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경제학자]폰 노이만과 미당 서정주-슬픈 시대의 천재란 어떤 존재일까
어떤 사람의 천재적인 능력과 사상이 꼭 하나로 포개어지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런 능력이 오용되는 경우를 적잖게 마주한다. 현대경제학의 20세기는 1903년 12월 존 폰 노이만(1903∼1957)의 출생과 같이 밝았다. 폰 노이만은 미시경제학의 한 갈래인 게임이론을 만들었다. 협력, 갈등, 대립 등 개체 간의 상호작용을 수학적으로 나타내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폰 노이만은 이를 경제행동에 국한해 이론을 만들었다. 게임 참여자들은 자신의 보상을 가장 크게 만드는 전략을 선택하는데, 이들은 상대방이 ‘합리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참여자들의 행동과 사회가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균형을 다룬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존 내쉬, 201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장 티롤도 게임이론에 천착했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천재인 폰 노이만은 게임이론만 직조한 게 아니라 수학을 쓰는 모든 학문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컴퓨터의 기본 얼개(폰 노이만 컴퓨터)를 제안했고, 핵폭탄의 기본원리를 계산하기도 했으며, 양자역학에 수학의 언어를 입혔다.
존 폰 노이만(왼쪽)/위키백과, 미당 서정주(오른쪽)/경향신문 자료사진
폰 노이만이 현대경제학의 선구자이듯, 우리 현대시·서정시는 미당 서정주(1915∼2000)와 함께 열렸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귀촉도>, <국화 옆에서>, <추천사>, <푸르른 날> 외에 1000여편이 넘는 작품을 남긴 그는 이 땅의 그 어느 시인보다 천부적인 능력을 지녔다. <맥하>는 관능적으로 생명력을 절절하게 노래하는 시다. “黃土 담 넘어 돌개울이 타/ 罪 있을 듯 보리 누른 더위-”에 “오매는 몰래 어듸로 갔나”라며 “땅에 누어서 배암 같은 계집은/ 땀 흘려 땀 흘려/ 어지러운 나-ㄹ 엎드리었다”고 찾는다. 그러면서도 “아름다움 배암……/ 을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여났기에, 저리도 징그라운 몸둥이라냐”로 시작하는 <화사>(花蛇)에서는 보들레르의 ‘악의 꽃’처럼 선악, 미추, 진실과 허위, 현실과 이상 같은 모순 속에 놓인 보편적 삶을 그린다. 미당은 우리 시대 최고의 서정시인임엔 틀림없지만, 그의 천재성은 안타깝게도 역사에 뻗대고 반해 왔다. 일제 말 친일작품을 발표하고, 이승만의 전기를 쓰고 전두환에게 시를 써 보냈다. 그의 시처럼 그도 사람인지라 빛과 그림자가 같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해방 후 그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시인이 많지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가슴 시린 부분이다.
폴 크루그먼의 말마따나 수학이 중요해지면서 경제학이 가치판단과 떼어져 ‘중립 과학’으로 변모되는 면이 있다. 이에 폰 노이만의 사상적 역이 컸다. 게임이론에는 수학은 가치판단과 별개라는 점이 녹아 있었다. 폰 노이만은 미국 망명 전의 경험으로 인해 반공을 강조하는 신념을 갖게 됐고, 핵폭탄에도 적극적이었다. “소련 폭격은 내일이 아니라 오늘 당장 해야 한다. 만일 오늘 5시에 폭격한다면 왜 1시가 아니냐고 되묻겠다”고 했고, “교토에 투하해야 한다, 일본인이 좋아하는 문화재가 많은 도시니까”라고도 말했다.
종이 위의 물체에 빛을 비출 때, 빛과 종이가 이루는 각도에 따라 그림자의 모양이 달라진다. 천재성의 빛이 종이 위에 남기는 그림자가 자꾸 엇나가는 일을 목격할 때마다 우리는 진심으로 슬프다. 미당과 폰 노이만은 분명 이 시대의 정상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슬픈 시대의 천재란 어떤 존재일까 하는 의문의 거울이며, 인간적 자기성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주는 존재의 그림자가 아닐까 싶다.
< 김연 (시인·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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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4&artid=201801081754181#csidx653980aa1f3073abf047d720dadd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