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원통함이 기도가 될 때
살다 보면 마음이 원통할 때가 있다.
열심히 살았는데도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고, 아무 잘못도 없는데 오해를 받거나 상처를 입을 때도 있다.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마음을 이해받지 못하면 서러움은 더욱 깊어진다.
사람들은 믿음이 있으면 언제나 감사하고 기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이 아파도 괜찮은 척하고, 원통해도 감사한 말만 골라 하려 한다.
그러나 성경의 사람들은 그렇게만 기도하지 않았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울었고, 억울함을 호소했으며, 언제까지 자신을 잊고 계실 것이냐고 물었다.
한나도 마찬가지였다.
자녀가 없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상처를 받았던 그는 마음의 괴로움을 감추지 않았다.
한나는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심정을 쏟아놓았다.
그 기도가 얼마나 깊고 간절했던지, 엘리 제사장은 한나가 술에 취한 줄로 오해했다.
그러나 한나는 말했다.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앞에 내 마음을 쏟아놓았을 뿐입니다.”
원통함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상처받으면 아프고, 억울하면 분하며, 사랑받지 못하면 서러운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을 어디로 가져가느냐이다.
원통함이 사람을 향하면 원망이 된다.
그러나 원통함이 하나님을 향하면 기도가 된다.
사람에게 쏟아놓은 원통함은 또 다른 상처를 만들기도 한다.
말이 날카로워지고 관계가 멀어지며, 오래 품은 섭섭함은 미움으로 자란다.
그러나 하나님께 쏟아놓은 원통함은 조금씩 기도가 된다.
기도한다고 아픈 일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억울했던 사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혼자 붙들고 있던 무거운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게 된다.
기도는 단순히 감정을 쏟아내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 제 마음이 이렇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린 뒤, “그러나 이 마음까지 주님께 맡깁니다.”
고백하는 일이다.
한나는 기도한 뒤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의 빛이 없었다.
아직 아들을 얻은 것이 아니었다.
상황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나의 얼굴은 달라졌다.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마음이 먼저 평안을 얻은 것이다.
기도의 응답은 때로 상황보다 마음에 먼저 찾아온다.
문제가 그대로인데도 견딜 힘이 생기고, 길이 보이지 않는데도 다시 한 걸음을 내딛게 된다.
기도는 현실을 피해 숨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과 함께 다시 현실로 돌아갈 힘을 얻는 일이다.
마음속에 원통함이 있다면 억지로 감추지 않아도 된다.
믿음이 없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다만 오래 품어 미움이 되기 전에 하나님께 가지고 가야 한다.
사람을 향하면 원망이 되지만,
하나님을 향하면 기도가 된다.
그리고 기도가 된 원통함은 마침내 마음을 비우고, 그 빈자리에 하나님의 평안을 들인다.
2026.8.1
들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