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러니까 이번 설날, 내가 태어난 고향의 내집터에서 어렸을 때처럼 그렇게 그 높은 집에서 아래를 굽어보며, 다시 한 번 그 아름다움의 절정에 반하고 눈맞춤 하고 나서, "그렇지! 바로 이곳이 나의 삶의 원형이었어! 내 글쓰기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곳,
바로 이곳에서 시작하면 될 거야! 나를 찾아가야지. 그래서 나를 설명해 내고, 내 가족을 설명해 내고, 내 조상을 설명해 내면서 내뿌리를 찾아가고, 그래서 내 삶을 치유해야지! 내 가족의 삶을 치유하고, 내 자식들, 내 후손들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도록 해야지!" 했었더랬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고 주안점을 두고 있는 서구청장님의 의지에 힘입어 이루어진 <두드림 서구평생학습관>의 한 강의인, 이계양박사님 진행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제 1강에서 <'제1주제 "나"-명명철학(김진섭)의 글>과 박사님의 강의를 통해, 이름의 중요성과 그를 통해 나를 찾아가는 여행의 방법을 배운 후, 이렇게 그 시작을 할 수 있었다.
익명성으로 살기를 그렇게 좋아하는 내게 나를 드러내는 글을 쓴다는 의미에 대해 여러 번 생각을 했고, 그 방법, 시기, 필요성, 의미 등에 대해 미처 자신에게 동의를 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렇게 숙제를 하면서 선뜻 밀려 내게 된 이 글이 앞으로 내게 어떤 삶의 의미가 될지 나는 감히 모른다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래서 그만큼 두렵고 생경스럽다.
사실, 그 동안 한 번도 내 이름에 대하여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너무 흔한 이름이고, 시골에서 1남 3녀에서 차녀였고, 오빠를 대학보내기 위해 소가 송아지를 낳는 것이 중요한 농사꾼의 집이었으며, 또 부모님의 삶의 모습을 봤을 때, 거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가치를 찾을 수 없었고, 지금 다시 그 이름의 의미를 반추해도 마찬가지다. 지금 그 평범한 이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 동안 내 삶이 남달라 스스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정도의 삶을 살았을 때 가능한 일이겠지만, 마찬가지로 그것에도 미치지 못하니 다시 그 이름은 평범속에 갖히게 될 수 밖에 없다.
이름을 찾아 기억의 원초적 뿌리를 회상해 보니 어렸을 때 그 어린 눈에 작약꽃이 그렇게 예뻐보였는데, 집 앞 정원에 작약꽃이 피어 있었것을 내가 아마 꺾었지 싶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소 깔(그때는 '꼴'의 사투리가 '깔"이었다)을 낫으로 빈 후 그 소깔을 담아오는 망태기에 나를 담아 시골 재래식 화장실에 빠치려고 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내가 작약을 꺾은 것이 두려워 그렇게 할아버지에게 혼날 것이 두려워 스스로 상상한 것인지, 이니면 진짜 그랬는데 나의 두려움의 무의식이 그것이 사실이 아닌양 방어기제를 작동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상상력의 산물인지 모르나, 그 생각이 제일 먼저 스쳐갔다. 중요한 것은 어렸을때부터 그렇게 사랑받고 귀여움을 받는 아이는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 이름을 내 자신이 작명해 보기로 한다. 내 고향 마을의 이름과 비슷하고 너무나 당차고 아름답고 시적 고고함이 넘치는 여인인 황진이를 따라 김황진이라 부를까 싶기도 하고, 너무나 당차고 강한 여인인 <토지>의 서희를 따라 '김희'라 부를까 싶다가 웬지 언어 뉘앙스가 영 아니라서 관두고, 읽다 만 <혼불>의 그 원형의 어머니의 모습을 할까, 그 손주 며느리로 할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 이름이 무엇이건간에 내가 짓고 싶은 이름의 이미지는 그렇게 강하고 당차게 살아가는 여성의 이미지이다.
이번 첫 강의에서 이계양박사님은 아모레 퍼시픽 서경배회장을 언급하면서 '내 인생에 내 이름을 거는 재단'을 만드는 비전에 대해 얘기하셨을 때, 그리고 내 이름의 뿌리를 찾아 갔을 때, 선뜻 드는 생각이 아직도 남성들 언어와 세계에 갇힌 여성들의 삶의 아픔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즉, 내 이름의 뿌리를 찾는 과거적 회상에서도 나에게 내가 미안한 아픔이 느껴지고, 또 성공이라 불리는 미래적 비전에서도 그 재단을 이룰 정도가 되려면 이땅에서 여자가 아닌 남자로 살면서 사회생활을 했어야 꿈꿀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생기기에 또 다시 배제되는 아픔을 느낀다는 것이다.
밝고 맑게 출발하려는 글이 본의 아니게 어두워져서 영 말이 아니다. 그러나 글을 치유적 힘이 있기에, 그리고 삶에는 많은 부분이 시대적 배경과 함께 하기에, 서운해 하지 않고 다시 자신을 곧추 새우며 삶의 진실을 여는 발돋움을 계속 하려고 한다.
첫댓글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하하를 찾아 뜻깊은 글까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글도 잘 읽었습니다.
알고 계시리라 여겨집니다만 하하문화센터는 월.화요반으로 나뉘어 주1회 수업을하고있으며 매월 산행과 씨네가 있답니다.
귀한 시간을 내시어 방문,참여해보시기를 권합니다.
어떤 분이실까 궁금하기도하고 하하카페를 통해 자주 뵙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잘 읽고 감사드립니다.제가 무어라 판단할 수 없을 결코 범상치 않은 글의 모양새에 감동합니다.부럽습니다.^
2010년 9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시작되어 오늘의 *하하문화센터를 탄생케 하였습니다.나를 찾아가는 일 중, 내 이름의 의미를 숙고하며 하하를 지지 삼아 반추와 나아갈 바를 일보일보하고 있습니다.아레테김님의 이름에 대한 생각,성장 환경등 공감하며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통해 글에서 처럼 진실한 삶으로의 발돋움이 되시길 빌겠습니다.
제 글을 봐 주시고 댓글까지 올려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계양 박사님께서 수업시간에 이 글에 대해 수정해 주셔서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수정한 글을 제 파일에 저장하여 두었고, 이 글들은 앞으로 제 삶의 훌륭한 자양분들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