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 修身] 15. 存以甘棠 去而益詠 (존이감당 거이익영)(백우)
15. 存以甘棠 去而益詠 (존이감당 거이익영)
【本文】
存以甘棠 去而益詠 존이감당 거이익영
생전에는 감당나무 보존하여 기념하고
사후에는 시를 지어 더욱더욱 기렸도다.
【훈음(訓音)】
存 있을 존 以 써 이 甘 달 감 棠 팥배나무 당
去 갈 거 而 밀이을 이 益 더할 익 詠 읊을 영
【해설(解說)】
이번 장에서는 수신(修身)의 마지막편으로, 주(周)나라의 소백(召伯)이 감당나무 아래서 선정을 베풀었는데, 백성들은 후세까지도 그 덕을 기려 나무를 보존하고 시를 지어 기렸다는 고사를 통하여, 수신의 길은 최종에는 학문을 닦아 벼슬길에 나아가고 선정을 베풀어 후세까지도 이름이 아름다워야 함을 공부하게 됩니다.
存以甘棠(존이감당) 생전에는 감당나무 보존하여 기념하고
去而益詠(거이익영) 사후에는 시를 지어 더욱더욱 기렸도다
존(存)은 아들 자(子)와 있을 재(在)의 회의형성자(會意形聲字)입니다.
어린이(子)를 편안하게 있게(在)한다는 뜻으로, 잘 있느냐 어떠냐를 물어 본다는 것이 원뜻입니다. '있다', '생존'을 뜻합니다.
'있다'라는 글자에 존(存)과 재(在)가 있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존(存)은 우주의 자식인 만물[子]이 있음(有)을 뜻하는 글자입니다. 만물의 씨[子]에 중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만물의 형체와 씨에 중점을 둔 '있음'을 뜻합니다. 또 씨앗과 자식이 있다는 뜻에서 종족을 '보존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자식을 두어 자손을 이은 것이기 때문에 '편안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에 반해 재(在)는 일정 장소(土)에 '있음'을 뜻합니다. 땅은 일정한 장소나 위치에 해당하므로 재(在)는 일정한 장소에 '있음'을 뜻합니다.
이(以)는 지사자(指事字)로, 소전(小篆)의 글자모양은 '그칠 이(已)'를 그 반대의 방향으로 뒤집어 놓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 훈도 '그치다, 말다'의 반대인 '하다, 쓰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현대의 자형인 '以'는 그 오른편에'人'을 덧붙인 것입니다.
이(以)는 목적ㆍ수단ㆍ원인ㆍ이유 등을 특히 지시하여 말 할 때 '~로써, ~가지고'의 뜻으로 쓰입니다. 또 '까닭', '쓰다' 라는 의미로도 씁니다.
감(甘)은 입 구(口)와 한 일(一)의 지사자(指事字)입니다. 입(口) 안에 맛있는 것(一)이 들어 있음을 나타내어 '달다'는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당(棠)은 나무 목(木)과 오히려 상(尙)의 형성자(形聲字)로, 본뜻은 '숫아가위'를 뜻합니다. 그래서 이 당(棠)을 아가위 당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아가위는 한방에서 산사(山査)라 불립니다. 여기서는 팥배나무로 쓰였습니다. 팥배는 감당(甘棠)이라 하는데 당리(棠梨)라고도 합니다. 팥배나무 열매를 말합니다. 아가위나무와 팥배나무는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릅니다. 나무열매도...
거(去)는 상형자(象形字)로 뚜껑이 있는 오목한 그릇을 본뜬 것이라 합니다. 그래서 '오목하다'' '안으로 들어가다'의 뜻에서 '현장에서 물러가다', '모습을 감추다' 등의 뜻이 되었다고 합니다. 또는 본뜻이 '사람이 서로 어기다'인데 그것이 행(行)의 의미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而)는 코밑에 난 수염을 본 뜬 상형자(象形字)로, 일설에는 턱수염, 또는 구렛나루를 본떴다고 합니다. 그래서 '턱수염'이 본 뜻이나 거의 쓰이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접속사로서 '그리하여'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익(益)은 물 수(水)와 그릇 명(皿)의 회의자(會意字)로, 그릇[皿])에 물[水]을 합하여 그릇에 물을 더한다는 뜻으로 '그릇에 물이 넘친다'는 뜻을 나타냅니다. 넘칠 일(溢)과 같은 뜻입니다. 그래서 '더하다', '돕다', '많다' 등의 뜻으로 쓰입니다. 여기서는 '더욱'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영(詠)은 말씀 언(言)과 길 영(永)의 형성자(形聲字)로, '길게 노래한다'라는 뜻입니다.
존이감당 거이익영(存以甘棠 去而益詠). 이것은 생존해 있을 때는 감당나무를 보존하여 기념했고, 사후에는 그 덕을 찬미하는 시가를 지어 더욱 사모하여 읊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주(周)나라 소공(召公)과 관련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주나라 소공(召公)은 소백(召伯)이라고도 하는데 이름을 석(奭)이라 합니다. 소공 석(召公奭)이 남쪽 제후국에 있을 때, 감당나무 아래에 머물러 선정을 베풀었는데 백성들이 그의 교화에 따르지 않은 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시경(詩經)》『소남(召南)』「감당(甘棠)」에 이에 관련한 시가 있습니다. 중국의 섬서성(陝西省)에 있는 위수(渭水) 북쪽에 '소(召)라는 땅이 있었는데, 이곳을 주무왕(周武王)의 친척이자 공훈이 많은 신하였던 희석(姬奭)에게 다스리도록 했습니다. 그가 바로 소공(召公)입니다. 그는 덕이 높아 그가 다스리는 곳은 백성들이 매우 화평했다고 합니다. 소공은 항상 향읍(鄕邑)을 순행하였는데 감당(甘棠)나무가 있어 옥사(獄事)와 정사(政事)를 그 나무 아래에서 집행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위로는 후(侯)와 백(伯)으로부터 아래로는 서민에 이르기까지 그 위치에서 직분을 잃지 않았다고 합니다. 소공이 죽고 나서 백성들은 그의 정사(政事)를 사모하고 감당나무를 아끼어 감히 자르지 않고 감당의 시를 지어 그를 추모했다고 합니다.
백성들이 지어 불렀다는 다음의 감당(甘棠)이란 시를 감상해 보겠습니다.
蔽芾甘棠 폐패감당 무성한 팥배나무
勿翦勿伐 물전물벌 자르고 베지 말라.
召伯所茇 소백소발 소백께서 쉬시던 곳.
蔽芾甘棠 폐패감당 무성한 팥배나무
勿翦勿敗 물전물패 자르고 꺾지 말라.
召伯所憩 소백소게 소백께서 쉬시던 곳.
蔽芾甘棠 폐패감당 무성한 팥배나무
勿翦勿拜 물전물배 자르고 굽지 말라.
召伯所說 소백소세 소백께서 머물던 곳.
소공의 덕화가 어떠했길래 그 유덕을 추모하여 이런 노래를 지었을까요?
무성한 저 팥배나무의 가지나 잎을 자르지도 말고 베지도 말라.
예전에 우리 소백께서 휴식하시던 곳이다.
무성한 저 팥배나무의 가지나 잎을 자르거나 꺾어서 상처내지 말라.
예전에 우리 소백께서 쉬시던 곳이다.
무성한 저 팥배나무의 가지나 잎을 자르거나 구부리는 일이 없도록 하라. 예전에 우리 소백께서 그 나무그늘에서 머무르시던 곳이다.
이 노래를 보면 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소공이 백성들을 위하여 일하다가 팥배나무 아래서 머물며 쉬었다고 백성들은 그를 못 잊어 그 나무를 절대 자르거나 꺾어서 훼손하거나 잡아당겨 구부리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노래한 것입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소공이 백성에게 베푼 선정이 어떠했는가를 짐작케 합니다.
백성들은 소공이 살아 있을 때는 감당나무를 기념하여 보존하였고, 그의 사후에는 노래를 지어 그의 덕을 칭송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천자문의 존이감당 거이익영(存以甘棠 去而益詠)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제5장 수신편을 공부해 왔습니다. 성현(聖賢)의 길은 무엇인가 하는 경행유현 극념작성(景行維賢 克念作聖)으로부터, 몸가짐, 언어생활은 어떠해야 하며, 효와 충으로 부모를 섬기고 나라에 충성하며, 몸과 마음을 바르게 닦고, 부지런히 촌음을 아껴 부지런히 학문을 연마하여 학문을 이루고, 학문을 이룬 후에는 벼슬길에 나아가 백성을 위하여 봉사하고, 그 사후에도 이름을 아름답게 날려야 한다는 존이감당 거이익영(存以甘棠 去而益詠)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수신이 바르게 되어야 후세까지 아름다운 이름을 날릴 수 있는 것입니다. 작금의 현실에 비추어 보면 소위 위정자라는 자들이 국가권력을 휘둘러 백성위에 군림하면서 국민을 위하기 보다는 자기의 당, 자기의 사람, 자신을 위하다 보니 칭송은 간데 없고 비난만 쇄도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것은 그 기본이 되는 수신을 하지 않은 탓일 것입니다. 만사는 기본이 서면 아름답습니다.
이것으로 수신편을 마치고 다음은 제6장 제가(齊家)편을 공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