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본인도 모르게 터치가 되면서 지워져버려 다시 올렸습니다.
이른 아침 6시 카톡 한다.
열어보니 큰 아들이다. “일어나셨어요?” 설마 하면서 “응‘ 하자마자 전화가 왔다. ‘저희들 새벽 4시에 병원에 들어 왔어요. 또 연락드릴게요. 서둘지 마시고요’ 한다. 주말로 예상했는데 갑자기 가슴이 콩닥콩닥 거린다.
잘 버터야 할 텐데~
무엇부터 해야 하나! 그냥 서성거려진다.
새벽에 들어갔으니 저녁쯤에나 되지 않을까! 아니야 그래도 미리미리 준비한 것들을 하나둘씩 챙기자. 미역 참기름 김치 반찬 등~ ~
11시가 되어서 ‘무통주사를 놓아서 덜 힘들어해요.’ 라는 전화를 받고 난 그만 잠이 들어 버렸다. 전화벨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떠 보니 시계는 어느 새 오후 4시에 가깝고 아들은 공주가 2시 55분에 태어 낳고 모두들 건강하니 서둘지 마시고 차분히 내일 오시라고 한다.
어떻게 하지! 우선 정신을 차리고 둘째한테 전화를 걸어 물어 보았다.
형이 내일 오라는데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아닙니다. 회사 들어갔다 갈 테니 준비하세요. 오늘 가야 합니다.’ 한다.
무슨 일이든 차분하고 느긋한 큰 아들에 비해 무엇이든 행동이 빠른 둘째 덕분에 정신없이 짐을 챙기고 5시에 출발을 했다.
‘위대한 탄생 여성병원’ 네비에 입력하고 신생아 면회 마지막 시간 7~8시 둘째는 병원이름도 웃긴다며 넉살을 부리며 조카 얼굴을 봐야 한다며 자꾸만 속도를 올린다. 이러다가는 좋은 일에 일 날까 겁이 나서 자꾸만 말머리를 다른 곳으로 돌려 보지만 아마도 도착 할 것 같다며 잘 왔는데 부산 길은 아무래도 서투르다 보니 마지막 들어가야 할 곳을 놓쳐 버려서 아쉽게도 5분 늦게 도착하고 말았다.
마중 나 온 큰 아들을 따라 병실로 들어가니 사돈네 식구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시며 축하 해 주시는데 며느리 얼굴을 보는 순간 얼마나 힘들었는지 어머님하며 눈물이 글썽거린다. ‘고생했다, 엄마 되기 힘들지! 아기도 너도 건강하니 참 좋구나! 하며 며느리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근 35년 만에 태어난 아이 그도 공주, 아들만 키워온 나로서는 그냥 설레 일 뿐 잠시 내가 큰 아들을 낳던 그 때가 눈앞을 스치고 지나간다.
결혼하고 곧 아기를 갖고 싶어 하던 며느리
딸을 갖고 싶어 하면서 딸을 낳으면 ‘어머님은 서운하지 않으시겠어요?’ 라고 솔직하게 묻던 며느리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아기를 낳아야 한다면서 철두철미하게 준비하던 예민한 며느리가 바라던 공주를 낳았는데 무얼 더 바라겠는가!
오직 건강하게 그리고 마음이 곱고 예쁘게 자라기를 바랄뿐....
다음날 11시 공주와 상면하기 위해 신생아실로 달렸다.
온통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그 틈에 끼어 산모의 명찰을 내 보이고 나니 어제 태어난 공주가 유리창 넘어 신생아 바구니에 눕혀졌다.
아이는 목욕을 했는지 잠들어 있다가 한 참 뒤에 눈을 떴다.
‘나 할머니야 만나서 반가워! 우리 잘 지내자! 건강하게 자라야 돼!’
유난히도 까만 눈동자에 눈이 큰 것 같고 코도 오뚝한데 아들은 자꾸만 얼굴형이
가름해야 한다고 누굴 닮았냐고 묻는데 나는 아직 잘 모르겠는데 하니까 사돈께서
‘아빠를 많이 닮고 열굴 형은 엄마를 닮았어요.’ 하신다.
마침 화요일 날 태어난 덕분에 아들은 일주일 쉬게 되었고 처가댁 식구들도 많고 조리원에세 산후조리를 하게 되니 나는 할 일도 없었다. 점심은 이미 사돈댁에서 예약을 해 두었다기에 나는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 올 생각이었는데 며느리가 자꾸 내일 가시라고 막는다. 생신 때도 찾아뵙지도 못하고 멀어서 자주 못 오시니까 오신 김에 하루라도 더 주무시고 맛있는 것도 잡수시고 가시라고 하는데 차마 뿌리치고 못하고 있는데 사돈께서 나를 향해 한마디 하셨다.
‘사돈! 아들 며느리 부산 보내고 많이 울었지요? 왜 안 울었겠어요. 내가 압니다. 그러나 너무 걱정 마시고 오신 김에 아들하고 저녁부터 내일까지 이야기도 많이 하시고 데이트를 하고 가세요. 며느리는 우리가 잘 돌 볼게요.’ 난 그 말에 가슴이 뭉클 해지며 속 깊은 배려에 감사할 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1년이라도 엄마 곁에서 지내준 아들이 고맙기도 했지만 막상 떠나보낼 때는 왠지 텅 빈 것 같아서 힘든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러나 지금은 온통 사돈한테 다 미루어 버리고 편해졌으니 사람은 참 간사하기도 하다.
아들과 나는 차도 병원에 둔 채 병원을 나와 둘이 손잡고 부산의 밤거리를 걸으면서 저녁을 먹고 차도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끝이 없다. ‘행복이 무엇인지! 가장이 무엇인지! 부모가 어떻게 되는 건지! 이제야 조금은 알 것도 같은데 그러나 아직은 멀고 먼 길 위에 서 있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엄마 아빠가 자유롭게 키워 주신 것처럼 저도 아이를 그냥 자유롭게 그러나 바르게는 키울 겁니다.’한다.
그래 모든 것은 순리대로 하면 별 탈은 없으나 순리를 거슬리면 문제가 생기니까 순리에 따라 살아라. 그게 정답인 것 같아~
셋째 날 11시 면회시간
아이는 하루사이인데도 조금 더 뭐가 달라진 느낌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 해 보니 아이도 하루에 세 번의 손님들을 맞이하려면 힘도 들고 스트레스 받겠다 싶었다. 자려고하면 보듬어다 면회를 시키니~
엄마는 자주 보니까 하루에 한 번만 면회하면 어떨까!
아들과 나는 차를 타고 부산을 빠져나와 울주군 기장이라는 곳을 찾았다.
며느리가 점심을 예약 해 놓았다고 해서 1시간을 걸려 바닷가가 보이는 한적한 해변가에 자리한 식당 통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바닷가의 풍경과 방파제 그리고 떠 있는 나룻배 육지와는 다른 느낌이다.
장어구이를 맛있게 먹고 찻집에 들려 차도 한 잔!
공주가 태어난 덕분에 할머니가 되어 아들과 스스럼없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이제 우리는 헤여져야 할 시간이다.
공주아빠야! 열심히 살자.
돌아보면 언제나 미완성인 삶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하나의 바람을 가슴에 안고 후회하는 삶은 살지 말자.
고속버스를 타고 떠나는 나에게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며 서 있는 아들!
난 네가 지금도 아련한 기억 속에 어린애 같은 때가 있는데 어느덧 너는 40를 바라보며 아빠가 되어 있구나!
일찍부터 힘든 일이 자꾸만 부딪칠 때면 어떻게 도와 줄 수가 없어서 마냥 기다리고만 있던 엄마, 그러나 너는 언제나 이탈하지 않고 힘들게 원점으로 돌아와 다시 시작할 때 그래도 한 가지 바람은 네가 하고 싶은 것, 네가 살고 싶은 삶을 살기를 원했고 남에게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삶을 살기를 기대 했었지! 이제 엄마는 안심한단다. 네가 들려준 이야기 속에서 너의 환한 웃음 속에서 너의 삶을 읽을 수 있었으니까 더도 덜도 말고 그냥 그렇게 잘 살기를 바랄게~
예쁜 네 보금자리에서 사랑하는 네 아내와 네 딸과 함께~
첫댓글 예전에 스마트폰으로 불편함을 무릅쓰고 글을 거의 다 올릴 쯤, 갑자기 백지가 되어버려서 눈물까지 난 적이 있었어요.잉꼬님 황당하셨겠어요. 이제 공주님 탄생 감격이 조금은 완화되셨겠지요.예쁜 이름도 궁금하고 첫 이레가 되지않았나요? 날마다 날마다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 보고 싶으셔서 눈에 진물이나 안 나시려나.예쁘고 귀한 공주님 토실토실 건강하게 잘 자라길 함께 기도합니다.
이따금 주머니에 폰을 넣고 다니는데 인터넷에 접속이 되면 하하문화센터가 바로 떠요. 그런데 어떻게 되었는지 저도 모르게 지워져 버려서 댓글 달아 주신분들에게 너무 죄송했어요. 다시 올리기는 했지만 그저 죄송 할 뿐 입니다. 아기 이름은 김하연이고요. 17일이면 두이레랍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자라고 있어요. 염려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글 보면 '나는 언제?' 하며 질투나게 부럽다. 아이 잉꼬는 할머니 잉꼬를 닮았을까? 안 보아도 밝고 맑은 소녀 같은 할머니 잉꼬 얼굴이 오버랩된다. 진심으로 할머니되심을 추카추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