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과 고향을 떠나려고 정거장에 나와 기차를 기다리는 아들, 그 아들을 배웅하려 하는 아버지.
아버지는의 굳은 표정, 입에 물고 있는 담배 한 가치와 모자 챙을 움켜 쥐고 있는 거친 손에는
떠나보내는 아들을 향한 걱정과 쓰라린 마음이 드러나 있다.
노동복에 하얗게 센 앞머리, 검붉게 탄 얼굴이다.
반면 흰색 양복을 잘 차려 입고 상의 호주머니에는 노란 손수건이 꽂혀 있으며 붉은 빛 타이와 화려한 양말,
그리고 빨간 구두를 갖춰 신은 아들의 모습에서는 집을 떠나는 아쉬움은 전혀 없이
오직 앞날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차 들뜬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기차가 언제나 올 것인지 기다리는 아들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으며 시선은 아버지의 시선과 어긋나 있다,.
아들을 떠나보내는 아버지의 무거운 시선과 어서 기차를 타고 싶은 아들의 시선은 그렇게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다 .
보내는 자와 떠나려는 자의 심경을 나타내는 극명한 대조가 이 그림의 특징이라고 한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이제 청년은 그동안의 보금자리를 깨트리고 앞날을 향해 나아갈 마음만 가득하다.
(애써 키워놓아도 이처럼 품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것을....)
1894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14세 때 뉴욕 체이스 아트스쿨에 입학해 미술공부를 시작했고, 이어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와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서 공부했다. 18세 때에는 이미 전업화가가 되어 『보이스 라이프 Boys' Life』에서 일하게 되었다. 『보이스 라이프 Boys' Life』는 미국의 보이스카우트에 관한 도서를 출판하는 곳으로, 이곳에서 그는 청소년 출판물에 들어가는 다양한 삽화를 그리면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노먼 록웰은 1916년 그의 나이 22세 때부터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The Saturday Evening Post』에 표지 그림을 그렸다. 이 잡지는 당시 미국 최대의 판매부수를 자랑하고 있었으며, 록웰은 변모하는 20세기 미국사회와 미국인의 일상을 밝고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록웰은 47년 동안 이 잡지를 위해 322점의 표지를 그렸다. 그 외에도 수많은 광고와 초상화, 포스터 등을 그려 미국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1943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의회 연설에 영감을 얻어 '네 개의 자유'에 대한 그림을 그렸고, 그것들은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의 유명한 에세이와 함께 게재되었다. 그가 그린 《언론의 자유》, 《예배의 자유》,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는 가장 탁월한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이 작품들은 미국 전역에서 전시되며, 전쟁 자금으로 1억 3천만 달러의 후원금을 모으기도 했다.
록웰은 1963년부터 이후 10년 간 『룩 Look』이라는 잡지에 삽화를 기고했다.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 소박하고 정겨운 미국을 그려왔던 록웰은 이때부터 사회적인 이슈들을 다루기 시작했다. 그는 시민의 권리, 인종차별문제, 빈곤의 문제, 그리고 우주 탐험 등과 같이 당시 그가 관심을 가졌던 문제들을 주제로 다루었다.
1977년 록웰은 '생동감 있고 매력적인 인물'로 선정되어 '대통령 자유 메달 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수상했다. 그리고 1978년 84세를 일기로 스톡브리지 자신의 집에서 평화롭게 생을 마감했다. 미국 메사추세츠주(州) 스톡브리지에는 노먼 록웰 박물관이 있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록웰의 원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주요 작품에는 《언론의 자유 Freedom of Speech》(1943), 《탈주자 The Runaway》(1958), 《삼중 자화상 Triple Self-Portrait》(1960), 《미술품 감식가 The Connoisseur》(1962), 《우리 모두 함께 안고 살아가는 문제 The Problem We All Live With》(196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