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언수행(최순태)
나는 얼굴에 별로 표정이 없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인지 모르지만 하여튼 그렇다. 나의 일생에 별로 유쾌한 일이 없는 탓도 그 이유가 될 것이다. 중학교 시절 잘 웃지 않는 나를 보고 친구들은 내가 웃으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나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남들과 달리 도무지 살이 없다.
이것은 유전적인 영향이 크지 않을까 생각된다. 웃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말도 별로 없다. 오죽하면 어머니가 나를 보고 “뒷골 여시(여우)가 뒤 돌아보듯 한다.”라고 하였을까!
별로 명랑하지도 않고 인사를 잘하지 않는다고 많은 꾸중을 들었고, 인정이 없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이것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큰 흠이 되었다. 무뚝뚝하고 무표정한 얼굴을 남들이 보면 꼭 성을 낸 것으로 착각한다.
어릴 때 촌수로 아지매(아줌마의 경상도 사투리)가 되는 아이가 내가 성을 잘 내어서 “성 장이”라고 한 적도 있었다. 말을 하려면 시원스럽게 내뱉어야 하는데 항상 입에서 우물거리곤 한다. 그래서 친척 중 한 분이 우리 최가들은 말을 할 때 입안에서 머뭇거리는 성향이 있다고 말한 적도 있다.
내가 말하기를 꺼려하는 까닭은 혹시 남이 내 말을 들을 때 나의 말이 혹시라도 잘못 나오면 어쩌나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음 한구석에 그런 심정이 항상 자리하고 있었다.
고등학교까지 평범한 학창생활을 보낸 나는 대학생활 이후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 이후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내가 유일하게 말을 많이 할 때는 노래를 하는 경우나 합창단 활동에 열중할 시기였다. 그 시간에는 말이 많아진다. 좋은 사람들과 한잔 술을 들이킬 때도 마찬가지이다.
말이 없어서 주위 사람들 즉, 전세를 든 주인아주머니, 직장동료, 이웃들에게 본의 아니게 건방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었다. 실제 그렇지는 않는데 그들이 오해를 한 탓이다.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하면 반드시 실수를 하게 되어있다. 내가 하는 친구 중 한명은 말을 잘못하여 친구들이 핀잔을 주어 상호간 관계가 나빠져 한동안 소원한 적이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주로 듣는 편이다. 남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말이 많아지면 자기주장만 펼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매월 참가하는 동문 산악회에서 나는 동문들의 좋은 경험담을 듣곤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생활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사람은 전부 말을 잘하여야 할까! 과묵한 사람은 그들보다 능력이 떨어지는가! 하는 의문을 가져본다. 정신과 전문의인 이시형 박사는 “내성적인 사람이 강하다.”라는 책에서 내성적인 사람이 외향적인 사람보다 더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올해 3월 등산을 할 때였다. 등반을 하다 점심시간이 되어 식사를 하다 막걸리를 곁들인 반주 때문에 더 이상 산행을 할 수 없었다. 음주 후 산에 오르는 것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니 자연적으로 말이 많아졌다.
이 모습을 본 한전에 다니는 후배가 “형님! 이제까지 묵언수행 하시더니 오늘 말이 많으십니다.”라고 하였다. 묵언수행은 도를 닦는 선승이 동안거나 하안거를 하면서 벽을 보고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세상의 모든 상념에서 벗어나 자기를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즉, 불교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하는 참선이며 말을 함으로써 짓는 온갖 죄업을 짓지 않고 스스로의 마음을 정화시키기 위한 목적이 있다. 이는 본인이 수련을 통해 터득한 지식과 지혜를 타인에게 전파하고자 하는 마음을 통제하는 것이다. 입은 하나고 귀는 둘인 것처럼 묵언수행을 통해서 타인의 생각을 들으라는 뜻이기도 하다.
나도 이제 인생의 중년을 지나고 있다. 이제 예전보다 말을 많이 하려고 노력하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들은 과묵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다. 수필을 강의하시는 교수님의 말처럼 내가 먼저 인사하고 다정하게 다가가는 사람이 되려고 애를 쓰고 있다. 때로는 유머도 섞어가며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지 않은가! 옛날 성현도 “세 사람 중에 반드시 스승이 있다.”고 하였다. 가족에게나 모든 사람에게 다가가는 사람이 되겠다. 그리고 얼굴 표정도 바꾸려고 한다. 간혹 거울을 보면서 얼굴의 근육을 풀어보겠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바뀌지 않을까 생각해본다.(2023. 05.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