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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의길을 걷는 새.하.늘.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유성식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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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상 평어체로 씁니다. 경어체로 바꾸어 읽으십시오)
[현대 이스라엘의 여덟 가지 죄]
글: 이광우(전주열린문교회 대표목사/총신대학교 법인 이사)
광복절에 집 앞에 버젓이 일장기를 내거는 자(놈 者), 광복절에 일장기를 들고 광화문 일대를 헤매는 자(者)들이 많은 나라여서 그런지, 최근 광화문에서 또 이스라엘 지지 집회가 열렸다는 낯뜨거운 이야기가 들린다.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전라도 여자는 늘 식모(가정부)로, 전라도 남자는 늘 깡패로 그려졌듯이, 미국 헐리우드 영화 속 미국은 늘 정의의 편(우리 편)이고 미국에 맞서는 세력들은 늘 테러집단으로 묘사된다. (대북지원 물자를 들고 평양을 방문했을 때 잠깐 보았던 조선중앙 TV의 드라마에서는 정반대로 미국이 악의 축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대한민국이 세계 제일의 기레기/언레기들의 나라여서 그런지 친이스라엘 시각의 정보만 전달되고 그 반대편 팔레스타인 시각의 뉴스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럴까, 매년 미국으로부터 3조 5천억 달러의 원조를 받는 이스라엘은 아주 쉽게 미국의 일부로 인식되고, 친미를 넘어 숭미(崇美)에 가까운 자세를 보이는 사대주의자들이 많은 우리 대한민국에서 수많은 생명이 죽어 나가는 이 참혹한 중동전쟁 앞에서조차 ‘이스라엘 지지 집회’가 아무 생각없이 열리는 것이다.
이런 짓을 하는 자들은 ‘21세기의 이스라엘’이 구약의 이스라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착각한다. 백 걸음을 양보해서 오늘의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구약의 신정국 이스라엘과 같다 치고, 그렇다면 오늘날 이스라엘 나라의 행위(삶)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바라시던 하나님나라 백성의 삶과 비교해서 어떠한가를 진지하게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그 땅에서 학살당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미국식으로 환산하면 9.11 테러 희생자의 약 160 배가 된다.)
우선,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들(팔레스타인 사람, 이스라엘 사람을 가릴 것 없이)이 숱하게 죽어 나가는 지리한 중동전의 본질은 피조물인 인간의 주제넘은 ‘땅 따먹기’임을 분명히 하는 게 좋겠다. ‘주제넘은 행위’라 하는 이유는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하나님]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레위기 25:23). 그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구약의 이스라엘(현대의 이스라엘이 아니다)은 그 땅의 소작인이었다. 소작인인 이스라엘은 아브라함 언약에 이은 신명기 언약(그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성취되었다)에 따라 그 땅에 하나님의 사랑, 정의, 평화, 생명을 심는 제사장 나라가 되어야 했다. 만약 그 언약을 어길 경우 그 땅에서 뽑혀 포로로 끌려갈 것이라 했고, 그 언약대로 나라가 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 생각해 보라. 현대 이스라엘이 그 땅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하는 짓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가치에 부합하는 것이 있는지.
이른 바 ‘약속의 땅’이라 일컫는 그 땅에는 팔레스타인 사람 530만 명, 이스라엘 유대인 580만 명이 살고 있다. 대략 반반이라 할 수 있는데, 인간다운 삶을 꾸려갈 수 있는 모든 여건은 1:9 정도밖에 안 되게 일방적으로 기울어져 있고 그 1이 9를 한없이 차별하고 학대하고 무차별 학살하며 인종을 청소하고 있다. 그것이 이번에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근본적인 원인이다. 과거 군사독재정권에서 기레기들이 시민들의 민주화 열망은 일체 보도하지 않다가 대학생들이 화염병을 들고 시위하면 화염병 투척으로 부상당한 경찰들의 사진만 대서특필하여 사람들의 거부감을 마구 유도했듯이 오늘의 기레기들도 부상당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만 집중 조명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악마화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참고로, 만약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든지, 세계 최대의 화약고인 한반도로 전쟁의 불똥이 옮겨 붙게 되면 곧바로 3차 세계대전이 될 것으로 우려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밝혀 둔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함부로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찬양 고무할 때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비극의 씨앗]
나찌의 유대인 인종청소(홀로코스트)로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이 희생되었다.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언제 또 그런 일이 생길지 전전긍긍하던 차에 급부상한 ‘시온주의’를 근거로 자기들의 나라(땅)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전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던 유대인들이 미국과 UN에 적극 로비하여 1948년 팔레스타인에 처들어와 이스라엘 국기를 꽂게 되었다. 수백 년 동안 그 땅에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로서는 아닌 밤중에 날벼락을 맞은 셈이었다. 우리가 일본제국주의에 당했던 치욕의 역사를 떠올려보면 지금 그들의 마음을 얼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뒤로 오늘까지 그 땅은 지구촌의 꺼지지 않는 전쟁터가 되었다.
게리 버지는 그의 책 제2부에서 20-21세기 이스라엘 국가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범한 반인륜적 범죄를 조목조목 짚어내고 있다. 그 내용을 대략 8가지로 요약하여 현 중동전쟁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오해하지 마라. 나는 이스라엘 편도 아니고 팔레스타인 편도 아니다. 다만 지금은 약자인 팔레스타인 편에 서서 그들의 눈으로 보는 현 상황을 짚어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조금이라도 바로잡고 사태에 대해 좀 더 균형잡힌 시각을 갖도록 돕고 싶을 뿐이다. 자, 그럼 필요할 때만 선택적으로 선민(選民) 이스라엘 흉내를 내는 현대 이스라엘의 죄는 무엇무엇일까?
(1) 배타적인 인종차별
1989년 중국의 천안문 사태 이후 이스라엘 수상 베냐민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은, 점령지 아랍 사람들을 대량으로 축출하기 위해 중국에서 시위대를 진압했던 방법을 써야 했다”는 야만적인 말을 거침없이 했다. 그는 “10년 내에 지도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워버리겠다”고도 했다. 그의 선배 벤구리온이 서방 세계에 약속했던 “동등한 시민권”을 주는 나라는 현대 이스라엘에서 단 한번도 현실이 된 적이 없었다. 미국과 남아공의 인종 차별,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악랄하고 지독한 팔레스타인인 차별이 유대인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 그것이 이번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이스라엘 내부와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그들은 철저하게 비유대인들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나라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인구의 47%이지만 그들이 정부 기관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겨우 7%뿐이고, 가자와 요단서안 지역(웨스트뱅크)에 있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선거에서 단 한 번도 선거권을 받은 적이 없다.
(2) 사회제도적 차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허가 받지 않고서는 여행을 할 수도, 집을 지을 수도, 직업을 얻을 수도, 뒷마당에 우물을 팔 수도 없다.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자동차 등록제도를 통해 감시체계를 강화했다. 노란색 자동차 번호판은 이스라엘 사람, 흰색은 가자 사람, 파란색은 웨스트뱅크 사람, 녹색은 택시나 서비스 차량이다. 노란색 번호판을 단 차는 아무 데나 검문없이 다 다닐 수 있지만 그 외의 차들은 수시로 검문 검색, 체포 구금을 당한다. 그리고 운전면허증과 신분증은 운전자가 유대인인지 혹은 아랍인인지를 알려 준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일과 후 통행금지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1950년에 제정된 유대인 ‘귀환법’은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유대인이 이스라엘로 이민 올 권리가 있고 이민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시민이 되며 모든 사회적 특권을 누릴 수 있게 했다. 그러나 그곳에 수백 년 동안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인들은 체포 구금 후 추방되면 재입국이 거부된다. 한마디로 이스라엘의 시온주의는 사악한 인종차별주의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오직 유대인만을 위한 민주국가다.
(3) 땅 훔치고 빼앗기
1948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에 국기를 꽂는 과정에서 그 땅에 대한 공정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그 땅을 자기네 국가 재산으로 규정했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소유한 땅의 등기 등록을 일체 허용치 않았다. 가자와 웨스트뱅크에서는 그런 상황이 더 극심했다. 웨스트뱅크 땅의 70%가 이스라엘에 불법적으로 몰수 당했다.
(4) 물 훔치기
이스라엘의 강제 점령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대량 추방으로 수많은 난민이 생겨났다. 이스라엘은 갈릴리 호수에서 전국적인 송수관을 통해 물을 끌어 와 주민들에게 공급한다. 사막지대인 남부 지역은 물이 그야말로 생명줄이다. 가자와 웨스트뱅크는 남부지역이다. 그래서 이 물을 통제하는 사람이 그 지역을 통제할 수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수자원공사가 팔레스타인 마을들로 공급되는 물을 심하게 삭감해 버렸다.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물의 양은 하루 348리터인데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하루에 70리터만 공급한다. 전체적으로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보다 9배의 물을 더 받고 있다. 유대인들이 대수층(aquifer)에 깊은 우물을 파도록 허락되는 반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써오던 더 오래된 우물들은 더 깊게 팔 수가 없다. 1998년, 50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그 지역 인구의 1/3)이 두 달 동안 꼬박 물 없이 지냈다는 보도도 있었다.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물이 없어 목마른데 옆집 유대인들은 정원에 물을 주고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모습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내내 지켜보며 살고 있다.
(5) 마을 파괴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집을 폭파시키거나 불도저로 밀거나 탱크로 짓뭉개버린다. 1948년 이래 약 400 개가 넘는 아랍 마을들이 사라졌다. 1948년 전쟁 기간 동안 약 70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집을 잃었다. 수많은 팔레스타인 난민이 생겨났다. 그 수가 누적 수백만 명이 넘는다.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난민이나 노숙자가 되어 길거리에서 탈수증과 질병으로 죽어 나간 사람이 셀 수 없이 많다. 유대인 인간이 팔레스타인 인간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검문소에서 유독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만 까다롭게 검문이 이루어지고 아울러 불법 체포 구금이 일어나고 있다.(이것은 다음에 더 이야기하겠다.)
(6) 주택 파괴
가자와 웨스트뱅크에서 ‘인종청소’의 주요 수단이 주택 파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도시 외곽 혹은 아예 나라 밖으로 쫓아내고 싶어한다. 1987년 이래 이스라엘은 2,500 채 이상의 팔레스타인 가옥을 파괴했다. 그 결과 16,700 명이 노숙자가 되었는데 그 중 7,300 명이 어린이였다. 철저히 감춰진 채 은밀히 자행되던 유대인들의 이 사악한 폭력이 최근 인터넷이 발달함으로써 비로소 세상에 조금씩 알려지게 되었다. 물론 유대인 내부에도 ‘비첼렘’같은 양심적인 인권단체도 있기는 하지만 그 목소리는 너무 미미하다. 2001년부터 2012년까지(이것도 10년 전 통계다) 이스라엘에서 8,130 채의 팔레스타인 가옥이 파괴되었다. 내 집이나 사무실이 검찰에게 압수수색 당했다면 기분이 어떨 것 같은가? 그냥 압수수색 한번 당한 것이 아니라 집 자체가 아예 파괴되고 주민들이 난민으로 내쫓겼다는 이야기다. 쫓겨나 사막 주변에 난민 텐트를 쳐도 이스라엘의 불도저나 탱크가 와서 다시 밀어 버린다.
(7) 인권 유린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통행금지와 검문, 체포 구금과 구타가 일상화되어 있다. 어린아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는 통행금지가 없다.
[폐쇄]
통행금지 구역이 지정되어 있다. 그 때문에 출퇴근에 제약을 받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실업률이 웨스트뱅크에서는 50%, 가자지구(높이 9m의 벽으로 둘러 싸인 거대한 감옥이다)에서는 70%다. 유대인 정착민들에게는 통행금지가 없다.
[이민/재통합]
‘귀환법’에 따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은 언제든 원하면 이스라엘로 이민할 수 있다. 이민 즉시 시민권이 주어진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점령지에서 팔레스타인들의 가족 재통합을 허용하지 않는다. 1만 명 이상이 이산가족이 되어 서로 만날 수 없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결혼식을 지켜보거나 이산가족이 재회하는 웃픈 풍경도 자주 벌어진다.
[체포/감금]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언제든 체포되고 재판도 없이 구금된다. 어린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1967년 이스라엘군이 웨스트뱅크를 점령한 결과 730,000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구금되고 기소되었다. 매년 500-700 명의 어린이들도 이 숫자에 포함되어 있다. 완전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조금만 의심이 가면 어린이들을 잡아 눈을 가리고 케이블타이로 양손을 묶은 후 바닥에 꿇어 앉힌 후 트럭으로 실어간다. 부모에게도 일체 알리지 않고 체포하여 언어폭력과 신체폭행을 가하며 상당 기간 가두어 둔다.
[감옥과 고문]
아랍사람들은 신분증만 없어도 모두 감옥에 수감된다. 재판없이 6개월간 구금되는 것이 다반사다. 단순한 구금이 아니라 그 기간 동안 무자비한 고문을 당한다. 흔한 고문으로는, 때리기, 거꾸로 매달기, 잠 안 재우기, 굶기기, 화장실 사용 금지, 질식, 벽장고문(1평방미터 공간에 집어넣고 손은 수갑에 채우고 머리는 봉투로 씌운다. 빛과 공기는 문 밑으로만 들어온다. 이런 상태로 며칠을 지내는데 그 안에서 죄수는 내내 비명 소리와 협박하는 소리를 듣는다), 전기 충격, 불 고문, 심하게 흔들기, 고통스러운 자세 취하게 하기, 머리를 더러운 부대로 씌우기, 샤바(sahbah: 죄수 머리에 부대를 씌우고 높이가 아주 낮은 의자에 앉히되 손은 의자 등 뒤로 묶고 다리는 족쇄를 채우고 무차별 고문) 등이 있다.
[국외 추방]
이스라엘은 세계 민주주의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형벌로 거주민들을 국외로 추방하는 나라다. (모세 율법을 흉내내는 것이다.) 해마다 1천 명 안팎의 팔레스타인 사람을 국외로 추방한다. 팔레스타인 사람이 일단 추방되면 재입국은 없다.
[길거리의 폭력]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주로 무차별 폭력을 당한다. 군인들의 고무탄과 독성이 강한 살상용 최루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임산부들이 유산했다. 8-15살의 어린이들 15만 명 중에 약 63,000 명이 군인에게 맞은 경험이 있고 7천 명이 구타로 인한 골절상을 입은 경험이 있으며 35,000 명이 이스라엘 군대의 무기에 맞은 경험이 있고, 130,000 명 이상이 미국에서 사용되는 최루탄의 5배가 넘는 독성 최루탄의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았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이쯤되면 최근 하마스의 도전이 좀 이해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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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타협
현대 이스라엘이 아브라함 언약을 근거로 그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무자비한 ‘인종청소’를 자행하고 있지만, 유대인들 가운데 유대교 신자는 아무리 높여 잡아도 30%도 채 되지 않는다. 오로지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한 정치적인 이유로만 극히 선택적으로 ‘시온주의’에 기대고 있는 사악한 집단이 현대 이스라엘이다.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전라도 사람들의 모습이 다가 아니다. 헐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미국인들의 모습이 다가 아니다. 미국의 무차별 원조를 받는 이스라엘의 겉모습이 다가 아니다. 그런데도 왜 대한민국의 기독교인들은 그 반대의 시각에서 상황을 들여다 볼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편만 드는 것인가? 왜 기를 쓰고 이스라엘의 악행에 공범이 되고자 안달하는가? 그것도 ‘신앙’의 이름으로…
[결론]
팔레스타인은 누구의 땅인가? 이에 대한 성경의 답은, 그 땅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구약의 이스라엘도 그 땅의 주인은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잠시 그 땅의 ‘소작인’으로 부름 받았을 뿐이고, 그나마도 그 ‘언약’에 불충실함으로 마침내 그 땅을 빼앗기고 포로로 잡혀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마디로 팔레스타인도 이스라엘도 그 땅의 주인은 아니다. 그러면 누가 그 땅에서 ‘소작인’의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가? 그것은 언약을 주신 하나님의 원래 바람대로 ‘사랑’과 ‘섬김’과 ‘정의’와 ‘섬김’과 ‘환대’와 ‘생명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팔레스타인 사람 중에도 기독교인이 있고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도 기독교인들이 있다)이다. ‘인종’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과 ‘정의’, ‘사랑’과 ‘섬김’이 그 땅에 머물 자격을 결정한다. 도대체 신학을 어떻게 공부하면 목사들이 나서서 거침없이 현대 이스라엘의 편을 드는 것인가 묻고 싶다. 고아와 과부와 이방 나그네를 환대하라는 것이 신‧구약을 아우르는 하나님의 당부 아니던가. 그 하나님의 당부의 한 한 가지라도 현대 이스라엘이 이행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현대 이스라엘은 지금과 같은 자세를 서둘러 고치지 않는 한 후손 대대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것이다. 두고 보면 안다.
독한 시어머니 밑에서 시집살이 했던 며느리가 또다시 악한 시어머니가 된다는 말이 있다. 나찌의 인종청소(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인종청소’하고 있는 이 참혹한 아이러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가. 마지막 결론으로 아래 인용하는 성경구절들을 제발 좀 잘 살펴 보시라.
(레위기 25:23)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하나님]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레위기 26:6) 내[하나님]가 그 땅에 [전쟁이 아닌]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울 때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 칼이 너희의 땅에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레위기 19:33~34) 거류민[팔레스타인 사람]이 너희의 땅에 거류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느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함께 기도합시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
러시아에, 우크라이나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 그리고 숱한 전쟁으로 망가지는 이 지구촌에 주님의 사랑과 평화를 속히 허락하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곡히 기도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2023-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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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의길을 걷는 새.하.늘.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유성식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