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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을 제외하면, 글은 전혀 없고 단지 그림으로만 그 내용을 채우고 있는 책이다. 세밀화로 이뤄진 섬세한 그림도 좋았지만, 그 내용 또한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동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정작 그것을 통해서 외형만을 보고 상대를 판단하는 그릇된 인간관계의 면모를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커다란 몸집의 곰은 인간에게는 두려운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곰이 데려간 새장의 새는 누군가에게 보호받아야할 존재처럼 인식된다. 그러나 위협적이라고 생각되었던 곰은 집의 새장에 갇힌 새에게 하늘을 마음껏 날 수 있는 자유를 주려는 따뜻한 마음을 품은 존재인 것이다.
그림을 통해서 생각해 본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눈이 쌓인 겨울철의 어느 날, 곰 한 마리가 아마도 별장인 듯한 산 속에 자리 잡은 집에 찾아든다. 주변에 눈이 쌓인 숲에서는 도저히 먹이를 찾을 수 없어서, 외딴 산장을 찾은 것이라 짐작된다. 집안에 들어가 선반에 놓였던 꿀단지를 깨뜨려 먹고, 어디선가 들리는 새의 지저귀는 소리에 이끌려 새장이 걸린 곳으로 향한다. 그 소리를 듣다가 갑자기 개 짖는 소리가 들리자, 곰은 새장을 물고 달아나기 시작한다. 사냥꾼과 개가 맹렬하게 추적하지만, 곰은 덤불을 헤치고 외나무다리를 건넌 후 다리를 무너뜨려 더이상의 추적에서 벗어난다. 새장을 입에 물고 달아나는 곰과 그들을 뒤쫓는 사냥꾼과 개의 모습들이 매우 역동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윽고 그려지는 새장을 물고 어디론가 향하는 곰, 주위의 동물들의 시선에 비친 그 모습이 제시되기도 한다. 때론 족제비가 나타나 새장의 새를 엿보기도 하지만, 곰에 의해 쫓겨 달아난다. 자연을 배경으로 그려진 곰과 새의 모습들은 조금은 평화롭게 그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장을 물고 산 정상에 오른 곰은 새장의 철사를 물어뜯어 , 마침내 새는 새장에서 벗어나 하늘을 날기 시작한다. 자유롭게 나는 새를 보내면서, 뒤돌아서는 곰의 모습과 하늘을 나는 새의 모습이 이어지면서 책의 내용은 끝난다.
이어지는 다음과 같은 저자의 말 또한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모든 순간,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살고 있습니다. 틀 안에 갇힌 시선은 서로간의 오해를 낳고 미워하며 때로는 이유 없이 싸움을 만들기도 하지요. 어쩌면 서로 친구가 되길 원할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내가 만들어낸 공간 안에서 누구나 마음껏 상상하고 느끼길 바랍니다." 새의 지저귐을 듣기 위해 새장에 가두어 키우지만, 그것은 누구에겐가 억압이고 폭력일 수 있음을 저자는 그림을 통해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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