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581) 육화된 마음 - ② 역사와 육체로 얼룩진 ‘나’라는 주체!/ 철학박사 강신주
육화된 마음
브런치/ EP27. 나는 주체적인 척 비겁했다
② 역사와 육체로 얼룩진 ‘나’라는 주체!
메를로 풍티에게 의식에는 ‘반성적인’ 것도 있고 이와 달리 ‘비반성적인’ 것도 있습니다.
비반성적인 의식의 예로는 버스를 기다렸다 타려고 하는 상황을 들 수 있지요.
계속 타던 버스를 기다릴 때 우리는 반성적으로 이 상황을 의식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예 의식 자체가 없는 것도 아니지요.
비반성적인 의식, 혹은 육화된 의식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반성적 의식은 언제 출현하는 걸까요?
그것은 일이 년 동안 탔던 버스가 정류장에 서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릴 때입니다.
어쨌든 친숙하게 탔던 버스가 정류장에 들어올 때 우리는 그것을 ‘자각’합니다.
그러나 이 자각은 결코 반성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애매한 것도 아닙니다.
육화된 의식은 나를 둘러싼 세계와 너무 잘 들어맞고 있어서 반성적으로 의식되지 않는 것일 뿐,
오히려 반성적 의식보다 더 자명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이제 직접 메를로 퐁티의 이야기 하나 들어볼까요?
지각된 광경은 순수 존재를 갖지 않는다.
내가 보는 그대로 정확하게 지각되는 광경은 개인적인 나의 역사의 한 계기이다.
또한 감각은 재구성이기 때문에 나에게 사전에 구상된 것들의 침전을 전제하고,
감각하는 주체로서의 나는 자연적인 능력들로 가득 차 있다.
이는 정말 놀랄 일이다.
따라서 나는 헤겔의 말처럼 ‘존재 속의 구멍’이 아니라, 만들어졌지만 파괴될 수도 있는 함몰이자 주름이다.
―《지각의 현상학(Phénoménologie de la perception)》
정류장으로 들어오는 버스를 지각하는 것은 순수 존재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요.
메를로 퐁티의 말대로 그것에는 ‘육체가 가진 자연적 능력’이 전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나의 역사’로부터 많은 영향력을 받기 때문입니다.
버스를 지각할 때, 우리는 눈이란 시각 기관의 중요성을 쉽게 간과하곤 합니다.
그렇지만 사실 눈의 시각 능력이 현저하게 약화된다면 버스를 지각하는 양상도 매우 달라질 겁니다.
그만큼 지각은 우리가 가진 육체적 능력에 의해 강한 영향을 받고 있는 셈이지요.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순수하다고 생각된 자각에도 나의 개인적인 역사가 투영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특정한 버스가 오는 것을 지각할 때 이 지각 속에는 그 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곳으로 이사를 왔다는 사실,
맞벌이를 하고 있는 배우자의 상황, 직장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끼친 대학과 학과의 선택 등
특정한 개인의 거의 모든 역사가 침전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표면적으로 볼 때 투명한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지각에도 불투명한 것들,
즉 육체와 역사가 개입되어 있습니다.
메를로 퐁티가 인간을 ‘존재의 구멍’이 아니라 ‘함몰이나 주름’과 같다고 이야기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인간을 ‘존재의 구멍’이라고 말한 것은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입니다.
《미학 강의(Lectures on Aesthetics)》에서 그는 청년들이 ‘현존하는 질서에 구멍을 내고 세계를 변혁하고
개혁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던 적이 있지요.
이 경우 헤겔에게 ‘존재의 구멍’이란 바로 인간의 절대적인 자유 혹은 순수한 자유를 의미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매를로 퐁티는 인간이 외적인 자극으로 움푹하게 함몰된 사과나 오래 입어서
꾸겨진 옷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가졌기에 그는 인간을 ‘함몰이나 주름’이라고 비유했던 것이지요.
<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강신주, 도서출판 동녘, 2019.)’에서 옮겨 적음. (2024.10.30.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581) 육화된 마음 - ② 역사와 육체로 얼룩진 ‘나’라는 주체!/ 철학박사 강신주|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