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남을 화나게 하거나 낭패를 보게 만드는 짓을 하는 걸 두고 "염장 지른다"고 말한답니다.
대부분 염장이 신체의 일부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건 아니며 장보고와 오랜 은원(恩怨) 관계였던 염장이 장보고를 살해한 것에서 유래한 말이랍니다.
장보고의 도움으로 왕권을 차지한 신무왕(김우징)은 그의 딸을 차비(次妃)로 삼을 것을 약속했답니다.
그러나 골품제를 국법 이상으로 중하게 여겼던 당시 신라 귀족들에겐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었답니다.이들은 "해도인(海島人. 섬놈)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일 수는 없다"며 강력하게 반대한답니다.
신무왕은 이에 한 발 물러서 아들인 문성왕의 태자비로 삼으려 했지만 이 역시 여의치 않았답니다.이 와중에 신무왕은 죽고 마는데 즉위 6개월만의 일이랍니다. 장보고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왕실과 귀족세력들에게 장보고를 견제할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답니다.
이들에게 특단의 대책이란 장보고의 죽음뿐이었는데1만여 명의 장보고 군대가 주둔하고 있던 청해진을 군사를 일으켜 친다는 것은 몰락해가는 신라 왕실로선 버거운 일로 암살자가 필요했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장보고의 친구인 염장으로 암살의 조건으론 장보고에 버금가는 자리가 내걸렸답니다.장보고의 친구면서 오랜 은원 관계였던 염장은만취한 장보고를 846년 살해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