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맛
작고 각진 결정체, 뽀얀 색 옷을 입었다.
고무래질로 모은 더미 위로 땡볕과 해풍 입김이 더해져 세상에 나왔다.
싱크대 위 작고 펑퍼짐한 녹색 옹기 속으로 ‘쏴아’ 소리를 내며 들어간다. 한 개 집어 혀끝에 올린다. 뒷맛이 달다. 과히 짜지 않으면서도 부드럽게 스며든다. 불현듯 사람들 마음에도 다양한 소금 맛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이 휙 스쳐 지나간다.
아침부터 서둘러 언니 집으로 향했다. 몇 해 전 시샘달에 사둔 소금을 건네주기 위해서다. 코로나 발생으로 우리 지역이 전 세계 매스컴에 오르내리던 때 사두었다. 베란다 구석에 나란히 누워있던 소금 자루를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했다. 김장도 배추 다섯 포기 하고 끙끙거리는 내게 천일염 자루는 욕심 덩어리로 보였다. 손끝이 야무지고 이따금 맛난 김치를 전해주는 언니에게 주는 편이 소금의 효용성 면에서도 옳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벨을 누르자, 언니는 외출 준비 중이던 손길을 멈추고 달려 나왔다. 환영 인사와 동시에 천일염을 신줏단지 모시듯 두 손으로 고이 받아 창가 쪽으로 향한다. 큰 그릇 속에 채반을 넣고 그 위에 소금 포대를 세워 두었다. 간수가 잘 빠진 천일염은 끝맛이 달고 귀한 소금이라고 얼굴에 함박꽃을 피웠다. 언니는 볼 때마다 엄마처럼 뭐든 챙겨주려고 애쓴다. 돌아가려고 현관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나에게 이것저것 모아 한 보따리 또 손에 들려주었다. 언니의 이런 마음은 나의 노곤함을 덜어주는 자죽염 맛이 난다.
한 번씩 얼굴 보는 지인이 내 손에 작은 가방을 건넨다.
“이렇게 자꾸 받아서 어떡하죠? 오늘 식사는 제가 살게요.”
“아니요. 제가 좋아서 가끔 만드는 건데요. 하는 김에 좀 더 했어요. 부담 갖지 말아요.”
그녀의 수제 소스, 천일염 설탕 식초를 황금비율로 섞어 만들었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난 반가움과 고마움이 당황스러움보다 앞선다. 그녀의 정성이 더해지니 식탁 위 분위기에 감칠맛을 더한다. 어떤 이는 바쁜 직장인임에도 생강 조청을 만들어 건네기도 하여 깜짝 놀랐다. 생강애호가인 나도 시도하지 못하는 일인데 말이다. 그때마다 식사나 찻값이라도 내야 속이 좀 편하다. 이러한 지인들의 넉넉한 마음 씀은 부드러운 풍미를 더해주는 히말라야 핑크 소금 맛이 난다.
가끔 보는 지인들의 소소한 배려 덕분에 마음이 몰랑몰랑해진다. 잔잔한 감동은 가슴 속 여운으로 이어져 서로를 품는다. 바라는 바 없이 선뜻 마음을 내는 그런 이는 나이 불문하고 경외감이 든다. 깊은 눈빛에는 안온함이 가득하다. 만남이 익숙해질수록 존중과 예의는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스민다. 굳이 자신을 내세우지 않아도 시간이 지날수록 담백함이 느껴지는 이들, 그분들의 마음은 뒷맛이 개운한 죽염 맛이 난다.
가끔 맛보기에 주저하게 되는 소금 맛을 내는 사람들도 있다. 분명히 자신만의 고유한 맛이 있음에도 다른 맛으로 갈아타려고 안간힘을 쓴다. 대화 속에는 정작 본인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야기 속 대부분의 초점은 바깥을 향한다. 각자의 개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과 비슷하게 자신을 바꾸려고 애를 쓴다. 끊임없이 비교하고, 겉으로 보이는 삶의 눈높이에 키재기를 하며 자신의 맛을 덮는다. 이런 마음은 파스텔을 섞어 만든 관상용 색소금과 비슷하여 직접 맛보기가 저어된다. 눈으로만 맛을 상상한다.
내 삶의 맛은 과연 어떤 미감인지 기억 갈피 속 나를 꺼내본다.
한때는 숨 막히는 투명 비닐봉지 안에 든 꽃소금이었다. 시간별로 조직과 가족이라는 공간으로 번갈아 용도가 교체되었다. 다른 맛들과도 어울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선뜻 마음을 내지 못하고 봉지 안에서 바삭거렸다.
옆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혼자만의 맛에 갇힌 채 허우적거리며 시간 속을 달렸다. 혀가 마비되는 사실도 모르고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움은 더해갔다. 몸은 황태처럼 바짝 마르고 마음은 수시로 정전기를 일으켰다.
자의든 타의든 어떤 식으로도 하루하루 살아가고 살아진다는 의미를 알아차릴 즈음, 삐걱거리는 가슴으로 활자 숲을 드나들었다. 발 없는 글자들의 위력은 대단했다.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내용은 정곡을 찔렀다. 꽉 막힌 감정 덩어리가 시원하게 부서지기 시작했다. 사람살이에 대한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었다. 현상과 본질의 속성을 알아차릴 힘이 생겼다. 섬광 같은 그때의 깨우침은 흔들릴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우는 노둣돌로 자리 잡은 듯하다.
아직 떫은맛이 남아 있어서인가? 가끔 가슴 한쪽이 묵직한 경우를 만난다. 비합리적이라고 여겨지는 상황과 마주했을 때가 더욱 그렇다. 불필요한 상념 덩이가 얼굴을 내밀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무지근한 생각 뭉치를 촘촘하게 살펴볼 때마다 단단하고 짜디짠 응어리는 바로 내가 만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럴 때마다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다. 스스로 규정한 분별심이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을 속박하니 다른 맛과 소통될 리가 없었다. 시간이 묘약이라고 했던가! 이제는 사람들의 다양한 맛을 즐기고 나 자신도 볶은 소금 맛으로 서서히 변신하는 중이다.
결이 다른 지인들과의 만남은 맛나다. 서로 마음의 농도를 가늠할 수 있어서이다. 일상을 관조하는 힘이 생기고 꽉 조였던 삶의 끈도 여유 있게 다시 조절한다. 목적보다 목표를 우선시하며 빠삭거리던 꽃소금은 무심함과 오만한 맛이었다. 시간 터널 속에서는 서로의 훈기로 만들어지는 부드러운 소금 맛이 제격이 아닌가 싶다.
사람 마음 바다에도 소금 맛이 난다. 상황에 따라 농도 조절이 필요하다. 너무 진한 맛은 상대의 영역에 갑자기 훅 들어간다. 서로가 맛을 가감할 수 있는 중간 맛은 어떨까!
가슴 속 슴슴한 맛은 상대방의 말에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한지에 물감 번지듯 잔잔하게 스며드니 각자의 고유성을 건드리지 않아서 좋다.
식구나 지인들에게 관심이나 사랑을 가장한 진한 소금을 뿌려댄 것은 아닌지, 생각이 깊어지는 밤이다.
첫댓글 딱딱하고 어색한 부분이 있어 퇴고 중입니다.
이제는 경지에 들어섰네요
단 짠 맛이 납니다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