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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상징은 한 시대의 정신을 찌르고 작은 상징 하나는 삶을 바꾸어 놓는 시침(時針)과 같다. 그러므로 큰 상징은 종교와 철학에 있고 작은 상징은 시의 언어 속에 있다. 그것은 가을날의 느릿한 괘종소리와 같이 언어의 오묘한 그늘 속에서만 들린다. 그늘을 갖지 못한 시, 그늘을 갖지 못한 삶, 그늘을 갖지 못한 사랑은 푸석거리는 먼지와 같다. 박새가 나무 그늘 속에 집을 짓듯 내 영혼 속에 아늑한 집을 친다. 물같이 맑은 꽃, 이제부터는 이런 시를 써야겠다고 생각한다.(시집 <초록의 감옥>의 '머릿글' 전문)
이 시집은 시인의 친필로 쓴 이른바 육필시집이다. 지금도 시집을 모으는 것을 취미로 하고 있어, 이 책이 어떻게 내 손에 들어왔는지는 가물가물하다. 다만 같은 대학에서 근무를 한 인연이 있지만, 생전에 시인과 책을 주고받았을 뿐 직접적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부임하기 전 정년퇴임을 하고, 이후에는 연구실이 없이 이따금 강의를 위하여 학교에 들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새로운 시집을 내면, 정성스러운 필치로 서명을 하여 보냈던 것을 받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을 통해 간혹 소식을 듣다, 문득 시인의 부음을 접하게 되었다. 나중에라도 만나겠지 라고 생각했던 내 기대는 이제 영원히 충족될 수 없을 것이다. 서가에 꽃혀있던 시집을 꺼내들자 '아! 이 책이 육필로 쓴 것이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부터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시인을 세상에 알린 '산문에 기대어'와 '지리산 뻐꾹새' 등 대표적인 작품들이 육필로 수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문득 표지를 보니 '송수권 대표시집'이라는 표기가 눈에 띄었다. 아마도 시를 고른 것은 시인의 뜻이 가장 많이 작용했을 터이다. 이 시집의 표제작은 '초록의 감옥'이다.
초록은 두렵다
어린날 녹색 칠판보다도
그런데 자꾸만 저요, 저요, 저, 저요 손 흔들고
사방 천지에서 쳐들어 온다
이 봄은 무엇을 나를 실토하라는 봄이다
물이 너무 맑아 또 하나의 나를 들여다보고
비명을 지르듯이
초록의 움트는 연두빛 눈들을 들여다보는 일은 무섭다
초록에도 감옥이 있고 고문(拷問)이 있다니!
이 감옥 속에 갇혀 그 동안 너무 많은 말들을
숨기고 살아 왔다.
(송수권, '초록의 감옥' 전문)
새싹이 나는 새봄의 초목을 보고 쓴 것이리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으나, 봄에 대한 우리의 상식적인 이미지를 '초록의 감옥'이라고 한 것은 아닐까? 봄이 되면 시인에게 시심을 자극한다고 하지만, 시를 쓸 수 없는 답답한 마음을 표현한 것일까? 시인은 '그 동안 너무도 많은 말들을 / 숨기고 살아 왔다'고 한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뜻이라고 해석된다. 이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이미 다른 시집들에서도 볼 수 있겠지만, 시인의 친필로 쓴 것이라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다시 시인을 생각하면서, 찬찬히 읽어보겠다.(차니)
*이 시집은 절판이 되었지만, '지만지' 출판사에서 다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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