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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일상을 정리하는 것 가운데 매일매일 일기를 쓰는 일이 가장 쉬우면서도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단지 그날 있었던 일이나 자신의 생각 등을 간략하게 기록하는 일은 어찌 보면 쉽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혹은 간혹 빠뜨리더라도 꾸준히 실천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은 새해가 밝아오면 한해의 계획을 세우고, 수첩이나 스케줄러를 마련하여 꼼꼼하게 기록하면서 체크해 보기도 한다. 새해를 그렇게 시작하지만 한해의 중간 혹은 연말까지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래서 결심한 것을 실천하는 것이 오래 가지 않는다는 뜻의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이 생겨난 이유라고 하겠다.
이 책은 조선시대 사람들 가운데 일기 혹은 편지글 등의 형식으로 자기 삶의 모습들을 기록으로 남긴 이들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왕족이나 양반들은 물론, 여성이나 전쟁에 참여했던 하급 병사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분과 계층의 인물들이 자신의 일상과 생각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저자는 ‘이러한 기록들을 통해 조선시대 삶의 생생한 면모들을 드러내고자 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 지배계급인 사대부들은 대체로 자신이 쓴 시나 산문 등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당연시 했기에, 본인 혹은 후손들에 의해 그것들이 갈무리되어 ‘문집’이라는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여성이나 하급 병사 등 당대 사회의 소수자의 입장이 반영된 기록들은 생각보다 적다고 할 수 있으며, 더욱이 한글로 남겨진 기록들은 그 수효가 더욱 많지 않다.
저자는 일기 형식으로 남겨진 기록들을 일컬어 ‘자기 서사’나 ‘자전적 글쓰기’라고 지칭하면서, 이들 기록에 나타난 각 개인의 역사와 생활을 분석하여 소개하고 있다. 어쩌면 이 책에서 다뤄지는 인물들은 공적인 역사에서는 다뤄질 수 없는 인물들이기에, 이러한 연구는 ‘역사 기록에서 소외된 인물들의 삶을 발굴하고 조명하는’ 작업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상이한 신분 계층의 목소리에 담긴 다종다양한 개인들의 일상과 육성을 담아’냄으로써, ‘일상적 삶의 공간 속에서 그들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였는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모두 12명의 인물들이 남긴 기록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이 책의 목차는 크게 네 개의 항목으로 구분되어 있다. 1부는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라는 제목 아래, 청나라의 침입으로 야기된 병자호란(1936) 당시 피난생활을 하던 ‘남평 조씨’의 일기와 18세기 이른바 이인좌의 난에 진압군으로 참전했던 어느 하급 병사의 한글 일기인 <난리가> 그리고 외세의 침입으로 시작된 병인양요(1866)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나주 임씨’ 등의 기록들이 소개되어 있다. 특히 ‘남평 조씨’와 ‘나주 임씨’는 여성으로서 전란 당시의 상황을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이인좌의 난에 투입되었던 어느 하급 병사의 <난리가>는 당시의 공식 역사 기록은 실록 등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고 하겠다.
‘멀고 낯선 땅에서’라는 제목의 2부에서는 죄를 짓거나 모반 사건에 연루되어 귀양을 떠났던 인물들의 기록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인조의 맏아들이자 비운의 주인공으로 세상을 떠나야 했던 소현세자의 며느리인 ‘분성군부인 허씨’는 역모에 연루된 아들들과 함께 제주도 유배길을 따라가서, 그 과정에서 겪은 신산한 삶의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19세기 정치적 격변기에 유배를 떠나야 했던 심노숭과 이학규의 기록을 통해서는 당시의 정치 상황에서 소외되었던 지식인들의 처지와 상황 등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3부에서는 ‘인생의 험한 파도를 넘어’라는 제목으로, ‘이덕무와 이기원’의 기록을 통해 조선시대 서얼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18세기 제주에서 과거를 보기 위하여 배를 타고 가다가 ‘표류하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힘겹게 생환했던 장한철의 기록을 소개하고 있다.
마지막 4부에서는 사랑하는 이에 대한 생각을 담아낸 기록을 대상으로, ‘연모의 정을 담아’라는 제목으로 두 사람을 글이 소개되어 있다. 전라도 장흥 지역에서 대대로 살아왔던 장흥 임시 가문의 양반 신분인 임재당이 남긴 <갑진일록>은 병들어 숨진 아내를 그리워하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저자 역시 애도의 기록으로 점철된 일기의 마지막 기록을 남기고, 약 2개월 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당시 부인에 대해 이렇듯 절절한 애도의 기록을 남긴 경우가 흔치 않았기에, 저자 역시 아내를 잃은 데 대한 슬픔과 비찬이 절절하게 표현된 ’시대를 초월한 애절한 사랑의 기록‘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마지막에는 근대 전환기에 궁중에 그릇을 조달하는 공인이었던 지규식이라는 인물의 일기인데, 특이하게도 자주 거래했던 술집 주인이었던 두 여성과의 애정에 관한 내용들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물론 저자 개인의 일기이기에 자신의 일상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어, 당시의 시대상이나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사료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부인이 아닌 두 여성과의 관계가 기록된 내용을 통해, ‘근대 전환기 평민 남성의 연인 관계 및 여성관, 당시의 여성의 위치 등이 드러나’ 있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요즘에는 SNS를 통해서 자신의 일상을 공개하는 일이 매우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는 일단 글을 읽고 쓸 줄 알아야만 했다. 그렇기에 양반들 이외에 자신의 일상을 기록을 남기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고, 그러한 기록들 역시 ‘문집’으로 엮어질 것에 대비하여 매우 정제된 형태로 정리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 소개된 기록물들은 다양한 개인들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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