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의 징검다리인 수요 말씀: 시편 묵상 이야기! ◈
핵심 주제: 갈 곳이 있어요!(12월 6일)
본문: 시편 5편 주관&찬양: 목회자 가정/기도: 이영현님
이번 시도 4편처럼 엄청난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낭송되는 시이며, 특히 아침 성소에 들어가며 부르는 찬송입니다. 그런데 성서에 들어가며 부르는 아침 찬송이라고 하기엔 부적절하게 그 내용이 하나님의 진노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진노(분노)가 당연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정의하며, 하나님의 정의는 백성의 신음과 탄식을 만든 자들을 향한 분노, 또 교만한 자(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하는)와 거짓말쟁이들, 싸움쟁이들, 사기꾼들(6절)을 향한 진노라는 걸 명백히 합니다.
반면에 나(시인/다윗)는 주님의 큰 은혜를 입어(7절) 주님의 집으로 간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은혜란 주님의 집(성전)으로 갈 수 있는 힘/마음/시간의 넉넉함을 뜻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은혜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은혜의 기준이 항상 충분/넉넉/충만함에 있습니다. 사실 이런 것들은 남과의 비교에서 오는 우월함이 기준입니다. 그런데 비교는 늘 자기보다 많은 것과 하게 되고, 그래서 늘 비참해합니다.
이런 비참함에는 만족이란 게 자리할 데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여, 더 더 더 주옵소서!”라는 기도만 하게 됩니다.
시인은 이런 자에게 자기의 원수가 하나님의 원수라는 등식을 내세워 하나님의 분노를 보여달라고 노래합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하나님께게 피신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도 기뻐하고 길이길이 즐거워할 것(11절)이라고 숨구멍을 터놓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진노는 죽이기 위한 진노가 아니라 살리기 위한 진노임을 시인은 말하는 것이죠.
돈 때문에 죽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서 돈을 빼앗는 건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이요, 육신의 정욕으로 타락하는 사람에게 건강을 빼앗는 것 또한 살리는 겁니다.
시인은 단호라게 12절로 정의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복을 베풀어 주시고, 큼직한 방패처럼, 그들을 은혜로 지켜 주십니다.”
바르게 산다는 건 주님의 진노(분노)로부터 벗어난 사람을 뜻합니다. 이런 사람의 특혜는 방패, 그것도 아주 큼직한 방패로 모든 걸 막아주심을 의미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키는 사람에 대하여, 말에 원인을 둡니다.(9절)
입에서 나오는 말이 모두 악한 생각뿐이어서 열린 목구멍은 열린 무덤과 같다고 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말의 권세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내가 한 말은 반드시 그렇게 이루어진다고 믿는 사람들이기에 더욱 말에 재갈을 물린 것처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쟁이들은 말만 잘 한다.”는 세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매우 가까운 사람들이 예수쟁이라는 뜻입니다.
시인은 갈 곳이 있다고 합니다. 그곳이 주님의 집입니다.(7절) 가고 싶어서 가려고 몸부림치다 가지 못하게 되면 주님의 성전을 바라보며 주님께 꿇어 엎드린다고 합니다.(7절)
우린 갈 곳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희망이 있다는 것이고, 목표가 있다는 겁니다.
대림절의 시작, 이는 희망이 있는 사람들의 계절이 왔습니다. 들꽃공동체 모두에게 대림절의 희망이 풍성하기를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