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잎 클로버가 전하는 메시지
김명림
올 봄,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빨간 불이 들어왔다. 특히 혈압과 당뇨가 높게 나왔다. 나이 먹으면 생기는 성인병이라고는 하지만 몇 년 사이 급격히 건강에 이상이 생겨 걱정이 되었다. 특히 사랑하는 남편을 암으로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보낸 뒤라 더 초조하고 불안했다.
그는 운동을 열심히 하고 건강도 철저히 관리했었다. 감기 한 번 걸리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 앞에서 무기력하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하인두암 4기’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놀라기보다는 그냥 어리벙벙했다. 건강한 남편이 그럴 리가 없다고, 오진일 거라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렇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급히 대학병원에 입원하게 된 남편은 독한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병행했다. 치료가 길어질수록 목안이 붓고 혓바닥과 입안이 입을 벌리지 못할 정도로 헐어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특히 음식을 넘기지 못하여 전복을 믹서에 갈아 채에 바쳐 끓인 묽은 죽을 물처럼 마시는데, 그것도 목으로 넘기지 못했다. 독한 치료로 상처가 생겨 아물면서 흉하게 목에 껍질이 벗겨졌다. 75킬로의 몸무게는 53킬로까지 내려갔다.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남몰래 가슴 쓸어내린 날도 많았고, 병실 창밖을 바라보며 눈물 흘린 일도 많았다.
남편은 힘든 치료를 받으면서도 살아야겠다는 의지와 신념으로 꿋꿋이 이겨 나갔다. 병원 의사들도 놀랄 정도였다. 진료를 받을 때마다 담당의사 표정이 밝아지는 걸 느끼면서 희망을 가졌다. 그리고 치료 6개월 만에 암세포가 사라졌다는 말을 듣고 남편과 나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서로 붙들고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무리 먹어도 몸무게는 늘지 않았다.
그 후, 석 달에 한 번 씩 정기 진료를 받기로 하고 집에서 요양 중이던 남편은 갑자기 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을 다시 찾았다. 여러 가지 검사를 통해 암이 재발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을 때,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암세포가 사라졌다는 진단을 받은 후 6개월 만에 재발된 것이다.
화장실 갈 힘도 없는 남편은 대학병원 진료 일주일을 앞두고 119 구급대를 불러 서산 중앙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며칠 후, 갑자기 폐렴이 오고, 호흡곤란으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 게 마지막이었다. 긍정적이고 삶의 의지가 강했던 남편은 발병 후, 1년 5개월 만에 아무도 임종을 지키지 못한 중환자실에서 홀로 쓸쓸하게 세상의 끈을 놓고 말았다. 그 형극의 시간을 어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체력이 약하긴 했어도 혈압과 당뇨는 정상이었는데, 남편이 떠나고 힘든 일을 겪으며 심적인 스트레스로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졌고, 몇 달간 밤낮을 뜬 눈으로 보냈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고 보니 몸무게가 8kg 이상 늘어 있었다. 내 몸 하나 관리 못하는 나 자신이 미웠고 원망스러웠다. 우선 체중부터 줄여야 했다. 그러자면 거기에 맞는 식단도 중요하고, 운동이 최고라는데, 나는 숨쉬기 운동만 겨우 하고 있었다.
27년 전, 교통사고로 연골 수술을 한 다리가 지금도 무겁고 아프다. 특히 겨울철이면 통증이 더 심하다. 그런 나를 남편은 운동부족이라며 시간만 나면 고약한 교관이 되어 데리고 다니며 운동을 시켰다. 운동이라야 기껏 걷기나 야트막한 산행이었지만, 평소 운동을 하지 않던 내게는 그것도 곤욕이었다. 그 당시 나는 다리뿐 아니라 허리도 많이 아팠다. 투덜대는 나를 달래고 때론 싫은 소리를 해가며 운동한 결과 제법 높은 산을 오를 수 있게 되었다. 그 기념으로 남편은 내게 제법 값이 나가는 등산화를 선물했다.
그 뒤로 계속 운동을 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건강이 다소 회복이 되자 운동은 다시 제자리걸음으로 돌아갔다. 이미 지나간 일, 후회하기보다 앞으로 계획을 세워야 했다. 목표를 정해 어디선가 방황하고 있는 건강을 되 찾아와야 한다고 다짐했다.
식단을 바꾸기로 하고 하루 만 보 이상 걷기로 했다. 식단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음식을 피하고 즐기던 라면과 커피, 무엇보다 야식을 삼가기로 했다. 식단을 바꾸기 위해서는 식성부터 바꿔야 했다. 아침엔 닭 가슴살과 야채샐러드로 간단하게 해결했고, 점심은 흰쌀밥으로부터 탈출하여 잡곡밥으로 준비했고, 평소 즐기지 않던 음식을 맛으로 먹기보다 건강을 위해 먹었다. 비타민과 오메가 3 같은 건강식품도 복용하면서 적극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충남에서 추진하는 ‘걷쥬’ 앱을 휴대전화기에 깔고 걷기와 계단 오르기, 그리고 유튜브를 보면서 내게 맞는 운동을 했다. 교통사고로 아픈 다리가 발을 떼지 못할 정도로 붓고 통증이 왔다. 발등과 종아리엔 파스로 도배하면서 무리하게 운동을 하다 보니 입술이 부르트고, 몸살도 심하게 앓았다. 그래도 멈출 수가 없었다. 운동량을 조금씩 줄였다 늘렸다 조절하면서 죽기 살기로 했더니 드디어 몇 달 만에 내 페이스를 찾을 수 있었다. 덕분에 걷쥬에서 추진하고 하고 있는 만 보 걷기 운동에 참여할 수 있었다.
내가 사는 곳은 운동하기 좋은 곳이다. 집 가까이에는 그야말로 자연이 자연스럽게 펼쳐져 있는 서산 종합운동장 가는 길과 풍전 저수지 길이 있다. 저수지를 빙 돌아가면 내가 농장이라 부르는 우리 밭이 있다. 왕복 4킬로쯤 되는 길을 걸어 다니며, 채소도 가꾸고, 풀을 뽑으며 운동을 하니 일석이조가 됐다.
걷기 운동을 하면서 육체뿐 아니라 정신건강도 좋아졌다. 생각이 깊을 때, 무엇인가 해결이 안 될 때, 하염없이 걸으면서 답을 찾는다.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꽃들에게 배우고, 때로는 새가 휘익 화살표를 던져 주고 날아가기도 한다. 점점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하고 6개월 만에 6kg 이상 감량되었다. 고혈압과 당뇨가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작아서 입지 못했던 옷을 다시 입게 되었다.
운동장을 몇 바퀴 돌며 땀도 식힐 겸 벤치에 잠시 앉아 쉬는데, 클로버가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살며시 다가가 한참을 눈 맞추고 일어서려는데 네 잎 클로버가 보였다. 그 뒤 매일 그곳을 찾아 속마음을 내려놓았더니 화답이라도 하듯 다섯 잎, 여섯 잎 클로버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느 날, 평생 한 번도 보지 못한 일곱 잎 클로버가 눈에 띄었다. 나도 모르게 손이 갔다. 집으로 돌아와 얼마 전에 출간하여 제일 먼저 사인해서 남편 사진 앞에 놓아둔 『내일의 안녕을 오늘에 묻다』 시집 갈피 속에 끼워넣었다. 남편이 빙그레 웃으며 일곱 잎 클로버의 꽃말처럼 당신에게 기적을 가져다줄 것이라며 열심히 운동하고 건강하게 잘 살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거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몇 년 동안 신발장에 고이 모셔두었던 남편이 선물한 등산화를 꺼내 신고 산행을 시작할 생각이다. 여행 가자며 내게 거금을 맡겼던 그 고약한 교관도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니 항시 나와 함께 정상에 오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