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주의의 본질은 자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며, 자본을 투여하여 이익을 남기지 않으면 파산하는 결과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체제라고 하겠다. 그래서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자본을 투여하면 이익이 발생하는 것을 지극히 당연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자본의 이익이라는 것이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자본 잠식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간과하곤 한다. 자본주의에서는 누군가의 이익은 다른 이의 손실을 의미하는 이른바 ‘제로 섬’ 게임임을 전재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의 저자는 자본주의가 인류의 삶의 질을 향상시켰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발생한 ‘사소한’ 결함에도 불구하고 ‘최선’이라고 강조한다.
‘번영과 탐욕의 두 얼굴, 자본주의는 어떻게 진화하는가’라는 부제에서 분명히 알 수 있듯, 자본주의는 ‘번영과 탐욕’이라는 양면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저자는 자본주의의 ‘탐욕’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며 애써 그 영향을 최소화하며, 오히려 ‘번영’이라는 결과가 그 과정에서의 모든 결함을 상쇄할 정도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진화론은 물론 박테리아와 개미 혹은 벌들의 행동을 연구하는 생태학까지도 인용하여 자신의 논의에 끌어들이고 있다. 저자의 논리에 의해 당연한 것처럼 설명되는 방식이 나로서는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인류 발생 이전의 지질학과 관련된 지식과 고대로부터 자본주의 이전까지 발생했던 다양한 사례들은 저자의 논리 안에서 철저히 자본주의의 속성과 연결시키는 것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이다. 새로운 상품이 개발되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 과정에서 희생당하거나 손해를 본 사람은 어쩔 수 없다는 지극히 결과론적인 서술만이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본질적으로 자본주의는 소수의 자본가들에게 이익이 집중되면서, 대다수의 대중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그리하여 저자의 관점은 과거 소수의 20%가 지닌 경제력이 다수의 80%의 경제력과 비슷하다는 ‘20/80 법칙’이 자본가들의 탐욕에 의해 ‘10/90’의 단계를 넘어서, 이제는 ‘1/99’로까지 해석되고 있는 불평등한 현실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고 이해된다.
번역본의 제목으로만 보자면, ‘번영과 탐욕’으로 비유되는 ‘천재 자본주의’와 ‘야수 자본주의’의 두 측면을 적절하게 비교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원제는 자본주의라는 ‘야수의 천재성(The Genius of The Beast)’ 정도로 번역될 수 있다. 즉 자본주의는 야수(The Beast)이지만, 그 천재성(The Genius) 때문에 지속될 수 있다는 의도로 집필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책의 내용은 철저히 소수의 자본가들의 역할을 긍정하며, 그들로 인해서 손해를 보고 파산한 이들도 적지 않지만 ‘천재성(The Genius)’만큼은 인정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저자의 관점에서는 번역본의 부제처럼 ‘번영과 탐욕’이라는 자본주의의 상반된 두 얼굴에 대해서 공정하게 다룰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라고 여겨진다. 아마도 저자 역시 사업가로서 소수의 자본가에 속하기 때문에, 적지 않은 결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긍정하면서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라고 짐작된다.(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