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통 가시
김영근
손톱 밑의 가시라는 말이 있다. 남 보기에는 하잘것없어 보이지만 본인은 아프고 고통스럽다. 하물며 몸통에 박힌 가시임에랴. 수술요법으로도 제거해야 생명을 건질 것이다. 반면에 가시로 제 몸을 보호하는 것도 있다. 장미와 탱자나무는 제 몸의 가시로 자신을 지킨다.
어릴 때 소 먹이러 간 산길에서 베어낸 잔솔가지에 발등을 다친 적이 있다. 발이 아프고 발등이 불룩 튀어나와도 나뭇가지가 발등에 박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곧 낫겠지 하고 그냥 두었다. 추석이라고 새 운동화를 사주셨으나 발등의 통증으로 신을 수가 없었다. 결국,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아 나무 조각을 빼냈다.
현대 의술로 심장에 박힌 가시는 파내어도 결코 도려낼 수 없는 것이 있다. 뿌리 없이 돋아나 허리에 두른 몸통의 가시다. 가시를 빼내어야 한다는 것은 어린애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상대와 타협이 되지 않는다. 서로 명의라며 다른 처방을 내놓으니 치료가 될 리가 없고 낫지를 않고 있다.
무슨 일이든 계획한 일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잘 안 되는 일도 시일이 지나면 잘 될 것이라고 믿고 버티기만 해서는 안 된다. 일이 잘되도록 지략을 모으고 다른 각오를 할 필요가 있어야 하겠다.
어릴 때부터 하나를 두 쪽으로 나누어 생활하는 것을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받아들였다. 책상 하나를 두 사람이 같이 사용할 때 한가운데 금을 그어 38선이라고 하여 친구끼리도 경계하였다. 친구가 앉은 쪽의 책상 면을 넘나들지 못하고 학용품도 구역에 넘어가거나 올려놓지 못하게 하였다. 왜 그리 자기 것이라고 우기고 우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모른다.
장미꽃은 아름답지만, 가시 때문에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가시가 제 몸을 보호하는 것이다. 농작물 보호를 위해 가시가 돋친 울타리를 쳐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다. 나라를 지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온 국민이 국방의 의무로 스스로 무장해서 가족과 나라를 지킨다.
어떤 곳에는 2중으로 철망을 쳐 놓은 곳도 있다. 모양도 일자형이 아닌 가지가 뻗친 Y자 모양으로 쳐서 경계를 잘하려고 하고 있다. 주인 입장에서 외부인의 접근을 막기 위해 이중, 삼중이라도 단단히 쳐야 할 것이다. 철조망을 쳐 놓았다고 침범자가 오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안 오지는 않는다. 지상뿐만 아니라 마음의 장벽까지 겹겹이 쌓아 한 치의 뚫림이 없게 하는 것이 최대의 방어일 것이다.
우리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과수원이 있었다. 장난꾼들이 와서 주인 몰래 서리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과수원을 밤낮으로 지킬 수가 없어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쳤다. 그래도 장난꾼들이 계속 와서 울타리에 철조망을 둘러도 소용이 없었다. 그것도 부족하여 특별한 다른 방법을 쓴다고 전기시설을 하고 감전경고문을 붙여 누구도 접근을 못 하게 하였다. 도둑들은 사다리를 놓고 넘어가거나 두꺼운 멍석으로 탱자나무나 철조망을 덮어 그곳을 밟고 넘어가 과일 서리를 해 가곤 하였다. 열 사람의 지킴이라도 한 사람의 도둑은 잡지 못한다는 것이 이럴 때 하는 말인 것 같았다.
재물의 여유가 있는 사람은 자기 집 담벼락 위에 철조망을 쳤다. 외부인의 침입을 못 하게 하고 설사 들어온다 하여도, 독 안에 갇혀 도망을 못 가게 하였다. 경계는 잘될지 모르지만 믿지 못하고 살벌하고 인정미가 없다는 것을 느낀다. 침입을 막는 방법이 새로워지고 있다. 무인 경비다. 설치된 기계 장치 센서에 전파 신호가 가서 침입자가 있다는 것을 알린다.
20∼30년 전 해안가에도 철조망이 있었다. 무장공비가 넘어와서 경계를 강화한다고 쳤다가 지금은 걷었다. 사람이 밤새도록 경계를 철저히 한다고 하여도 간혹 허점이 나타났다. 철조망에 판자를 걸치고 그 위에 돌을 올려 돌이 떨어지면 침입자가 있었음을 알았다. 어떤 곳은 알루미늄 통을 매달아 울타리를 건드리면 소리가 나게 하여 철통 수비를 위한 지혜를 모으기도 하였다.
독일은 동서독의 경계에 철조망 대신 벽을 높게 쌓았다. 상대가 전혀 보이지 않으니 궁금증은 더했다. 지금은 모든 장벽을 허물고, 하나의 독일이 되었다. 하나가 되어 사람이 다녀야 할 곳에 몸통의 가시를 달아놓은 곳이 있다. 양 떼 목장도 아니고 허리에다 철망을 쳐 놓았다. 눈으로 보면서 가고 오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남방 한계선 굽이마다 침을 달아 Y자형으로 두 겹, 세 겹으로 만들어 쳐 놓았다. 몸통의 가시가 마음의 가시가 되었다. 몸에 해로운 가시는 찌르고 계속 안쪽으로 파고드는 성질이 있다. 허리에 박힌 가시는 남북이 왕래를 못 하게 하고 있다. 또한, 세계무대로 나아가는 우리를 꿰어 잡고 못 가게 하는 걸림돌이다. 서로가 마음이나 가슴을 찌르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걷어 내고 상처를 아물게 하는 명약 처방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몸에 박힌 가시도 오래 두면 내 살이 되어 존재를 잊을 때가 있다. 박힌 탄알이 몸속에 남아 있는데도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곪는다. 병균을 지니고 살기보다는 대수술을 하여 건강한 몸으로 활동에 장애가 없도록 해야 하겠다.
서로의 믿음으로 가시를 빨리 거두어 내어야 한다. 동서독의 동족 사랑처럼 같은 민족끼리 총구를 겨누지 않아야 한다. 총부리 대신 얼굴을 맞대며 화해의 몸짓을 보내 가로놓인 벽을 허물어뜨리고 몸통의 가시를 뽑아내어야 하지 않겠는가?
마음의 철로가 놓이면 지상의 철도 놓기는 아주 쉬운 일이다. 같은 쇠를 원료로 만든 것이지만 총알 대신 오고 갈 수 있는 레일을 놓아 왕래가 자유롭도록 하면 오죽 좋을까? 몸과 마음을 실어 나를 수 있는 레일에 서로 오고 갈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원한다.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몸통의 가시를 없애는 여러가지 방안을 생각하여 봅니다. 옛날 사과밭 주변에 가시가 달린 탱자나무를 잘 심어두면 약간의 방범 효과가 있었지만 완벽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대로를
활보하는 간첩, 이적 무리들을 어떻게 잡아내고 축출할 것인지도 염려하여야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