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유태용
살아가다 보면 귀찮고 하기 싫은 일들이 많이 있다. 그중 한 가지가 설거지하는 일이다. 하루 세 번 식사 끝나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조금만 게으름을 피운다든지 하면 그릇의 반란은 시작된다. 개수대가 그릇으로 산더미가 된다. 어제저녁 농땡이 친 결과물이 아침에 그득히 쌓여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머리는 빨리 치워야지 하면서도 손발은 다른 짓을 하고 있다.
나는 설거지 하는 것이 그렇게 낯설지는 않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어머니가 설거지를 시켰기 때문이다. 설거지를 야무지게 한다고 칭찬을 많이 듣고 자랐다. 접시 한 개를 씻어도 몇 번씩 문지르고 씻고 또 씻었다. 물도 다른 형제보다 더 많이 쓰고 설거지하는 시간도 오래 걸렸다. 성격상 대충이라는 게 통하지 않았다. 남자가 부엌을 드나들지 못하게 한 시절에도 남녀 구별 없이 어머니는 설거지를 시켰다. 시대를 앞서갔다고나 할까.
설거지는 매일 하기로 마음먹은 운동과 비슷하다. 운동하러 나갈 때까지는 온갖 핑계를 대면서 오늘은 운동을 빠져도 되겠지 하고 게으름을 피운다. 오늘 하루 운동 빠진다고 건강에 큰 지장이 있을까 하고 위로를 한다. 일주일에 3일 이상 운동한다는 결심을 하고 처음 얼마 동안은 열심히 실천한다. 운동하러 가기 전엔 운동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운동복을 차려입고 집을 나서면 걷지 않을 수가 없고 걷고 나면 몸과 마음의 상쾌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으며 늘 새롭고 즐거웠다.
결혼을 하고 나서 부엌일엔 손을 놓았다. 집보다 밖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부엌일과는 자연히 멀어지게 되었다.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부엌을 가까이하게 됐다. 새삼스러웠다. 바깥 일을 열심히 하던 사람이 막상 하루 세끼를 손수 챙겨야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식사는 챙겼으나 뒤치다꺼리인 설거지는 정말 하기 싫었다. 아침 먹고 돌아서면 점심, 숨 좀 쉬고 나면 또다시 찾아오는 저녁. 일상생활이 개미 쳇바퀴 도는 생활이라더니 이를 두고 한 말인 것 같았다.
의식주 중에서 먹고사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그중에서도 하루 세끼 챙기는 것이 나이 든 사람에게는 특히 중요한 일이다. 몸 컨디션이 좋고 기분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식사가 끝나자마자 개수대에서 빈 그릇을 바로 씻어 선반에 가지런히 놓는다. 깨끗이 씻긴 그릇을 보면 기분마저 좋아진다. 그런데 마음이 울적하거나 사는 것이 시큰둥 하다고 느껴 질 때는 한 없이 게으름을 피우고 싶어진다. 빈 그릇은 쌓여만 가고 어떤 때는 그릇에 곰팡이가 필 때도 있었다. 어이구나 큰일 났다 싶어 더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었다. 빛 좋은 날을 택해 대대적인 설거지에 돌입한다.
어떤 일이든 자주 할수록 노하우가 생긴다. 설거지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큰 그릇, 작은 그릇, 숟가락, 젓가락, 기름 묻은 것, 탄 것, 양념 많이 묻은 것 등을 분류하여 주방세제로 전체적으로 씻은 후 미세 부분은 이차적으로 수세미로 닦아내고 깨끗한 물로 씻어낸다. 비싼 그릇이나 아끼는 그릇이 없으므로 대개는 맑은 물로 한 번만 헹궈내면 설거지는 끝이 난다. 여름에는 보통 맨손으로 설거지하지만 날씨가 차가워 지면 피부 보호를 위하여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한다. 설거지하는 동안 좋아하는 트로트를 켜 놓으면 설거지가 끝날 때쯤이면 노래가 끝나 있다. 설거지하는 동안 무아지경으로 설거지에 몰입한 것이다.
혼자서 밥을 먹고, 설거지하는 것이 흔한 1인 가구가 늘어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남자 하는 일이 다르고 여자 하는 일이 다른 시대가 아니다. 남녀노소가 구분이 없는 사회가 도래하고 있다. 남자가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는 게 보편적인 사회가 된 것이다. 본인이 먹은 밥그릇은 본인이 설거지해야 한다. 설거지 안 하는 남자가 설 자리는 없다. 누구에게 시킨다는 생각은 애당초 하지를 말아야 한다.
혼자 살든, 배우자가 있든 자기 일은 자기가 하고 그 뒤처리 또한 자기가 책임져야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혼자 설거지를 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보니 전업주부의 가사 노동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해도 해도 빛도 나지 않는 집안일을 천직인 양 묵묵히 해온 이 세상 모든 전업주부들께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