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잡사, 강문종 외, 민음사.
* 조선 조정은 호환을 막기 위해 일찍부터 많은 정책을 시행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착호갑사(捉虎甲士)와 착호인이었다. 착호갑사는 서울, 착호인은 지방에서 호환을 방비했다. 군인이 활과 창을 들고 외적과 싸웠다면 착호갑사는 호랑이와 싸웠다. 착화갑사는 말 그대로 호랑이 잡는 특수 부대였다. .....
착호갑사는 다년간 훈련을 통해 호흡을 맞춘 분대 단위로 활동했다. 호랑이가 출몰했다는 보고가 들어오면 산으로 들어가 며칠이고 호랑이의 자취를 .뒤쫓았다. 덫을 놓고 호랑이가 다니는 길목에 매복하거나 발자국을 쫓는 게 착호갑사의 일상이었다.
무사히 사냥을 마치면 공격한 순서와 호랑이 크기에 따라 포상했다. 호랑이 크기는 대, 중, 소 세 등급으로 나누었다. 호랑이는 포악하고 덩치가 커 단번에 죽이기 어려웠다. 이를 고려해 세 번째 명중시킨 사람까지 포상했다. 물론 제일 먼저 명중시킨 사람이 가장 큰 상을 받았다. 또 호랑이에게 치명상을 입힌 착호갑사는 호랑이 가죽을 포상으로 받았다.(조선잡사, '착호갑사, 호랑이 잡는 특수 부대' 중에서)
=> 과거 비디오 테이프로 영화를 보던 시절 '호환 마마보다도..'운운하는 내용으로 불법 복제를 호랑이에게 물리는 것(호환)과 비교하기도 했다. 지금은 멸종 위기종이라 호랑이 사냥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조선시대에는 호랑이에 의한 피해(호환)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호랑이 잡는 특수 부대까지 조직되었을 것이다. 호랑이를 잡으면 세 번째 공격한 사람까지 포상을 하고, 치명상을 입힌 사람에게 그 가죽을 주었다고 한다. 간혹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냥꾼의 집에 커다란 호랑이 가죽(호피)이 널려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호랑이를 잡은 공로로 받은 것이라고 추측된다.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만큼 능력있고 용감한 사냥꾼이라고 평가되었을 것이다.(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