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거리 / 하종오 시창고
해거리 / 하종오
원래 남의 밭에 있던 것을 슬쩍 해와서
화단에 심어놓은 뒤로 내 속셈 모르는 척
적작약이 다신 꽃을 피우지 않았답니다.
제까짓 놈 제까짓 놈 언제까지 영 꽃 안 피우는지
두고보자 벼른 지 몇 해 되는 사이에 그만
나는 눈길을 거두었고, 되는 일이 없었답니다.
날 사로잡아봐야 흰 꽃송이나 도둑당하지 싶어서
에잇 고얀 사람 에잇 고얀 사람 지 맘대로 하라는 건지
적작약이 잎사귀만 내어 보이고 일찌감치 시들었답니다.
서로 본체만체하는 동안에 비로소 알았을까요.
오래 내 눈빛을 받아야 저도 꽃망울을 맺고
제 꽃봉오릴 오래 보여주면 나도 잘된다는 걸
올해는 희디흰 꽃송이를 송이송이 벙글었답니다.
아니, 아니, 한해 더 넘기면 꽃을 피워서는 안될 일이
적작약에게 있었을 겁니다.
하종오 시인
1954년 경북 의성 출생.
1975년 『현대문학』에 「사미인곡(思美人曲)」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80년 『반시(反詩)』 동인으로 참가.
1981년 첫시집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 간행 이후, 『사월에서 오월로』(1984) 『넋이야 넋이로다』(1986) 『분단동이 아비들하고 통일동이 아들들하고』(1986) 『꽃들은 우리를 봐서 핀다』(1989) 『정』 『깨끗한 그리움』 『님시편(詩篇)』(1994) 『쥐똥나무 울타리』(1995) 『사물의 운명』(1997) 『님』(1999) 등의 시집이 있다.
1983년 신동엽창작기금 받음
[출처] 해거리 / 하종오 |작성자 마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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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오의 "해거리"는 적작약을 통해 인간의 욕심과 자연의 순리를 다룬 시입니다.
시는 남의 밭에서 적작약을 가져와 화단에 심었지만, 적작약이 꽃을 피우지 않는 상황을 묘사합니다.
이는 인간의 욕심과 자연의 순리를 무시한 결과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시의 초반부에서는 적작약이 꽃을 피우지 않자 화자가 적작약을 비난하고,
적작약이 잎사귀만 내어 보이며 시드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이는 인간의 욕심과 무관심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냅니다. 그
러나 시의 후반부에서는 적작약이 화자의 눈빛을 받아 꽃망울을 맺고,
희디흰 꽃송이를 피우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는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었을 때 비로소 아름다운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상징합니다.
전체적으로 이 시는 인간의 욕심과 자연의 순리를 다루며, 자연과의 조화로운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