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민씨가 자신이 고소한 특수교사 건에 대해 입장문을 내고, 교사에 대한 선처도 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가 공개한 입장문을 보면, 주씨는 아직 무엇이 문제인지를 모르는 것 같다.
주씨 보다 훨씬 힘든 뇌병변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의 글을 읽으면서, 장애아를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세삼 느낀다.
이 글을 쓴 장애아의 부모는 주씨가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로서의 노력을 소홀히 한 것이라고 말한다.
장애아가 정상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기 위해선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데, 주씨와 그 아내는 이를 소홀히 하면서 자신의 욕심을 충족시키지 못한 모든 책임을 교사에게 덮어 씌웠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이는 장애아 만이 아니라 정상아를 학교에 맡긴 부모들 모두가 기억해야 할 말이다.
학교는 교육기관이지 탁아소가 아니다.
교사가 해야 할 역할이 있고, 부모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
학교로 달려가 눈 부터 부라리는 학부모들은 '내가 혹시 나의 의무를 선생님께 전가한 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과거의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자기 자녀처럼 아끼고 사랑했다.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만큼 최선을 다해 제자들을 가르쳤다.
단순히 지식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지혜를 가르쳐 주신 것이고, 사랑하기에 체벌도 했다.
물론 문제 있는 선생님도 있었지만, 좋은 선생님이 훨씬 많았다.
그 증거는 대한민국이다.
지독하게 못 살던 대한민국이 이렇게 다른 나라가 부러워 할 만큼 살게 된 것은 뛰어난 지도자 덕분이기도 하지만, 지도자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고, 국가를 위해 가족을 위해 성실히 일하는 국민을 키워낸 선생님의 공도 크다.
그러나 지금의 학교는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선생님의 훈육을 가로 막았다.
그 결과가 지금 벌어지는 학부모와 학교의 마찰이다.
인권은 존중돼야 하지만, 학생이라고 더 존중돼야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아직 성숙하지 못한 어린 학생들이기에 무엇이 좋은 것이고, 무엇이 나쁜 짓인지를 정확히 깨달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그들의 삶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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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주호민씨의 입장문에 대해 공감할 수 없다는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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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비평, 혹은 비난할때는 상당한 각오가 필요하다.
내가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았건, 나의 의견을 공적 영역에 게재한다는 것은 내 의견이 누군가의 의도에 맞추어 재가공될 여지가 있음을 인지해야 하고, 그에 따르는 책임에 대해 고민해야 하며, 나아가 혐오의 여론에 의견을 한술 끼얹는 행위가 될 여지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모든 책임과 부담을 가늠해봐도, 도무지 내 마음이 못 견디겠을때 내가 마음에 병이 나지 않을려면 쓰는 수 밖에 없다.
지금이 그러하다.
나는 9살짜리 뇌병면 장애아를 양육중인 부모다.
나를 포함한, 어쩌면 주호민씨도 포함했을, 대부분의 장애인가족, 혹은 자녀를 둔 부모라면 열이면 열, 마음이 마모되어 바스라져있다.
우리 사회는 형식적으로 조금 나아져 있을지언정, [사회적 약자]라는 주제를 거북해 한다.
특히 그것이 사지 멀쩡한 정상인의 세계에서 비정상적인 [장애],를 논하게 되는 경우라면 사람들은 거북해하고, 부담스러워하며, 그것을 없는이야기 취급하고....
적어도 내 주변에선 일어나지 않았으니, 애써 알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장애인을 품은 가정은 가족의 장에에 상처입고, 사회의 시선에 상처받는 삶을 산다.
한번으로도 괴롭거늘 두번씩 상처를 받으니 마음이 깎여나갈 수 밖에.
그러니, 매 순간의 삶이 죄인의 삶과도 같다.
거기에 지독한 자기연민과 풀어놓지 못할 분노도 마음에 품고 산다.
그래도 웃으며 산다.
사족이 길었는데, 나는 그래서 주호민 가족이 겪었을 고통과 자기붕괴와 혼돈을 어렴풋이는 '안다'.
하지만 '안다'는 것은 '이해한다거'나 '공감한다'...라는 말은 아닐것이다.
같은걸 겪고 사니 어떤느낌인지 안다는 것일 뿐....
그 태도나 해법이 옳았다고는 절대 생각 안 한다.
잠깐 본인 딸 이야기를 하자면, 작년에 전국 장애인 체육대회에서 금메달 둘 올해 금메달 하나를 딴 나름 재능있는 장애인 선수다.
그런데 그게 무슨 소용인가,
누군가 내게, 재능있는 장애인 선수로의 삶과 아주 평범하다 못해 무능하다 여겨질 수도 있는 사지멀쩡한 아이로의 삶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어찌하겠냐고 기회를 준다면 나는 주저없이 후자를 택할 것이다.
아이의 삶이니 아이의 의견이 중요하다?
그건 그 삶을 못 겪어본 이의 배부른 자기기만이다.
그만큼 우리사회에서 장애는 죄악이고 괴로움의 연속이다.
나는 그걸 적어도 일반인들보단 담담하게 인정 할 수 있다,
글로 보고 떠드는게 아닌 나의 삶이니까.
왜 이 이야기를 하느냐?
장애는 분명히 정상인의 삶과 구분되어 있다는 거다.
내 아이를 정상인의 뜰에서 살아가게 해주고 싶으면 정말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장애인 활동보조사를 붙이고, 아이의 수업시간 내내 교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하며 매순간 대소변 치울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고 제대로 씹지도 못하는 음식물을 떠먹여주며 아이의 삶의 절반 이상을 같이 살아줘야 한다.
돈을 버는 것으로 부모의 의무를 다 한다고 여기면 안되는거다.
그 점에서, 나는 주호민씨가 안일했다고 본다.
자기 가정의 장애에 대한 고난과 역경을 세상이 몰라준다고 착각하는거 같다.
그건 그냥 극복이 아니다, 당연한거다.
장애자식을 10년 키웠는데 그걸 모른다고 하면 이상한거다.
아이가 그 난리가 난 상황에 부모는 왜 함께 동반하지 못했나.
녹음기를 넣어줄 생각 이전에 왜 애를 직접 챙기지 못했나.
교사를 바꾸지 못한다라는 선택지에서, 왜 전학먼저 떠올릴 수가 없었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관련하여 주씨가 이런말을 한 적이 있었다.
"주호민씨네 아이는 어떤 부분이 특별해요? 라는 질문에 상처를 받을때가 있다. 모든 자폐가 특별하거나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건 아니다."
맞는말이다, 우리사회는 장애를 가르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두번 상처받고 두배로 힘들다.
그런데 두배로 힘든 언더독의 삶을 대부분은 견디며 살며 노력한다.
그게 무기는 아니니까.
"나는 참는데 너는 못 참는다고?" 라는 말이 아니다.
장애에 대한 우리 사회의 사회적 자원이 매우 부족한 상황에서 우리 스스로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길 바라며 노력해야하는 부분은 있지마는, 내 아이를 향한 욕심과는 구분되어야 한다는거다.
아이에게 장난스레 "하지마라" 라고 하는것과, 훈육을 통해" 이건 안되는거야" 라는 경계를 가르치는 건 매우 중요하다.
특히나 장애인 가정, 정신발달이 늦는 가정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이게 제1 조건이다.
이게 되어야 우리애가 좀 사지도 멀쩡한데 행동발달만 느린거니
정상적 교육환경에 합류할 수 있지 않을까?......를 고민할 수 있는거다.
이게 준비가 안된거라면 내 아이의 미래 라는 욕심에,이기심에 주변 환경과 사람을 혹사 시키는거다.
왜 부모의 욕심으로, 채우지도 못할, 일들로 인하여, 선생님이 상처받아야 하나?
주호민씨의 말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모든 자폐아가 특별한 건 아니다.
그렇다면 모든 자폐아가 정상인의 삶으로 녹아들어갈 준비가 되어있는것 또한 아닐것이다.
이걸 극복시키려면 부모가 삶을 걸어야 한다.
다른 누구에게 맡기는게 아니라, 부모가 곁에 있어줘야 한다.
아이의 불안을 안정시키는건 다른 누구도 아닌 부모다.
그게 어려우면 장애학교로 가는게 맞다.
나는 주호민의 입장문을 공감할 수가 없다.
정상아 학급에 자폐아를 보내놓고, 무리한 요구들을 하는 저 모습이
나는 거대한 블랙코미디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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