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조운문학상 수상작>
우수雨水 무렵외 5편
김숙희
발자국 소란하다
우왕좌왕 지나온 길
진눈깨비 섞어 친다
붕어빵 반죽처럼
다저녁 꽃샘바람이
발꿈치를 드는 나이
노가리
말의 뼈로 들이치는 겨울비 내리는 날
텅 빈 A4용지 책상 앞에 펼쳐 놓고
시 한 줄 쓰다 지우며 질겅질겅 씹어 보는
우선 멈춤
십여 년간 잘 구르던 자동차가 멈춰섰다
보닛을 열어 놓고 엔진 쪽을 바라본다
결혼도 이와 같거니 이제는 안 되겠다
비 내리고 바람 불어 언 땅이 풀릴 때쯤
예서제서 돋아나는 새싹들을 봤잖은가
고목은 절정일 때에 꽃을 달아 내놓듯
현저동 골목
꽁치나 간고등어, 왔어요 싱싱한 갈치
바람까지 우쭐대며 저무도록 소란해도
아무도 나오는 사람 볼 수 없던 그 길목
떼어낸 배춧잎처럼 지레 시든 얼굴들만
단칸방 반쯤 열고 엉덩이를 들썩이고
동전만 세어 보다가 한잔 물로 위로받던
저녁놀 등에 지고 집으로 가는 길에
고단한 어깻죽지 부딪히며 정들던 곳
달큰한 시래깃국이 겨우내 넉넉했다
기여?
갑자기 교무실이 웃음바다로 출렁출렁
5학년 수학 문제 설명을 하시고는 '기여?' 질문을 던졌는데 백 스물넷 눈동자가 돌멩이가 되었다나 차근차근 친절하게 설명을 다시 한 후 '기여?' 또다시 물었다지 아, 글쎄 이번엔 얼음이 되었대요. 동그랗게 얼어버린 눈동자가 자신을 무시하듯 쳐다보고 있더라나 뭐라나 머리끝까지 화가 난 선생님이 '기여? 안 기여?' 칠판까지 두드리며 언성을 높였더니 똑똑한 반장 녀석 '얘들아, 빨리 기어!' 반장 따라 우르르 아이들이 몰려나와 땅강아지 모양새로 설설 기었다네
아이들 탓만 했더니 내가 외려 몰랐네, 표준말을!
소운동회
"내일은 소운동회, 실내화만 신고 오기"
알림장 적으라고 기다리는 동안에 맨 앞자리 민애가 울고 있네, 훌쩍훌쩍 울고 있네, 깜짝 놀라 어디 아프냐고 이마에 손을 얹자 그만 울음보를 터뜨리네 잘 익은 봉선화 씨 단박에 터지듯이 어깨까지 들썩이네 민애를 끌어안고 왜 그러니 물어보다 주책없이 눈치 없이 내 웃음보 터졌네,
"선생님, 소가 무서워요! 난 싫어요 소운동회…"
- 《시조시학》 2024. 봄호
첫댓글 김숙희선생님!
조운문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