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크라이나 국제의용군으로 참전해 국내외에서 화제가 됐던 이근이 3개월 만에 무릎 부상으로 귀국했다. 이근의 무단 출국을 두고 쏟아진 다양한 추측들. 돌아온 그를 직접 만났다.
해군 특수전전단(UDT/SEAL) 대위 출신 이근이 3월 초 우크라이나로 출국했다. 러시아 침공에 맞서 외국인 의용병 부대에 합류했는데, 전투 중 부상을 입어 재활 치료를 목적으로 5월 말 한국에 돌아왔다. 외교부는 이근을 여권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여권 사용을 허가 받지 않고 여행 경보 4단계가 발령된 곳에 입국했다는 이유다. 여권법을 위반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 처벌을 받는다.
“예를 들어 수영선수 출신인 내가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발견했다. 거긴 수영하면 안 된다고 적힌 곳이다. 그렇다고 안 들어가겠는가. 본능적으로 뛰어든다. ‘humanity’다. 벌금은 아예 생각도 안 했을 거다. 마찬가지로 내가 우크라이나에 간 건 종교 활동 때문도 사업 때문도 아니다. 특수부대 장교 출신인 내가 전쟁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어떻게 돕지 않을 수 있겠나.”
출국 소식이 알려진 무렵 일각에서는 ‘이근이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갔다’, ‘폴란드 어느 호텔에서 조식을 먹으며 촬영 분량을 걱정하고 있다’ 등등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가 돌았다. 이근은 “근거 없는 루머로 나를 비난한 사람들 내가 다 바보로 만들 거다. 거짓이었다는 게 하나씩 입증되고 있지 않은가. 결국은 시간문제”라고 일갈했다.
이근과 함께 작전을 치른 팀원들 중에는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는 사람, 뇌손상을 입은 사람도 있다. 지하벙커 주변으로 떨어진 폭격의 충격이 거대했다. 참담한 현장이 여전히 꿈에 등장할 만큼 고통스러울 때가 있지만, 유의미한 성과도 있단다. 이근은 참전 중 역할을 인정받아 볼리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기로 예정돼 있다고 밝혔다.
현재 건강 상태는.
다음 주에 다리 수술을 받는다. 정확히 말하면 연골 판이 찢어졌다.
부상을 입기 전까진 컨디션이 괜찮은 편이었나.
살이 좀 많이 빠졌다. 거기선 아무도 코로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몇 명 걸리긴 했는데 다 같이 생활해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폐건물에서 잘 때도 있고 한 달 동안 씻지 못한 적도 있다. 물티슈로 닦는 사람들도 있었다.
3월 한 목격담에 따르면 폴란드 호텔에서 잘 먹고 잘 자고 있다더라.
대체 왜들 그럴까.(웃음)
한국에 그런 소문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나.
인터넷 접속이 가끔 되면 매니저가 ‘이런 내용이 있는데 알고 있느냐’며 전해줬다. 충격을 좀 받았다. 어떻게 같은 한국 사람들이 이럴 수가 있나. 원래 전쟁에서 유명한 군인이 있으면 일부러 죽었다고 거짓말하기도 한다. 사기를 떨어뜨리는 하나의 군 전술인데, 러시아 정보국이 많이 한다.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 콘텐츠 때문에 우크라이나에 갔다는 얘기도 있다.
어이가 없었다. 왜 그렇게 사람들이 배 아파하는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이 올바른 일 하는 것도 못 보겠는지, 어떻게든 잡아당겨 내려오게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귀국 후에 올린 유튜브 영상을 봤다. 동료가 머리에 총상을 입고 피를 흘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영상을 올린 이유는.
사람들이 전쟁의 현실을 못 느끼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같은 상황이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할지 누가 알았나.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진짜 일이 터지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용감하게 싸워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화상 연설을 하는데 졸고 있는 정치인도 있더라. 우크라이나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것에 놀랐다. 장비만 해도 미국 미사일, 독일 로켓, 체코 총키, 캐나다 식량이 지원됐다. 한국 야간 투시경 12개를 받기 위해 필요한 모든 절차를 거쳤지만 결과적으론 ‘안 된다’였다.
얘기한 대로 전쟁은 정말 무서운 일이다. 의도도 의욕도 알겠지만, 막상 그런 곳에 가게 되면 두려움이 앞서지 않나?
그렇다고 하더라.(웃음)
당신은 두렵지 않았다는 건가.
그 누구도 전쟁을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 같다. 첫 실탄이 지나갈 때, 첫 폭탄이 터질 때까지 자기가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모른다. 많은 UDT 대원들이 실전 경험을 못했다. 그래서 내가 돌아왔을 때 우리 부대 출신 중 한 명이 ‘안 무서웠느냐’고 물었다. 근데 나는 우크라이나에 가기 전에도 이라크, 소말리아에서 다른 작전들을 했었다. 두려움을 아예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작전 지휘도 해야 하고 임무도 성공시켜야 하니까 머리가 복잡하다. 바빠서 두려워할 여유가 없는 것 같다.
출국하면서 나름의 목표를 세우진 않았나.
현장에 도착하기 전까진 어떤 임무를 할지 정확히 모르지만 어느 정도 계획을 잡았다. 이전에 군에서 작전 플래닝을 많이 해봤기 때문에, 내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우크라이나를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략적인 기획도 하고 특수작전팀을 만들어서 러시아 측에서 제일 아프게 느낄 표적을 정해야 했다. 실제로 그런 임무를 위해 뛰었다. ‘몇 명을 사살했다’는 건 큰 성과가 아니다. 전략적 표적을 타격하는 게 중요하다. 군 기밀 문제가 있어 구체적으로 밝히긴 어렵다.
전쟁터에서 동료를 잃는 슬픔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실제로 어떤가.
나와 가까이 일한 사람 두 명이 죽었다. 또 다른 팀이지만 알고 지낸 동료가 죽기도 했다. 한 팀원은 등에 맞은 총알이 가슴까지 박혀서 기절을 했다. 우리 위치가 발각돼서 대피해야 하는데 그 팀원은 출혈이 너무 심해서 다시 깨어날 수 없는 상태였다. “네가 지금 발로 일어서지 못하면 우리 다 죽는다. 정신 차려라”고 했더니 의식을 차렸다. 갑자기 어디서 무슨 힘이 생긴 건지. 나중에 의사들이 그 영상을 보면서 되게 놀랐다.
현장 영상이 남아 있다는 건가. 카메라가 어디 붙어 있나.
각자 다른데 나는 가슴 쪽에 붙어 있다. 근데 배틀은 갑자기 터지는 거니까 모든 상황을 캡처할 순 없다. 디브리핑(debriefing) 하려고 녹화하는 거다. 임무 끝내고 보면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확인한다. 증거물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러시아군들이 민간인을 죽이는 현장 같은 것. 작전 캠이다.
유튜브 업로드용 영상으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정말 몰라서 그럴 수도 있고, 알고 있지만 나를 공격하고 싶어서 그렇게 여길 수도 있을 거다.
우크라이나 참전 경험을 책과 영화로 만든다고 알려졌다. 사실인가?
직접 모두 쓴 다음 책을 전 세계에 뿌릴 생각이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죽이는 모습은 되게 충격적이었다. 너무 많은 민간인을 사살했다. 이런 사실이 절대로 잊히면 안 된다는 생각에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나처럼 진짜 싸운 사람이 아니면 누가 쓰겠는가. 누가 이 스토리를 기록하고 이야기하겠나. 이건 역사다.
이근을 사랑하는 가족 또는 친구들이 이번 참전을 만류하진 않았나.
부모님은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몰랐던 것 같다. 친구들도 거의 몰랐다. 괜히 말했다간 (출국이) 막힐 것 같았다. 걱정되는 마음에 못 가도록 신고할까 봐 보안을 철저히 했다. 혹시 못 돌아올 수도 있으니 어머니한테만 살짝 말씀드리긴 했다. 어머니가 반대하시긴 해도 말리진 못했다. 내가 워낙 고집이 세고, 믿음을 갖고 하겠다고 하면 끝까지 하는 사람인 걸 잘 아신다. 보도된 기사로만 따지면 내가 우크라이나에서 다섯 번은 죽었다.(웃음) 부모님이 진짜 힘드셨을 거다.
아들의 귀국을 누구보다 반겼겠다.
아버지 반응이 재밌었다. “한국 왔으면 됐어.” 딱 이렇게만 말씀하셨다. 나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아서 평소 연락도 잘 안 한다. 근데 우크라이나에 있을 땐 아버지가 매일 문자를 한 통씩 보내셨다. “살아 있냐?”, “답 한 번 해줘라.” 보안 문제 때문에 답장은 못했다. 한국 온 뒤론 다시 연락이 없다.(웃음) 아버지랑 나랑 진짜 안 맞다. 아버지가 모스크바 대학교 교수님이셨다. 약간 ‘친러’다. 아이러니다.
결혼은 했나.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결혼 유무가 불분명하다.
그런 건 오픈하지 않는다. 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왜 공개하지 않느냐. 여자를 꼬시고 싶어서 숨기는 것이냐”, “보안 타령 하지 말라”고 한다. 로건(이근과 웹 예능 ‘가짜사나이 2’에 교관으로 출연한 해군 특수전전단 출신)이 논란 생겼을 때만 봐도 당사자보다 아내를 더 공격하지 않던가. 가족 공개하는 순간 그렇게 된다. 나한테 백인 와이프와 애들이 있다고도 하던데, 마음대로 생각하라.
일부에선 이근 전 대위의 이력이 거짓이라고 주장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 이력서를 보고 “이게 사람이냐”더니 가짜라고 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본인은 그렇게 못하니까.(웃음) 우리 업계는 이력을 거짓말할 수 없다. 또 나는 자존심이 너무 세기 때문에 그런 거짓말을 할 수도 없다. 그랬다간 나도 욕먹고 가족도 욕 먹인다. 내가 친한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이유가 오히려 스스로 낮추기 때문이다. 나는 ‘맞다’, ‘틀리다’가 분명하다. 늘 무엇이 맞고 틀린지를 고민하며 열심히 살아왔다. 누가 뭐라 해도 항상 올바른 일을 하려고 노력했다.
살면서 두려운 적 없나?
가족이 다치는 건 두렵다. 날 공격할 때 나는 괜찮았는데 어머니가 충격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땐 신경 쓰였다. 이번 전쟁에 나가 있을 때도 부모님이 병에 걸릴까 봐 무서웠다. 죄책감도 느꼈다. 나로 인해 가족들이 아픔을 겪는 게 두렵다.
이근의 좌우명이 궁금하다.
국가와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자. 그리고 행복하고 의미 있게 살자.
언제 행복한가.
항상.
그렇게 공격을 받을 때도?
재미있지 않나?(웃음)
누군가의 표현처럼 ‘관종’ 같다.
사람들이 나보고 관종이라고 욕하던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안 그래도 어머니에게 물었다. 관종을 인정하고 즐기는 게 좋은지, 상처받고 자살하는 게 나은지. 즐기는 게 낫지 않겠는가.
차라리 즐기는 걸 선택했다는 건가?
내가 한국말을 잘 못해서 ‘관종’이라는 뜻을 정확히는 모른다. 만약 정말 즐기는 걸 뜻한다면 나는 관종이 맞다. 근데 정확히 말하면 나는 관종이 아니라 올바른 일을 하려는 사람이다. 군에 있을 때도 처음엔 동기들이 나를 싫어했다.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말을 하는 스타일인데, 상관에겐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안 된다더라. 나는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열심히 살고 올바른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인 것 같다.
저작권자 © 여성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CRAP SHA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