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을 읽고 나서..... (권진수)
수행평가를 계기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로는 마을 사람들에게 바보로 알려진 황만근, 신대리에 온지 2년 밖에 안된 민씨, 황씨 집성촌의 마을 이장님과 그 마을의 주민들이 있다.
이 책의 줄거리로는 어느 날, 황만근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로 인해 이장님, 민씨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그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 민씨는 문득 이장님이 얼마 전 그를 따로 불러 무슨 말을 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나서는 이장에게 무슨 얘기를 했냐며 따진다. 그렇게 갈등이 벌어지고 점점 더 깊어지려고 하자 그의 어머니와 아들이 각자 자신 때문에 그가 사라졌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제야 마을 사람들은 어느 정도 황만근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 뒤 과거로 시점이 전환되는데 당시 그의 집은 가난했다. 왜냐하면 6·25전쟁 직후였기 때문이다. 그가 자라고 그는 마루에서 거의 생활을 했다. 또한 집안일은 모두 황만근의 몫이었다. 그러나 불평않고 모든 집안일을 했다. 어느 덧 시간이 흘러 그가 군대에 가야 할 때가 되어 신체검사를 받으러 읍에 가야 해서 이른 아침, 황만근은 주먹밥을 여러 개 만들어서 읍으로 향했다. 신체 검사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데 갑자기 거대한 흰토끼가 나타나서는 '너는 못간다, 너는 죽는다.'를 반복했다. 황만근은 무서웠지만 토끼와 필사적으로 싸워서 시간이 아침이 되자, 토끼가 항복을 하고는 황만근에게 세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다. 그의 소원은 먼저, 첫째는 어머니의 장수, 둘째는 마누라를 얻는 것, 마지막으로 아들을 얻는 것이라고 하자 토끼는 사라졌다. 며칠 뒤, 한 여인이 자살하려는 것을 그가 구해주었고 그녀와 부부가 되었다. 그리고 곧 아들도 생겼다. 황만근의 모든 소원이 이뤄진 것이다. 그런데 도련 아내가 사라졌다. 그렇게 그 애도 황만근의 몫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장이 '전국 농민 궐기 대회' 때문에 이야기를 했는데 그 곳엔 만근이도 있었다. 그는 이장과 모종의 이야기를 한 뒤, 민씨와 만나 술을 마시고 경운기를 끌고 군청에 갔다. 그러나 이미 대회는 끝났고 돌아오던 중에 경운기가 논에 쓰러져 목숨을 잃었다. 일주일 뒤, 그의 아들이 유골이 된 그를 안고 돌아왔다.
위와 같이 줄거리가 모두 끝났다. 이 글에는 여러가지 사화상과 작가의 생각 그리고 인물들 간의 갈등이 나타나는데 제일 먼저 이 글의 사회상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겠다.
6·25전쟁 직후의 시기가 만근이가 태어난 시기인데, 이 당시에는 모든 사람들이 가난하고 살기가 힘들어 개인주의 등이 병패한 사회였다. 이것 때문에 황만근의 집이 가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개인주의란 무엇인가? 공동체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생각한ㄴ 사상인데 이러한 개인주의는 주로 산업사회, 현대사회, 전쟁 중에 주로 나타난다. 여기에선 이 글의 작가의 의도를 잘 파악해야 한다.(사실상 이 부분을 통해 두 번째 질문 또한 대답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작가는 왜 이 당시의 개인주의를 글에 담았을까? 그것은 오늘 날 개인주의가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 옛날과는 다른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주의를 비판함으로써 독자들의 생각에 변화를 주고자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왜 개인주의가 산업사회, 현대사회, 전쟁 중에 주로 두각을 드러낼까? 그 이유는 각 시대마다 개인의 안전이나 이익 무한 경쟁 등을 이유로 자신의 몸을 챙기는데 급급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실례로는 영국의 산업혁명 당시 노동자 문제 등을 들 수가 있다.
이 글에는 이러한 개인주의만이 표출된 것은 아니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의 새마을 운동의 농업 부문에 대한 지원이 보통 사람들의 입장이나 농민들의 입장에선 반가운 일이 었을지도 모르나 실상은 다름을 이 글에서 드러난다. 그 예로는 영농의 발전을 적극 추진한 것이 실상 농민들에게 알게 모르게 전부 빚이나 부담이 되는 부분이 나타난다. 어떤 식으로 부담이 되었을까? 그것은 현대화된 농기구 지원, 화확비료 지원 등을 받는데 얼마 뒤 이는 모두 농부에게 가격이부담되는 형식이었다. 고로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지출을 감당하지 못한 농민들은 갑작스럽게 엄청난 빚더미에 앉아버리고 이로 인해 농민들은 도망을 가거나 이 글의 내용처럼 군청이나 도청에 가서 시위를 통해 이를 해결하고자 하지만 실상을 모르는 군청은 이러한 농민들을 외면하고 계속 돈을 청구하기만 하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부분을 통해 작가가 새마을 운동의 모순을 잘 끄집어 내서 작품에 서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작가는 어떻게 이러한 상황을 타파할 수 있을지 해결책을 제시하였을까?
이에 대해서는 실제로 글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황만근이라는 인물을 통해 이에 대한 견해를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본문 p36~38까지 이에 대한 황만근의 생각이 서술되어 있다.
황만근은 "농사꾼은 빚을 지면 안된다. 기계화 영농이라며 주는 모든 기기들은 빚이며 결국 농민들의 소득에서 빠져나가 먹기에 간당한 수준만 남기게 되고 농민을 말려죽이게 되는데 이르게 된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덧붙여 "나는 내가 하고 싶은대로 농사를 지어 100년 동안 살거다."고 말을 하는데 이는 농사란 남의 힘을 빌어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며 옛 사람들이 해왔듯이오로지 농사에 매진하여 살면 망하지 않고 오래동안 살 것이다라는 생각이 드러난다. 이러한 생각은 현재에 만족하며 쓸때없이 욕심을 부리는 것을 멀리하여 성공하는 자수성가의 비법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만근의 소극적 태도 보다는 이장의 행동이 전정한 해결책이라고 생각을 한다. 이장은 농민들을 선동하여 이러한 국가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 잡으려고 하고 있다. 유가의 맹자는 역성혁명이라는 왕이 잘못되면 백성이 왕을 몰아낼 수 있다는 사상이 적용되어 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나라 역사 삼국시대-고려-조선 등을 거처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고려시대 무신 정권 때 각지에서 일어난 농민봉기와 조선시대 세도정치 당시 홍경래의 난과 진주농민봉기 등의 비슷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은 모두 실패했지만 성패에 상관없이 국가에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이장의 행동도 실패를 할 지도 모르지만 국가에 대해 현재 정책의 경각성을 알리는 종소리가 될 것이다. 작가는 황만근을 통해 이장과 대비되는 모습을 강조하여 황만근을 지지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이장의 적극적인 활동이 황만근의 생각을 뛰어넘어 이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 이 글의 작가는 이 글을 통해 무엇을 전해주려고 하였을까?
개인주의의 타파 그리고 정부의 정책에 대한 과도한 신뢰와 의존을 멀리하고 또한 이러한 인물군상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독자의 생각을 바꾸고자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는 대부분의 소설가나 시인들이 쓰는 방식이다. 하지만 짜장면의 맛이 이 집과 저 집이 다르듯이 깨달음이나 소설의 주제 그리고 소설의 구성방식과 문체가 다르다. 이 글 또한 독특한 서술방식을 통해 서술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옴니버스식 구성방식을 들 수 있는데 이는 현재, 과거, 현재를 넘나들면서 서술하는 것인데 이는 독자의 사건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나중 결말에 이르렀을 때, 모든 진실이 밝혀지며 독자에게 전율과 함께 깨달음을 주는 방식이다. 이에 대해서 나는 성석제가 적절한 구성방식을 택했다고 생각한다.
이제 인물들 간의 갈등이다. 이 부분이 나느 다른 소설과 크게 다르다고 생각한다. 다른 소설 같은 경우에는 갈등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데 이 책은 갈등이 크게 역할을 하지 않는다. 단지 이장과 민씨의 갈등을 바탕으로 황만근을 부각하는 부분 등... 아니, 개인적으로 이 글에는 이장과 민씨의 외적갈등 밖에 없다. 그 외에도 그와 그의 아들간의 가릉이 나타나지만, 그렇게 큰 역할은 못한다. 황만근을 부각하는 부분 말고도 하나의 역할이 더 있다. 바로 외지인과 토박이 간의 태도, 생각의 차이를 나타낸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바로 작가의 황만근에 대한 평가 부분이다. 이 글에서 작가는 그를 황선생이라 칭하며 많은 글귀로 예찬을 하였다. 여기에 서술된 황만근의 행동과 가치관을 이어 받아 제 2의 황만근이 되고자 한다. 그 어떤 외적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이루는 황만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