또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저자의 삶과 학자로서의 태도가 잘 드러나 있었다. 전공 분야는 다르지만 나 역시 학자로서의 길을 가고 있기에, 더더욱 연구자로서의 저자의 생각과 삶의 방식에 대해서 깊이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해하기 쉬운 유려한 문체를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이 지닌 강점이 잘 드러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과학자인 아버지의 실험실에서 살다시피 했던 저자의 어린 시절의 삶이 현재 자신의 선택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은 자명하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였으며 뒤늦게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저자는 처음에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으로 진학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잠재력’을 좇아 과학으로 전공을 변경하고, 실험실의 삶의 선택하여 식물학을 연구하는 학자로 성장했던 것이다. 이 책의 속표지 뒷면에는 ‘내가 쓰는 모든 글을 어머니께 바치는 것이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나는 그 표현에는 저자가 어머니로부터 배웠던 문학과 글쓰기에 대한 재능으로 인해서, 과학자로서의 자전적인 삶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담겨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목차에도 식물학자로서의 저자의 개성이 잘 드러나 있다. 저자의 서문이라 할 수 있는 ‘프롤로그’에 이어, 전체 3부로 구성된 목차는 식물의 성장 과정에 빚대어 있기 때문이다. 즉 ‘1부 뿌리와 이파리’는 자신의 어린 시절로부터 식물학자로서 자리를 잡는 과정과 대학 교수로 출발하는 시점까지를 다루고 있다. 이후 ‘2부 나무와 옹이’에서는 26세에 조지아 공대의 교수로 부임하여, 실험실을 꾸리고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성과와 시련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3부 꽃과 열매’에서는 존스홉킨스 대학을 거쳐 하와이 대학에 정착하기까지의 연구자로서 확고한 위치를 마련하고, 클린트와의 결혼을 통해 한 가족을 이룬 현재의 상황까지를 그려내고 있다.
저자 스스로 고백하고 있듯이, 연구 파트너로서 ‘빌’과의 만남과 우정은 자신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여겨진다. 대학원 시절 만난 친구 ‘빌’과의 인연은 저자에게 연구자로서 저자의 경력에 있어서 절대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존재이자, 믿음직한 동료라는 사실이 거듭 강조되고 있다. 연구자에게 있어 동료 학자들은 때로는 가족과 다른 의미의, 끈끈한 관계로 맺어진 존재들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저자가 학자로서 성장하고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의 상당 부분은 연구 파트너인 ‘빌’의 몫이 무시될 수 없을 것이라고 이해된다. 저자는 ‘사랑한다’라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줄지는 알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는 안정적인 학자의 길을 걷고 있는 저자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남겼던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리뷰의 결말로 대신하고자 한다.
“나는 남의 말을 듣는 데 능숙하지 않기 때문에 과학을 잘 한다. 나는 똑똑하다는 말을 들었고, 단순하다는 말도 들었다. 그리고 너무 많은 일을 하려 한다는 말을 들었고, 내가 해낸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도 들었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고,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내가 한 일을 할 수 있었다는 말도 들었다. ...... 그런 말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내가 여성 과학자이기 때문에 누구도 도대체 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따라서 상황이 닥치면 그때그때 내가 무엇인지를 만들어나가면 되는 값진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동료들의 충고를 듣지 않고, 나도 그들에게 충고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음 두 문장을 되뇐다. ‘이 일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야만 할 때를 빼고.’”(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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