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수업 후기.hwp
과학샘의 토론수업 도전기
남악중학교 2년차 과학선생님
1. 토론수업을 시작하기까지
어느 날 문득 내게 되물었다. ‘지금 이대로 괜찮은가?’ 첫 발령 때의 두근거림은 1년 만에 사라진 지금, 습관처럼 하루하루 수업하고 있다.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고, 열심히 수업해왔다. 아이들 수준에서 최대한 즐겁고 밝은 분위기 속에서 수업하며 스스로 잘 해내고 있다고 안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과연 지금 이대로 괜찮을까? 그 생각이 이번에 처음으로 머릿속을 지나간 것은 아니지만 의미있게 다가온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연이어 떠오르는 단어. ‘매너리즘’.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는 이제야 지난 1학기를 되돌아보니 보이는 것은 잘하고 있다고, 이대로 해나가면 된다고 스스로를 속이며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나였다. 나는 1년 만에 전통적인 강의식 수업을 하는 괴물로 변해있었고 그동안 배우고 공부했던 수많은 수업기법은 잊어버린 채 하루하루 수업하고 버텨가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개선하고 싶었다. 마침 지금 진도 나가는 단원이 내 전공이었던 생명과학인 만큼 기회는 지금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개선해야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개선을 위해 고민하고 반성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왜 그랬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무작정 토론수업을 해보고 싶었다. 아마도 작년에 정종삼 선생님께서 토론수업을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떠올랐던 모양이다. 사실 교생 때 나를 담당하시던 선생님께서 나에게 예고 없이 토론수업을 시키는 바람에 준비가 부족했던 당시엔 처참한 수업을 하고야 말았고, 토론수업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갖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수업을 해봐야겠다고 확정하기에는 많은 고민과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미 마음먹었고, 지금은 정종삼 선생님이라는 든든한 지원자가 있기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도전이 없으면 실패도 없지만 성공도 없지 않던가.
2. 토론 수업의 준비
무작정 정종삼 선생님을 찾아갔고 도움을 요청했다. 토론수업에 대한 지식이 너무 부족해서 뭘 질문해야할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우선은 선생님의 수업에 함께 참여해보고 싶다 말씀 드렸고,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수업 참관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초반에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 방법부터 참여하지 않는 아이들도 참여시키는 방법, 발문하는 방법, 아이들의 의견을 들어주는 방법, 되질문 하는 법, 의견을 정리하는 법, 새로운 논제거리를 던져주고 사고를 유도하는 법, 그리고 아이들의 답변을 기다리는 방법까지. 모든 게 임용준비하면서 교육학 책에서 공부했던 내용이었다. 나에겐 죽은 지식이 정종삼 선생님께는 살아있는 지식이었다. 지식의 가치는 절대적이지 않고 습득하고 적용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느꼈다.
참관의 횟수가 많아지면서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부분도 보이게 되었고 새로운 것들을 계속해서 배울 수 있었다. 특히 토론 수업을 앞두고 가장 두려운 것은 아이들의 사고가 정지해서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순간이 오거나, 암묵적인 의견합의로 인해 반론이 나오지 않고 끝나가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었다. 3학년 8반이 내가 걱정하던 분위기로 흘러갔다. 자발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그마저도 이야기를 하던 사람만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정종삼 선생님은 계속해서 기다려줬고 다른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기회를 주셨다. 선생님은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다. 기다려주고, 주제를 상기시켜주고, 입장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등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렇게 나의 토론 수업은 하나씩 준비가 되어갔다.
하루는 정종삼 선생님께서 찾아오셨다. 더 좋은 수업을 하고 싶은 나를 위해 일부러 수업 시간에 아이들의 의견을 물어주셨다. 도덕수업과 과학수업의 차이점에 대해 적어준 아이들의 노트에는 이미 스스로도 알고 싶었지만 절대로 마주하고 싶지 않던 나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번 토론수업을 발전의 기회로 살리기 위해 스스로 되뇌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어찌했는지가 아니라,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필사적으로 자신을 다독였다.
정종삼 선생님께서 빌려주셨던 책이 있다. 마이클 샌델의 생명윤리에 관한 책이었다. 읽어보면서도 이미 아이들이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 책을 통해 내 스스로가 지식적으로 충전됨을 느꼈고, 이로 인해 토론 중 아이들이 어떤 의견을 말해도 당황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토론 수업의 방향이 보였고, 준비가 차근차근 되었다. 그러면서 자신감도 생겼다. 오히려 이제는 어서 토론수업을 해보고 싶을만큼 기대될 정도였다.
3. 토론 수업 시작
첫 토론 수업의 문을 열면서 아이들의 양해를 구했다. ‘나는 토론수업이 처음이라서 성공적인 토론수업을 하기에는 힘들 것이란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나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힘든 선택을 했다. 하지만 너희들은 이미 많은 토론 수업을 해봤으니 나를 도와주었으면 한다.’ 아이들은 오히려 환호하며 적극적으로 나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5-6명으로 나눈 소모둠을 짜고, 내가 직접 만든 a4용지로 한 페이지 분량의 간단한 시나리오를 나눠줬다. 소모둠별로 읽어보고 의견을 나눈 후 각 모둠별로 토론해보고 싶은 주제를 정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의외로 아이들이 내가 나눠준 시나리오를 진지하게 읽었다. 읽으면서 떠들까봐 걱정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소모둠끼리 의견을 나눌 때는 소극적인 모둠도 있는가 하면, 적극적으로 의견을 교환하는 모둠도 있었다. 나는 소극적인 모둠으로 먼저 달려갔다. 아이들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을 낯설어하는 것 같아서 먼저 읽어본 글의 내용을 물었다. 간단한 답변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 답변으로부터 질문을 시작했다. 수줍어하는 아이들도, 평소 수업에 참여하지 않던 아이들도 조금씩 입을 열어갔다. 아이들이 사고하기 시작한다고 느낄 때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리고 다른 모둠도 모두 돌아보며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봤고 그때그때 질문과 설명을 섞어가며 피드백 해줬다. 정해진 시간이 지난 후 각 모둠별로 토론해보고 싶은 주제를 하나씩 들어보고, 각 모둠의 토론 주제를 통합하고 정리해줬더니 1-2개의 토론주제가 남았다. 이 주제를 가지고 다음시간에 토론을 본격적으로 해보기로 하고, 첫 토론 수업은 끝이 났다.
며칠 뒤 이어진 토론 수업의 두 번째 시간. 본격적으로 토론에 들어가기 전에 농담과 함께 읽어봤던 내용을 상기시켜주고, 지난 시간에 선정된 주제를 다시 한 번 알려줬다. 곧 바로 소모둠끼리 토론 주제에 대해서 토론에 들어갔다. 언제나 이 순간은 서로가 서먹해서 조용하다. 이 때 조금만 도와주면 아이들은 금새 토론에 열을 올린다. 저번 시간처럼 토론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모둠부터 찾아갔다. 서먹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간단한 질문부터 시작해서 주제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물어봤다. 의외로 아이들이 잘 따라왔다. 한 모둠에서도 의견이 갈리면 각 진영이 생각해볼 수 있는 반론거리를 각자 던져줘서 사고를 촉발했고, 한 모둠에서 의견이 합의가 이루어지면 내가 직접 그 의견을 반론해나가며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찾도록 다독였다. 물론 여전히 무기력하고,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도 가끔 있었지만 확실히 전통적인 강의식 수업에 비해 훨씬 그 수가 적었다.
소모둠 토론이 끝나고 전체 아이들이 모두 함께 토론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주제에서부터 접근하여 아이들의 발표를 유도했고, 정종삼 선생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기다려주었다. 기다려주자 아이들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웃어주며 모든 내용을 수용해주자 스스로 발표하는 아이들이 늘어났고, 어떤 때는 발표자의 순번을 정해주기도 했다. 내가 약간만 도와줬더니 아이들의 자발적인 에너지가 폭발하는 느낌을 받았다.
4. 토론 수업 후
아이들의 에너지에 새삼 놀랐다. 교육학 책에서 보던 이상적인 수업을 어느 정도 비슷하게 해볼 수 있었다. 배우고자 하는 아이들은 교사의 지도와 통솔이 아니라 약간의 도움이 필요할 뿐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고, 내가 지식을 삽입시켜주는 역할이 아니라 아이들의 사고를 촉발해주는 역할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모든 수업을 토론으로 진행하기에는 무리고, 아이들의 참여를 이끌 수 있는 수업은 토론수업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토론 수업을 통해 토론 수업에 대한 스킬보다도 더 중요한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이제는 아이들의 사고를 돕기 위해 질문을 어떻게 해야 할지, 수업 구성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하나 신경이 쓰인다. 그만큼 내 스스로가 성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참여형 수업에 자신감이 생겨서 다른 재미있는 수업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현재는 교과서에 있는 대단원 마무리 문제를 jigsaw 토론수업으로 진행해보려고 계획에 있다.
교사도 편하고 아이들도 즐거운 수업. 아이들이 많은 것을 대충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도 정확하게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수업. 스스로가 탐구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수업. 이러한 수업이 좋은 수업이고, 이렇게 할 수 있는 교사가 좋은 교사이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끝으로 성공적인 토론 수업을 위해 적극적으로 도와주신 정종삼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말씀을 전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