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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단추방죄에 해당하는 살인죄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무죄가 될 수도 있다. 예컨대 정신이 착란된 자이거나, 마음이 심란한 자이거나….”
25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율장이 오늘날에서 거론되는 정신이상자의 징벌 예외조항을 거론하고 있다. 가장 현대적이고 진보적인 율이 그 시대에 이미 정해졌던 것이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불교는 2500년 전의 말씀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아주 잘 개발된 논밭처럼 논리적으로 잘 짜인 언어적 사유의 극치를 보여준다. 불교에 대해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막상 불교의 진수를 대하게 되면, 그가 그동안 상상해왔던 모든 시공간을 초월하게 하는 가르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부처님 가르침 가운데 경장과 논장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율장도 마찬가지로 위대하다.
그러나 경장과 논장에 비해 율장은 상대적으로 덜 대중화되어 왔다. 율장이 갖는 특수성 때문으로 당연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다보니 그것에 깃든 위대한 정신과 가르침이 감춰져 오는 안타까움도 없지 않았다.
승가의 행동규범을 정해놓은 율장은 역설적으로 역대 승가가 추문과 부패와 잘못으로 점철되어 왔다는 인식이 오해라는 점을 말해준다. 물론 그런 문제점들이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으나 엄격한 율장이 구전되고 끊임없이 송출되어 왔으며, 또한 기록으로 보전되었다는 것은 청정교단에서 오히려 그런 부정한 행위를 정당화하지 않았다는 명백한 반증이기도 하다. 율장을 읽다보면 품행이 방정하고 바른 수행승들이 그렇지 못한 비행을 일삼는 수행승들에 대하여 혐책하고 분개하고 비난하는 것을 언제나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율장은 이제 승가내의 규방에 머물 것이 아니라 대중 속으로 나와야 한다. 비록 그 내용 중에 공개하기 꺼려지는 것도 없지 않으나 이런 기록들의 전승은 역사적인 인간과 공동체적 삼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것으로 인간의 본성과 심성에 대한 자료, 심리학적이고 인류학적이고 사회학적이고 정신분석학적인 귀중한 학문적인 자료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있는 그대로 알고 봄으로써 수행자에게는 해탈로 가는 선구적 지남이 되고, 일반 중생들에게는 수행자들을 바르고 온전하게 받들고 공양하도록 알려주는 교과서가 된다.
그런데 계율의 원리가 얼마나 복잡한 체계를 갖는 유기체적인 다발을 성격을 갖고 있는지, 그렇기 때문에 얼마나 광대한 것인지는 초기경전인 <빠알리율장>을 살펴보아야만 알 수 있다. 우리가 단순히 5계의 한 덕목으로만 알았던 불사음계, 불살생계, 불투도계, 불망어계의 원리의 방대함은, 비록 그것이 승단 내부의 규율이기는 하지만, 오늘의 법학수준에서도 여전히 뛰어넘을 수 없는 체계와 통찰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율장은 경험적이고 보편적인 양심의 잣대 뿐만 아니라, 삶의 규범에 대한 현실적인 적용의 어려움까지 배려된, 즉 자애에 기반한 계율정신을 드러내 보여준다. 율장은 그러므로 한 번 읽는 것만으로도 규범적 삶의 토대를 정립시켜줄 수 있다. 더구나 생사고해를 벗어나기 위한 지고한 삶을 목표로 하는 수행자들에게는 율장정신의 터득이야말로 가장 시급하고 긴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설사 그러한 지고한 삶의 목표가 없는 보통의 사람들일지라도 율장은 적어도 올바른 삶의 지표를 바로 세우게 하는 모범을 제공해준다.
그런데 이 율장, 즉 빠알리율장은 완전하게 번역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 빠알리율장을 완전하게 번역한 사례는 없다. 이 어려운 작업을 그동안 빠알리대장경 번역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던 퇴현 전재성 박사가 마침내 완역을 해냈다. 이는 한국불교사에서 매우 희유하고 경사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한역 오부율장이 전해지고 있고, 설일체유부의 티베트어역이 있기는 하지만 빠알리 율장의 완전한 복원까지 이뤄낸 번역은 세계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니, 실로 산하대지가 진동으로 경축해마지 않을 수 없는 쾌거다.
이번에 전재성 박사가 번역한 빠알리 율장은 한국최초의 빠알리율장분별부 제3권 빅쿠비방가(대품)와 제4권 빅쿠니비방가(소품)이다. 국내 최초로, 누락된 부분을보완한 것으로는 세계 최초로 한국빠알리성전협회 퇴현 전재성 박사에 의해 역주 출간된 것이다. 약 2000여 페이지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은 그러니까 명실공히 ‘세계최초최대복원번역 빠알리 율장’이다.
방대한 율장 역주서의 공식 명칭은 <빅쿠비방가-율장비구계>와 <빅쿠니비방가-율장비구니계> 2권이며 신국판양장본이다. <빅쿠비방가-율장비구계>는 1994쪽(원고지 12,314매)이며, <빅쿠니비방가-율장비구니계>는 2176쪽(원고지 13,119매)의 방대한 분량이다. 책값은 각권 15만원.
전재성 박사는 지난 해(2014년)에 율장건도부의 제1권 <마하박가-율장대품>(신국판양장본 956쪽, 값60,000원 분량 : 원고지 6300매)와 제2권 <쭐라박가-율장소품>(신국판양장본 1156쪽, 값70,000원 분량 : 원고지7500)을 출간한 바 있다. 그러니까 이번에 제3권과 제4권이 출간됨으로써 율장건도부가 완역된 셈이다.
이번에 출간한 ‘빠알리 빅쿠·빅쿠니비방가’는 불교문헌사적으로도 매우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우선 세계 최초의 완전한 번역이라는 점이며, 대장경 가운데 가장 난해한 율장의 번역이라는 점,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말로 초초로 율장건도부가 완역되었다는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은 또 대승불교인 북방불교의 모든 율장의 근원인 테라바다 불교의 빠알리대장경 가운데 빠알리율장 최초의 한글번역이며, 세계 최초로 생략부분을 거의 완전하게 복원한 세계 최초의 완전복원번역율장이라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다.
또한 이 책을 통해 계율정신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가 있고, 계율 정신이야말로 참모임(승가)의 목숨이고 생명이며, 그것이 와해되면 청정과 화합이 생명인 참모임의 승가도 와해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도 승가의 범계행위가 극에 달한 오늘날 한국 승가에서 시사하는 가치가 또한 적지 않다.
대장경 가운데 율장번역이 제일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율장은 당대의 고유한 사회 경제 및 일상적 삶의 제반 토대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빅쿠·빅쿠니비방가>의 빅쿠계율은 4개 조항의 승단추방죄법, 13개 조항의 승단잔류죄법, 2개 조항의 부정죄법, 30개 조항의 상실죄법, 92개 조항의 속죄죄법, 4개 조항의 고백죄법, 75개 조항의 중학죄법, 7개 조항의 멸쟁죄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빠알리본 빅쿠계율의 총 숫자는 227개 조항으로 빠알리본 빅쿠니계율의 총 숫자 보다 74개 조항이 적다.
빅쿠니계율은 8개 조항의 승단추방죄법, 17개 조항의 승단잔류죄법, 30개 조항의 상실죄법, 166개 조항의 속죄죄법, 8개 조항의 고백죄법, 75개 조항의 중학죄법, 7개 조항의 멸쟁죄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빠알리본 빅쿠니계율의 총 숫자는 311개 조항으로 빠알리본 빅쿠계율의 총 숫자인 227개 조항보다 74개 조항이 더 많다.
<빅쿠་빅쿠니비방가>는 승단추방죄법에 속하는 살인이라고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 승단추방죄가 될 수도 있고 여타의 다른 추악죄나 무죄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당연히 면제조항이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의도하지 않았거나, 알지 못했거나, 살의가 없는 경우나, 정신이 착란된 자이거나, 마음이 심란한 자이거나, 애통해 하는 자이거나, 초범자는 무죄이다.”(Vin. I. 78) 주석서(Smp. 269)에 따르면, ‘정신이 착란된 자’는 담즙 등의 이상으로 약물로 치료해야 하는 기질적 정신환자, ‘마음이 심란한 자’는 야차 등의 귀신이 들려 불이나 황금이나 똥도 똑같이 짓밟으며 돌아다니는 분열적 정신환자, ‘애통해 하는 자’라는 것은 정도를 넘는 고통으로 아파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자를 말한다.
법율의 정신으로 본다면, 이천오백 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가장 현대적이고 진보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전재성 박사는 설명했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보면, 의무계율과 고주석 및 예외조항과 면제조항만으로 완결성이 성립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빅쿠་빅쿠니비방가> 가운데 핵심이 되는 것은 의무계율(pātimokkha)이다. 이 의무계율의 조항은 한 달에 두 번 신월과 만월의 반월마다 있는 포살일(Uposatha)에서 송출된다. 포살일은 원래 베다시대의 쏘마제(Soma祭)를 준비하기 위한 금식일이었다. 부처님 당시에는 다른 출가자들이나 유행자들의 집단에서도 한 달에 두세 번 금식일에 자신들의 가르침을 송출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불교에서도 그것을 수용하여 한 달에 두 번 의무계율을 송출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고 그것이 포살이라는 개념으로 굳어진 것이다. 수행승이나 수행녀들의 마음에 의무계율의 반복적인 송출은 그들의 마음에 계율을 새롭게 새길 뿐만 아니라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게 하는 두 가지 측면의 효과를 고려한 것이었다. 잘못을 인정하면 처벌이 주어지고 처벌을 받은 자는 청정성을 회복하게 된다.
입문적 수행단계에게는 경장 자체가 율장이라고 볼 수 있다. 보다 정밀한 수행을 위해서는 경장에서 율장에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비컨대 경장의 가르침을 약이라고 비유한다면, 율장의 가르침은 먹어서는 안 될 약에 대한 처방이다. 의사에게만 약처방권이 주어지는 것은 간호사나 약사가 먹어야 하는 약에 대해서는 알지만, 보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먹어서는 안 될 약에 대해서는 무지하기 때문이다. 의사와 마찬가지로 전문적인 수행자는 먹어야 하는 약인 경장과 먹어서는 안 되는 약인 율장에 대한 지식을 모두 알고 있어야 하는 이유다.
계율에서 재가신자들은 율장에서 전면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결코 부재하는 것이 아니고 소외된 것도 아니다. 그들은 승단생활의 후원자, 비평자, 보시자로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수행승들의 청정한 삶을 열망하는 자들이었다. 중요한 것은 수행승들이 그들의 신심을 악용한다던가 그들을 소외시키지 말아야 하고, 비난의 기회를 주지 말도록 처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은 수행승들로 하여금 주의 깊게 계율의 밑그림을 그리게 만들었으며, 만들어진 계율을 연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율장문헌에서 재가신자가 직접 계율의 대상으로 언급되지 않고, 재가신자의 율장이 따로 없는 것은 부처님의 재가신자에 대한 관용이라는 대자비도 있겠지만, 출가의 기본정신이 재가자의 생활에서도 지향하는 신체적·언어적·정신적인 제어의 보다 완벽한 제어를 통한 지극히 얻기 어려운 정신적인 지고의 상태를 성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빠알리율장≫의 빅쿠의무계율은 저지른 죄의 무거움의 정도에 따라 8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쑷따비방가의 상권(정통본1권=협회본3권)에는 빅쿠의무계율 가운데 승단추방죄법, 승단잔류죄법, 부정죄법, 상실죄법이 실려 있고, 하권(정통본2권=협회본4권)의 전반부에는 빅쿠의무계율 가운데 속죄죄법과 중학죄법과 고백죄법과 쟁사죄법이 실려있고 그 후반부에는 빅쿠니의무계율 가운데 빅쿠니고유계율들이 실려 있다.
*역자 퇴현 전재성(退玄 全在星) 선생은?
철학박사. 서울대학교를 졸업했고,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13년차 회장을 역임했다.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 석‧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독일 본대학에서 인도학 및 티베트학을 연구했으며, 독일 본대학과 쾰른 동아시아 박물관 강사, 동국대 강사, 중앙승가대학 교수, 경전연구소 상임연구원, 한국불교대학(스리랑카 빠알리불교대학 분교)교수, 충남대 강사, 가산불교문화원 객원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한국빠알리성전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역서로는 <인도사회와 신불교>(일역, 한길사), 저서에는 <거지성자>(선재, 안그라픽스), 그리고 저서 및 역서로 <빠알리어사전> <티베트어사전> <금강경-번개처럼 자르는 지혜의 완성> <붓다의 가르침과 팔정도> <범어문법학> <쌍윳따니까야 전집> <오늘 부처님께 묻는다면> <맛지마니까야 전집> <명상수행의 바다> <디가니까야 전집> <신들과 인간의 스승> <앙굿따라니까야 전집> <생활 속의 명상수행> <법구경-담마파다> <숫타니파타> <우다나-감흥어린 싯구> <이띠붓따까-여시어경> <천수다라니와 붓다의 가르침> <초기불교의 연기사상> <십지경-오리지널화엄경>(이상, 한국빠알리성전협회)이 있다. 주요논문으로 <초기불교의 연기성 연구(初期佛敎의 緣起性 硏究)> <중론귀경게무외소연구(中論歸敬偈無畏疏硏究)> <학문범어(學問梵語)의 연구(硏究)> <범파장음성론(梵巴藏音聲論)> 등 다수가 있다.
첫댓글 전세계 경사네요.
전박사님 큰 일을 해내셨습니다.
우리나라 불교역경사에 기념비적인 업적입니다.
아울러 율장을 쉬운 우리 말로 번역하여 승단이 청정해지도록
사부대중이 노력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