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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연구선생의 수필강좌
94년 5월 6일
寫蘭如於有法 終歸於無法 若固守不通
처음에 난을 그릴 때는 법이 있으나 종말에 가서는 법이 없다. 그것을 고수하면 통하지 않은 사람이다.
寫蘭有法不可 無法亦不可
난(수필)을 그리는데 법이 있다 해도 안 되고 없다 해도 안 된다며, 선생은 무기교의 기교를 말하다.
글은 개성이 있어야.
〈춘향전〉의 춘향 표현은 세상의 아름다움 다 끌어넣다. 그 대조적인 예로 한 수산의 〈비행기〉에서
“그녀가 자기 생애 속으로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를 예로 들다.
이태준의 《문장강화》에서 ‘삼가할 것’을 들다.
1, 언어만 있고 사물이 없는 것, 관념적인 말 삼가라.
2, 병 없이 신음하는 아! 어! 감탄사 따위
3, 인용을 일삼지 말 것
4, 형황한 미사여구 삼가라
5, 대화체(對句)를 중요시 말라
6, 문법에 맞지 않은 글
7, 고인을 모방 말 것
8, 속어 ․속자 삼가라
박규환의 〈동반자〉에 대해서
소재가 별거 아닌데도 이야기를 잘 풀어나간다. 필력이 워낙 뛰어나서 요설이 요설 같이 들리지 않다. 길 건너가는 것을 바다 건너가는 것으로 비유해서 인도 안착을 “상륙”이라 했다.
비유가 재미있다. 해학이 아름다움으로 전달되려면 페이소스가 깔려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깔려있다. 미래의 자화상을 보는 듯한 공감을 갖게 한다.
구성도 좋다. 1, 그 노인이더라 2, 그 노인과의 관계, 전생의 인연 3, 노인의 자기자랑은 허전하니까 늘어놓는다. 노인의 이야기를 인용하지 않고 地文 처리해서 지루하지 않다.
글은 대상에 대해 애정을 가져야
투자하는 시간만큼 가치 있는 글이 돼야
아는 것 반만 펼쳐 보여라
감정 죽이고, 절제하고 순화시켜야.
“천정의 쥐가 내 가슴을 갉아 먹는다”는 노천명의 글에는 혼자 사는 여인의 심정이 잘 나타난다.
문장 자체가 정제되고 시처럼 아름다워야, 두 번 세 번 읽어도 좋은 글이라야, 문장이 시 못지않게 아름다워야.
수필 한편을 쓰기 위한 진지한 자세와 성실성을 갖추어야 한다
5월 13알 박연구 선생 회갑 및 출판기념회
선생님과 사모님이 정면에 정좌하고, 생화 꽃바구니가 좌우로 한쌍. 누구의 정성인지 아름답게 핀 난 화분도 있다. 삼단 케이크가 가운데 놓여 있다.
김남순씨의 축사에 이어 노옥식씨 따님의 바이올린 독주, 서난석씨의 축가에 선생님의 답사가 있었다. 워낙 말수가 없으신 분이라 간단한 한마디에 만감이 서려있다.
선생은 오늘 매우 기분이 좋으시다. 10년 동안 제자를 기른 보람을 느끼신 듯하다. 사회자인 김정환씨의 말이 아니라도 아바이수령 못지않게 귀하신 분이다. 아이들 같으면 “내가 이 정도다”하고 부인에게 으스대고 싶지 않겠나.
사모님은 서울 생활이 몇 십년이 되건만 어제그제 시골서 올라왔다 할 만큼이나 순박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분이다. 그분은 크게 배운 것은 없어도 시부모님 모시고 남편 받들고 자식 뒷바라지하며 가난한 살림을 소리 없이 꾸려온 분이다. 사회적으로는 이렇다하고 내세울 것 없는 그분이 이렇다하는 여류들 속에 (선생님 제자 가운데는 대학교수도 있다) 온화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면 존경심이 우러난다. 부인은 한발 물러서서 모든 것을 수용하는 분이다. 만약 어설프게 잘난 여인이었다면 다소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김성원씨는 “수필과 인생”의 장정裝幀에 언급하면서, 푸른 바탕을 사모님의 내조로 비유했다. 푸른 초원에서 마음껏 날개를 펼칠 수 있었기에 오늘의 선생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선생은 ‘착각의 변’이라는 글에서 구원의 여인 K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K는 “너는 좋지만 허약해서 싫다”며 다른 사람에게 가버린 여인이다. “K도 내가 회갑을 넘기도록 살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날 그렇게 매정한 말을 던지고 돌아서지는 않았을 텐데…”하고 아쉬워하고 있다. 선생은 또한《위대한 개츠비》에서 “너는 좋지만 가난해서 싫다‘며 개츠비를 떠닌 데이지의 이야기(훗날 부자가 된 개츠비가 데이지를 위해 호화로운 파티를 열어준 것)를 인용하고 있다. 거기에는 회갑을 넘기는 감회와 오늘날 수필가로서 입지를 굳힌 선생의 위상을 여봐란 듯이 과시하고픈 심정도 있지 않을까?
선생이 K와 결혼을 했더라면 오늘날의 선생이 존재했을까. 수필이란 춥고 배고픈 길을 걸어올 수 있었을까. P선생이 수필가로서 대성하고 꾸준히 한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초원과도 같은 부인의 내조에 힘입은 바가 아닐까.
선생은 “백제와당의 얼굴”에서 부인을 백제와당과 같은 얼굴이라 하였다. 어떤 때는 물새 한 마리 날지 않는 호수가 좀 답답한 느낌이 들어 호면에 돌을 던져 보고 싶은 충동을 받기도 하지만, 고향 같기도 한 아내가 편안하기만 하다. 허약한 내가 크게 탈나지 않고 지내는 것은 그 편안함 때문일 것이라 한다.
5월 27일
수필은 인생을 반영한다. 선생은 자신의 수필을 되돌아보며,
“역사의 물굽이가 수필 전면에 나타나지 않고 개인사에 끝난 느낌”이라 했다. 많은 사람이 역사의 희생자가 되었다. 6.25때는 몸이 약해서..., 5.16 군사혁명의 포고문에 끌려 자진입대 했다.
광주항쟁 때도 겉으로 드러나서 활동하지 못하고,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있었다, 적극적인 참여를 못했다. 아마도 수필의 성격상 목소리를 높이고 성토하고 하면 좋은 수필이 되기 어렵다는 면도 있을 것이다. 사회적인 수필은 세월이 가면 퇴색된다. 문학에 집착하면 쓰고 싶은 이야기를 놓지는 면도 있다.
보다 사회성 있는 수필을 써야하지 않는가를 생각하지 않는 바 아니나, 지금 와서 수필세계를 바꾸기도 어렵다. 누구나 만능을 기할 수는 없다, 자기 분수에 자족한다 하셨다.
*선생은 자신을 너무 폄하하는 것 같다. 칼이 무기라면 방패도 무기다. 전투에는 전투병은 물론이고 취사병도 위생병도 있어야한다. 직접 전투에 참가하지 못했다 해도 자기에게 가장 어울리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도 참여의 한 방법이 아닐까. 선생에게는 다친 사람을 치유하는 위생병이 알맞다. 선생의 글을 즐겨 읽는다는 한 공해추방 운동가는 “나는 물리적 공해의 추방운동을 하지만 선생은 마음의 공해 추방운동을 하고 있지 않으냐고 했다. 선생의 글을 읽으면 마음의 정화를 느낀다는 것이다.
6월 4일
박연구선생을 모시고 그의 《수필과 인생》에 대한 질의를 하는 날이다. 어제 듣던 바보다 오늘의 선생은 많이 건강을 되찾은 것 같다.
선생은 어느 모임에서 주최측이 “법정스님께서 한 말씀” 하고 마이크를 들이댔더니 스님은 “현품 대조를 했으면 됐지, 주위에 꽃도 만발한데”하고 사양하셨다며, 나도 그 말을 인용하는 수밖에 없어요 한다. 위경련으로 고통을 받는 것도(어제 선생은 위경련으로 수업 중단하고 병원에 가셨다) 죽음 같은 겨울을 견디고 봄이 오는 징조겠지요. 버드나무가 싹이 패는 그 경이로움, 아마도 봄앓이가 아닐까요”한다.
선생의 고향은 담양, 그 지역은 6.25때는 인민공화국이었다. 억압받는 자 편을 들고 싶었으나, 몸이 약해서 데려가야 짐이다 하고 내던져 살아났다.
시대의 역사에 참여를 하지 않았다는 부끄러움이 있다. 동아일보 탄압 받을 때는 ‘BYK’로 광고(정정당당하지 못하고 소극적), 문학에 대한 회의를 가졌으나 수필은 자기를 쓰는 글이니, 영혼에 부끄럽지 않은 글 쓰고 싶다. 사사로운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는 나의 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선생은 자문자답하기를, 사사로운 이야기도 그 속에 진실이 들어있을 때 감동을 준다.
공해운동하는 사람이 ‘마음의 카타르시스를 주는 당신의 글은 정신의 공해 추방가’ 라는 말에 자위를 느낀다. 그 말을 듣고 내 몫을 하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꼈다. 이제 글은 못쓰더라도 마음의 청정운동가의 텃밭을 일구는 데 일조하겠다.
질의시간에 고태우 선생은 ‘수필에서의 거짓말 문제’에 대해 질문했다.
이정호선생은 “선생의 글이 완벽해서 다소 불만이 있다”했다.
답- 글을 완벽하게 쓰려면 안 된다. 부족하다 싶으니 또 쓰고 또 쓴다.
미학이 존재하는가를 생각하고 쓴다. 미학은 삶의 경윤과 같다. 자기의 품격, 인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선생의 글은 꾸미지 않은 소박함과 말을 절제하는 은은함이 있다. 선생의 글은 아는 것을 다 쓰는 것이 아니라 70프로만 쓴다. 행간에 깔고 슬쩍 엿보게 할 뿐 다 드러내지 않는다. 이렇다고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머지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몇 번을 읽어도 싫증나지 않은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문학은 이성적이라기보다 감성적이다. 수필은 정의 미학.
희극배우의 웃음 밑바닥에는 슬픔이 있어야 그 웃음이 진짜 웃음이다.
기막힌 표현도 따로 놀면 글이 죽는다. 무명옷에 비단 기워놓은 것 같아서야.
과장은 독자에게 저항을 주지 않은 범위에서.
체험이야기도 다른 것과 맞지 않을 때는 희석하라.
자기가 설정한 수필에 소도구가 필요하면 썼던 것이라도 갖다 써야, 독자가 재탕 삼탕한다고 안 느끼게.
지나친 대화체는 내용 없고 작가의 안이한 창작태도 느껴진다.
단백한 묘사위주의 객관적인 문장, 만연체와 간결체가 적당히 얽힌 문장은 쉽게 읽힌다. 사물의 표현에 과장이 없는 문장, 맹물 같아도 쉽게 싫증이 나지 않은 문장.
글쓰기
포수가 사냥감 노리듯 생각을 한 곳에 집중시켜야 뭔가가 보인다.
생각이 떠오르면 달아나기 전에 얼른 잡아나꿔야 한다. 낚시대가 물고기를 나꿔채듯.
무당이 신이 오르듯 귀에 말이 들린다. 붓이 글을 쓴다.
소재의 충격 -소재와 나와의 접선- 소재만으로는 안 된다. 나의 생각과 만나야.
그것으로 다된 것이 아니다. 땅속에서 원석을 막 캐낸 상태이다.
퇴고의 필요성- 아름다운 여인도 자고난 눈꼽이 붙은 얼굴은 그리 보기 좋은 것이 아니다. 세수하고 머리 빗고 몸단장해야 남 앞에 나설 수 있다.
94년 7월 8일
주제를 중시할 것인가
‘수필은 주제가 있어야 한다’는 말은 부담스럽다.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 말고 꼭 쓰고 싶은 말을 애착하는 마음으로 쓰면 혼이 문장 속에 베어들게 마련. 눈동자 찍을 자리를 터득하게 된다.
현상을 보고 작가가 진실부여를 하면 된다. 담배가 없어서 담배꽁초 줍는 행위를 환경보호로 본 작가의 시각이 중요하다.
수필은 있는 사실에서 감동적인 것을 잡아내는 눈이 있어야.
드라마를 통해서 그 인물 속에 자신을 본다. 대리만족을 느낀다.
글이 잘 쓰일 때는 심장이 손끝에 닿는 느낌, 본인이 놀랄만큼 좋은 글이 쓰인다.
매원선생이 우리에게 카피해준 수필은 두 편 다 화가의 글이다. 수필은 경지의 글이라 하더니 화가로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의 글이라 어느 수필가 못지않다. H화가의 〈그림론〉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인간의 보이는 부분의 현상뿐 아니라 마치 인간의 마음이나 신경, 적혈구나 아킬레스 심줄과도 같은 보이지 않은 부분을 그리고 싶다는 유혹에 빠져있다. 나아가서는 善이나 그 반대 얼굴인 잔인성까지도. 아! 인간은 얼마나 선하고 아름다우며 동시에 얼마나 끔찍하고 잔인한가.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그림을 그림으로써 일어날 전쟁을 막을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그림이란 이 무력한 시대의 가장 무력한 매체의 하나인지 모른다.…그렇다면 내게 있어 그림이란 무엇인가. 아직도 내게 있어 “그림”은 시가 불가능한 시대의 “시”,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사랑”이었으면 한다.“
참으로 감동적인 글이다. 또 P화가의 〈액자 속의 인생〉이란 글에서
“연극이 무대라는 액자 속에서 이루어지는 예술이라면 인생은 또한 현세라는 액자 속의 예술이 아닌가. …액자는 왜 있는 것일까? 밀도 높은 사상의 결정을 전달함에 있는 것이 아닐까.
보이지 않은 思考가 보이는 현상으로 구현되어 보여주는 이와 보는 이 사이에 깊은 감동이 몰아오는 일치감을 이룰 때…“
나의 카피는 아깝게도 여기서 끝나고 있다. 선생이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이 화가들의 고뇌는 바로 우리 수필가들이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 동시에 비록 직접적인 현실참여는 못했어도 간접적인 ‘수필가로서의 몫’을 화가를 인용해서 말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수필이론과 더불어 매원선생의 인간적인 면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도 같이 실었습니다. 선생님을 아는 분들에게는 좋은 추억이 되리라 여겨집니다.
첫댓글 좋은 글, 접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수필은 정의 미학.. 눈동자를 찍을 자리..'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먼저 번 글도 요약해서 블로그에 저장했는데, 또 그리 하겠습니다. 감사~!^^*
한계주 선생님, 또 감동입니다. 참으로 생생하게 살려 놓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감회가 새롭습니다. 하나도 버릴 것 없는 주옥같은 선생님 말씀!
선생님의 기록이 큰 공부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수필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매원선생님께 감사할뿐
공부하고 갑니다
새삼 매원 선생님이 그리워집니다. 매원문학상도 제정되어 첫 수상자를 냈고, 그래도 많은 분들의 사랑 속에 계신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위로가 됩니다. 박경주 선생님 참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