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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동기모임 카페에 올린 글을 전재합니다.
1. 지리산 둘레길에 푹 빠졌다.
- 목표는 산청의 수철 마을에서 함양의 동강까지 12킬로미터.(약 5시간) 해발 650미터 산을 넘어가는 게 조금은 부담이었다.-
요즘 신경 쓸 일이 좀 많아서 영 자리잡고 둘레길 보행기를 적어보는 일이 여의찮다. 권태욱이 하도 뭐라캐싸으니 한번 끄적여 보자.
화요일 오후에 산책을 하고 있는데 문환이 전화가 왔다. 지리산 둘레길 한번 가잔다. 그래 그라자. 주말보다는 주중에 가잔다. 목 금 중에 하까? 그럼 금요일 가자. 그라마 동기 카페에 올리보란다. 그래서 카페에 올맀다. 뭐 주말도 아니고 누가 오겠나마는 둘이 가는 것보다 누구라도 따라오면 더 재미있을거고 해서......
금요일 아침 동섭이와 문환이가 내가 사는 장유로 와서 9시경에 출발했다. 11시경에 산청아이씨에서 채 10분도 안되어서 수철에 도착했다. 수철의 반대편(동강)에서 걸어온 이를 한명 만나서 중간에 밥먹을 데가 있는지 물었다. 없단다. 다시 산청 읍내까지 가서 김밥 수육 소주 네홉들이 두병 물을 사서 수철에서 출발할 때가 11시 50분.
수철의 고도가 얼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300미터 내외 정도가 아닐까?), 정상(650미터가량)까지 시멘트가 포장이 되어서 중간에 가끔씩 차들을 만나서 우리도 차 몰고 정상까지 가서 걸을 걸.....등 실없는 소리들을 하면서 전혀 경사가 없는 차길을 걸어올라갔다. 3.5킬로. 햇볕은 쨍쨍 그러나 다행히도 대부분의 길은 그늘이 있어서 천만다행. 전혀 부담이 없는 산보길이지만 적당히 땀을 흘린 기분 좋은 길이었다.
문환이가 병선이와 동해안 길을 걸었던 경험담을 늘어놓아 재미도 있고, 하루에 12~14시간을 찻길을 걸은 이야기, 새벽 서너시 사이부터 걷기 시작했고, 혹시 달리는 차에 치일까봐 달려오는 차를 마주보고 걸었고, 자전거에 다는 반짝반짝 점멸하는 조명등을 가슴에 달고 걷는데 지나가는 트럭 기사들이 신기해서 쳐다보고 확인한 이야기, 거의 종일 밥집을 못찾아 쫄쫄 굶은 이야기. 두툼한 책을 중간에서 택배로 보낸 이야기. ㅎㅎ 얼마나 흥미진진했는지. 후속편은 2차 도보여행 때 또 듣고 적고 해보자.
동섭이와 문환이가 얼마나 여자를 안 좋아하는지 하는 이야기도 참 재미있게 들었다. 그런데 그 안좋아 하는 아저매들 이야기는 왜 산에 갈 때나 술먹을 때 꼭 옆에 같이 있는지 신기하다. 참- 신기하다. 인기는 많은데, 안좋아한다는 말이제......? ㅎㅎㅎ 같이 걸으면서 온갖 이야기들을 나누는 게 얼마나 정답고 절친 사이가 되는지 한번 해봐야 안다. 우리 세명이 가끔 술자리에서 안만난 것도 아닌데, 같이 하루 걷고 나니까 진짜 동기친구가 된 것 같더마.
완도에서 서울로 걸어 갔던 병선이 이야기..... 대전까지 걸었더니 다리에 힘이 올라서 그 힘을 풀었던 신기묘묘절묘한 이야기. 제주도 올레길 이야기. 프랑스에서 스페인까지 40일 도보길 이야기(그 길 이름을 아는 사람은 댓글로 함 올리봐라)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4년에 걸친 실크로드 도보기(나는 걷는다 1~3권. 터어키 이스탐불에서 중국 서안까지) 하여튼 걷는 이야기로 함포고복을 했구마.
3.5킬로의 오르막길을 걸어올라간 다음부터는 해발 650미터정도의 고도에서 거의 평지같은 산능선을 따라 거의 4킬로를 걸었는데, 가을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지리산을 걷는다는 것은 천상의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신선이 따로 없었다. 황홀하고 행복했다. 집사람 데불고 다시 꼭 가겠다고 맹세하고 다짐했다. 히히히히 안온 너거들은 억수로 손해다.
그 길의 절반쯤에서 김밥과 수육과 소주로 점심을 했다. 길을 출발한 지 5킬로 남짓 걷는 중에 처음 만났던 5명의 아저매팀이 우리를 앞질러 지나갔다. 소주 한잔 하고 가시죠하고 말을 건넸으나 깔깔 웃고 지나간다(물론 나중에 평지에 내려와서 운명적 해후를 다시 하게 된다). 평일이라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더 호젓하고 좋았다. 물론 관광버스 한대분의 사람들(두번째 만난 사람들이다)이 밥먹는 중에 지나가기도 했다.
나머지 약 5킬로는 내리막이다. 중턱을 내려서자 계곡으로 흐르는 물과 함께 내려갔다. 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과 갈대들 올망졸망 물길과 소와 폭포들이 소담하니 좋았다. 너무 아름다운 길이었다.
- 후반부의 애기들은 2부로 풀어볼까 한다. 히히 너무 길면 안볼 거 아이가?
2. 지리산 둘레길에서 나를 만나다.
나는 걷는다. 태양광 떡 역사 동학 마음공부 운동권 정치 등으로 내 정체성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이 물으면 ‘나는... 걷는다.’고 답한다. 웬 말이냐는 듯 쳐다보면 ‘그냥 걷는다.’고 덧붙인다. 다시 또 쳐다보면 ‘참선 공부하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데, 그냥 앉아 있어야지 무슨 생각을 하거나 다른 짓거리를 하면 그게 공부가 되겠느냐?’고 설명한다.
나는 하루에 2~3 시간은 걷는다. 한꺼번에 못 걸으면 두 번 세 번 나누어서라도 걷는다. 정 안되면 부산역에서 좌천동까지 걷는다. 한국콘도에서 동백섬 두세 바퀴 돌아서 다시 돌아오기라도 한다. 한 3~40분 걸으면 어지럽게 돌아가던 머리가 좀 차분하게 비워진다. 그때부터 집중과 몰입이 된다. 아마 뇌파가 쎄타파의 파장대로 진입하는 모양이다. 내가 생각하는지 나의 무의식이 생각하는지 왔다 갔다 하면서 뭔가 차원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다.
오랜 경험으로 볼 때, 오른 발 왼 발 한발 한발 수천 걸음이 반복되면 그 걸음의 파장대로 몸과 마음이 동조가 되어서 내 의식의 흐름이 잠재의식의 차원으로 진입하는 모양이다. 혹 조카들이 공부하는 요령을 물으면 ‘혹시 산책을 하는지?’ 되묻는다. 가능하면 점심시간은 다른 짓거리 하지 말고 밥 먹고 걸으라고 한다. 저녁 먹고도 한 30분 걸어라고 한다. 가능하면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오로지 한발 한발 의식하면서 ‘걷기 위한 걷기’를 하라고 권한다.
지리산 둘레길의 첫 시작점 수철에서부터 걷는 길은 너무나 이상적이다. 3.5킬로의 초완경사길로 시작해서 땀도 흘리고 평소의 평지 길에서는 뛰어넘기 힘든 안이한 마음과 몸이 완전히 깨어서 나머지 9킬로 정도를 평소의 의식을 훌쩍 뛰어넘은 초의식 상태로 몰입시켜준다. 물아일체 천인합일 에고의 완전항복의 신선의 경지로 놀게 만들어 준다.
황금색으로 물든 벼논들 간간이 가을걷이를 한 빈 논들 감나무 감나무 노란 바알간 감들 감들 감들..... 오른쪽은 밤나무 밤나무 밤송이들 밤송이들 밤송이들.... 왼쪽은 오르막길 마지막까지 거의 1킬로의 거리까지 끝없이 이어지던 율무밭들..... 사이사이 산언덕 혹은 밭언덕에 자주 빛 들국화들 억새꽃 혹은 갈대꽃들.... 그 꽃들 사이로 언뜻언뜻 옛날의 그 가시나 그 친구들 얼굴 얼굴 얼굴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웃음지어 준다.
드디어 해발 650미터의 높이에서 뒤쪽의 산청 읍내와 그 주변들이 앞쪽의 함양 산천들이 보이고 왼쪽은 1917미터의 천왕봉과 그 주변 산괴가 어리고 오른 쪽은 왕산(가야왕의 피라미드 묘가 있다네)의 고고한 자태가 뽐을 낸다. 그 사이로 능선을 따라 걷는데, 나무들과 숲들이 참으로 맑고도 색색들이 칼라풀하기도 하다.
ㅎㅎ 고산의 나무들은 품격이 조금 다른 것 같더만. 능선의 흙들이 얼마나 곱고 폭신폭신한지 마치 스폰지 길 혹은 구름 길을 지나가는 듯 하더만. ㅎㅎ 정말 영원히 끝나지 않고 걷고 싶더만. 신선이 되어 학을 타고 노니는 듯, 꿈속에 무릉도원을 거니는 듯, 속세의 번거로운 온갖 잡념을 떨치고 소년시절의 순수동경의 간절하고 저릿한 감동과 예감들이 살아나데.
사업이나 연구나 가정사나 온갖 잡사가 머리를 스쳐 가도 얽매이지도 않거니와 저 고원에서 내려다보니 다른 관점이나 착상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평소에 안하던 마눌님께 문자도 하고.... 이 오십대 중반을 다시 돌이켜 보기도 하고, 포기할 건 포기도 하고, 집중할 것들이 되새겨지기도 하고, 죽기 전에 못 다진 친구들과의 연을 맺어 나갈 아이디어도 떠오르고 하여튼 마- 쥑이더라. 황홀하더라. 행복하더라. 그마 잃어버렸던 나를 다시 만난 기라.
동강에 도착하기 3킬로 전쯤 ‘산청 함양 유적기념관’(아마도 양민 학살 기념관인 것 같더라)에 들렀다. 너무나 어마어마하게 지어 놓아서 조금 언밸런스하게 느껴지더만. 카페앨범에 올려놓은 두 번째 사진이 그 기념관 조감도 앞에서 찍은 사진인데, 내 손에 쥐어져 있는 오동나무 잎사귀 만한 이파리가 칡잎이다. 그 기념관 위에서 그리고 아래에서 몇군데 칡잎들이 저리 거룩한 모습이더라. 조금 내려 오니 작은 탑을 세워놓은 공터가 나오는데, 양민학살 장소기념탑이라고 나와 있더만. ㅎㅎㅎ 그 칡잎이 원한이 사무쳐 그리도 귀기가 뻗쳐 나왔던 모양이네.
이 두 번째 사진을 찍어주었던 사람이 우리 밥 먹을 때 지나갔던 5명의 부산 아저매들이다. 사실은 우리 밥 먹기 전에 자기들 밥 먹는 장소가 너무나 전망이 좋은 자리이기는 했지만 그늘도 없이 해가 비치는 장소에서 밥을 먹고 있어서 우리가 조금은 비웃음을 베어 물고 지나갔었는데.....
(카페앨범의 첫 번째 사진은 뒷 배경이 왕산인데, 애하고 남편하고 같이 온 자그마하고 귀여운 아지매가 찍어줬고, 세 번째 사진은 엄천강 변에 자리 잡은 동강횟집 평상인데, 광주에서 온 부자간 같이 보이는 친구들 중 젊은 사람이 찍어줬다. 부자간이냐니까 다섯 살 차이나는 직장 동료라나. 그런데 웬 사진 찍어주는 사람들에게 그리 관심이 많냐? 덕분에 만난 사람들 소개도 하고 괜찮기는 하다만. 첫 번째 사진 찍기 바로 전에 초등학생 둘을 데리고 온 부부가 있었는데, 하- 학교 결석시키고 데리고 온 모양이더라. 정말 근사해 보이더만.)
어쨌든 기념관에서 운명적 해후를 했는데, 어디서 왔냐고 하니까 부산서 왔다는 거라. 그래 둘레길이 좋았냐니까 너-무 좋았대. 그래서 다음에 계속 이어진 길을 다시 올 거냐니까 황홀한 표정들로 다시 올 거라고 하는 거라. 그러면 같이 오자고 제안을 했지. 좋다고 난리 났어. 그런데 나는 끝마무리가 잘 안 돼. 그래서 ‘야- 동섭아! 같이 오는 연락을 할려면 전화번호를 따야지.’ 우리의 영웅 동섭이가 재빨리 폰을 열면서 ‘총무님이 어느 분입니까?’ 야! 동섭이는 선수 같더라. 허- 이럴 땐 점잖게 명함을 내밀어야 하는 건데, 다음엔 산에 갈 때나 걷기 여행할 때는 명함을 꼭 챙겨야겠더라.
이제 같이 걸어 내려가면서 제대로 작업을 걸려고 하는데, 쩝- 자기들은 택시 불러놓고 기다린다나. 훗날(?)을 기약하고 아쉬운 작별을 하는 수밖에.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까 끝도 한도 없는 갈대 꽃들이 피어 있는 하상 사이로 수량이 상당히 줄어 있는 엄천강이 보였다. 엄천강은 산청 읍내의 하류에서 경호강으로 강물이 모여서 진주 근처에서는 남강으로 불리는데 남지에서 낙동강으로 합류한다. 그 상류는 뱀사골과 남원의 인월에서 물이 합류해서 흘러내려오는데, 현재까지 나있는 지리산 둘레길은 아직 엄천강 주변까지밖에 안 나있다.
엄천강 상류로 그 강둑을 따라 왼쪽은 좁게 자리 잡은 황금빛 벼논이고 오른쪽은 갈대 꽃 천지라 도시 놈들 촌놈들 그 강둑에서 데이트 꽤나 하게 생겼더라. 그 강둑 따라 계속 가니까 우리의 목표지점 동강횟집이 나왔다. 동강횟집에서 소주 한잔 더 하고 택시 타고 수철로 돌아오는데(그 길이 또한 천하의 절경이더만. 다음에 이 길 한번 걷자고 너스레를 떨면서 왔다. 산언덕을 뚫어서 새로 낸 길인가 보더라), 택시비 2만원이었다.
풉- 문환이 차 타고 그 멋진 길로 동강횟집 다시 갔니라. 그 이유는 ㅎㅎ 문환이한테 물어봐라.
나는 장유로 돌아오는 내내 왕산과 천왕봉의 사이에 있는 둘레길을 깔깔대는 다섯 선녀와 함께 노니는 꿈을 꾸면서 돌아왔니라. 장유의 자랑인 고려정이라는 돌솥밥집에서 다시 소주 한잔 걸치면서 밥 맛있게 먹고 헤어졌다. 소주 값 밥값 2만원 내가 냈다. 마 내가 대접해야지. 사실은 문환이한테 조금 미안했다. 운전 때문에 그 좋아하는 소주를 잘 못 마셨으니..... 쯧쯧.....(문환아 부산서 한잔 사께!) 다음에는 숫자 좀 채워서 버스 한 대 대절하자.
첫댓글 소년을 찾아보니....ㅎㅎㅎ 마음은 늘 소년이라는 말씀이지요. 요즘 저렇게 걷는 것이...참 부럽습니다. 몸도 마음도 어디엔가 묶여서....
부럽습니다. 정말 부럽습니다. 요즘 제주 올레와 지리산 둘레가 대세인가봅니다. ^^작년 추운 겨울에 등산 할 때 보이차를 가져 간적 있습니다. ^^ 가져간 물을 끓여 호리병에 우려 마시는데 다들 죽었습니다. ^^ ㅎ 한 번 해 보시지요.^^ 좀 귀찮기는 합니다 만~~~
산길을 거닐며 벗과 함께 하신 행복이 구수하게 전해집니다~*^^*
사진으로 다시 뵙게되니 반갑습니다. 역시 세월이 빗겨가는 이유는 항상 마음이 소년이라서 그러신가 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