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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그 자체가 매우 모순적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차별주의자가 선량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은 차별이 보이나요?’라는 제목의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내 자신 그동안 살아오면서 무의식적으로 행했던 행동이나 언어들이 누군가에게는 차별적인 것으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자각하게 되었다. 인권에 대해서 충분히 고민하며 살았던 저자 역시 누군가의 말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고 한다. 토론회에서 무심코 했던 ‘결정장애’라는 표현, 그리고 ‘왜 그런 표현을 사용했느냐’는 다른 이의 조심스러운 언급이 이 책을 집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행동이나 언어들이 누군가에게는 특권처럼 비춰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인권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는 현실을 고려하면서,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들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뱉었던 언어들이 실상 누군가를 차별하는 의미를 지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언행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저자는 그러한 점들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지적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개개인의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탄생’이라는 1부의 내용을 통해서, ‘서는 곳이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떠올려보도록 한다. 내가 아닌 상대방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것, 그것이 이른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관점이라고 하겠다. 스스로 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강변하면서, 정작 자신의 언행은 차별을 당연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할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엄연히 존재하는 차별이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끼는 현실을 저자는 ‘차별은 어떻게 지워지는가’라는 2부에서 설명하고 있다.
최근 졸업사진으로 흑인분장을 했던 모 고등학교 학생들을 향한 ‘인종차별’이라는 논란, 그리고 이에 대해 지적했던 외국 출신 연예인에 대한 격렬한 비난이 이어졌던 사실을 떠올려보자. 아마도 흑인분장을 했던 학생들은 그 사진이 사회적 논란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졸업을 앞두고 재미있는 사진을 남기겠다는 것이 그들의 애초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보면서 누군가 기분이 나쁘고 심지어 분노를 느끼게 되었다면,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선량한 차별’로 인식될 수 있다. 아울러 ‘능력별 수업’을 내세우면서 학교 현장에서 ;우열반‘을 당연시하는 태도 역시 ’평등을 가장한 차별‘이라고 평가할 수가 있는 것이다.
행위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상대방에게 ‘차별적인 언행’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유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저자가 강조하는 내용이다. 따라서 3부의 제목처럼 ‘차별에 대응하는 우리들의 자세’를 세심하게 헤아리는 것이 전제되어야만 할 것이다. 최근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에 맞서 특정 종교 세력의 일부에서 이에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구호나 논리를 들어보면, 극렬한 혐오표현과 차별을 조장하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행복하게 살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그들의 주장이 오히려 우리 사회의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나의 생각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타인의 생각을 먼저 존중해야만 한다. 자신의 신념만이 옳고 그에 반하는 생각은 다 그르다는 태도는 진정한 종교인의 자세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환대하고 함께 하는 열린 공동체로서 ‘우리들’을 만들면 좋겠다.”는 저자의 주장에 충분히 공감한다. (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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