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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의 사인암(舍人巖)
우탁(禹倬)은 고려 충선왕, 충숙왕 때의 賢臣이며 性理學者이다 원나라애서 처음으로 周易을 들여왔으므로 易東선생이라 일컬었으며 性理學이 우리나라에 퍼지게 됨은 우탁 선생으로부터 비롯하였다,
舍人巖은 단양팔경 중의 하나인데 이름의 유래는 고려 때 유학자인 역동(易東) 우 탁(禹倬) 선생의 행적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당시 우탁은 정4품 '사인(舍人)'이라는 벼슬을 지냈고 이후 그의 고향인 단양 땅으로 낙향하여 이곳에 머물며 후학을 가르쳤다. 이런 연유로 인해 조선 성종 때 단양 군수가 우탁 선생을 기리기 위해 이 바위를 사인암이라 지었다고 전해진다.
산에 쌓였던 겨울 눈을 말끔이 녹여내고 파릇파릇 새싹을 움트게 한 몸바람이 한동안 불더니 온데간데 없다
그 봄바람을 잠시만 빌어다가 이 늙은 머리 위로 불게 해 보고 싶구나
벌써 여러 해가 된 귀맡의 서릿발 같은 희어진 머리카락을 눈 녹이듯 없애 버렸으면 좋겠다
그가 지은 다음의 시조와 함께 탄로가(嘆老歌)라고 부르며 丹陽郡과 丹陽禹씨 종친회에서 '역동시조문학상' 을 제정하여 시상하고 있다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를 쥐어
늙는 길 가지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