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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역사가인 버틀란드 러셀(1872~1970)은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면서,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가했던 인물이다. 수학에도 조예가 있어 화이트헤드와 함께 <수학 원리>를 저술하여 수리논리학의 성립에 공헌하였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는 파시즘과 그로 인해 세계대전에까지 이른 당시 상황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개진하면서, 평화주의 운동과 저술활동을 벌렸고 그 결과 195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버트란드 러셀은 스스로 자유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이며, 아울러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면서 당시의 소련으로 대표되는 공산주의에도 비판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이 책은 모두 15편이 수록된 러셀의 에세이집인데, 자유주의자이며 사회주의자로서의 저자의 면모를 가장 즐 드러내고 있다고 여겨진다. 표제작이기도 한 ‘게으름에 대한 찬양’은 게으름 자체를 다루고 있다기보다, 자본주의 제도 하에서 과도한 노동에 종사하는 대중들도 임금은 줄지 않고 노동 시간을 줄이면서 게으름을 누릴 수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게으름의 문제가 아닌 ‘인간답게 살 권리’ 또는 과도한 노동에서 해방되어 휴식을 취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말이 되어 자신만의 취미생활과 쉴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하겠는데, 러셀은 노동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되며 여가를 활용하면서 자신만의 삶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취업이 당면 목표가 되어버린 21세기의 현실에서 취업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 지식만이 강조되기도 하는데, 러셀은 ‘무용한 지식과 유용한 지식’이라는 글에서 때로는 ‘무용한 지식’도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건축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이라는 글은 제목과 달리 건축이라는 주제를, 가사 노동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처지에서 건축의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즉 모든 건물이 햇볕이 잘 드는 마당과 보육원을 갖추고 공동 취사가 가능한 공간과 레저 공간을 갖출 수 있다면, 여성들도 직업을 가질 수 있고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런 주장들에서 경제적 이윤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에 비판적이고, 사회주의자임을 자처하는 그의 사상이 짙게 반영되어 있다고 이해된다.
‘내가 공산주의와 파시즘을 반대하는 이유’라는 글에서 오로지 권력자의 의도에 따라 대중들을 몰아가는 체제의 문제를 제기하고, ‘사회주의를 위한 변명’에서는 모두 9가지의 논거를 들어 자신이 사회주의를 찬성하는 이유를 제시하기도 한다. 오로지 경제력만을 추구하는 세태를 ‘현대판 마이더스’라는 글에서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아울러 서양의 대학에서 발견되는 젊은이들의 무기력한 태도에 대해서 ‘우리 시대 청년들의 냉소주의’를 지적하고 있는데, 취업만이 목표로 설정된 현재 한국의 상황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처음 ‘게으름’이라는 단어를 보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자기중심주의적인 세태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러셀의 논리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당면한 현실에서 요구되는 ‘유용한 지식’이 중시되고 있지만, 때로는 지적인 자극을 던져주는 현실에서의 ‘무용한 지식’들도 우리의 삶을 여유롭게 이끌어줄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거짓과 더불어 제정신으로 사느니, 진실과 더불어 미치는 쪽을 택하고 싶다.”라고 밝힌 적이 있는데, 이러한 삶의 태도가 러셀의 사상의 핵심을 이룬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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