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장 별곡>
어느 귀한 분의 자살과 j 교수
최의상
자살한 어느 귀한 분의 국민장 영결식 날이다.
개운치가 않다. 슬퍼할 수도 없고, 슬퍼 안 할 수도 없다.
전 국민의 국민장도 아니고 일부 작당자들과 어쩔 수 없어
참여하는 자 들과 그 분의 예우와 인정에 참여한 군중들이다.
이 조문의 열기를 이어 반정부시위로 몰고 가려는 세력들이
작전을 짜고 있다. 반역의 음모를
이 시대는 반역의 음모가 서울 한 복판에서 외쳐대도
집회, 결사, 표현의 자유로 포장된다.
이 현상은 참여와 열정이라 한다.
그래도 시간이 흘러 봉하마을에서는 발인이 시작되고
울어야 할 사람들은 울고, 웃어야 할 사람들은 웃는다.
고인인 그 분이 만약 이 광경을 보고 있다면
“내가 자살해 죽기를 잘 했구나. 나를 이해하는 노사모들이
500만이 넘는구나. 자살은 아름다워,
죽어서 저 들에 푸르른 솔잎 끝내 이기었구나.“ 라고 할까
아니면 “바보. 정말 바보짓 했어.
나라를 온통 소용돌이치게 했구나.“할까.
아니면 “집사람과 자식들과 친척들과
나를 위해
일하다 감옥 간 동지들이 고통 받는 것이 안타까워
내가 모든 죄를 지고 자살하면 깨끗이 해결 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변질 좌파가 되고 있으니 이를 어쩐담.“
글쌔 뭐라고 할까. 그 답을 알 수 있다면
삶의 목적이 다르겠지.
유서에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투신자살한다.”라는 말을
한 줄만이라도 써 둘 걸. 에이 바보.
잘못된 슬픔, 잘못된 찬사, 잘못된 편승,
잘못된 사랑, 잘못된 인정, 잘못된 가치
잘못된 판단, 잘못된 생각, 잘못된 죽음
잘못된 바람이 분다. 잘못된 바람이 분다.
어쩌면 귀하신 그분은 잘못된 것을
잘된 것으로 인정하려다
미완의 도전으로 실패하였다고
스스로 증명한 것 같아 슬프다.
미완의 도전으로 실패한 원인은
무엇일까
잘못된 인기에 영합하여 자기들끼리만
자축하였기 때문이다.
그 요소가 노사모, 386세대, 주사파, 전교조,
친북좌파들이며, 특히 문학과 예술계의 꼴불견들이다.
아직도 독재에 항거한다는 똥끼호테적 망상에
사로잡혀있는 허수아비 열사들이 비호감을 주었다.
“귀하신 그분은 깨끗하고, 서민적이다.”
일억짜리 시계야 주니까 받았을 뿐이지.
그런데 가족과 친척, 동지들은 호화주택에서
돈 받아 호의호식 했다는 데....
“修身諸家 然後 治國平天下”는 이런 때 써야 하는
말인가 한다.
촛불이 광장에서 넘실거린다.
이미 PD수첩과 촛불은 사망선고를 받은
버림받은 아픔의 상처다.
상처 입은 들개처럼 광야에서
마지막 종지부를 찍으며 울부짖는 허세다.
어느 팔방참견 논객은 이미 말한 적 있다.
“자살세 받아라.”
“자살할 짓 하지 말지”
“검사실에 청산가리 준비하여 셀프 서비스하라.”
시대의 양심이라면
소반에 정한수 올려놓고
“절필하겠다.”
“교수직과 모든 감투 버리겠다.”
“속죄하며 살겠다.” 등등
조용히 물러나리. 자살은 말고.
민주주의의 꽃인 자유, 평등, 박애가
주야로 횡행하는 광장의 푸른 잔디 위에서
무참히 밟혀 뭉개지고, 죽창 들고 찌르는 비양심들,
스스로 그들 마음에 사상의 독재자를 키우고 있다.
그들 마음에 자살한 귀하신 분을 “독재자”로
슬픔을 머금고 섬기고 있다.
슬픈 귀하신 분의 자살이
“아름답다” 뉘 노래할 것인가.
權不十年 미리 깨달았던들
귀하신 그 분의 자살처럼 비참할 소냐.
이제라도 一場春夢이었다고
호탕하게 웃어 제처라. 그대들이여.
빼앗긴 권력 넘보지 말고
초야에서 착한 백성으로 살아라.
아픈 상처 더는 헤치지 말자.
j 교수
봉하마을로
자살세 받으러 가지 않기를....
2009.6.29
그 날 그 심정을 그대로 베꼈을 뿐 다른 뜻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