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칠흑같은 어둠에 잠긴 마을안은 괴기하리만치 적막감이 감돌았고
사방을 분간할 수 없는 깜깜한 밤의 나라가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겨우 화장 실 주변에 켜진 가로등에 의지해
배낭을 챙기고 신발끈을 조여매고 나니
"어랍쇼 랜턴이 없네!"
새벽 4시에 시청 출발 시간은 체크해 놨으면서
새벽 어둠을 밝힐 랜턴을 챙길 생각은 왜 꿈에도 못했을까
난감해진 처지를 구제해준 건 '신령' 아우가 내준 예비 랜턴이었으니
곤혹스러웠던 사태가 해결이 된 것에 대한 고마움과
챙길성 없는 민망함이 교차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약 1km이상의 시멘트 마을안 길을 걸으며
개짖는 소리와 개울물 흐르는 소리에
이 동네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고
더불어 군데군데 펜션 건물이 나타나는 걸 보면서는
그냥 예사 산골 마을이 아니란걸 깨닫게 됐습니다
탐방안내소 앞의 개울을 건느면서는 아이젠을 착용하고
눈길을 따라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합니다
같이 걷는 사람들과 두런두런 얘기도 나누고
가뿐 숨도 조절해가며
불빛에 의지해 하얀 눈밭길을 꾸역꾸역 오릅니다
앞서 가던 쎄이님을 추월하여 중간 쉼터에서 일찌감치
막걸리 자리를 편 쌍둥이 부회장님 패밀리를 지나
큰배재로 올라서며 남매탑까지의 어둔길은 뽀식이님과 동행이 되어 걸었습니다
남매탑
절 이름이 상운암이었나?
새벽 산꾼들에게 따뜻한 떡국을 대접하는 모양이지만
절마당으로 내려서지 않고
남매탑을 한 바퀴 돈 후 다시 산길을 이어갑니다
꽤 기울어진 오르막입니다만
지그재그 길에 돌계단이 놓여 있어 생각보다는 어렵잖게 올랐습니다
어느덧 날은 밝아졌고!
삼불봉 철계단을 아이젠 쇳소리를 울리며 올라가 보니
이미 많은 해맞이 산꾼들이 올라와 좁은 자리를 메우고 있었습니다
일행중에 섞여 있던 산따라님과 올리브, 산신령님께
"오늘은 날이 흐려서 삼불봉 일출은 읍써~!"하고는
반대편 철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갑니다
약간의 바람이 이는 삼불봉은 제법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싸늘한데
그 곳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떠오르지도 않는 해를 기다릴 필요가 있을라구요
어둠은 이미 걷혔으나
천왕봉과 쌀개봉 능선이 겨우 구분될 정도로
날씨는 구름과 미세먼지로 토라져 버려
시야는 매우 불량합니다
금잔디 고개로 나뉘는 삼거리 이정표!
철난간 뒤의 소나무 전망대에서
갑사쪽 산릉들과 계룡저수지를 살피기에 매우 좋은 포인트지만
오늘은 고개를 내밀지 않았습니다
대신 방금 내려온 삼불봉을 뒤돌아 보는 걸로 가슴을 채웁니다
뒤따라 온 산따라, 올리브, 산신령 일행이 앞서 나가고!
자연성릉으로 이어지는 계룡의 남서릉에는
뿔탑을 가진 천황봉을 비롯하여 쌀개봉, 관음봉, 문필봉, 연천봉이
우람한 산줄기를 뽐내며 도열하고 있습니다
수묵화
삼불봉
서서히 계룡산의 하이라이트인 자연성릉에 들어서고!
동학사 계곡으로 흘러드는 삼불봉 골짜기 앞에는
천황봉에서 반포면으로 이어지는 황적산이 엎드려 있으나
오늘은 얼굴을 보여주기가 싫은 모양입니다
긴 산줄기를 늘어뜨리고 있는 천황봉 산자락들
우리와 반대로 삼불봉 방향으로 산행을 하는 산꾼들도 꽤 있어
서로 마주치면 새해 복을 빌어주며 인사를 나눴습니다
바위에 뿌리를 내린 탓으로 몸집은 크지 않지만
제법 년륜이 있는 이 쌍 소나무를 나는 자연성릉의 뷰포인트로 점찍고 있는데
오늘도 그 모습을 담아 가려고 앵글을 맞추던 중
오른쪽 낮은 바위옆으로 슬며시 모습을 내놓는 햇님을 보았습니다
나도 모르게 "일출이다" 소리쳤더니
바위 옆에서 간식을 먹던 사람들과 지나가던 모든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그랬나 봅니다
물론 산행하는 모든 사람들이 일출 맞이를 하러 온 건 아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 가슴에는
새해 처음으로 떠오르는 햇님을 향해
작은 소원 하나씩은 빌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겝니다
조금 늦긴 했지만 구름을 비집고 나온 햇님은
모두가 기다리던 '오늘의 주인공'이 틀림없습니다
관음봉에서도 일출맞이를 하고 있는가 보네요
오늘의 주인공을 소나무 사이로 옮겨 모셔봅니다
삼불봉에서 이어져 오는 산줄기의 자연성릉은
관음봉 계단을 오르면서 바라보면 그 거친 산세에 탄성이 터집니다
울룩불룩한 그 모습이 닭의 벼슬을 닮아서 계룡산이라지요
아마 어쩌면 내 자신의 발자욱이 담겨있어서
더욱 감흥을 일으키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요
햇님은 어느새 황적봉 능선 위로 이동했네요
아마 저 험준한 천황봉을 넘으려는 듯...!
호랑이만 타고 다니던 '산신령' 아우님은 계단 오르기가 많이 힘든가 보네요
- 농담 한마디 -
신선은 학을 타고 다니고
도사는 구름을 타고 다니고
산신령은 호랑이를 타고 다닙니다 ㅎ
힘들게 올라오는 걸 기다렸다 한 컷 합니다
관음봉 전망대
쌀개봉
재작년에 천단을 지나 저 능선을 뚫은적이 있지요!
소박한 관음봉 정상석
관음봉 한운(閑雲)
천황봉과 쌀개봉으로 이어지는 계룡산 주봉의 하나로서
해발 766m의 관음봉에 떠있는 한가로운 구름은
계룡산을 대표하는 공주 10경의 하나이다
관음봉은 동학사 계곡과 신원사 계곡을 앞뒤로 하고
쌀개봉과 문필봉, 연천봉 등을 지척에 둔 중심부에 있으며
동학사로 내려가는 은선폭포의 물줄기를 흘려 주기도 한다
3월의 신록속에서 분홍빛으로 물드는 쌀개능선과
서북능선에 줄지어 피어나는 철쭉꽃길의 아름다움,
삼불봉에서 관음봉으로 이어지는 자연성릉의 절경들을
저마다의 독특한 특색을 짚어 알려주는 계룡 8경 중에
관음봉 정상에 떠도는 구름이
우리의 삶을 여유롭게 이끄는 듯 하다 하여
제 4경인 관음봉 한운(閑雲)으로 이름 지어졌다
관음봉 전망대에서 요기를 하고 있는 강한남님과 들꽃님을 조우 하였고
그밑의 아늑한 자리를 차지한 산따라, 올리브, 산신령님 일행들에게
맛좋은 비스킷과 음료수를 염치좋게 얻어먹고
서둘러 자리를 떳습니다
아무래도 미끄러운 하산길이 내심 신경이 쓰였기 때문입니다
문필봉 옆구리를 돌아가다 나뭇가지 사이로 또 다시 만난 오늘의 주인공
쌀개봉 능선에서 서서히 고도를 높이며 떠오르고 있습니다
문필봉을 옆으로 돌아 연천봉 고개에 다다랐습니다
좌측은 신원사로 내려가는 계곡길이고
우측은 갑사로 내려가는 골짜기입니다
200여m의 연천봉을 앞에 놓고
오른쪽 갑사 골짜기로 망서림 없이 하산을 시작합니다
연천봉고개에서 갑사로 이어지는 하산길은
계룡산 산길중에서 가장 심한 비탈길이라
올라오는 사람들은 혀를 빼물어야 될 정도로 힘든 오르막입니다
내려가는 길이야 미끄러지지만 않으면
수월하게 내려설 수 있으니
요령있는 산꾼들이 즐겨 애용하는 코스이지요
계곡의 하류에서는 벌써 물소리가 봄을 실어 나르는 듯이
졸졸거리며 눈을 녹이고 있습니다
깊은 골짜기를 거의 다 내려오면
갑자기 만나게 되는 포장길은
대자암으로 올라가는 자동차 길입니다
밑으로는 '의승장 영규대사'와 '팔백의승 추모지'가 있습니다
암자앞을 지나 금잔디 고개로 가는 길
입석불을 지나면 바로 계룡산 3대 사찰중의 하나인 갑사입니다
정문이 아닌 갑사의 옆문으로 진입하여
중천에 떠오른 오늘의 주인공과 절구경을 잠시 합니다
불공시간이 됐는지
관음전과 대웅전에서는 목탁소리와 념불이 울려 퍼지고
산문 밖의 목탁새(딱다구리)도 힘차게 나무를 두들기고 있었습니다
"딱따그르르르....!"
범종루옆에서 만난 '건호대장'과 함께 절을 빠져나와 상가지대로 들어왔습니다
시산제 준비를 하는 운영진이 있는 주차장으로 가던중
지금은 여기저기 외과 수술을 받은 당산목 앞에서 잠시 멈췄습니다
몇년 전에 이 곳에서 시산제를 지냈던 인연이 있었으니까요
산행거 리 10.5km에 소요시간은 5시간이 걸린 계룡산 일출 산행은
따뜻한 날씨와 주위분들의 도움 덕택에 눈길임에도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마쳤습니다
철계단에서 아이젠이 걸려
나뒹굴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기는 했지만요
2023년 1월 1일(일) 초사의 일출산행에 함께 한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새해에도 건산, 즐산 이어가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