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가히문학상 수상작>
시샘의 뒷면 외 4편
인은주
혼자서 색종이를 접는 날이 많아졌다
세상을 좋아하던 엄마가 미웠다
시샘은 발이 빨라서 따라갈 수 없었다
엄마를 접었는데 마귀할멈이 보였다
마음속 독사과가 고개를 쳐들었다
시샘은 천사의 날개를 잃어버린 아이였다
접혀진 색종이의 뒷면이 궁금했다
엄마의 뒷모습에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표면은 거짓이란 걸 그때 처음 알았다
- 《가희》 창간호
실습
심장이 나댈 때는 웃는 게 최선이었다
두 손을 나눠 가질 상황이 아니어서
모른 척 어깨너머로 곁눈질을 해야 했다
무서운 정신병동 실습을 다녀온 뒤
소녀는 빠르게 숙녀가 되어갔다
그렇게 근엄한 웃음을 배우게 되었다
병원에서 돌아오면 뼈 이름을 외웠다
몇몇의 친구들은 최면에 시달렸고
가운을 뒤집어쓰고 우는 날이 많아졌다
뼈아픈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이었다
두 손이 모자라서 입까지 동원했다
백의의 천사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다
- 《다층》 2023년 여름호
난간위의 비둘기
베란다 난간 위에 겨울비가 앉는다
겨울비를 따라온 비둘기가 젖는다
쉼이란 그런 것이다,
알면서도 젖는 것
한 호흡 들이쉬고 검은 눈알 치뜬다
뱉어야 할 울음이 숨을 턱턱 막는다
숨이란 그런 것이다,
알면서도 삼키는 것
날개를 펼치지만 날개가 짐이 되는
난간 위의 비둘기는 난관 위의 비둘기
속박은 그런 것이다,
알면서도 빠져드는 것
겨울비가 흩뿌려져 첫눈이 되는 동안
숨결은 흩뿌려져 울음이 되어간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알면서도 속는 것
- 《내일을 여는 작가》 2023년 봄호
고등어 한 상자
배가 막 들어온 이른 아침 부두에서
푸른 물결 뒤집어쓴 고등어를 보았다
무엇에 이끌린 듯이
그 푸름을 사버렸다
고등어 한 상자에 바다가 두 상자
청춘이 돌아온 듯 마음에 물이 올라
먼 바다 모험이 담긴
이야기도 데려왔다
투명한 비늘 하나 손등에서 반짝이고
새파란 비린내가 몸 안으로 사라졌다
세상의 모든 골목이
파도처럼 보였다
- 《정형시학》 2023년 겨울호
간호학교
운동장 한가운데 심장을 그려놓고
신음으로 가득한 방문을 열었다
세상을 알기도 전에 고통부터 익혔다
- 《다층》 2023년 여름호
- 《가히》 2024.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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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품
제1회 가히문학상 - 시샘의 뒷면 외 4편 / 인은주
김덕남
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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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1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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