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돌아오지 않는 그리운 시절이여~
"별들의 고향"은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신문연재소설이었다. 요즈음은 신문연재소설이 안 보이더군. 예전에는 소설가들이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지면으로 신문이 최고로 인기가 있었다. 하긴 책으로 묶어내기 전에는 어디에 발표할 지면이 있었을까. 월탄 박종화 선생의 삼국지라든가 이순신 장군도 신문 연재소설이었다. 신문 소설하면 자유당 시절에는 정비석의 "자유부인"이 최고였다 하더라고. 대학교수 부인이 춤바람 난 게 말이 되느냐고 온 장안이 들썩 거렸는걸. 후후 우습지도 않아. 대학교수 부인이면 바람 피워서도 안 된다, 지금에야 코웃음 치겠지만 그땐 세상을 들썩이게한 화제 거리였다. 하기사 대학교수님을 하늘로 떠받들던 시절이었으니.
졸업하고 고향집에 내려와 있던 낭인시절이었어. 낙향한 고시준비생이라고 했지만 낭인이었지 뭐. 낭인이 뭐냐고? 꽤 로맨틱한 낱말인가 하지만 일본 전국시대에 영주에게서 버림 받은 떠돌이 무사를 그렇게 불렀어. 일본 최고의 검객 미야모도무사시를 낭인이라 불렀지. 일본에는 낭인이 세상을 뒤바꾸는 큰일을 하게 되었으니 우습게 볼 건 아니야. 미야모도무사시 같은 불세출의 무사가 있는 가 하면, 메이지유신을 일으킨 동력은 낭인들의 힘이라고 해. 생각해보라고, 메이지유신이야말로 일본을 세계 최강의 나라로 성장시킨 혁명이라는데 낭인이라고 깔 볼 것은 아니야. 장황스레 낭인 타령이냐고? 백수로 지내던 날 그럴 듯하게 미화하려는 속셈이지 뭐. 조선 시대에는 한량이라고 했던가? 그래도 요즈음 말로 번역하면 '백수'가 딱 맞는 말일 거야.
그때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이 연재 되기 시작한 거야. 나하고 똑 같은 신세의 친구가 있었다. 늦으막히 일어나서 논곱을 떼면서 신문을 들고서 변소로 가는 게 일상이었던 게으른 백수의 모습을 보라지. 화장실은 무슨, 재래식 변소에 쭈그려 앉아서 별들의 고향을 읽었다. 영화를 가지고 이야기할까.
어느 눈내린 거리에 여인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영화는 시작해. 경아, 맞아 시골처녀 상경기(上京記)야. 어찌 잘못 풀리나 싶더니 경아의 신세가 아주 고약해졌어. 몇 사람인가 사랑에 빠지고 결혼까지 했지만 의처증이 있는 중년(윤일봉)한테 버림을 받지. 그러더니 진실하게 사랑해 주는 남자를 만난거야. 화가였던가 소설가였던가, 문오(신성일)하고 플라토닉한 사랑에 빠지면서 경아는 원기를 찾는 게 아니라 더 힘들어하더군. 진실한 사랑을 주고받는 게 외려 힘들어할 정도로 세속의 때가 묻었기에 그런가? 나중에야 진실한 사랑이란 사람을 애간장을 태우는 몹쓸 짓이라는 걸 실감했지만 그때는 진실한 사랑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젊은 베르테르처럼 이루지 못한 사랑이라면 권총 자살이라도 하고 심정이었어. 이제 소설 줄거리를 복기해본들 뭐하겠어. 별들의 고향은, 아니 최인호의 대사가 아주 감칠맛 나지 않던가?
예를 들자면 경아와 춤을 추는 장면이 오래오래 기억이 나는구먼. 신성일의 발등에 경아가 발을 디디고 올라서겠지. 그리곤 스텝을 밟아가는 거 상상이 되여? 그걸 배워서 아내랑 춤을 출 땐 그리 했다네. 스텝은 무슨, 그냥 일렁이는 거지 뭐. "술에 취한 경아한테서 잘익은 홍시 냄새가 난다......" 이건 경아와 정사를 벌리겠다는 암시였어. 그들의 사랑은 늘 슬펐어. 뭔가 심한 갈증에 힘들어 한다는 표현이 정확한가? 이 영화 후 영자의 전성 시대 같은 호스테스 영화가 봇물을 이루었지.
신문 보기가 끝나면 전화기를 들고서 친구하고 그날 연재되었던 걸 하나하나 복기를 했어. 아~ 그때 우리가 살던 도시의 전화는 수동식이었다. 전화기를 들면 교환원이 나오고 통화하려는 전화번호를 대줘야 통화가 연결되는 아주 옛날 전화기 말이야. 우리집은 285, 친구 집은 85번 외우기 좋았다. 국도 없이.... 다시 말해 친구 집은 부자여서 시내에서 아주 일찍부터 전화기가 있었다는 말이다. 별 걸 다 기억하는군. 최인호의 글은 묘하게 우릴 혹하게하는 마력이 있었어. 당시 많은 독자들이 그에게 흠뻑 빠져들었을 거야. 우리 점방에도 별들의 고향은 인기가 대단했어. 그때 신문에 이런 사진이 올랐어. 명동 입구에 있던 서점(문예서림?)에 별들의 고향을 사려고 사람들이 줄을 지어 늘어선 장면 말이야. 대단했다. 장안의 지가를 올린다는 표현이 딱 맞는 말이다.
그때 밤이면 친구랑 둘다 학원에서 영어 강의를 했어. 성문사 정통종합영어반이 우리 직장이었어. 당시 나온지 불과 한두 해만에 영어참고서로 베스트 1위를 차지하였다. 성문사 정통영어가 나오기 이전에는 삼위일체, 메들리 영어하고 아이고 제목도 가물가물하네. 영어는 성문사 정통이 수학은 수학의 정석이 양두 산맥이었다. 나는 이쪽에서 친구는 저쪽 학원에서 같은 교재로 경쟁을 했다. 누가 인기가 있었는지는? 글쎄, 막상막하라고 할까. 강사비로 우린 늘 술에 취해 살았어. 술을 마시면 경아와 연애를 하는 문오가 되었다. 슬픈 경아의 사랑에 우리가 동참한 거야. 참 한심했지만 우린 진지했었다고.
아, 별들의 고향은 베스트셀러가 된 책 인기를 등에 업고 영화로 만들어졌다. 경아는 안인숙이란 배우가 맡았다. 배우가 중요한 게 아니었어. 그때 영화는 동시녹음이 아니라 촬영하고난 뒤에 영상의 배우의 입모습 따라 성우가 더빙을 하는 후시 녹음이었거든. 경아는 당대 최고의 성우 고은정이 했어. 코맹맹한 소리가 죽여줬다. 아~ 그냥 가슴이 졸아들더구먼. 신성일은 분명 이창환이라는 성우가 더빙했을 거고. 술잔을 기울이며 그 대사를 되뇌어보는 게 낙이었다. 어쩌겠어, 유신이라는 꽁꽁 얼어붙은 세상에 뭘 할 수 있겠어. '이놈의 세상' 하고는 고시공부하러 들어간 절에서 머리를 깍고 스님이 된 친구도 있을 정도로 절망의 시대였어. 이어령이 청년문화라 했지만 허울 좋은 말장난이고 그때는 절. 망.이 우릴 지배한 '유신시대'였다고. 최인호의 소설이 연재 되던 해 10월에 유신이 일어났고 세상은 꽁꽁 얼어붙은 겨울이라 사람들은 그 소설에 더욱 몰두했던 게 아닐까?
그럼, 너네 책방에서 누가 책을 많이 사는가? 그야 용도에 따라 달라지겠지. 학생들이야 참고서를, 고학생들은 검정고시책을 살테지만 교양서적은 처녀, 직장여성(오피스 걸)이 으뜸 가는 손님이라는 건 지금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딸아이 방에는 교양 서적이 꽤나 많은데 아들놈 방엔 쉰내 나는 옷나부랭이가 어지러워. 총각은 예나 지금이나 도무지 책을 읽지 않더라고. 우리 스쿨서점에 유능한 점원이 근무한다는 소문이 좍 퍼졌다. 시골이라 금방 약발이 먹히더라고. 교양서적 판매량이 급증했거든. 점방에 내왕한 처녀 손님의 취향을 단번에 파악하고 알맞은 책을 권하며 약간의 내용을 알려주는 건 보기보다 쉽다고. 니가 그 많은 책을 다 봤냐고? 천만에 다이제스트 식으로 책을 보는 건 이골이 났거든. 내 허영끼가 이럴 때 쓸만하더라고. 우리 서점의 고객 중, 직장 여성들은 내 말솜씨에 혹해서 추천한 책을 사들고 교양을 부쩍부쩍 살찌워 갔다고. 내 허영끼는 끝간 줄을 몰랐어. 예를 들면 을유문화사의 세계명작 시리즈에서 J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권하면 다들 그책을 샀다. 현대문학에서 그 책만큼 난해한 책이 있었을까? 니는 읽었고? 택도 없는 소리. 그 어려운 책을 읽을만한 수준에 미치지 못한 내가 감히? '의식의 흐름'이라는 문학사조의 한 흐름을 창시한 조이스의 책은 얼마나 어려웠을까. 내 허영끼로 근사하게 구라를 풀면 알듯모를듯 해도 나한테 꿀리지 않으려고 사더라고. 집히는 대로 당시 낙양의 지가를 높인 필자를 소개해볼까. 우선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책으로 다가온 프랑수와즈 사강부터 이야기 할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책 때문에 내가 브람스라는 음악가를 좋아하게 된 건 보너스랄까. 그의 작품 '한 달 후, 일 년 후'에 나오는 이 대목은? 언젠가 너도 그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거야,/베르나르가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역시 널 사랑하지 않게 되겠지./그렇게 우리는 또 다시 고독해지는거야./그렇더라도 달라지는건 없겠지./그저 흘러가버린 1년이랑 세월이 생기는 것 뿐이야/ 그래요, /알고 있어요./ 조제가 말했다. 사강의 책이 없어서 인터넷으로 뒤져서 찾아 본 거야. 그때 우리에게 달착지근하게 다가오던 사강의 글이 이렇게 낯설 줄이야. 아무리 감동을 주던 글이라 할지라도 세월이 지나면 글을 읽는 사람의 처지가 달라서인가 감동은 커녕 생뚱맞은 느낌이야.
루이제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사르트르, 삼포증자(일본)의 '빙점', 하인리히 뵐의 '아담 너 어디 갔느냐?', 솔제니친의 '이반 데비소니치의 하루' '수용소 군도'와 '이방인'의 까뮈. 그리고 우리나라 작가는 이어령, 김형석, 안병욱, 유치환, 김남조, 전혜린.....
그래, 전혜린을 두고 갈 수 없지. 전혜린을 요절한 천재, 불꽃처럼 살다간 여인이라고 했어. 서울법대를 다니다가 독문학으로 진로를 바꾸고 독일 뮌헨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 유학 중에 가톨릭에 귀의하여 막달레나라는 영세명으로 세례를 받는다. 그리고 김철수라는 법학도와 결혼한다. 그 남자가 유명한 헌법학자, 헌법학의 태두라는 표현이 어울릴 서울법대 교수를 지낸 김철수였다. 하지만 금새 이혼하고, 귀국하여 서울대, 이대, 성균관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나 하더니 31세의 나이로 자살하고 만다. 전혜린의 번역은 필체가 유려하고 정확해서 인기를 모았다. 당시 우리나라 번역 작품은 원서를 직역하지 않고 일어로 번역된 책을 다시 우리나라 말로 번역한 중역이 많았다. 그래서 글이 이상하고 이해하기 어렵던 시절이었다. 그는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와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를 번역했는데 그의 번역은 아주 새로웠다. 원어를 읽지도 못하는 내가 번역을 잘한지 못한지 어떻게 알까만 척 보면 알게 돼. 번역다운 작품이 전혜린의 손을 거쳐서 세상에 나온 게야. 마침내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기 작품을 내놓았는데 이게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물론 자살로(혹자는 신경안정제를 복용하던 전혜린이 과용했던 게 원인) 세상을 등진 탓에 대중의 관심을 단숨에 모은다. 아직도 기억나는 대목은 뮌헨 유학 시절의 모습을 묘사한 건데 당시엔 가로등이 가스등이었나 봐. 안개에 잠긴 도시에 희미하게 빛을 밝혀주던 가스등을 묘사한 건데 당장 독일로 유학 가고 싶더라니까.
전혜린의 시를 볼까. 무제 //정말로, /'이 무서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허공에 꽃씨를 뿌리듯 /내 속에서 번식하는 의식.' '한 사람 한 사람씩 /커다란 죽음 앞에 향불을 피워 놓고 /얼굴을 가리고 돌아서는 것은 왠일일까?' /'땅에서 하늘로 뚫린 비밀의 운하엔/ 지금은 물이 없고 /물이 차기엔 /만 년을, 억 년을 기다려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왠지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는 듯 그녀가 남긴 시에는 선뜻한 절망이 가득하다. "늘 검정 스커트를 입고 검정 머플러를 즐겨 두르고 다녔던 여자가 전혜린었다고 해. 또한 순간 순간을 미칠 듯이 강렬하게 살고자 했으며, 평범을 경멸하는 귀족주의자이기도 하면서 때로는 무수한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삶의 패배자가 전혜린이다." -그의 평전에서 전혜린이 가고난 다음, 서울 시내에는 갑자기 검정 옷을 입은 여인들이 부쩍 늘었다. 그녀를 흉내 낸 유행이었다고 해.
우리는 고1 때부터 독일어를 제2 외국어로 배웠는데 내가 독일어 '수' 를 받았다니까. 전혜린을 닮고 싶었거든. 당시 젊은이들에게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던 걸로 기억한다. 전혜린의 학문적 성취를 닮고 싶은 게 아니라 경기여고에서 서울법대, 요즈음에는 여학생이 고시 패스도 남자랑 비슷하더라만 당시엔 사시 패스는 여자로선 어림도 없던 시절이었거든. 그래서 돋보였던 게지. 거기다가 젊은 나이에 자살했다는 사실조차 멋지지 않은가. 책 제목도 매력 만점이었어.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칫 베르테르 효과로 나라가 떠들썩할 번했지. 베르테르 효과가 뭐냐고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괴테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베르테르가 샤롯데와 사랑에 힘겨워 자살하는 걸 모방하여 권총으로 자살하는 게 당시 유럽에 유행이었다는군. 의학용어로 쓰이기도 하지만 요즈음은 사회 병리현상을 설명하는 걸로도 사용한다고 해. 우리나라에는 최진실하고 비교할까.
그리고 70년대에 접어 들면서 대중문학의 기수로 조선작, 조해일, 황석영의 소설이 팔리기 시작했다. 영자의 전성 시대(조선작), 장길산과 삼포 가는 길(황석영) 같은 소설 말이다. 그들을 일러 대중문학의 기수라고 했지. 작품의 질을 가지고 이야기한 게 아니라 일반 대중을 소설 시장으로 끌어들였다는 게지. 사실 소설이 팔리지 않던 시절이었어. 외국 소설은 그런대로 팔렸다지만 우리나라 작가의 소설은 누구도 읽으려 하지 않았다고. 우리 문화의 토양이 척박하기 짝이 없던 시절에 최인호가, 뒤를 이어 대중문학의 작가들이 출판시장을 훅 달아오르게 했다고 봐야지.
여학생하고 데이트할 때 으례 중앙극장이나 대한극장에서 외국영화를 봤거든. 중앙하고 대한극장이 그나마 예술영화쪽에 가까운 작품을 상영했기에. 그때 충격적이 말을 듣게 된다. 막 연애 온도계 계기가 올라가기 시작할 무렵 영화 보러가지고 꼬시다가 겪은 충격이었다. 여대생이 자기는 국산 영화는 본 적이 없대요. 국산이란 말은 제품을 불문하고 질 떨어지는 불량 제품이란 뜻이야. 난 그래도 슬쩍 국산 영활 보는 편인데. 만정이 떨어지더라고. 그 여자와의 썸씽은 쫑친거지뭐. 이런 내가 애국자지 누가 애국자인가 말이야. 요즈음 테레비에 나와서 수다 떠는 꼴불견인 엄앵란하고 우리 본당에서 세례받은 문희를 좋아했다. 그들의 소설은 그래. 시골에서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는 젊은이들이 겪었던 눈물젖은 빵과 풍찬노숙 같은 시대상을 그린 거지 뭐. 그때 박정희 대통령이 구로공단을 만들고 수출 드라이브를 걸었다. 구로공단 같은 공장에 시골 젊은이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언젠가 우리집이 좀 번듯해 보여서 시골 처녀가 무턱대고 식모로 써달라고 왔길래 할머니와 어머니가 하룻밤 재워보내며 달랬다. 처녀가 무작정 집을 나오면 험한 꼴을 본다고 달래서 돌려보낸 일이 있을 정도로 시골에서 서울로 무작정 올라오는 청춘남녀 때문에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농촌이 가난하기 짝이 없어서 젊은이들이 입 하나 덜어보자고 도시로 공장으로 몰려들 던 때를 소재로 쓴 게 '영자의 전성시대'라든가 무분별한 개발바람을 소재로 쓴 '삼포가는 길' 같은 소설이 그걸 쓴 것이다. 대중문학이라는 바람을 불러 일으킨 황석영은 이제 문단의 대가가 되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구라라는 황석영과 술자리를 한 거는 다음에 이야기 할 기회가 있을른지.
최인호는 이들과 달랐다. 그의 필체는 도시적이라 한다. 세련된 필체, 매끈하고 유려한 그의 솜씨에 반하지 않을 사람이 있던가. 사람들은 신문 연재소설의 경지를 높힌 게 바로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이라고 했다. 별들의 고향은 단행본 상하 두 권으로 나왔는데 대단했다. 조금 시시한 출판사였는데 별들의 고향으로 팔자를 고치니깐 우리 서점에 있는 다른 책 재고는 그냥 퉁치더라고(재고 책값을 받지 않았다). 그때 얻은 문학대사전 같은 책은 지금도 소장하고 있다. 하하 그때는 뭐든지 '대'자가 들어갔다. 다리도 '반포대교' 처럼 우리 나라 사람들 '대'자를 엔간히 좋아해야지.
조간 신문을 펼치면 제일 먼저 별들의 고향에 나오는 경아가 한 대사 몇마디를 외워야했어. 친구들과 한잔 걸치러 술집에 가면 대화가 그랬어. "키스할 땐 눈을 감는 거야" 신파조의 대사를 실감 나게 읊조리며 흉내냈지. 이 대목은 '누가 종을 울리나'에 나오는 잉그리드 버그만이 케리 쿠퍼한테 하는 대사랑 비슷했지. 서양 사람들이니 코가 좀 컸을까. 케리쿠퍼의 입술이 다가오자 잉그리드 버그만이 낭패한 얼굴로 묻는 장면 말이야. 뭐랬더라, "코 때문에 어떻게 해요?" 라고 했을꺼야. 그러자 케리쿠퍼가 고개를 약간 돌리며 키스하대. 이 장면은 지금 기억을 떠올려도 멋지다. -우리끼리하는 말인데 만나면 쪽쪽~ 키스부터 하는 서양사람이 키스하는 걸 몰랐을까? 경아가 한 대사 몇 마디를 읊조릴 줄 모르면 촌놈 취급을 받았다. "오랜만에 같이 누워보는군" 또는 이러기도 했지. "더 꼭 껴안아주세요" 오글거린다고? 이장희 노래에 이런 대목이 나오지. "제 연인의 이름은 경아였습니다. 나는 경아가 아이스크림 먹는 걸 보고 싶어했습니다. 경아는 언제든 저를 보면 한 마리 유충처럼 하얗게 웃어 주었습니다. 경아는 얼핏 하얀 치약 거품을 머금고 있는 듯 착각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은 열아홉 살의 뜨거운 체온 뿐 아무것도 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외에는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따스한 봄이란 요원한 것이었습니다..... 경아는 내게 너무 황홀한 여인이었습니다. 경아는 그 긴 겨울의 골목 입구부터 끝까지 외투도 없이 내게 동행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봄이 오자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헤어졌습니다."고. 최인호 때문에 덕을 본 건 아무래도 영화 감독 이장호와 주제곡을 쓰고 부른 이장희가 아닐까. 서울고 동창, 선후배로 엮어진 탓에 덕을 받다고. 덕 볼만하니까 덕을 봤겠지.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라든가 '한잔의 추억' 또 '그건 너' 이런 노래도 별들의 고향의 주제곡이 아니던가?
이게 우리들의 청춘이었고 문화였어. 이어령선생이 히트시킨 청춘문화라는 말이 자꾸만 생각 나네. 별들의 고향을 계기로 최인호가 통속 소설가로 빠진 거 아닌가라는 염려가 있었지만 더 한층 그의 소설은 깊이를 더해갔다. '길없는 길'이라든가 그의 내면의 세계는 종교적 깊이로 더할 바없는 세계로 우릴 이끌어갔지. 지금도 의아해 하지만 그의 소설에 나타난 불교에 심취한, 아니 불교에 대해 박식하기 짝이 없는 최인호가 맙소사, 가톨릭신자 아니겠어. 정말 감사했어. 최인호가 우리와 함께 하느님을 믿는 믿음의 길에 선 걸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학원 강사, 학교의 대리 강사 노릇하느라 허송세월을 보내던 내 통기타 시대는 취직하러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타면서 내 곁을 떠났다. 봄이었어. 복사꽃이 무리지어 핀 들녁에 바람이 불자 떨어지는 꽃잎처럼 내 청춘의 덧 없는 꿈은 아쉽게도 우수수 흩어졌어. 마치 별들의 고향에서 문오가 고향을 떠나는 장면처럼.
가벼운 오한이 들었다. 웅크려 있던 고치를 뚫고 이제 세상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몹시 두려웠거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