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력(萬曆) 15년 정해년(1587) 8월 20일(정축)
맑음. 아침에 사령의 비어관(備禦官) 때문에 화가 났다. 그는 반산에서 배에 싣거나 내리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물건이라 여기며 직접 군인들을 인솔하여 모두 빼앗아갔고, 심지어 몽둥이로 통사를 때리는 등 온갖 곤욕을 강요하였으니, 그 무리함이 심하였다. 대체로 이 사람은 총병 양조(楊照)의 집안 조카인 듯하였다. 혹자는 말하기를, “그 스스로 배를 준비해 두고 왕래하는 행상에게 장사를 하면서 이득을 얻기 때문에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하였다. 배를 운행할 수 없어서 그대로 머물렀다.
晴. 朝因沙嶺備禦官作怒. 自盤山騎下船, 自以爲己物, 親率軍人, 盡行奪去, 至欲杖打通事, 困辱百端, 其無理甚矣. 蓋此人乃楊摠兵照族姪也. 或云 “自備船隻, 販賣於往來行商, 受其直, 故至於此”云. 以無行船, 留.
만력(萬曆) 15년 정해년(1587) 8월 21일(무인)
맑음. 삼차하(三叉河)를 지나 십리포(十里鋪)에서 하선하고, 저녁에 우가장(牛家庄)의 객관 역사에서 묵었다.
晴. 過三叉河, 到十里鋪下船, 夕宿牛家庄館駅.
만력(萬曆) 15년 정해년(1587) 8월 22일(기묘)
맑음. 해주위(海州衛)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 감천포(甘泉鋪)에서 묵었다. 이날 밤 초저녁에 우레가 치며 비가 내리다가 잠시 후에 그쳤다.
晴. 午飯於海州衛, 夕宿甘泉鋪. 是夜初昏, 雷雨暫時而止.
《국역 배삼익 조천록》 p200 ~ 201, 김영문(세종대왕기념사업회 국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